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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안개 너머 고요한 시간의 풍경 화순 세량지

최병일 기자
등록일 2025-06-02 18:24 게재일 2025-06-03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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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과 산보의 공간 전국호수 명소 3선
산벚꽃 흐드러진 세량지의 절정 /화순군 제공

◇ 자연의 품과도 같은 수묵화 풍경 화순의 세량지 

여름의 햇살은 유난히 사려 깊다. 먼 길을 달려온 바람조차 조심스레 숨을 죽이는 아침, 고요히 펼쳐진 물 위로 나뭇잎이 떨구는 그림자 하나까지 섬세하다. 화순의 작은 저수지 세량지.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1969년 조성된 이곳은, 이름난 호수들에 비해 크지 않지만 그 존재감만큼은 결코 작지 않다. 

세량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아이의 모습

한 장의 사진, 한순간의 찰나가 이 평범한 저수지를 세상에 알렸다. CNN이 꼽은 ‘한국의 꼭 가봐야 할 50곳’에 이름을 올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세량지가 있는 마을의 이름은  세량리다. 세량리는 1395년 남양 홍씨가 최초 입향하면서 샘이 있는 마을이란 이름으로 ‘새암골’로 불리게 됐다. 새암골은 세월이 흐르면서 세양동이 됐다가 1914년 일제 강점기 행정구역 개편 때 세량리로 바뀌었다. 세량리에 있는 조그마한 저수지는 세량지 혹은 세량제로 불리게 됐다. 

평화로운 세량지의 모습 /한국관광공사 제공 

세량지를 둘러싼 흙을 다져 만든 둑은 고작 50m 남짓이지만, 새벽 무렵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모습은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한다.  연분홍 벚꽃이 피는 늦봄에는  전국의 사진가들이 해마다 이 시기를 벼르며 삼각대를 세우며 새벽을 지새운다. 

하지만 세량지는 단지 ‘사진 찍는 장소’로 기억될 수 없는 곳이다. 벚꽃이 사라진 자리에 초록의 무늬가 번지기 시작하면, 이 작은 저수지는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초여름 세량지는 조용한 사색의 공간이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삼나무와 호숫가에 뿌리를 내린 버드나무, 꽃잎을 떨군 채 초록으로 돌아선 벚나무가 만들어내는 풍경은 수채화보다도 더 화사하다.  호수 한가운데 있는  연보라 오동나무 꽃 한 그루는 나지막이 계절의 감정을 덧입힌다.

여름의 세량지에서 만나는 연보라빛 오동나무 꽃

세량지는 수많은 사진작가들이 선호하는 곳이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의외로 소박하고 친근하다. 자연이 천천히 보여주는 풍경, 그 안에서 머물게 하는 고요함. 우리는 가끔, 그런 조용한 위로가 필요하다. 세량지는 그런 위로를 건네는 곳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아무 말 없이도 마음이 가라앉는 공간. 그곳이 바로 세량지다

세량지 주변을 한 바퀴 도는 800m 둘레길은 자연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통로다. 흙길을 걷다 보면 노란 들꽃이 웃고, 산그늘 아래 시원한 쉼터가 반긴다.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도, 노년의 발걸음으로도 부담 없이 닿는 길. 사는 게 벅차게 느껴질 때, 그저 걷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는 길이다.

여름향기가 가득 풍겨지는 세량지 둘레길

둘레길이 짧아서 아쉽다면, 세량지 오른편 능선을 따라 ‘벚꽃누리길’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총 4㎞인 이 트레킹 코스는 사랑 나무로 불리는 연리지를 품고 있다. 두 나무가 가지를 나눈 채 한 몸처럼 서 있는 모습은 계절이 흘러도 변치 않는 정다움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주민들은 이 길을 따라 매일 아침을 걷고, 저녁이면 하루를 내려놓는다.

보기만 해도 싱그러움이 물씬 느껴지는 세량지 생태공원 

세량지 입구 생태공원도 빼놓을 수 없다. 연못과 분수대, 정자, 그리고 마을 주민들이 정성껏 심은 해바라기밭은 여름날 오후를 고스란히 붙잡아 두는 장치다. 바람에 일렁이는 노란 물결은 절정의 여름을 찬란하게 노래한다.

전시장과 카페가 결합된 복합문화공간 소아르갤러리 

세량지에서 차로 20분 거리의 소아르갤러리는 잠시 멈추어가기 좋은 곳이다. 전시장과 카페가 결합된 복합문화공간으로, 청년 작가의 실험적인 기획전부터 중견 작가의 묵직한 초대전까지 다채로운 예술의 언어가 흐른다. 마치 숲속 온실처럼 향긋한 공간에서 그림을 보고, 정원과 함께 쉬는 시간은 여행의 밀도를 더해준다.

낭만적인 느낌이 물씬풍기는 능주역 전경 

또 하나의 보너스는 능주역이다.  이 작은 역은, 1930년에 개업한 이후 90년 가까운 시간을 품고 있다. 지금은 열차에서 표를 사야 하지만, 플랫폼에 남은 방송의 흔적과 배우들의 손글씨 안내판은 작은 정거장에 담긴 소박한 낭만을 느끼게 한다.

운주사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모습의 석불과 석탑

세량지와 함께 화순8경에 속하는 운주사도 꼭 가볼만한 곳이다. 운주사는 천불천탑의 신비를 간직한 절집이다. 비록 1000기의 불상과 탑이 다 남아 있지는 않지만, 지금도 수십 기의 석불과 석탑이 언덕마다 자리를 지키고 있다. 눈을 맞댄 석불, 발우를 형상화한 원형 석탑, 미완의 와불까지. 이곳은 보는 이로 하여금 종교적 경외심 너머의 독특한 미학을 느끼게 한다.

