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노포 기행] - 에필로그
지역 곳곳 실뿌리 내린 아홉 노포와의 여정
웃음과 슬픔 버무린 일상의 경이로움 전해
시민과 애환 함께한 다른 노포 소개도 기대
지난 2019년 필자는 칼럼에서 노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포항 원도심에는 코주부사 외에도 50년 된 포항이발소, 40여 년 된 동아세탁소, 할매떡볶이 같은 노포가 있다. 이 오래된 점포의 주인들은 소소한 기술과 성실한 노동으로 어렵게나마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키웠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한 톨의 씨앗도 품기 어려웠던 폐허에 힘겹게 실뿌리를 내리며 평생을 보낸 것이다. 인생의 황혼에 이른 노포의 주인들을 만나 삶의 여정을 들어보면, 진정한 역사는 이 같은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생명력이 서로 어우러지며 빚어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역사는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한평생 지켜온 점포가 작은 박물관이고, 이들이 사용해온 재봉틀, 이발도구, 요리도구가 역사 유물이며, 이들이 웃음과 슬픔을 버무려 풀어놓는 이야기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역사책이 아닐까. 지역 공동체의 정서와 문화를 온전히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이들의 애틋한 삶을 잘 갈무리해 널리 그리고 오래도록 전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궁리해야 할 때가 됐다.
- 「코주부사,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작은 역사」, 『경북매일신문』 2019년 12월 2일 자.
그로부터 6년이 흘러 ‘포항의 노포 기행’ 연재가 진행되었다. 2021년부터 『경북매일신문』 지면을 통해 포항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해온 참여자들의 뜻이 모여 이 기획이 만들어졌다. 노포에 관한 기록을 남기는 것은 지역의 문화, 역사를 정리하는 작업에서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지난 9월부터 시작된 이 연재는 개복치점, 열쇠점, 막걸리 양조장, 양복점, 제과점, 국수공장, 속옷가게, 중화요리점, 마크사 등 지역 곳곳에 있는 노포 아홉 곳을 다루었다. 물론 주목할 만한 다른 노포도 있다. 이를테면 1967년 개업한 로타리냉면은 오랜 세월 냉면의 깊은 맛을 선사해온 맛집으로 포항 사람치고 모르는 이가 없다. 그 밖에 초원통닭, 시정당, 제일화공약품상사 등도 시민과 애환을 함께해온 노포다. 이 노포의 이야기는 다른 기회를 통해 펼쳐 보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포항고 부지 기부 김춘생 창업주 ‘동성조선’
3대 이어 전국서도 유명한 조선소로 발전
박일천 첫 민선시장과의 끈끈한 인연은
포스텍 설립 이끈 ‘선한 영향력’으로 발휘
포항고 대신동 부지를 기부한 동성조선 창업자
노포 외에도 포항의 기업 중에 3대째 이어온 기업이 있다. 중소형 조선소인 동성조선이 대표적이다. 전국에서 이름이 높은 동성조선은 1946년에 설립된 향도조선(向島造船)이 모체로 1955년에 지금의 상호로 변경되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운영하던 조선소를 일본이 패망하여 철수하자 그곳에서 일하던 대목장(大木匠) 김춘생이 인수해 향도조선을 설립한 것이다.
김춘생의 차남 김성호에 따르면, 조선소 인수 과정에서 자금이 부족했던 김춘생은 지역 유지 김용주에게 도움을 부탁했다. 그러자 김용주는 차용증도 작성하지 않고 김춘생에게 큰돈을 빌려주었다. 김용주의 통 큰 도움 덕분에 향도조선을 설립한 김춘생은 성실한 자세로 사업에 임해 사업 기반을 단단히 다졌다. 그 후 김춘생의 친구인 박일천 첫 민선 포항시장이 김춘생에게 당시 두호동에 있던 포항고등학교를 시내로 이전해야 하는데 김춘생 소유의 대신동 땅을 기부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김춘생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 덕분에 포항고등학교는 1954년 9월 1일 대신동 신축 교사로 이전할 수 있었다. 지금 동성조선 사무실 벽에는 포항고등학교 교장과 기성회장 명의로 김춘생에게 수여한 감사장이 걸려 있다.
박일천은 뒷날 포항 4년제 대학 설립 유치 청원에 앞장섰으며, 이 청원은 포항공대 설립의 밑거름이 되었다. 1998년 박일천 사후에 유족들이 유산을 포항공대 발전기금으로 기탁한 바 있다.
포항의 역사·문화기록 대장정에 도움 준
지역 원로들의 ‘안타까운 죽음’ 깊이 애도
지난 5년간 포항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하게 도와준 세 분의 별세
2021년에 발간된 『원로에게 듣는 포항 근현대사1』을 시작으로 포항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하는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포항뿐 아니라 서울, 부산, 인천, 대구에서 여러 분이 이 작업을 지켜보며 따듯한 격려를 해주었다. 그들 중 작년 12월에 별세한 손장원 인천시립박물관장을 잊을 수 없다. 손 관장은 필자와 얼굴 한 번 본 적 없건만 귀한 사진 자료를 기꺼이 제공해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이른 타계를 인천 학계가 안타까워했는데 필자로서도 아픔이 아닐 수 없었다. 포항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 작업에 많은 도움을 준 고 손장원 관장의 명복을 빈다.
5년간 이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인터뷰에 응해준 세 분이 별세했다. 『원로에게 듣는 포항 근현대사2』(2022)에 나온 이봉식 선생은 향년 93세로 작년 3월에, 김두호 화백은 향년 89세로 올해 8월 작고했다. 『포항의 예술인』(2024)에 나온 문신구 영화감독은 향년 70세로 올해 5월 영면에 들었다. 이들의 부음을 들으며 이 작업의 의미와 무게를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고인들의 평안한 안식을 기원한다.
‘포항의 노포 기행’을 지켜본 문학평론가 최영호 교수(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가 감상평을 보내왔다. 그의 표현처럼 이 연재는 “포항의 정체성과 풍경, 그 기억의 사잇길”을 걸어간 것이 아닐까 싶다. 넉 달간의 여정을 함께해준 독자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공간(space)과 장소(place)는 같을까 다를까? 눈에 보이는 것은 같지만 공간은 비어 있되 장소는 꽉 차 있다. 텅 빈 질그릇이 무엇인가 담긴 후부터 전혀 다른 것이 되듯 말이다. 그 질그릇의 ‘빈 중심’과 관계성이 질그릇의 새로운 본질을 창조한다. 하나의 공간이 장소로 재탄생하는 것은 우리와의 관계 때문이다. 포항 사람들의 마음 한구석엔 애틋하고 친밀한 포항이 깃들어 있다. 이 연재는 포항 사람들이 관계 맺고 있는 장소로서의 포항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시계 바깥의 시간으로 축적된 포항 노포를 찾아가는 이 연재에는 우리가 잊을 뻔한 장소로서의 포항 가는 길이 산지사방으로 열려 있다. 포항의 정체성과 풍경, 그 기억의 사잇길을 걷고 싶다면 이 연재의 일상적 경이로움에 마음의 발걸음을 옮기면 된다. <끝>
필 자 : 김도형
사 진 : 김 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