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5년째 경북도청 행정심판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경북도청에서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행정심판위원회에선 보통 20건에서 30건 정도의 사건이 처리되는데, 매번 빠지지 않고 여러 건이 올라오는 사건 유형이 있다. 바로 청소년에게 술을 판매해 행정처분을 받게 된 사건들이다. 하지만 불법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것이 청소년들이 신분증을 변조하거나 도용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증명사진도 보정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신분증상의 사진으로 실물을 알아보기 힘들다는 점을 청소년들이 악용하곤 했다. 길에서 주운 신분증을 친구들끼리 돌려가며 사용하고, 언니나 형의 신분증을 도용하거나, 심한 경우엔 신분증의 사진 부분을 변조하기도 했다.
문제는 지금까지 이런 경우에도 일단 청소년임을 알지 못한 채 주류를 판매한 사업주에게 책임을 묻고 보는 구조였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사업주들이 더욱 철저히 미성년자 연령 확인을 할 것이라는 입법 목적이었겠지만 실제로는 억울한 사업주들이 생겨났다. 청소년에게 주류를 판매한 것이 단속에 적발되면, 경위를 묻지 않고 일단 행정처분이 부과되었고, 사후적으로 청소년보호법 위반으로 고발된 형사 사건에서 무죄나 선고유예 판결이 나와야 행정처분 취소가 가능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업주들은 이를 모른 채 몇십만 원 수준의 벌금형은 일단 받아들이고 영업정지 같은 행정처분에 대해서만 불복을 시도했기 때문에, 행정심판까지 왔을 땐 벌금형의 형사처벌이 확정된 경우가 많았다. 설사 형사처벌 확정을 막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도 대부분이 소상공인인 사업주들에겐 변호사 비용을 들여 형사재판에 대응하고 무죄 혹은 선고유예 판결을 받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몰라서 안하고 돈이 없어 못했다. 결국 형사처벌이 확정되면 법률상 행정처분도 취소될 수 없는 악순환이었다. 변조·도용한 신분증을 들이민 청소년에게 속은 사업주들이 1개월 이상의 영업정지 또는 그 영업정지 기간 매출에 상응하는 과태료 처분을 맞고 경제적 타격을 입었다. 필자 역시 행정심판 주심으로 심판할 때 이런 사건은 너무 억울해 보여 최대한 구제해주고 싶었지만, 법률이 명문으로 행정처분을 못 박아 놓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억울한 자영업자들에 대한 구제책이 필요하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고, 드디어 작년 관련된 법이 개정되었다. 판매자가 청소년의 신분증 위·변조, 도용으로 청소년인 사실을 알지 못했거나 폭행 또는 협박으로 신분증 확인을 하지 못한 경우엔 행정처분을 면제할 수 있도록 식품위생법 등이 개정된 것이다. 이제라도 법 개정이 이루어져 다행이지만, 선량한 자영업자들의 생계를 옭아매는 억울한 법들은 다양한 영역에서 여전히 존재한다. 자영업자 폐업률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도 1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민생 회복을 위해선 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지역화폐를 통한 내수 진작도 필요하겠지만, 자영업자들의 억울한 피해를 발생시키는 이런 법률들을 찾아내고 보완하는 일도 내수 진작 못지않게 중요할 것이다.
/김세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