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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스틸법과 철강산업의 ESG

등록일 2026-02-11 18:11 게재일 2026-02-12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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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의 일자리와 도시전략, ‘진실한 전환’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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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찬 포항환경연대 공동대표

포항은 철로 성장한 도시다. 산업화의 굴뚝 연기 속에서 이 도시는 일어섰고, 제철소의 불빛은 밤하늘을 밝히는 산업의 등대였다. 누군가에게 철강은 통계 속 수치일지 모르지만, 포항 시민에게 철강은 삶의 리듬이다. 아버지의 작업복, 어머니의 장부, 자녀의 등록금, 동네 식당의 손님 수까지 철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요즘 유행처럼 떠오른 ESG라는 말,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도 이곳에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ESG는 이제 기업 보고서의 항목이 아니라, 우리 도시의 일자리와 생존을 좌우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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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과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 위기는 ESG를 불러왔다. /기초과학연구원 제공(사진=멕신 버켓 미국 하와이주립대 법과대학 교수)

필자는 삶의 태도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진실함이 제일이며 다음으로는 책임감이라고 답한다. 진실함이 정의로움의 기초이고, 진실이 없는 자유·정의·진리는 허공에 뜬 구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짓과 과장, 구호만으로 현실을 덮으려는 태도를 경계한다. 이 생각은 산업 전환을 둘러싼 논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포항이 서 있는 갈림길 앞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요구해야 할 것도 결국 진실이다. 탄소의 진실, 고용의 진실, 지역경제의 진실, 그리고 전환의 진실이다.

한때 기업의 책임은 CSR(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이라는 이름으로 설명되었다. 기업이 이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장학금과 봉사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방식이었다. 그 노력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시대는 빠르게 변했다. 기후위기와 글로벌 규제, 금융의 변화 속에서 이제는 CSR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ESG는“좋은 일을 더 하자”는 권고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구조로 바꿔라”는 요구다.

특히 철강처럼 탄소와 에너지, 노동과 공급망이 얽힌 산업에서는 ESG가 곧 생존의 문턱이 된다. 시장은 탄소를 비용으로 계산하기 시작했고, 투자자들은 장기적 위험을 따진다.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는 이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제 철강은 가격과 품질뿐 아니라‘탄소를 얼마나 줄였는가’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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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국회철강포럼에서 주최한 ‘K-스틸법 발의, 그 의미와 향후 과제’ 토론회 기념 사진 촬영. /한국철강협회 제공

이 지점에서 K-스틸법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K-스틸법은 단순한 산업 지원책이 아니다. 포항의 관점에서 이 법은 도시의 미래를 다시 설계할 수 있는 법적 틀이다. 중요한 것은 법이 철강을 지켜주는 방패로만 남지 않고, 철강을 바꾸는 설계도로 작동하느냐다. 지금 시대에는 철강을 바꾸는 길이 곧 철강을 지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포항의 현실을 직시해 보자. 만약 철강의 탄소중립 전환이 지연되거나 실패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수출경쟁력이 약화되고, 생산이 축소되며, 투자 위축이 이어질 것이다. 생산이 줄면 협력업체가 먼저 흔들리고, 지역 상권이 위축되며, 청년 일자리가 줄어든다. 탄소전환 실패는 기업의 위기가 아니라 도시의 위기다. 반대로 전환에 성공하면 어떨까. 수소환원제철, 전기로 확대, 재생에너지 기반 전력 공급, 신소재와 정비·안전·데이터 산업까지 연계되면서 포항은 저탄소 제조혁신 도시로 도약할 수 있다. ESG는 포항에게 위기이자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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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문제와 기후변화를 해결하는 방법론은 ESG로 귀결된다.

수소환원제철은 그 상징이다. 석탄 대신 수소를 환원제로 사용하면 부산물은 탄소가 아니라 물이 된다. 철강의 환경 부담을 근본적으로 줄이는 기술이다. 그러나 포항 시민이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이 기술이 단순한 공정 개선이 아니라는 점이다. 수소 생산과 저장, 운송 인프라, 재생에너지 전력망, 안전 기준, 연구개발, 인력 재훈련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이것은 제철소 내부의 변화가 아니라 도시 전체 산업 생태계의 변화다. 포항은 이 전환을 외부 정책으로 기다릴 것이 아니라, 도시 전략으로 끌어안아야 한다.

ESG의 S, 즉 사회는 포항에서 더욱 절실하다. 공정이 바뀌면 직무가 바뀐다. 숙련의 내용이 달라지고, 필요한 인력이 달라진다. 전환이 일자리 감소로 이어진다면 시민의 지지는 얻기 어렵다. 그래서 정의로운 전환이 필요하다. 노동자 재교육과 전직 지원, 협력업체의 전환 지원, 청년을 위한 신산업 훈련과 채용 연계가 동시에 설계되어야 한다. 전환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문제다.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진 전환은 오래가지 못한다.

지배구조, 즉 G 역시 중요하다. 거버넌스는 기업 내부의 이사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역사회와의 소통, 정보 공개, 위험에 대한 진실한 설명, 이해관계자의 참여가 모두 거버넌스다. 전환 과정에서 시민이 배제되면 불신이 쌓이고, 불신은 갈등으로 이어진다. 포항에는 시민·노동·기업·지자체가 함께 참여하는 전환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ESG의 G는 결국“침묵하지 않는 구조”를 만들라는 요구다.

이 흐름은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도 연결된다. 양질의 일자리, 지속가능한 산업과 도시, 기후행동, 친환경·친인권 제도는 모두 포항의 과제이기도 하다. 도시가 지속가능하려면 산업이 지속가능해야 하고, 산업이 지속가능하려면 탄소를 줄여야 하며, 탄소를 줄이려면 기술 전환과 사회적 안전망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유엔의 SDGs가 방향이라면, ESG는 그 방향을 기업과 산업에 적용하는 실행 도구다.

따라서 K-스틸법이 포항에서 실질적 의미를 가지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저탄소 공정 전환이 실제로 가능하도록 수소·전력·인프라와 연구개발을 통합 지원하는 실행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노동자와 협력업체, 지역사회가 전환 비용을 일방적으로 떠안지 않도록 정의로운 전환장치를 제도화해야 한다. 셋째, 전환 과정이 투명하고 참여적으로 운영되도록 지역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빠지면 법은 선언으로 남고, 시민의 불안은 커질 것이다.

포항 시민이 원하는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우리 아이들이 이 도시에서 일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구체적 답이다. 전환이 성공하면 포항은 세계가 주목하는 저탄소 산업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 그러나 준비 없이 시간을 보내면 경쟁력은 약화되고, 기회는 사라진다. 선택은 멀리 있지 않다. 지금 준비하느냐, 뒤늦게 따라가느냐의 문제다.

여기서 다시 진실을 생각한다. ESG는 결국 진실을 요구하는 제도다. 탄소를 숨기지 말 것, 일자리의 변화를 외면하지 말 것, 지역의 목소리를 경청할 것. 숫자와 보고서가 아니라, 진실한 실행이 필요하다. K-스틸법은 그 진실을 포항의 전략으로 바꿀 수 있는 도구다.

포항은 철로 세워진 도시다. 이제 저탄소 철로 미래를 세워야 할 갈림길에 서 있다. 이 전환이 기술만의 과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과제임을 잊지 않는다면, 포항은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 철강의 ESG는 기업의 숙제가 아니라 도시의 전략이며, K-스틸법은 그 전략을 현실로 만드는 첫 문장이다.

/유성찬 포항환경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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