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의 말자씨를 남 몰래 좋아하던 세 살 많은 남성 노 씨는 어느 날 할 말이 있으니 잠시 만나자며 말자씨 집을 찾아왔다. 거절해도 한참을 집 앞에서 버티고 있던 노씨가 그럼 가는 길이라도 알려달라고 조르자 그를 빨리 보내기 위해 말자씨는 집에서 100미터쯤 떨어진 큰 길까지 함께 걸어갔다. 으슥한 골목 어귀에서 별안간 노씨는 “키스만이라도 하자”라며 말자 씨를 덮쳤고, 넘어진 말자씨의 입을 강제로 맞췄다. 반항하는 과정에서 말자씨는 노씨의 혀를 물고 말았고 노씨의 혀는 1. 5센티미터가량 절단되었다. 말자씨의 행동은 정당방위일까, 중상해죄의 범죄를 저지른 것일까?
이는 1964년에 있었던 실제 사건이다. 당시 검찰과 법원은 말자씨를 중상해죄의 범죄자로 판단했다. 심지어 말자씨는 노씨보다 더 무거운 형을 선고받았다. 노씨는 강제추행 또는 강간 미수의 혐의가 적용되지도 않은 채 특수협박 및 주거침입죄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이 선고되었지만, 중상해죄로 기소된 10대 소녀 말자씨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말자씨를 조사하던 검사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남자를 불구로 만들었으니 책임져야지, 결혼해야겠네” 법원은 한 술 더 떴다. 남자가 덮친 데엔 길을 같이 걸어가 준 말자씨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했다. 이 최말자씨 사건은 당시 우리 사회의 여성 인권에 대한 인식과 성차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렇게 중상해죄 전과범으로 60년을 살아 온 말자씨는 80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다. 단지 자신에 대한 불법적 폭력과 성범죄에 대항해 자기 몸을 지키려 했을 뿐이었던 10대 소녀는 자신에게 내려진 부당한 법의 잣대에 순응하지 않고 싶었다. 시간이 흐르며 여성 인권에 대한 사회의 인식과 성범죄에 대한 정의가 변해갔다. 비슷한 사건들이 발생했지만 성범죄에 저항하다 남성의 혀를 절단하고 만 여성들은 모두 정당방위로 무죄 판단을 받았다.
78세가 된 말자씨는 ‘56년 만의 미투’를 단행해 법원에 재심 청구를 했고, 5년의 쉽지 않았던 재심 청구 과정을 거쳐 결국 대법원의 재심 결정을 받아냈다. 지난 7월 23일 열린 재심 재판의 마지막 변론에서 검사는 말자 씨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그리고 검사는 “성폭력 피해자로서 마땅히 보호받아야 했을 최말자씨에게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드렸다. 사죄드린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1960년대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사건들이 말자씨의 사건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 용기 있는 여성은 굴하지 않았다. 자신의 결백함을 위해, 또 후손들은 성폭력 없는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조금이나마 실현하기 위해 싸우기로 결심했다. 자신이 성폭행 당한 사건이 자신의 이름을 딴 사건으로 불리는 것을 수치스러워하지 않았고 재심 개시를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결국 재심 재판과 검사의 무죄 구형을 받아냈다. 살다 보면 저렇게 늙고 싶다 생각이 들게 하는 멋진 할머니들이 있다. 최말자 할머니 같은 멋진 할머니가 없었다면 우리 사회는 성폭력과 여성에 대한 일그러진 편견을 여전히 품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김세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