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 842번지. 1964년 1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된 태종무열왕릉이다. 이제 언제 그랬었나 싶을 만큼 옅어진 코로나 시절, 아이와 꽤 자주 들렀었다. 경주 시내 어느 유적지보다 관광객은 적지만 어린아이도 무리 없이 걸을 수 있는 곳이어서다.
걷다 다리가 아플 때면 곳곳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쉬기도 하며 마스크를 내리고 마음껏 맑은 공기를 마셨다. 그렇게 2년 정도 아이와 내게 마스크 없이도 괜찮은 안전지대가 되어주었다.
뿐만 아니라 오래된 나무들 사이로 만날 수 있는 여러 종류의 새를 만나는 것도 아이는 참 좋아했다. 오늘도 최소 대여섯 종류의 새 울음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입구에 들어서자 여느 때처럼 거대한 몸으로 주인을 지키고 있는듯한 거대 거북이가 눈에 들어온다. 국보 제 25호인 태종무열왕비다. 이 비석의 이수 전면에 ‘태종무열대왕지비’라 돋을새김 되어 있어 무열왕의 능임을 알 수 있었다.
능의 외형은 밑지름 36.3m, 높이는 8.7m다. 통일신라시대 비석 중엔 당나라의 영향을 받아 거북 모양 귀부에 머릿돌은 용의 모습이 새겨진 모습이 많은데 태종무열왕릉비가 최초라고 한다. 여섯 마리의 용이 뒤엉켜 여의주를 받들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매우 입체적이다.
무열왕이 승하한 후 건립되었으며 둘째 아들인 김인문이 비문을 적었다. 참고로 무열왕릉 도로 건너편에는 김인문의 묘가 있다. 입구 왼쪽엔 문화 관광해설사의 집과 관련 영상을 시청할 수 있는 영상관이 있다. 더위가 심할 땐 잠시 들러 땀을 식히며 영상을 관람하기 좋다.
들어서서 능 오른쪽엔 곧게 이어진 소나무 산책길이 있다. 가끔 바람이 불 때마다 옅게 희석된 송진 냄새가 풍겨왔다. 냄새는 추억을 불러온다. 잠시 잠깐 풍겨온 향은 고향 마을 입구에 있던 마을 숲, 그리고 함께 놀던 친구들이 떠오르게 했다. 초록 풀 사이로는 하얀 나비 몇 마리가 바쁘게 날아다니고 있다.
얼마 되지 않아 줄무늬가 선명한 호랑나비 한 마리가 등장했다. 지난 주말 비가 내려서인지 하늘은 유난히 파랗고 잔디는 푸르다. 눈은 하늘로 귀는 새들에게 기울이며 천천히 걸어갔다.
바깥세상의 시끄러움은 들리지 않는다. 중반쯤 다다랐을까. 낯선 외형의 새 한 마리가 등장했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바삐 날아 가버린 탓에 뒤를 쫓았다. 20~30cm 정도 길이에 푸른 회색 등, 하얀 배를 가진 새는 함께 하는 친구가 제법 되는 듯 했다. 결국 카메라에 새의 모습을 담지는 못했으나 새로운 종을 만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좀 더 천천히 이곳을 즐기고 싶었으나 주말이 아닌지라 돌아오는 길은 서둘러야 했다. 평소 같으면 산책을 마친 후 입구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이나 바나나 우유 같은 달콤한 간식을 즐겼겠지만 이 역시 다음을 기약했다.
시원한 계절엔 터미널에서 걸어오기도 좋을 거리다. 주말엔 비교적 관람객들이 많다 보니 조용한 산책 속 명상의 시간을 원한다면 평일 오전을 추천한다.
관람시간은 연중무휴이며 하절기(3~10월)는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 동절기(11~2월)는 오전 9시에서 오후 5시까지다.
/박선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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