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수
누군가의 말에 저도 모르게 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트릴 때 깨달음은 거기에 있다 버스를 타고 가다 아, 그랬었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 때 깨달음은 거기에 있다 티브이를 보다가 맞아! 하는 말이 절로 터져 나올 때 깨달음은 거기에 있다 어느 한 구절을 읽다가 마음 깊은 곳에서 밑줄을 그을 때 깨달음은 거기에 있다
깨달음은 이처럼 사소하고도 수다한 것이다 이처럼 비루하고도 천박한 것이며 이처럼 낮으면서도 비근한 것이다 깨달음은 이처럼 적막할 까닭도 이처럼 충만할 이유도 없다 깨달음은 이처럼 신비롭지도 않으며 신비로움이 다함도 없는 것이다 깨달음은 이처럼 시시각각으로 이루는 것이며 깨달음은 이처럼 시시각각으로 잊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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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에 깨달음이 필요할까. 위의 시는 이런 깨달음을 준다. 깨달음은 심오한 도를 깨치는 것이 아니라 심오함을 깨고 일상 속에서 솟아나는 것. 그래서 우리는 다양하게 깨달으며 살고 있다. “사소하고도 수다한 것”이며 “낮으면서도 비근한 것”인 깨달음. 우리는 이 깨달음을 지나쳐버리고 산다. 시인은 이 지나쳐버림도 긍정한다. “시시각각으로 이루는” 깨달음이니 “시시각각으로 잊히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