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 때였다. 단정하고도 조용하신 담임선생님은 피아노를 잘 치시는 음악선생님이셨다. 공부는 제법이지만 가난한 형편인 나를 무던히도 챙겨주려 애쓰셨다. 학급 간부임을 핑계로 학교 가까이 있는 선생님 댁으로 종종 부르시곤 하셨다. 학기 초에는 국어, 영어, 수학 선생님께 새로 나온 참고서를 얻어서 챙겨주셨다. 선생님 어머님께서 챙겨주신 귀한 귤과 크라운산도의 그 달콤하고 부드러운 첫맛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예를 차린다고 소리 내지 않고 녹여 먹으니 깨물어 먹어야 더 맛있다며 웃으시던 선생님이셨다.
학기가 시작된 지 두 달이 지나도록 월사금을 내지 못한 나였다. 가난한 부모님께 말씀드려도 속수무책이니 아침 조회시간에 이름이 불리면 감출 수 없는 부끄러움에 고개만 떨굴 뿐이었다. 그해 사월에는 3학년이 모두 수학여행을 갔으나 난 가지 못했다. 선생님께서 비용을 대 주시겠다고 했지만 아프다고 핑계댔다. 3박4일 수학여행 떠난 휑한 교실에 평소와 같이 왔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죽어라 공부했다.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신 선생님은 날 부르시더니 그 부드럽고 고운 손으로 내 손을 잡고 자그마한 거울을 쥐어주셨다. 그달 모의고사에서 전교 1등을 하여 수학여행 못 간 부끄러움과 슬픔을 보란 듯이 상쇄했고 선생님께 환한 웃음과 기쁨을 드릴 수 있었다.
개교 기념일 즈음이었을 것이다. 운동장 전교 조회 시간이었다. 내 이름이 크게 호명되자 얼떨결에 나갔고,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동창회장님의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장학금을 받기 전과 후에도 선생님께서는 그 어떤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장학금을 내게 주려고 교장 선생님께 여러 번 곡진한 부탁을 하시더라는 2학년 담임선생님의 말씀을 훗날 들었을 뿐이었다. 고마우신 선생님 덕분에 나는 밀린 1분기 월사금을 바로 낼 수 있었고, 그러고도 남은 돈을 엄마에게 드리면서 엄마의 눈물 바람을 슬쩍 훔쳐보았던 것도 같다.
아 그러나 그때 난 참으로 어리석었다. 한 달 뒤 스승의 날이 있음을 미처 깨닫지 못했고, 선생님께 드릴 카네이션 한 송이 살 돈을 챙기지 못한 거였다. 스승의 날 아침, 학급 전체 아이들에게서 모은 돈으로 산 선물을 들고 학교에 갔다. 개인적으로 선물을 마련하지 못한 자책으로 간밤에 잠을 설쳤기에 평소보다 일찍이었다. 교문을 들어서면 바로 등나무 덩굴에 뒤덮인 쉼터가 있었다. 너무 이른 등교라 잠시 앉아도 되었다. 나무 벤치에 털썩 앉아 위를 쳐다보는데, 연보라색 등꽃이 포도송이마냥 주렁주렁 흐드러져 있었다. 예뻤다. 선생님같이 곱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꽃이었다. 벤치 위에 올라 까치발을 하고 꽃을 한 아름 꺾었다. 아찔하고 향긋한 내음이 교복에 묻었다. 교실에서 예쁜 꽃만 다시 추렸다. 선생님 책상 위 둥근 꽃병 가득 등꽃을 꽂았다. 축축 늘어져 처졌지만 꽃병을 가리고 덮을 정도로 가득 꽂으니 뭐 그런대로 볼만했다. 무엇보다 선생님 책상 주위에서 교실 전체로 번진 진한 향기가 선생님께 대한 미안함에 짓눌렀던 내 마음을 감추어 주는 듯했다. 교실로 들어오시면서 무슨 향기지? 라며 환히 미소 띠시는 선생님께 나는 꽃향기보다 더 짙고 진한 감사 인사를 마음속으로 올렸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