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내려앉은 풍경은 낮과는 사뭇 다른 매력으로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밤이 주는 특별한 감성에 화려한 조명이 더해져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고궁을 거닐어도 좋고 바다로 나가도 낭만적이다. 열대야를 식혀줄 아름다운 밤명소로 가족과 함께 혹은 연인과 손을 잡고 밤마실을 떠나보면 어떨까?
고즈넉한 고궁 정취 즐길 수 있는 수원 화성행궁 동화의 한 장면 같은 분위기 피어올라
백제 무왕 때 만든 한국서 가장 오래된 인공 연못 부여 궁남지 세련미·애잔함 가득
오색 불빛 반짝이며 하늘 수놓는 부산 바다의 야경… 근대사 함께해온 시장도 볼거리
낮보다 아름다운 통영의 밤, 멋진 보트와 케이블카서 한려수도의 절경을 둘러 보자
◆달빛 아래 누리는 고궁의 정취 수원 화성행궁
달빛 아래 운치가 색다른 곳이 있다. 낮보다 밤이 아름다운 수원 화성행궁(사적 478호)이다. ‘달빛 정담’이라는 주제로 고즈넉한 고궁의 정취를 즐길 수 있게 야간에도 개장한다.
행궁은 임금이 머문 임시 궁궐로, 평소에는 관아로 사용하기도 했다. 화성행궁은 고상하고 기품 있는 건축물 덕분에 ‘왕의 남자’ ‘대장금’ ‘이산’ 등 영화와 드라마에도 여러 번 등장했다. 화성행궁의 색다른 매력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부터 볼 수 있다. 궁궐 곳곳에 조명이 켜지면 동화의 한 장면 같은 분위기가 피어난다. 화성행궁 밤 산책은 ‘국왕의 새로운 고향’이라는 뜻이 있는 신풍루(新豊樓)에서 출발한다. 궁궐로 들어가면 ‘달빛 정담’이라는 글자 옆에 달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눈에 띈다.
단아하게 빛나는 초롱을 따라가면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잔치를 연 봉수당(奉壽堂)이다. 화성행궁의 중심 건물로, 실내에 부드러운 조명을 설치해 신비로움을 더했다. 몽환적인 봉수당의 아름다움에 걸음을 멈춘다. 방에서 누군가 나올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 봉수당에서 정담을 나눈 혜경궁 홍씨와 정조를 상상하며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봉수당 옆에는 정조가 노년을 보내기 위해 지었다는 노래당(老來堂)이 있다. 이름도 ‘늙음이 찾아오다’라는 뜻이다. 어둠이 내리면 11~14분짜리 영상을 상영한다. 수원 화성과 정조대왕 능행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노래당 옆은 낙남헌(洛南軒)이다. 화성행궁이 철거된 일제강점기에 훼손당하지 않은 건물로, 특별 과거와 군사들의 회식 등 각종 행사를 치렀다. 낙남헌 앞에는 ‘달토끼 쉼터’라는 포토 존이 있다. 여기도 보름달 조명이 설치되어 기념사진을 찍으며 고궁의 밤을 즐기기 좋다.
낙남헌부터는 청사초롱이 어둠을 밝힌다. 숲속에 들어앉은 미로한정(未老閒亭)을 향해 계단을 오르면, 가지런한 궁궐 지붕과 현란한 도시 불빛이 어우러진다.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기분이 상쾌하고, 풀벌레 소리에 마음이 차분하다. 바닥에는 나비 모양이 어른거린다. 아련한 분위기에 젖어 걷다 보면 화성행궁 전경과 수원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미로한정이 나타난다. 밤의 낭만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잠시 정자에 앉아 여유를 누려보자. 마음에 시나브로 작은 틈이 생기는 듯하다.
정조의 어진을 모신 화령전(華寧殿, 사적 115호)은 단순하지만 견고하다. 화령전의 운한각(雲漢閣)과 복도각(複道閣), 이안청(移安廳)은 2019년에 보물 2035호로 지정됐다. 검소하지만 격조 있는 건물을 부각하기 위해 건물 밖 조명에 공을 들였다. 화성행궁에 흐르는 국악과 달리, 화령전에는 처연한 대금 독주가 나온다. 대금 선율과 함께 화령전을 돌아보면 생각이 한없이 깊어진다.
낙남헌 앞에는 환한 보름달을 형상화한 ‘달토끼 쉼터’가 있다. 숲속에 들어앉은 미로한정 부근에서는 가지런한 궁궐 지붕과 함께 현란한 도시의 불빛이 보인다. 화령전(사적 115호)도 밤에 더 빛난다. 검소하지만 격조 있는 건물을 부각시키기 위해 조명과 음악에 공을 들였다.
