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철·바이오연료 조건부 허용····CO₂ 감축 목표도 완화 EV 전환 속도 둔화에 산업 경쟁력 고려
유럽연합(EU)이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엔진차) 신차 판매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기로 한 기존 방침을 철회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전기차(EV) 중심의 급격한 전환에서 한발 물러나,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2035년 이후에도 엔진차 판매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정한다.
EU 집행기관인 유럽위원회는 16일(현지시간)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자동차 정책 개편안을 발표했다. EV 전환 기조는 유지하되, 산업 현실과 시장 여건을 반영해 목표를 보다 유연하게 조정하겠다는 취지다.
EU는 2023년 3월 2035년부터 제로에미션차(ZEV)를 제외한 신차 판매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다만 합성연료를 사용하는 일부 엔진차만 예외적으로 허용해 사실상 상징적 조치에 그쳤다.
이번 개편안에서는 2035년 이후에도 엔진차 판매를 허용하되, △제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CO₂) 배출을 줄인 EU산 ‘그린 철강’ 사용 △선진 바이오연료 활용 등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대상에는 가솔린·디젤 차량뿐 아니라 하이브리드차(HV),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V)도 포함된다.
이에 따라 연비와 환경 성능이 높은 하이브리드 기술에 강점을 가진 일본 자동차 업체들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엔진차 판매를 조건부로 허용하면서, EU가 자동차 제조사에 요구하던 2035년 CO₂ 배출 감축 목표도 조정된다. 기존 ‘2021년 대비 100% 감축’에서 ‘90% 감축’으로 완화된다. 엔진차를 전면 금지하는 시점은 새로 명시하지 않았다.
유럽위원회는 앞으로 각국 장관이 참여하는 각료이사회와 유럽의회에서 개정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보다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반론도 제기돼, 수정안이 다시 조정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정책 전환의 배경에는 EV 보급 속도가 당초 예상보다 더딘 현실이 있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에 따르면 2025년 1~10월 EU 주요 31개국의 EV 판매는 202만 대로, 신차 판매의 18%에 그쳤다. 현 추세로는 2035년 목표 달성이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여기에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산 EV 공세로 유럽 완성차 업체들이 고전하고 있는 점도 고려됐다. EU는 2025년 들어 환경 규제 완화와 행정 간소화 방안을 잇따라 내놓으며 산업 경쟁력 회복에 방점을 찍고 있다.
EU는 엔진차 규제를 완화하는 동시에 EV 진흥책도 병행한다. 전장 4.2m 이하 소형 EV를 대상으로 한 신규 차급을 신설해 기술 요건을 완화하고, 차량 가격을 낮춰 보급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역내 생산 소형 EV에 대한 우대 조치도 도입한다.
신차 등록의 약 60%를 차지하는 렌터카·리스 등 법인 차량에 대해서는 EV 규제를 강화한다. 2030년 이후 등록되는 법인차의 일정 비율을 ZEV로 채우도록 회원국에 의무화할 방침이다.
한편 미국도 최근 배출가스 규제를 완화하며 엔진차 생산·판매 여건을 넓혔다. 일본은 2035년까지 신차 판매를 전면 전동화하되, EV뿐 아니라 HV·PHV·연료전지차(FCV)를 포함하는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