△ 전국의 호수 명소 3選

◇ 안동호의 고즈넉한 풍경과 예끼마을의 감성 

월영교의 물안개 사진 마치 한폭의 수묵화 같다. /안동시 제공 

안동은 전통문화와 역사의 고장이지만, 호수의 아름다운 풍광을 따라 여행을 즐기기에도 제격이다. 예끼마을은 안동호 가장 북쪽에 있는 마을로, 안동댐을 건설하면서 생긴 안동호 때문에 수몰된 예안면 사람들이 이주한 곳이다.

 마을에 갤러리와 카페, 음식점이 들어서고 선성현문화단지와 선성현한옥체험관이 조성돼 체류형 관광단지로 손색없다. 안동호의 비경을 간직한 선성수상길은 산책 삼아 걷기 좋다. 안동호 끝자락에는 월영교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나무다리로, 원이 엄마의 애절한 마음을 간직한 미투리를 형상화해 만들었다. 호수 위 월영교의 반영과 일몰, 야경까지 하나도 빼놓을 수 없다.

지례예술촌의 대표적인 풍경 스폿 사진명소이기도 하다. /한국관광공사 

지례예술촌은 임하호의 풍경을 머금은 곳이다. 대문과 행랑채 창문으로 바라보는 임하호 풍경 덕분에 ‘인생 사진’ 명소가 됐다.  

월영교 주변에 다양한 벽화와 트릭 아트 등으로 꾸민 신세동벽화마을,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로 유명한 만휴정(경북문화재자료 173호), 경상북도의 독립운동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도 함께 만나볼 안동의 명소다. 

최근 화마로 인해 막심한 피해를 입었지만  자연의 풍경만은 여전하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주는 것이 안동을 다시 정상화시킬 수 있는 응원이자 후원이 될 것이다. 

◇ 고즈넉한 호수 풍경이 매력적인 강원 화진포의 풍경 

강원도 화진포의 풍경 

우리나라 최북단에 있는 고성은 고즈넉한 호수 여행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가장 유명한 화진포(강원기념물 10호)는 갈대가 우거지고, 호수 둘레를 따라 울창한 소나무 숲이 조성돼 있다. 

길도 잘 닦여 있어서 자전거를 타거나 드라이브하기 좋다. 화진포는 국내에서 가장 큰 석호로, 길이 10km에 이르는 산책로도 잘 정비됐다. 호수에서 길목 하나 넘어서면 백사장이 드넓은 화진포해수욕장이다. 이승만별장과 화진포의성(김일성별장)이 이곳의 경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짐작게 해준다. 

호수를 따라 걸을 수 있는 송지호산소길 

화진포 남쪽에 있는 송지호도 고즈넉한 호수 풍경이 매력적이다. 호수를 따라 송지호산소길이 조성돼 걷기 좋다. 호수 건너편 송지호해수욕장은 최근 서핑 명소로 떠오르고, 오토캠핑장이 있어 파도 소리를 배경으로 캠핑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송지호에서 내려오면 화진포, 송지호와 함께 고성8경에 드는 천학정과 청간정을 차례로 만난다. 천학정은 기암괴석과 해안 절벽 위에 있다. 청간정(강원유형문화재 32호)은 송강 정철이 ‘관동별곡’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곳으로 꼽았다. 

활처럼 부드럽게 휜 백사장 아야진 해수욕장. 

아이와 함께라면 아야진해수욕장으로 가자. 활처럼 부드럽게 휜 백사장 북쪽에 갯바위 지대가 펼쳐지고, 속이 훤히 보이는 물빛이 환상적이다.

◇ 호수에 잠겨 있는 나무가 이색적인 예산 느린호수길 

호수 밖 도로에서 바라본 예당호 느린호수길

예산의 느린호수길은 독보적이다. 전국적으로 호수와 강, 바다에 놓인 덱 로드가 적지 않지만, 느린호수길처럼 긴 길은 거의 없다. 길이가 무려 7km. 예당호 둘레가 40km쯤 되니, 1/5 넘게 느린호수길이 놓였다. 느린호수길은 수문에서 예당호출렁다리를 거쳐 예당호중앙생태공원까지 이어진다. 호수에 사는 동식물을 관찰하며 느릿느릿 걷기에 제격이다.

호수에 잠겨져있는 나무 모습이 이채롭다 

 특히 호수에 잠겨 사는 나무 사이를 지날 때는 열대지방의 맹그로브숲을 만나는 것 같아 이색적이다. 느린호수길을 걷다 보면 어죽을 파는 여러 식당을 만난다. 어죽은 예당호에 사는 붕어와 동자개(빠가사리), 메기 등을 넣어 국물 맛이 깊다. 토종 민물고기로 어죽을 쑤는 곳은 드물기 때문에 꼭 맛봐야 한다.

백제와 나당연합군이 최후의 결전을 벌인 장소인 임존성. 

 예당호 옆 봉수산 꼭대기에는 예산 임존성(사적 90호)이 자리한다. 백제 부흥군이 나당 연합군에 맞서 최후까지 격전을 벌인 당당한 역사가 깃든 곳이다. 임존성에서 드넓은 예당호가 한눈에 들어온다. 봉수산 중턱에는 봉수산자연휴양림과 봉수산수목원이 있다. 예당호를 바라보며 하룻밤 묵고, 수목원에서 숲길을 산책하기 좋다. 예산황새공원은 아이들과 함께 귀한 황새(천연기념물 199호)를 만날 수 있는 자연 학습지다.

/최병일 기자 skycbi@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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