수원 화성(사적 3호)도 밤이면 화려하게 변신한다. 도심을 감싸는 5.5km 성곽에 조명이 들어와 더 웅장하다. 방화수류정과 용연 주변은 밤마실 명소다. 화성행궁을 등지고 서면 오른쪽에 아기자기한 공방거리가, 왼쪽에 나혜석생가터가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화성행궁 건너편 수원통닭거리도 빠뜨리면 안 된다. 용성통닭, 진미통닭, 남문통닭 등 오랫동안 명성을 이어온 가게가 모여 있어, 언제 가도 바삭한 통닭과 흥겨운 분위기를 만날 수 있다.
◆백제의 밤 여행. 부여 궁남지와 정림사지
백제의 세련미와 애잔함이 가득한 야경 여행지는 부여 궁남지와 정림사지다. 부여 궁남지(사적 135호)는 백제 무왕 때 만든 것으로 보이며,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 연못이다. 여름에는 치렁치렁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에 흩날리고, 거대한 습지에서는 형형색색 화려한 연꽃이 핀다. 밤이면 연못 안 포룡정 일대에 조명이 들어와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이 일품이다.
정림사는 백제 성왕이 사비성(지금의 부여)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그 중심에 세운 사찰이다. 인적이 뜸한 밤에 조명이 들어온 부여 정림사지(사적 301호)는 적막하고 고요하다.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 9호) 아래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석탑이 우주와 소통하는 듯 신비롭다.
부여가 자랑하는 드라마 촬영 명소인 서동요테마파크, 세상을 떠돌던 매월당 김시습이 말년을 보낸 만수산 기슭의 무량사, 많은 연인이 찾아와 사랑나무에서 인증 사진을 남기는 부여 가림성(성흥산성, 사적 4호)도 들러보길 권한다.
◆화려함과 짜릿함이 가득! 버라이어티한 부산의 밤
부산의 여름밤을 즐기고 싶다면 송도해수욕장으로 가자. 해변 동쪽에 조성된 송도구름산책로는 바닥이 강화유리와 격자무늬 철제로 된 구간이 있어, 출렁이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아찔한 경험을 선사한다. 밤이면 송도구름산책로가 주변 야경과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연출하고, 그 위로 송도해상케이블카가 오색 불빛을 반짝이며 하늘을 수놓는다. 바닥이 투명한 크리스탈크루즈를 이용하면 더욱 짜릿한 시간이 된다.
부산의 대표 도보여행 코스인 초량이바구길도 밤에 가면 색다른 재미가 있다. 약 2km에 이어진 골목을 걸으며 부산의 근현대사를 엿본다. 초량이바구길의 명물인 168계단에 올라가면 옹기종기 모인 집과 화려한 불빛으로 치장한 빌딩이 도시를 밝힌 야경이 근사하다.
초량전통시장은 부산의 근대사와 함께해온 곳이다. 아케이드가 설치된 시장 안에는 먹거리도 많다. 암남공원은 청량한 숲길과 푸른 바다를 동시에 누리는 힐링 포인트다. 6월 초 암남공원과 동섬을 잇는 송도용궁구름다리가 개통했는데, 벌써 부산의 명물로 떠오르고 있다. 해안 절벽 둘레를 걷고 주변의 수려한 경관을 감상하기 좋다.
◆통영 밤바다의 감미로운 유혹, 통영밤바다야경투어
미항(美港) 통영은 야경 여행지로 빼놓을 수 없다. 노을 속으로 멀어지는 섬과 화려한 조명을 담아낸 호수 같은 바다가 답답한 도시에서 온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멋진 보트를 타고 밤바다를 돌아보는 ‘통영밤바다야경투어’는 낮보다 아름다운 통영의 밤을 책임지는 최고의 선택이다.
통영밤바다야경투어는 통영 야경의 백미로 꼽히는 통영운하를 따라간다. 통영해양스포츠센터가 있는 도남항에서 출발해 강구안과 충무교, 통영대교를 지나 도남항으로 돌아온다. 투어에 걸리는 시간은 50분 남짓. 입담 좋은 항해사가 들려주는 통영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남망산 자락에 있는 디피랑도 야경투어 명승지로 이름이 높다. 벽화마을로 유명한 통영의 동피랑, 서피랑의 벽화가 살아 움직인다는 재미있는 상상을 디지털 미디어로 구현했다. 1.5km 산책로를 따라 다채로운 빛과 미디어 아트가 화려하게 펼쳐진다. 인터랙티브 기술 덕분에 더욱 흥미진진한 체험이 가능하다.
통영 앞바다를 한눈에 담고 싶다면 통영케이블카가 정답이다. 통영의 시가지는 물론 한려수도를 조망할 수 있다. 낮에는 미륵산 정상까지 울창하게 숲을 이룬 편백나무를 볼 수 있고 밤에는 통영대교를 비롯한 환상적인 통영의 밤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옥상전망대와 스카이워크가 마련된 상부역사에서 미륵산 정상까지 오르면 전망대에서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한려수도의 절경을 둘러 볼 수 있다.
/글·사진 최병일기자 skycbi@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