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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수된 밤

경북매일
등록일 2025-06-09 18:15 게재일 2025-06-1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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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실레(문유림‧김선아 옮김)

나는 저녁 바람의 서늘함과

폭풍 속 검은 나무를 엿보고 싶었다.

내게 폭풍 속 검은 나무라 함은

구슬피 우는 벌레들과, 농부들의 투박한 발걸음,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다.

 

나는 나룻배의 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 배가 땅에 닿는 순간을 보고 싶었다.

벌레들은 마치 겨울 나라 불의 아이들처럼 노래했지만,

거대하고 어두운 존재가 곧 그들의 화음을 부숴버렸다.

 

도시는 침수되어 내 앞에 차갑게 서 있었다.

 

화가로 유명한 에곤 실레는 시도 썼다. 그의 시는 위의 시가 보여주듯이 화가의 시각이 녹아들어 있어서, 그가 그림에 대해 가지고 있던 작의(作意)도 짐작할 수 있다. “폭풍 속 검은 나무를 엿보고” 표현하려는 것이 그의 작의라는 것을. 그 나무는 벌레들 울음과 종소리, 농부들의 발걸음과 나룻배 소리로 나타난다. 하나 곧 도시가 어둠의 폭풍우에 침수되어버리면서 부서질, 마지막으로 울리는 화음으로 말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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