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혁신파크 프로젝트가 아파트를 짓기 위한 사업인가’
포항시가 한동대학교 인근에 조성을 추진 중인 ‘글로벌 기업혁신파크’에 5041세대 규모의 아파트 공급계획을 포함시키자 인접한 곡강지구와 푸른지구 도시개발사업조합은 물론 역내 부동산업계의 반발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계획된 개발단지가 본격 추진되면 조합의 사업성이 크게 흔들리고 가뜩이나 거래절벽인 도심의 기존 아파트 시장을 초토화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글로벌혁신파크에는 사업지 내 기업 유치라는 명목 아래 인프라구축에 국가예산이 엄청나게 지원된다는 점에서 이렇게까지 해가며 지역 건설업계와 부동산 시장을 망가뜨릴 이유가 있느냐는 시각도 적잖다. 글로벌 기업혁신파크의 부지조성(토지보상,기반시설 등)과 산학융합캠퍼스 조성 및 진입도로 등을 포함한 총사업비 규모는 2565억 원에 이른다.
지역 건설업계 또한 사업지구 전체면적 64만8939㎡(19만6000평)에 공동주택 용지가 16만3887㎡ 있음에도 국도비 등을 넣어 시공하는 것이 타당한지 묻고 있다. 일각에선 이 프로젝트는 진작부터 아파트 사업으로 다른 공사비를 충당하기로 계획을 수립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내놓기도 한다.
한동대 측이 사업 확정 발표 전에 주변의 많은 땅을 사들인 부분도 석연찮다. 포항 글로벌 기업혁신파크 사업부지에 추가로 편입된 땅이 사전정보를 이용한 투기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곡강 지구와 푸른도시 조합은 “이미 사업 추진 자체가 녹록지 않은데, 국도비까지 지원받은 대규모 신규 물량이 투입되면 사실상 경쟁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토로하고 있다. 곡강지구는 약 1500세대 규모의 아파트 공급을 목표로 인허가를 완료하고 본격적인 사업 착수를 앞두고 있고, 푸른지구는 약 72만7000㎡ 규모의 개발 면적으로 도시기반시설 조성 사업 인허가를 진행하고 있다.
포항시의 글로벌 기업혁신파크 내 주거단지 조성이 가시화되면서 주택 수요의 중복·잠식 우려도 크다. 포항의 아파트 시장은 이미 공급과잉 논란에 휘말려 있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2023년 10월 말 기준 미분양은 3896세대, △2024년 말 3660세대, △2025년 2월에는 2650세대까지 줄었지만, 월별 감소폭이 100세대를 넘지 못하면서 수급 불균형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지역 부동산 중개업계 관계자는 “이 같은 상황에서 5041세대의 신규 물량이 시장에 추가될 경우 포항 전체의 주택시장 전반에 심각한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수요 기반의 약화도 문제다. 2025년 6월 기준 포항시 인구는 48만9898명으로 5년 전보다 1만4000여 명 감소했으며, 청년층 비중도 17.55%에서 15.83%로 하락했다. 특히 20~30대 청년 가구의 외부 유출이 지속되면서 실수요 기반이 급속히 약화되고 있다.
A부동산 대표는 “인구 감소와 청년층 이탈이 동반되는 상황에서 주택공급을 확대하는 것은 시장의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며 “수요 기반 없는 공급 확대는 결국 미분양 누적과 분양가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그는 “시가 이를 모를 리 없을 텐데 계획인구 12,519명의 단지를, 그것도 예산을 투입해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이런 항의는 역내 부동산 시장 경기와도 궤를 같이한다. 이미 포항의 부동산은 이상 징후가 감지된 지 오래됐다. 입주 전에 분양가 대비 10% 이상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사례가 빈번하고, 그마저도 최근 들어서는 매매 실종 상태다.
포항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기업혁신파크는 당초 산업·연구 기능 중심의 개발계획이었음에도 아파트 공급 중심으로 전환되는 흐름은 도시계획의 신뢰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글로벌혁신파크 지구의 이번 결정이 민간 투자자들에게는 ‘수익성 악화’라는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금융기관의 대출 회수 압박 등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도시계획 전문가 B씨 또한 “포항 부동산 시장이 이 같은 흐름을 지속할 경우, 건설사 줄도산, 금융 부실, 미분양 누적이라는 악순환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지역 부동산 업계는 입을 모아 “포항은 이미 공급 과잉, 미분양 누적, 인구 감소라는 ‘삼중고’에 직면해 있다”며 “청년 일자리 창출과 정주 여건 개선이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규모 아파트 공급은 포항의 미래를 짓누를 부메랑이 될 것”이라고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곡강ㆍ푸른도시계획조합 측은 “사업성 위기에도 불구하고 시가 일방적으로 대규모 공급을 추진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포항시에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섰다.
/임창희기자 lch8601@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