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관광 1번지, 호미곶의 호미(虎尾)는 ‘호랑이 꼬리’라는 뜻으로 한반도 지도가 호랑이 형상이며, 호미곶은 호랑이 꼬리 부분에 해당한다는 인식에 근거한다.
한반도 지도의 형상과 관련된 논의가 시작된 것은 구한말 한일강제병합을 앞둔 시기이다. 일제는 국권 침탈을 앞두고 한반도에 관한 각종 정보를 수집했는데, 일본의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郞)가 1900년대 초, 한반도의 지형을 연구하여 한반도가 토끼 형상이라고 주장했다.
토끼 형상론은 우리 민족의 나약함을 연상케 한다는 점에서 일제의 식민정책과 어울리며 파급력을 갖게 되었다. 토끼 모양이라 할 경우 지금의 호미곶은 ‘토끼 꼬리’가 되고 만다.
한반도가 호랑이를 닮았다는 호랑이 형상론은 육당 최남선이 토끼 형상론에 대한 반론으로 제기한 것이다. 1908년 11월, 최남선이 만든 ‘소년’지 창간호에 등장하는 삽화가 바로 한반도 호랑이 지도인데, 최남선은 ;대한의 외위형체(外圍形體)'란 글을 통해 “맹호가 발을 들고 대륙을 향하여 할퀴며 달려드는 모양”이라고 주장했다.
호랑이 형상론은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고, ‘근역강산맹호기상도(槿域江山猛虎氣像圖)’ 등 한반도 지도가 다양한 형태의 호랑이 모습으로 그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포항 사람들이 지금의 호미곶 일대를 한반도 지도상 ‘호랑이 꼬리’와 연관 짓게 된 계기는 바로 이 ‘근역강산맹호기상도’와 관계가 깊다. 이 그림을 보면 지금의 호미곶 부근에서 시작된 호랑이의 꼬리가 남해안을 휘감은 뒤 끝부분이 서해안에 닿아 있다. 이 그림을 통해 포항 지역민들은 이곳이 ‘토끼 꼬리’가 아닌 ‘호랑이 꼬리’에 해당한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초에 그려진 작자 미상의 ‘근역강산맹호기상도’(고려대 소장)는 외견상 꼬리가 시작되는 영일만 일대가 밋밋하게 처리되었고, 꼬리의 끝부분이 서해안 변산반도에 위치함으로써 호미곶이 ‘호랑이의 꼬리’라는 이미지가 약해 보이는 문제가 있었다. 호랑이의 꼬리가 호미곶에서 시작되고, 끝 부분도 호미곶에 놓이는 모양의 지도라야 ‘호랑이 꼬리’라는 주장에 설득력이 생길 것 같았다. 이런 고민을 하고 해결방안을 찾아 실행에 옮긴 사람이 바로 서상은 전 영일군수였다.
호미곶이 고향인 서상은은 1988년에 성기열 화백에게 호랑이 꼬리 끝부분이 장기갑(지금의 호미곶)에 오도록 그려 달라고 주문했다. 서상은의 주문대로 성기열은 ‘근역강산맹호기상도’라는 제목의 한반도 호랑이 지도 그림 두 점을 그렸다. 서상은은 이 그림을 받아 한 점은 장기갑등대박물관(현 국립등대박물관)에, 다른 한 점은 대보면사무소(현 호미곶면행정복지센터)에 기증했다.
이 두 그림은 꼬리가 호미곶에서 출발하여 남해안을 휘감고, 전라도로 올라와서는 다시 경상도 쪽으로 꺾여 끝부분이 호미곶에 놓이는, 그러기에 꼬리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의도가 보이는 그림이다. 이 그림을 갖게 됨으로써 호미곶은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면서 이 그림을 앞세워 관광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었다.
포항시에서는 성기열 화백의 ‘근역강산맹호기상도’ 중 등대박물관 소장 그림을 호미곶 관광지를 홍보하는 자료로 활용해 왔다. 2000년대 들어 호미곶광장 바다 쪽에 세워진 한반도 호랑이 형상 조형물, 호미곶광장 가로등 장식, 새천년기념관 내의 ‘호미곶 지명 유래’ 설명판, 호미곶 관광 안내 리플릿이 대표적인 사례다.
1990년대 들어와 서상은은 호미곶이 우리 뇌리 속에 박혀 있는 ‘토끼 꼬리’가 아닌 ‘호랑이 꼬리’로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몇 가지 사업을 전개했는데, 나무가 없는 호미곶에 나무를 심자는 호미수(虎尾樹) 운동, 호미예술제 개최, 호미곶 지명석 건립 등이 그 핵심이다.
서상은의 이러한 노력은 20년 만에 결실을 맺어 2002년에 장기곶이 호미곶으로, 장기곶등대가 호미곶등대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지명 변경의 마지막 퍼즐인 ‘대보면→호미곶면’은 2010년에 이루어졌다.
호미(虎尾)라는 지명은 호미곶 가까이에 위치한 범 모양의 산등성이인 ‘범디미’를 한자식으로 표기한 말이다. ‘범디미’가 ‘호미등’으로 바뀐 데는 한말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생긴 민족의식과 관련이 깊다. 즉 20세기에 들어와 최남선의 ‘한반도 호랑이 형상론’ 영향을 받아 지역민들에게 이곳이 ‘호랑이 꼬리’부분이라는 인식이 생겼고, 그러면서 기존의 지명인 범디미를 한자식으로 표기하여 호미등(虎尾嶝)이라 부르게 된 것으로 짐작된다. 호미곶은 호미등에서 유래한 말이다.
20세기 초 일본의 한반도 침탈이 본격화될 무렵, 한반도 지도 모양이 토끼 형상이냐 호랑이 형상이냐를 두고 벌어진 논쟁은 100년이 지난 21세기에 와서야 일단락되었다. 이로써 우리의 뇌리 속에서 한반도는 호랑이 형상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고, 호미곶은 호랑이 꼬리(虎尾)로 각인되었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은 지금 호미곶은 포항 12경의 제1경(호미곶 일출)으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포항의 ‘핫 플레이스’가 된 것이다.
/박창원 동해안민속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