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의 부인인 이정화사진 여사가 5일 췌장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70세. 6일 범 현대가(家)에 따르면 이 여사는 5일 저녁(한국시간 6일 새벽) 미국의 한 병원에서 췌장암 수술을 받던 중 사망했으며 시신을 국내로 이송하기 위해 현재 미국 내에서 항공편으로 이동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여사는 최근 건강검진 결과 췌장암으로 추정되는 심각한 병증이 발견돼 국내에서 치료를 받아왔으나 병세가 매우 나빠지자 추석 연휴기간에 전세기를 이용해 미국으로 옮겨져 시카고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여사는 현대.기아차그룹 계열사인 해비치리조트 지분 16%를 소유한 대주주이며 이 회사 고문을 맡고 있다./연합뉴스
2009-10-07
김성진사진 전 문화공보부 장관이 17일 새벽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7세. 1957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김 전 장관은 워싱턴 특파원과 정치부장을 지낸 뒤 1971년 청와대 대변인으로 정관계에 발을 들였다. 1975년부터 5년간 문화공보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1980년 동양통신 사장에 이어 연합통신(현 연합뉴스) 초대 사장에 선임돼 83년까지 4년간 재임하면서 IPI 한국위원장을 맡았다. 김 전 장관은 문공부 장관 재임 당시 문화재 복원 사업 등 고전 문화의 발전적 계승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청조근정훈장도 받았다. 유족은 부인 한정수 씨와 정한(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영한(삼성물산 건설부문 부장), 정희(삼성디자인대학 교수)씨 등 2남 1녀. 발인은 19일 오전이고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02-2072-2091/2)이다. /연합뉴스
2009-09-18
`김상택 만평`으로 유명했던 김상택사진 전 중앙일보 화백이 14일 오후 6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55세. 경북 봉화 태생의 김 전 화백은 1977년 상지전문대 미술과를 졸업하고 88년부터 경향신문에 `김상택 만평`을 실으면서 신문 만평가의 길로 들어섰다가 99년 중앙일보 화백으로 자리를 옮겼다. 고인은 지난 2007년 위암수술을 받고 1년 동안 휴식을 취한 뒤 지난해 8월 복귀했지만, 건강이 다시 악화돼 지난달 19일을 끝으로 만평을 중단했다. 가는 펜으로 세밀한 그림체를 구사하면서 정치·사회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한 작품들은 신문 만평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강혜경(53)씨와 1남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됐고 발인은 오는 17일 오전 6시. /연합뉴스
2009-09-16
대구에서 벌어진 2·28 민주운동의 주역인 이대우사진 부산대 명예교수가 13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67세. 이 교수는 1960년 2월28일 경북고 학생부위원장으로서 이승만 정권의 독재를 규탄하는 집회를 주도해 2.28 민주운동을 이끌어냈다. 2·28 민주운동은 고교생이 주체가 된 민주학생운동의 효시이자 4·19 혁명의 도화선으로 평가된다. 고인은 부산대 윤리교육과 교수와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21세기 정치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고, (사)2.28 민주운동기념사업회 이사와 4·19혁명공로자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2·28 정신 계승을 위해 노력해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향선 씨와 아들 중화(미국 유학) 씨, 딸 윤지(〃) 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02-3410-6920)이고, 발인은 16일 오전 8시, 장지는 서울 수유동 국립 4·19 민주묘지이다. /연합뉴스
2009-09-15
