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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은 없는데 비는 없고(부분)

등록일 2025-07-24 18:59 게재일 2025-07-2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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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

오늘을 오늘처럼 사는 처세술서

한 권쯤 갈아 마셔야 가늘게 산다

마르지 않은 수많은 어제들 말리느라

건조해져 어제조차 건너올 수 없다

 

우산은 오는데 비는 없고,

이제부터 당신은 모르는 사람

어제를 닮은 키 큰 플라타너스

마른 잎사귀를 한 걸음 밟는다

부스러기 섬들 다시 돋아나는데

 

펄펄 우는 폭우에 펄쳐질 나는

무지갯빛 우산, 아직 펑펑 젖은 무덤

 

우산은 오는데 비는 없고,

사람은 오는데 사랑은 없고

 

독특한 제목이다. “우산은 오는데 비는 없”다니. 시의 마지막 행이 제목의 의미를 말해준다. 비는 그쳤지만 우산은 펴들고 있듯이, 사랑이 끝났는데 ‘무지갯빛’ 사랑이 오기를 기다린다는. 폭우처럼 시인에게 쏟아졌던 사랑에 여전히 그가 젖어 있기에. 하나 “젖은 무덤”처럼 사랑은 죽어 있는 것이다. 그에게 오고 있는 당신은 이제 “모르는 사람”이고, 사랑을 말리는 삶은 “건조해져 어제조차 건너올 수 없”기에.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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