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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없다는 정부, 대법원은 응답하라

경북매일
등록일 2025-05-14 18:47 게재일 2025-05-1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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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규열 고문

2017년 11월 15일, 포항을 강타한 지진은 단지 한 도시의 재난이 아니었다. 당시 대학 캠퍼스에서 수업 중이던 필자는 학생들과 함께 건물 밖으로 탈출해야 했다. 생명이 위협받는 순간이었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도시는 깊은 공포에 빠져들었다. 충격적인 사실은 이 지진이 자연재해가 아니라, 정부가 추진한 지열발전소 시추작업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과학적으로 확인된 데 있었다. 명백한 ‘인재(人災)’였다. 정부는 지열발전소 시추 과정에서 고압수를 지하에 주입했고, 단층이 자극을 받아 지진이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유사사례는 해외에도 있었고 국내 학계에서도 촉발 지진 위험이 수차례 경고된 바 있었다. 정부는 충분한 검토 없이 사업을 밀어붙였다. 시민들은 자신들의 삶을 무너뜨린 재난이 무지나 실수를 넘는 정책적 책임의 결과였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포항시민들은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정부의 책임을 인정했다. 최근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부정하며 ‘예측할 수 없었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 판단은 타당한가. 이미 유사한 지열 사업에서 지진이 유발된 사례가 있었고 국내 전문가들 또한 가능한 위험을 경고해 왔다. 전문가들의 경고가 무시된 채 사업이 강행되었다면 이는 예측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 예견된 결과에 가깝지 않은가. 정부의 태도는 바뀌지 않고 있다. 시민들이 삶의 토대를 잃고 정신적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음에도 정부는 사과 한마디 없이 침묵하고 있다. 어느 책임자도 처벌받지 않았고 피해복구는 아직도 미완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정부가 스스로 책임을 부정하는 모습은 국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포항 시민들은 여전히 무너진 삶을 복구하지 못한 채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으며, 지역 경제는 장기간 침체 상태에 빠져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짓는다면, 이는 포항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이것이 국가인가. 국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가 국민의 삶을 인위적으로 뒤흔든 재난 앞에 ‘책임이 없다’며 뒷짐지는 모습은 모욕적이다. 법적 책임을 포함하여 도의적, 정치적 책임도 면탈할 수 없다. 정부가 연루된 인적 재해의 결과를 바로 보아야 하며 이에 관련된 책임을 분명히 감당해야 한다.

대법원의 판단만 남았다. 사건은 법리 다툼을 넘어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해 어떤 수준의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묻는 헌법적 쟁점을 내포한다. 대법원은 사건의 의미를 직시해야 한다. 상고심은 절차적 기회일 뿐 아니라 사법부가 사회적 정의를 최종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책임지지 않는 정부는 정당한 권력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책임 있는 기반 위에 서야 하며 국민의 신뢰는 책임의 이행으로부터 비롯된다. 포항지진은 우리 사회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정당한 질문에 적절한 응답을 끝까지 요구해야 한다. 정부의 실책에 관한 물음에 응답해야 할 시간이 이제 대법원 앞에 온 것이다. 

/장규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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