박완호
꽃나무의 표정이 흐릿해지는
사월 초저녁,
떨어지는 꽃잎이 뭇별을 띄워낸다.
잎을 다 떨구고 나서도
꽃나무가 꽃나무로 남듯,
이목구비가 잘 떠오르지 않는 사람도
사랑의 발음을 온전히 지우지는 못한다.
어디선가 그도 나처럼
저녁의 흐릿한 표정을 살펴 가며
기억나지 않는 눈코입귀를
성기게 새겨가고 있으리라.
떨어진 꽃잎까지 다 게워낸 후에야
아득한 훗날을 꿈꾸기 시작하는
늦은 오후의
저 꽃나무 같은.
…
별이 뜨기 시작하는 늦은 오후의 봄날. 그 시간엔 지나간 일들이 기억나고, 그대의 얼굴은 흐릿하지만 지울 수 없는 사랑의 잔영이 떠오른다. 떨어져나간 사랑의 시간들은 지금 떨어지고 있는 저 꽃잎 같고ㅈ 하나 이 시간엔 헤어진 그대도 ‘나’의 “눈코잎귀를/성기게 새겨가고 있”을 터, 이별의 아픔은 어떤 믿음으로 전환된다. 꽃잎을 다 떨어뜨린 이후의 꽃나무처럼 “아득한 훗날을 꿈”꿀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