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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립연극단 '광주리를 이고 나가시네요, 또'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25-12-14 10:47 게재일 2025-12-15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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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진기 문학박사·호산대학교 공연예술학부 초빙교수

최근 공연된 포항시립연극단의 ‘광주리를 이고 나가시네요, 또’는 노년 빈곤, 가족 해체, 세대 간 단절이라는 묵직한 사회적 문제를 블랙코미디로 풀어내며 관객 앞에 섰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비관에 함몰되지 않고, 생의 아이러니를 유머와 상징으로 재해석해낸 점이다. 장면의 미학과 배우의 신체 연기가 유기적으로 결합하며, 노년의 삶을 단순한 동정이나 비극이 아닌 삶의 역설적 풍경으로 그려낸다. 

노년 서사를 블랙코미디로 다루는 독특한 시도는 관객이 현실을 비장함 없이 바라보도록 거리를 제공한다. 그러나 웃음 강조로 인해 인물의 고통이 충분히 축적되지 못한 채 전환되는 순간이 발생한다.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연극이 흔히 빠지는 함정-메시지와 장면 리듬의 충돌-이 이 공연에서도 일정 부분 드러나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노년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대신, 생활적 오브제와 신체 이미지를 활용해 상징적 층위를 쌓아 올린다. 이는 박장렬 연출이 이번 작품에서 선택한 중요한 전략이며, 그 전략은 상당 부분 유효하다.

최현아가 연기한 광주리 할머니는 작품의 중심축으로, 그녀의 신체는 과장 없는 리얼리티로 세월의 질감을 생생히 전달한다. 이는 설명적 대사보다 강렬한 이미지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그러나 일부 장면에서 신체 이미지의 미학적 강조가 인물의 구체적 삶을 압도하며 해석의 간극을 남기는 아쉬움도 있다.

하지희와 윤도경이 연기한 미미와 분신의 이중 구조는 청년 세대의 불안정한 심리를 날카롭게 시각화한다. 담요에서 탈피하는 듯한 연출은 유머와 위태로움이 교차하며 강렬한 임팩트를 선사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상징적 퍼포먼스가 서사의 흐름을 압도해 인물의 내적 갈등이 희미해진다.

중년 부부와 군상 배우들은 장면의 리듬을 안정적으로 이끌며 공동체적 분위기를 구축하나, 후반부 군상 장면은 기능적 역할에 머무르며 초반의 세밀함이 퇴색된다.

미니멀한 무대는 배우의 신체성을 부각시키는 연출 의도와 조화를 이루나, 일부 장면에서 과도한 여백이 인물의 감정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조명은 어둠 속의 미세한 빛으로 고독을 섬세하게 표현해냈지만, 장면 전환 시 배우 동선과 조명 타이밍의 불일치로 명료성이 떨어지는 아쉬움이 남는다.

박장렬 연출은 이번 작품에서 ‘몸의 언어’를 전면에 세우는 방식을 택했다. 설명을 줄이고 경험을 강조하는 이 연출 방식은 최근 한국 연극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하지만 신체 이미지는 본래 복합적인 사회 문제를 단순화할 위험도 갖고 있다. 이 작품은 이러한 가능성과 위험을 동시에 보여준다.

‘광주리를 이고 나가시네요, 또’는 노년을 소재로 삼았지만, 결국 세대 전체의 균열을 드러내는 사회적 진단에 가깝다. 작품은 높은 미학적 성취와 형식적 실험을 보여주면서도, 장면 간 정서의 불균형, 상징의 반복으로 인한 의미 과포화 등 몇 가지 과제가 남는다.

그럼에도 이 공연은 지역극단의 정기공연을 넘어, 동시대 한국 연극이 사회적 소재와 미학적 실험을 어떻게 병치시킬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작품은 완성도에 더해, 앞으로의 방향성을 모색할 수 있는 비평적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백진기 문학박사·호산대학교 공연예술학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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