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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에도 인간의 연주가 사라질 수 없는 이유

등록일 2025-12-15 16:32 게재일 2025-12-16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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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 객원기자의 ‘클래식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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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 객원기자

인공지능의 작곡·연주 기술이 급속히 고도화되면서 음악 경험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 현재의 AI 연주는 여전히 리듬게임처럼 딱딱한 감이 있으며 인간 연주의 미세한 뉘앙스와는 구분된다. 그러나 방대한 연주 데이터를 기반으로 템포 루바토, 다이내믹, 터치 등을 학습하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간극은 점차 좁혀질 것으로 보인다.

연주를 기계적으로 재현하려는 시도는 사실 100년 전쯤 ‘자동연주 피아노’에서 시작되었다. 사전에 입력된 데이터를 토대로 특정 연주자의 연주를 그대로 재생하는 방식이다. AI 기술은 이를 넘어, 동일한 악보를 연주할 때 연주자 간 스타일 차이를 통계적으로 분석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를 것이라고 본다. 이론적으로는 고(故)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윤이상의 피아노 곡을 연주하는 모습을 감상하는 것이 가능해질 수 있다.

이러한 기술적 진전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연주’라는 행위는 AI가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영역일까.

연주의 핵심에는 기교뿐 아니라 해석, 표현, 구조 이해, 소통, 그리고 감정이 포함된다. AI가 구현하는 감정 표현은 대규모 데이터 분석을 통해 가장 그럴듯한 패턴을 산출한 결과이다. 반면 인간의 감정 표현은 삶의 경험과 기억, 신체 감각이 통합되어 나타난다. 예술 행위는 ‘체화된 인지’의 산물이며, 인간 연주의 감정은 호흡과 근육 긴장, 미세한 시간 지각이 함께 작동하는 체화된 정동적 사건이다. 즉 연주자의 삶 자체가 연주에 스며드는 것이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콘체르토 2번’을 떠올려보면 더욱 분명하다. 절망의 시기를 통과하며 탄생한 이 작품은 인간 연주자가 그 서사를 감각적으로 해석할 때 비로소 청중에게 강한 울림을 전달한다. 반면 AI는 감정의 원천이 되는 생애 경험을 가질 수 없으며, 감정을 ‘유사 패턴’으로 처리할 뿐이다.

특히 클래식 음악에서 연주자는 악보라는 추상적 기호를 시간 속에서 실제로 구현하는 능동적 해석자다. 동일한 악보라도 연주자에 따라 음악이 전혀 다른 이유는, 해석이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연주자의 인식과 신체, 경험이 결합된 수행적 실천이기 때문이다. AI는 해석의 결과를 모방할 수는 있어도, ‘왜 이러한 해석을 선택하는가’라는 질문에는 답할 수 없다. 해석의 동기가 결여된 결과만을 산출한다.

음악 경험은 또한 본질적으로 사회적이다. 공연 현장에서 연주자와 청중은 동일한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호흡과 긴장, 침묵의 밀도를 실시간으로 주고받는다. 이는 무대 예술의 핵심 개념인 ‘현존성’과 직결되며, 단순한 물리적 존재를 넘어 상호 감각적 조응 속에서 생성되는 관계적 에너지다. AI는 이러한 상호작용의 구조에 참여할 수 없다.

AI 기술은 완벽함을 구현함에 의미가 있지만, 기술적 완성도가 곧 예술적 깊이를 의미하지 않는다. AI는 인간이 느끼고자 하는 감정을 정교하게 건드릴 수는 있어도 그 감성의 근원은 비어 있다.

그렇기에 연주는 여전히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이며, 연주자는 AI 시대에도 마지막까지 남을 예술적 직업 가운데 하나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예술의 가치는 인간의 삶과 감정을 비추는 데 있으며, 기술은 그 ‘살아 있음’을 대체할 수 없다.

/박정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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