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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집

등록일 2025-12-11 15:59 게재일 2025-12-1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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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호두가 어구똥지게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감자가 덕지덕지

몸에다 흙을 처바르고 있는 것,

 

다 자기 자신이 물집이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서다

 

터뜨리면 형체도 없이 사라질 운명 앞에서

좌우지간 버텨보는 물집들

 

딱딱한 딱지가 되어 눌어붙을 때까지

生이 상처 덩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

 

그래서, 나도 물집이다

불로 구워 만든 물집이다

나도 아프다

………..

우리는 터져버리면 ‘생’이 무너져버릴지 모르는 상처를 품고 살지 않는가. 시인은 더 나아가 우리의 존재 자체가 그 상처-물집-라고 말한다. 생 자체가 ‘상처 덩어리’라는 것. 하여 그 물집이 터지면 생 자체도 사라질 수 있는 것, 상처가 우리의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해서 우리는 물집이 터지지 않도록 호두처럼 딱딱한 껍질을 뒤집어쓰거나 감자처럼 흙을 처바른다. 상처가 딱지가 되어 아물 수 있을 때까지.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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