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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바람이 만드는 ‘해풍국수’… “북동풍 불어야 면발 쫀득”

단정민 기자
등록일 2025-06-23 18:19 게재일 2025-06-24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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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살 이순화 국수 장인의 손맛… 대를 잇는 국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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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국수 공장. /단정민기자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한 골목에는 바닷바람이 소금기 섞인 냄새를 안고 들어온다.

매일 오전 5시 50분, 마을 끝자락 오래된 국수 공장의 문이 천천히 열린다. 온밤 숙성된 반죽을 다시 꺼내 마당에 널어야 할 시간. ‘해풍국수’ 이순화 장인의 하루는 그렇게 시작된다.

“내가 올해 여든셋이요. 스물아홉살부터 국수를 만들었으니까 벌써 몇해째인지도 가물가물할 때가 됐네요”

장인은 나이를 셈하듯 덤덤하게 말했다. 공군에서 제대한 남편과 결혼하고 그 길로 국수를 시작했다. 처음엔 매일이 전쟁이었다. 국수를 널어두면 바닷물이 들이쳐 반죽이 바닥에 퍼졌고 면발이 마당 끝까지 쓸려가던 날에는 장사를 접어야 했다. 그 시절 이 좁은 골목길엔 국숫집이 일곱이나 있었다.

 

포항 구룡포서 스물아홉에 국수 만들기 시작… 처음엔 힘든 날의 연속
최소 2~3일 바람에 자연 건조… 덜 말리면 퍼지고, 너무 말리면 끊어져


아들 하동대 씨, 고향으로 돌아와 ‘감각’ 더한 전통 방식 국수공장 운영
어머니 손맛 전국서 인기… 국수 맛에 반한 손님 90% 이상 주문으로

 

“나는 제일 늦게 시작했지. 기술도 없고, 장사도 처음이고. 그래도 기술자 붙여서 2년을 배웠어.”

어렵게 익힌 손기술. 남편은 술을 좋아했고 살림은 가벼울 날이 없었지만 그래도 국수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렇게 지금의 해풍국수가 만들어졌다.

이 집 국수 맛은 바람에서 온다. 북동풍이 불어야 면이 곱고 탄력이 생긴다. 구룡포 앞바다에서 육지로 불어오는 해풍이 생면을 국수로 바꾸는 결정적이자 천연재료다.

“옛날엔 바람 이름도 따로 있었어요. 샛바람, 칼바람, 하늬바람… 북동풍이 제일 곱게면발을  말려요. 다른 바람이 불면 국수가 꾸글꾸글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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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화 장인이 재단한 국수를 포장하고 있다. /단정민기자

장인은 지금도 새벽 4시면 국수공장 기계실 문을 연다. 반죽은 하루를 자고 나와야 한다. 아침 8시 반쯤 생면을 널고 오후 2시에 재단을 한다. 모든 공정은 바람과 온도, 습도를 살펴 가며 맞춘다.

“국수는 잘 말려야 해요. 덜 말리면 퍼지고 너무 말리면 끊어져요. 바람이 좋으면 이틀 아니면 사흘 동안 쫀득한 면발을 유지해요”

그래서 해풍국수는 하루 만에 만들 수 없다. 대형 공장처럼 열풍기로 뽑아낼 수도 있지만 장인은 “그건 국수 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생면은 반나절 반건조 후 다시 창고에서 하룻밤 이상 숙성시키고 최소 이틀은 바람에 말려야 한다. 장인의 방식은 느리고 번거롭다. 그래서 정직하다.

지금은 아들 하동대씨가 공장을 함께 운영한다. 그는 현대·기아차에서 20년 넘게 일한 뒤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어릴 적엔 그저 엄마가 하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해보니 달랐다”고 했다.

“이건 단순한 일이 아니에요. 계절마다 바뀌고 반죽도 다 달라요. 엄마는 손으로 알아요. 온도계 보다 빠르죠.”

아들은 일부 기계를 도입해 효율을 높였다. 하지만 본질적인 공정은 어머니가 하던 그대로다. 창문을 여닫아 바람을 조절하고, 밤에는 창고에서 숙성시키고, 마감 땐 손으로 반죽을 눌러보며 국수의 익힘정도를 가늠한다.

“바쁘다고 생략할 수 있는 공정은 하나도 없어요.”

그는 어머니의 방식이 ‘기술’이 아니라 ‘감각’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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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풍국수 2대 운영자 하동대 사장이 건조 중인 국수를 확인하고 있다. /단정민기자

아들도 고민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감각을 물려받을 수 있을까. 기계를 더 들여야 할까. 하지만 그는 결국 어머니의 방식을 따르기로 했다.

“가장 오래가는 건 결국 사람 손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그는 장인이라는 말 대신 ‘습관’이라는 단어를 쓴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들을 반복해온 사람, 그 반복 속에서 터득한 섬세함, 그게 어머니의 진짜 기술이라는 것이다.

