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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자기 얼굴에 침 뱉기

김세라 변호사
등록일 2025-05-08 18:29 게재일 2025-05-0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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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라 변호사

“변호사님 상고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의뢰인들이 있다. 1심과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피고인이 대법원까지 가 조금이라도 형을 줄여보고 싶다거나 결백을 입증해 무죄판결을 받고 싶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상고를 해도 소용이 없다. 사실판단과 법률판단 모두를 할 수 있는 1심, 2심과는 달리 3심 상고심은 법률판단만을 할 수 있는 법률심이고 상고 사유도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 제383조가 정한 상고 사유는 네 가지이다. 첫 번째, 판결에 영향을 미친 헌법ㆍ법률ㆍ명령 또는 규칙의 위반이 있는 때, 두 번째, 판결 후 형의 폐지나 변경 또는 사면이 있는 때, 세 번째, 재심청구의 사유가 있는 때, 네 번째,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가 선고된 사건에 있어서 중대한 사실의 오인이 있어 판결에 영향을 미친 때 또는 형의 양정이 심히 부당하다고 인정할 현저한 사유가 있는 때이다. 이 중 재심사유는 판결에 쓰인 증거가 위조되는 등의 극히 드문 경우이고, 사실판단이 잘못되었다거나 형이 무겁다는 이유로 상고하는 것은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가 선고된 사건만 가능하므로 결국 대법원이란 곳은 형이 무겁다고 상고할 수 없고, 나는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는데 1·2심 법원이 사실을 잘못 보았다는 이유로 상고할 수도 없는 법원인 것이다.

이처럼 대법원 상고심의 벽은 매우 높은 산이다.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상고심에서 파기환송 판결을 받으면 평생 자랑할 만한 성공 사례로 남기도 한다. 사실판단이나 양형문제로는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이 날 리가 없고 결국 매우 제한적 상고사유 중에서도 판결에 영향을 미친 헌법·법률 위반이 있었다는 것을 변호사가 밝혀낸 것이 되기 때문이다. 

사실판단과 법률판단의 차이는 무엇인가. 예를 들면 말의 존재와 그에 대한 해석의 문제는 사실판단의 문제이고 그것이 어떤 범죄에 해당하는지는 법률 판단의 문제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은 한 대선주자 정치인인 피고인에 대해 사실판단을 하며 파기환송 판결을 했다. 피고인은 지난 대선기간 “마치 제가 골프를 친 것처럼 사진을 공개했던데, 제가 확인을 해보니까 전체 우리 일행 단체 사진 중 일부를 떼서 보여줬더군요. 조작한 거죠”라고 말했는데 이에 대해 2심 법원은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뜻으로 좁게 해석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존재하는 말에 대한 해석은 사실판단의 문제이며 항소심 법원은 이 사실판단을 끝낸 것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것을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뜻이라며 다른 사실판단을 해버리더니 무죄를 선고한 2심 판결을 뒤엎었다. 사건이 접수된 지 한 달 만에 전원합의체 회부, 심리, 판결까지 끝내버리는 전례 없는 신속성까지 더해서 말이다. 대법원은 이렇게 특정 정치인에 대해서만 다른 피고인들과 다른 법 적용과 속도· 절차로 재판해서 사법부가 선거에 개입한다는 소리를 듣게 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대법원은 스스로 자기 얼굴에 침을 뱉고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하고 있는 수많은 다른 법관들의 얼굴에도 먹칠을 했다. 이럴 거면 차라리 대법원장이 픽한 특정 정치인만을 위한 대법원을 따로 만들라는 이야기까지 나올까봐 겁난다. 

/김세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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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여자고등학교 고려대법과대학 이화여대로스쿨 현재)한동대 겸임교수 변호사김세라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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