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선 나이를 만으로 쓰라고 한다. 어린 나이에 이런 것은 짜증 나는 일이었다. 특히 머리가 나빠 수(數) 계산에 약한 터라 더욱 그랬다. 그래서 한참을 생각하고 대충 나이를 적는다. 지금 내 나이에서 한 살을 빼야 하는지 두 살을 빼야 하는지 잘 몰라서다. 옆 친구에게 물어봐도 잘 모르는 것 같다. 무조건 한 살 빼란다. 친하긴 하지만 머리 쓰는 쪽으로는 별로 믿음이 안 가는 친구라 똑똑한 반장에게 물어본다. 생일이 안 지났으면 두 살 빼고 지났으면 한 살 빼란다. 어렵다. 그래서 나도 친구 따라 무조건 한 살 빼는 것을 택했다. 복잡한 건 무조건 싫어하니깐.
남자라는 족속들은 족보 따먹기에 민감한 시절을 거친다. 특히 고등학교 때 유독 심하다. 중학교까지는 같이 다니다가 아파서 한 학년 쉬다가 들어와 밑에 학년이 되는 경우가 있다. 동네에선 같은 친구지만 학교에선 학년이다. 나이와는 관계없다. 무조건 학년이다. “빠른 몇 년생이다.” 같은 학년이지만 나이가 한 살 적은 경우가 있다. 1월부터 3월생들이다. 우린 이런 애들을 ‘빠른’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이야기한다. 이들은 나이는 같지만, 학년은 높아 밑에 후배들에게 나이를 한 살 속이기도 한다. 혹자는 돌아가신 애먼 할아버지 핑계를 댄다. 언제 죽을지 몰라 일 년 뒤에 신고했다고. 어떤 이들은 어른들이 애들 출생신고를 한꺼번에 모아서 가는 바람에 몇 년 늦었다고 하기도 한다. 실제 그런 일이 있기도 한 시절이라 그냥 넘어간다. 그놈의 나이가 뭐라고.
복(福) 많이 받으라는 인사 시즌이다. 신정 때 한번 하고 구정 때 또 한 번 해야 한다. 참으로 희한한 나라다. 그래서 어릴 적엔 신정 때 한 살 먹고 구정 때도 한 살 더 먹는 줄 알았다. 나중에야 음력이란 걸 알았고 생일이 왜 매년 달력과 다른지도 알게 되었다. 생일이 언제인지 물어보는 사람이 있으면 “음력”이란 말을 꼭 붙인다. 요즘도 업체에선 내 생일도 아닌데 축하 메시지를 보내와 당황스럽다. 음력 생일을 양력 생일 날짜에 맞춰 문자를 발송해서 생긴 일이리라. “붉은 말의 해” 뭐 때문에 ‘붉은’ 말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만, 그렇게 부른다. 누가 내게 붉은 부적 한 장을 들이민다. 올해 삼재(三災)란다. 불교에선 삼재란 말이 없다. 정통 명리학에도 삼재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단다. 그럼에도 삼재니 뭐니 하면서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을 쥐어짜서 한푼 벌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것도 부족해 들삼재, 눌삼재, 날삼재라고 세분화한다. 12개 띠 중에 9개 띠가 항상 삼재에 걸리게 만들어 놓고선, ‘삼재팔난’ 운운해 가면서 난리다. 양력에 나이를 먹든지 음력에 나이를 먹든지 먹었으면 나잇값이나 하고 살아야 할 텐데 사리 판단 제대로 못 하고 엉뚱한 행동하는 사람이 자꾸 보인다. 신년 되었다고 점집 찾아 토정비결이나 보고 다니면 젊은 애들에게 욕먹는다. 그리고 나이 들어 미신 찾으면 굉장히 추해진다. ‘만 나이’ 헤아리고 ‘학년’ 따지고 ‘빠른 나이’ 따지는 시절 다 지나가고 이젠 한 살이라도 줄여보려고 애쓴다. 더는 나이 계산할 나이가 아닌 모양이다. 나잇값을 해야 하는 나이다.
/노병철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