“엄마는 손에 반죽을 딱 쥐어보고 ‘오늘 밀가루가 좋다’거나 ‘어제보다 물을 조금 줄여야겠다’고 말해요. 그런데 그 말이 꼭 맞아요. 과학도, 공식도 아니에요. 몸이 아는 거죠.”

이 집 국수는 전국 각지로 나간다. 과메기를 사러 왔다가 국수를 맛본 관광객들이 집에 돌아가 택배를 주문하고 그중 90% 이상이 다시 주문한다.

어느 날은 서울에서 온 부부가 손 편지를 보내왔다. 

‘이 국수는 따뜻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 한 줄에 장인은 한참 동안 면발을 바라봤다.

“국수를 누가 그렇게 좋게 봐줄 줄 몰랐지요.”

단골도 있다. 아이 때 먹고 자라 어른이 돼 다시 오는 손님, 부모 따라왔다가 혼자 주문하는 손님, 그런 손님 하나하나가 장인에게는 삶을 이어가게 해주는 ‘기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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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한켠 세워진 찬장에는 손 글씨로 쓴 가격 인상 안내문이 붙어 있다. /단정민기자

하지만 해풍국수에는 방송 출연을 알리는 사진도, 버젓이 내건 ‘자랑 현수막’도 없다. 100번 넘게 TV에 나왔지만 가게 벽은 텅 비어 있다.

“방송 나왔다고 도배하듯 붙이는 집도 있잖아요. 나는 그런 거 안 해요. 맛있다고 다시 오는 손님이 제일 고맙지.”

그의 철학은 분명하다. 음식은 사람이 먹는 것이고, 맛은 말이 아니라 혀로 전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다른 국수 공장도 여러 곳 다녀봤다. 부산 구포, 고령, 전남 광양 등 이름난 곳도 둘러봤다. 창도 없는 공장에서 열풍으로 하루 만에 면을 말린다는 설명을 듣고 그는 조용히 돌아섰다.

“그렇게 만들면 면이 퍼져요. 맛이 없어요.”

장인은 여전히 전통 방식대로 창문을 여닫고 바람을 맞으며 국수를 만든다. 비가 오면 3일, 맑으면 이틀. 날마다 다르다.

왜 하필 구룡포였을까.

“나는 태어나 보니 집이 국수 공장이었어요. 그냥 하던 거지요. 근데 가만 보면 이탈리아든 일본이든, 국수 잘 만드는 데는 다 바닷가더라고요.”

구룡포는 그에게 뿌리이자 재료다. 바람, 습도, 기온. 그 모든 것이 이 집 국수의 구성 요소다. 같은 반죽도 계절 따라 달라지고, 창문 여닫는 것 하나로도 맛이 달라진다.

국수는 그에게 생업이자 삶이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자식들에게 “이어받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왔다.

“내 자식이 안 하더라도 괜찮아요. 지금 이 국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고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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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 중인 해풍국수. /단정민기자

장인의 하루는 철저히 바람과의 약속으로 움직인다. 해가 뜨기 전, 새벽 공기를 가르며 공장 문을 열고 기계실에 들어서면 바닥에 습기가 얼마나 올랐는지 반죽의 상태는 어떤지 눈으로 보고 손으로 확인한다.

면을 뽑는 작업도 결코 단순하지 않다. 국산 밀은 풍미가 좋은 대신 점성이 약해 끊기기 쉬워 적절히 배합해야 쫄깃한 식감이 나온다. 염도와 수분 함량도 매번 확인해야 한다. 기계를 돌리기 전에 장인은 꼭 한 번 손으로 직접 반죽을 치댄다. 손끝으로 눌러보며 오늘 면이 잘 뽑힐지 미리 점치는 것이다.

하동대 씨는 이 과정을 처음엔 비효율적으로 여겼다. 

하씨는 “기계로 맞추면 되지 왜 굳이 손으로 또 만질까” 싶었다. 하지만 그 손의 감각이 어느 날 확연히 느껴졌다. 바람이 건조했던 어느 날 자동 조절된 습도는 정상이었지만 국수는 푸석하게 마르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날 생면을 널지 않고 기다렸다. “오늘은 안 된다”는 어머니의 말 한마디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치보다 중요한 건 결국 사람이더라고요.”

단골 손님들 중에는 국수를 ‘계절 음식’ 처럼 여기는 이들도 있다. 여름에는 덜 말리고, 겨울에는 더 오랫동안 바람을 맞힌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순화 장인은 요즘도 국수를 널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오늘 바람이 살살 도네.”

그 말 한마디에 하루치 국수의 표정이 결정된다.

“국수는 성질이 있어요. 잘 마를 놈, 안 마를 놈, 꾸불꾸불해지는 놈. 다 달라요.”

국수 한 가닥이 쫄깃하게 익는 동안 그 속엔 바람과 시간, 사람 손의 감각이 고스란히 스며든다. 그건 구룡포 해풍이 이순화 장인의 손을 거쳐 우리에게 전해주는 맛이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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