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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천재가 그린 자유로운 상상

등록일 2025-07-20 18:47 게재일 2025-07-21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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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델스존 ‘피아노 판타지 Op. 28’

많은 위대한 클래식 작곡가들은 가난, 질병, 정신적 고통 속에서 불멸의 작품을 창조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아버지의 학대와 청력 상실, 경제적 불안 속에서도 걸작을 남겼고, 프란츠 슈베르트는 평생 빈곤과 병마에 시달리며 31세로 생을 마감했다. 로베르트 슈만은 손 부상으로 피아니스트의 길을 포기한 뒤 정신질환으로 요양원에서 숨졌다. 이처럼 삶의 상처와 내면의 고뇌가 스민 이들의 음악은 시대를 초월해 깊은 울림을 전한다.

반면에 펠릭스 멘델스존(1809~1847)은 ‘행운아’라는 이름처럼 부유한 유대계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났다. 은행가인 아버지, 철학자 할아버지, 음악 애호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성장한 그는 유럽 예술계의 중심에서 풍부한 교류를 누렸다. 우아한 외모와 사교성으로 귀족 사회에서 각광받았으며, 그의 음악은 고통보다 세련된 균형과 지적 우아함이 특징이다. 화려한 환경과 여유로운 삶이 반영된 작품은 당대의 문화적 취향과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19세기 낭만시대를 대표했던 멘델스존의 음악 스타일은 바흐, 헨델 그리고 모차르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에게서 아름답고 밝은 음색을 가진 시적인 작품들이 많이 보인다. 멘델스존이 살았던 시기는 초기 낭만시대이며 고전시대에 비해 작곡에 엄격한 틀이 없었고 개인의 감정표현을 중요시하는 시기였다. 멘델스존은 고전주의적 낭만주의 작곡가로서 고전주의 형식의 틀 안에서 낭만시대의 자유로운 감정을 담아내었다. 형식의 엄격함, 균형, 절제 보다는 인간 개인의 감정, 사상을 중요시하여 작곡에 있어서 보다 자유로운 화성사용, 종지와 형식의 모호함 등을 사용하였다.

낭만시대에 꽃을 피운 ‘판타지(환상곡)’은 이렇게 작곡가가 생각하는 느낌을 즉흥적으로 쓰는 스타일이다. ‘판타지’는 라틴어 ‘Phantasia’에서 나온 말로, ‘상상’이라는 뜻을 가진다. 일정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기 때문에 작곡가의 독창적인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판타지는 시대를 거치면서 다양하게 변화되었지만 멘델스존이 살았던 시절에는 아직 고전주의적인 영향이 많이 남아 있다.

멘델스존의 대표 피아노 작품 중 오늘 주목할 곡은 ‘피아노 판타지 Op. 28’, 흔히 ‘스코틀랜드 소나타’로 불리는 작품이다.  1832년 여름부터 1833년 초까지 스코틀랜드 여행 중 받은 영감으로 작곡되었으며, 처음에는 ‘소나타’로 구상되었으나 출판 시 ‘판타지’로 제목이 변경되었다. 이 곡은 그의 스승이자 친구인 피아니스트 이그나츠 모셸레스에게 헌정되었다. 당시 멘델스존이 가지고 있던 음악적 아이디어와 감성을 잘 반영하는 곡이다. 3악장 구성으로 되어있고 악장 간 중단 없이 연속  연주된다. 

1악장(F♯ 단조)은 아르페지오(화음을 한꺼번에가 아닌 풀어서 연주)로 시작되며, 자유롭고 즉흥적인 카덴차풍 분위기를 연출한다. 화려한 패시지(선율적 전개)와 긴 페달 포인트(화음의 근음을 반복적으로 유지하며 트릴·글리산도 등으로 장식)가 사용되어 환상곡적 특성을 강조한다. 2악장(A장조)은 사랑스럽고 밝은 악장으로, 전곡 중 유일한 장조로 조성 변화를 통해 이전 악장과 대조적인 분위기를 선사한다. 3악장(F♯ 단조)은 소나타 형식이 마지막 악장에 적용된 점이 특징적이다. 일반적으로 소나타 형식의 재현부에서는 제2주제가 ‘원조(원래의 으뜸조)'로 복귀하지만, 이 곡에서는 같은 으뜸음계(F♯ 단조) 내에서 변형되어 고전적 틀을 유지하면서도 자유로운 구조를 구현했다. 이는 전통적인 형식과 낭만주의적 창의성의 조화를 보여준다. 

‘피아노 판타지 Op. 28’은 표면적으로는 연주 난이도가 낮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섬세한 다이내믹 컨트롤과 감정 표현의 깊이를 요구한다. 그의 음악은 고통이 아닌 지적 세련미와 균형 감각으로 완성된 낭만주의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멘델스존의 또 다른 명작인 ‘무언가(Lieder ohne Worte)’ 시리즈(총 49곡) 역시 피아노로 구현된 서정시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 각 곡은 짧은 소품이지만, 시적인 제목과 함께 독특한 분위기와 표정을 담아낸다.

멘델스존의 음악은 “클래식은 반드시 비극적이어야 한다”는 편견을 깨뜨린다. 그의 작품은 풍요로운 환경과 지성적 탐구가 어떻게 예술적 완성도로 승화될 수 있는지 증명한다. ‘피아노 판타지 Op. 28’은 단순한 기교적 유희가 아니라, 고전적 전통과 낭만적 상상력의 융합을 통해 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움을 구현한 증거다.

/박정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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