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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계절 그리스 근현대

경북매일
등록일 2025-05-20 19:14 게재일 2025-05-2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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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파시즘의 태동과 2차 세계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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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다 본 풍경.

1차 세계대전 종식 후 유럽이 요동쳤다. 오스트리아제국 합스부르크왕가와 러시아 로마노프 왕정이 역사에서 사라졌고, 발칸반도에 슬라브족의 독립국이 불사조 정신으로 세워지면서 긴장 국면에 접어들었다. 전쟁 후유증으로 유럽경제가 몰락하면서 반대로 미국이 세계 강자로 급부상했다.

1930년대 세계는 긴박한 리듬을 타면서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나라마다 휘청대기는 엇비슷했다. 대공황으로 인해 대량으로 실업자를 양산했고 사회 곳곳에 만연한 부정부패는 벗어날 기미조차 없었다.

이탈리아에는 무솔리니가 등장하면서 파시즘 체제가 수립되어 국제질서를 위협했다. 배타적 민족주의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자, 공산주의가 파시즘의 대항마로 설득력을 얻었다. 패전국 독일은 더욱 심각했다. 막대한 전쟁배상금으로 독일은 위기에 몰렸다. 그런데 그 여파는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때 등장한 나치당 히틀러는 어려운 국민의 심경을 정확하게 읽었고, 독일 국민은 태양을 등지고 열변을 토하는 그의 연설에 열광했다. 히틀러가 독일 정권을 탈취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독일 국민이 히틀러를 선택했던 것이다.

1935년 베르사유조약에 불만을 품었던 이탈리아 무솔리니가 에티오피아를 급습하고 동아프리카제국을 세우는 데 성공한다. 1938년 패전 이후 굴욕감에 치를 떨던 독일은 에스파냐 내전에 개입하면서 뮌헨협정을 이끌어 내 보헤미아 지방을 자국 영토로 만들었다. 그해 3월 1차 세계대전 동맹국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고 베르사유조약의 무효화를 선언했다. 뒤이어 체코를 침략해 보호령으로 만들었다. 이탈리아 역시 발칸반도로 진격해 알바니아를 식민국가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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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그리스 군부 실권자인 요안니스 메탁사스 장군이 정변을 일으키면서 의회와 정당을 해산시켰으며, 헌법상 권리를 모두 백지화하면서 계엄령을 선포한다. /퍼블릭

독일은 국제사회 눈치만 보던 소련과 상호불가침조약을 체결하여 재갈을 물렸다. 공산당을 기피하는 파시즘이 공산주의 원조국과 손잡는 아이러니가 연출되었던 것이다. 이를 지켜보던 영국과 프랑스의 선전포고로 1939년 9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겉으로는 민주주의와 파시즘의 이념적 대립이었다.

그동안 그리스는 내부로부터 곪아갔다. 1924년 3월 25일 터키와 전쟁 패전의 책임을 물어 국왕 게오르기오스 2세를 몰아내고 공화정을 세웠지만 혼란을 거듭하다가 1936년 군부 내 실권자인 이오안니스 메탁사스 장군이 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찬탈했다.

전제군주 타도와 평등을 외치는 공산주의 바람은 발칸반도 신생 독립국에 의외로 거셌다. 국민은 그리스를 공산주의로부터 구해야 한다는 메탁사스 군부를 지지했다. 왕당파였던 메탁사스가 왕정 복귀에 성공하면서 망명 중이던 게오르기오스 2세를 불러들여 국왕에 앉혔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의회와 정당을 함께 해산시켰으며, 헌법상 권리를 모두 백지화하고 계엄령을 선포했다. 메탁사스는 자국민 통제에 맞는 체제를 위해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권을 모방했던 것이다. 국왕 게오르기오스 2세는 허수아비일 뿐 메탁사스는 1941년 후두암에 걸려 죽기까지 절대 권력을 차지했다.

그 와중에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1940년 10월 이탈리아 무솔리니는 그리스가 영국에 기우는 것을 염려해 그리스를 침략했다. 알바니아를 점령했던 무솔리니가 발칸반도 욕심이 났던 것이다. 그러나 의외였다. 그리스 군의 대항 능력은 기대 이상, 이탈리아는 히틀러가 혀를 찰 정도로 전투력이 형편없었고, 알바니아에서 패한 후 도망치듯 물러나고 말았다.

나치는 소련 침공을 계획하고 쿠데타로 정신없는 유고를 10일 만에 점령하고 괴뢰정부를 세운 후 그리스에 영국군 비행장을 파괴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하늘에서 폭탄을 퍼붓고, 해변으로 전차와 독일군을 상륙시켰다. 영국이 개입했으나 만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방어선이 무너지면서 후퇴했다. 그리스 총사령관 파파고스는 조상이 남긴 문화유산만이라도 지킬 마음으로 독일에 항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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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인민해방군 파르티잔 ELAS 군인들. /Wikimedia

독립에 대한 열망이라면 그리스도 대한민국 못지않았다. 독재 치하 그리스 사람들은 터키독립전쟁에서 그랬듯 지하무장투쟁을 펼쳤다. 점령국 독일군에 의한 그리스 내 유대인 학살도 이어졌다. 워낙 어마어마한 사건이라 희생자에 누가 될까 언급하지 않겠다.

1944년 11월 마침내 그리스는 연합군의 노력으로 독일 손아귀에서 벗어나 해방을 맞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발칸반도에 유일하게 공산화되지 않은 그리스를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가 애지중지 했다. 만약 그리스마저 공산화가 된다면 지중해가 소련의 손에 떨어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래선지 전쟁이 끝난 후, 나치에 저항했던 그리스 레지스탕스가 소련을 견제하려는 처칠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대조적으로, 나치에 부역한 우파 민병대를 지원하면서 1946년 3월 30일부터 3년 7개월간 그리스 내전이라는 복선이 깔리고 만다. 어쩌면 이토록 한국전쟁 전 상황과 닮았을까. 프랑스가 나치 괴뢰정부에 조금이라도 가담한 인사들을 그냥 두지 않았던 것과는 비교되는 대목이다. 김일성이 남침하자 가장 먼저 돕기로 나선 국가가 그리스란 사실이 놀랍지 않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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