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거의 모든 농산물 수입에 의존… 곡물 자급률 매우 낮아 한 나라 자립은 농사에 달려 수입쌀로 부터 농민 보호정책 절실
고요해 보이는 들녘에 어느 순간 물이 차는가 싶더니 노을 지며 어둠이 밀려들기 시작하자 와글와글 논 개구리 소리 요란하다. 모내기가 시작되었다는 신호탄이다. 논농사는 볍씨 싹을 틔우기 위해 모판 작업을 하는 4월 중순부터 시작된다. 모판 작업을 한 못자리를 논에서 한 달 정도 키운 것을 모(苗)라고 한다. 이를 밤 기온이 오르는 5월 말 즈음하여 논에 옮겨 심는 것이 모내기다.
소를 이용해 써레질한 논에 물이 가득 채워지면 논을 가로지른 기다란 줄이 놓이고 두 사람이 양쪽 끝에서 맞잡는다. 무르고 질퍽이는 논에서 뒤뚱거리던 사람들은 줄 따라 일렬로 서서, 모판에서 모를 쪄 한 움큼씩 묶어 던져 놓은 것을 들고 허리 숙여 줄 표시에 맞추어 열심히 심는다. 양끝 줄잡은 이가 서로에게 어~이! 하고 외치면 다 심었다는 뜻으로 같이 줄을 들어 적당한 간격으로 옮겨 꽂는다. 그렇게 모는 일렬로 반듯이 열을 지어 심겨진다.
모내기의 백미는 논둑에 둘러앉아 먹는 새참으로 그 국수와 막걸리 맛은 산해진미가 부럽지 않다. 무거운 새참 이고 팔을 휘저으며 바삐 걷는 엄마 따라 고사리 같은 아이 손에도 막걸리 주전자가 쥐어지고 목줄 풀린 강아지도 덩달아 바쁘게 꼬리 흔들며 부산스레 널뛰는 일손 부족한 농번기에는 서로 품앗이로 온 동네가 들썩인다. 농사는 때를 놓치면 안 된다.
한창 모내기로 바쁠 시기임에도 보이는 들녘은 고요하다. 세상이 달라져 모판을 등에 업은 이앙기가 탈탈거리며 물 찬 논 위를 왔다 갔다 열심히 모를 옮겨 심는다. 써레질하는 소도, 새참 이고 오는 이도, 막걸리 주전자를 든 아이도 강아지도 보이지 않는다. 농부는 이앙기 잠시 세워두고 식당을 찾는다.
회사를 다니면서 주말에만 농사일을 한다는 박상환(61·경주시 내남면 덕천리)씨 곁에서 딸이 일을 도운다. 기계가 일을 다 한다지만 사람 손길 필요한 잔일이 많다. 이앙기에 모판을 나르고 비워진 모판을 치워주는 일 등으로 바쁜 농번기에 인력 구하기가 힘들어 타지에서 직장 생활하는 자녀를 주말마다 불러 내린다는 그는 푹푹 빠지는 무른 논 위를 걸어 다니며 하는 평토작업이 가장 힘들단다. 또 다른 벼 재배방식으로 볍씨를 직접 파종하는 것인데 올해는 승용 직파기를 따로 준비해 처음으로 직파기에 볍씨와 비료를 나눠 싣고 물을 뺀 무른 논에 직접 파종도 했단다. 이앙기의 모내기와 직파기의 볍씨 파종. 두 재배방식의 수확 차이는 가을에 답을 얻을 수 있을 듯하다. 힘들지만 재밌기도 하다는 그의 주변으로 이앙기를 기다리는 찰랑찰랑 물 찬 논이 아직 많이 보인다. 쉴 틈이 없다.
한 나라의 자립은 농사에 달려있다. 모든 농산물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은 지금 곡물 자급률이 매우 낮다. IMF 당시, 식량 생산의 핵심인 종자회사들이 교묘히 외국자본으로 넘어갔다. 쌀 자급률이 그나마 높다지만 값싼 수입쌀로부터 농민을 보호하는 정책이 절실하다. 쌀은 삶이다.
같은 동남아에서 태국은 ‘자급자족 자립경제’ 정책으로 농업의 가치를 유지하며 쌀을 수출하는 반면 필리핀은 산업화와 관광업 정책으로 3모작 가능한 농토에 골프장과 공장들이 들어서며 쌀 수입국이 된다. 곡물을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의 안위는 세계 곡물 가격을 쥐락펴락하는 자들에게 주어진다.
남실거리는 모들이 한여름 뙤약볕을 즐기며 포기 수를 늘려 갈 것이다. 너른 들녘을 보고 있자니 시끄러운 세상으로 편치 않은 마음에 고요히 평화로움이 인다. 개구리들은 논에 물이 차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리라.
/박귀상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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