장기선 전 국회의원이 5일 밤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고인은 통일주체국민회의 유신정우회 소속으로 제10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대한해운회사 부사장, 민주공화당 의장비서실장, 민주공화당 정책연구원 차장 등을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정윤순씨와 아들 덕상, 헌상씨 등 2남이 있다. 빈소는 이화여대 목동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8일 오전 5시30분./연합뉴스
2009-09-07
김재봉 전 매일경제신문 회장이 지난달 31일 뇌출혈로 별세했다. 향년 77세. 고 김 전 회장은 1932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광주 숭일고와 한양대 공업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60년 경향신문 기자로 언론계에 입사했고 71년 매일경제신문으로 옮긴뒤 경제부장, 편집국장, 주필, 사장을 거쳐 99-89년 회장을 지냈다. 퇴임후에는 서울종합터미널 회장, 센트럴시티 회장, 계간지 사상계 대표를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경자씨, 아들 현(개인사업), 딸 진, 영씨, 사위 박경산(LG전자 차장)씨 등이 있다. 빈소는 가톨릭대 서울 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이다. 발인은 3일 오전 7시. 장지는 경기도 선영. /연합뉴스
2009-09-02
천주교 대구대교구 교구장 최영수 대주교(세례명 요한)가 31일 오전 6시20분께 대구 가톨릭대학병원에서 지병으로 선종했다. 향년 67세. 최영수 대주교는 1942년 경북 하양에서 태어나 경북고, 가톨릭대를 거쳐 1970년 사제 서품을 받고 천주교 대구대교구 여러 본당 주임을 거쳐 대구 가톨릭대 사무처장, 대구시립희망원 원장, 가톨릭신문사 사장, 대구평화방송 사장 등을 지냈다. 2000년 천주교 대구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된 후 2001년 주교서품을 받고 2001~2007년 대구대교구 총대리를 지내다 2007년 4월 대구대교구장에 착좌했다. 이후 올해 8월17일 대구대교구장에서 사임했다. 최영수 대주교의 빈소는 주교좌 계산성당에 마련됐으며 장례미사는 9월4일 오전 10시 대구가톨릭대 남산동 캠퍼스 성 김대건기념관에서 한국 주교단과 교구사제단 공동집전으로 열린다. 장지는 대구시 중구 남산3동 대구교구청 내에 있는 교구성직자묘지다. 053-250-3016. /연합뉴스
2009-09-01
뇌종양으로 투병 중이던 미국의 에드워드 케네디사진 상원의원이 25일 77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케네디가(家)는 26일 짧은 성명을 통해 “케네디 의원이 매사추세츠주 히아니스 포트에 위치한 자택에서 25일 저녁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고(故) 케네디 의원은 투병 중임에도 최근 건강보험 개혁 입법안의 상원 표결시 `사표(死票)`를 막기 위해 자신이 사망할 경우 후임자를 주지사가 신속하게 지명, 공석이 발생하지 않도록 매사추세츠 주법 개정을 요청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2009-08-27
“이렇게 가면 어떡해, 저도 같이 따라갈래요.” 결혼한 지 4개월만에 남편을 잃은 아내는 남편을 떠나보내며 오열했다. 6일 오전 전남 해남군 국제장례식장에서 열린 고(故) 조오련씨의 영결식은 갑작스럽게 이승을 하직한 고인을 떠나보내는 안타까운 마음이 무겁게 깔렸다. 교회·가족장으로 조촐하게 치러진 이날 영결식은 가족과 수영계 인사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발인 예배를 시작으로 묵념, 조사, 헌화 순으로 거행됐다. 큰아들 성웅씨의 부대 대대장으로 근무했던 해군 특수전여단 문석준 중령은 조사를 통해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문 중령은 조사에서 “고인과 마지막으로 이별해야 한다니 애석하고 비통한 마음을 가눌 길 없다”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도전정신을 잃지 않았던 고인에게 애도를 표한다”고 말했다. 고인이 아들을 면회하려고 부대를 방문해 부대원 전원에게 수영모를 선물했다는 일화를 소개한 그는 “수영모에 `남아의 끓는 피 조국에 바쳐`라는 문구를 새겨 주셔서 오늘도 수영모를 꺼내 그를 기억했다”며 “독도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조국에 대한 애정은 길이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발인을 마친 운구차는 조씨의 고향인 해남군 학동리 생가 주변에 도착해 노제를 지낸 뒤 계곡면 법곡리 자택 주변에 마련된 장지로 이동했다. 조씨는 생전 그의 유언에 따라 `재기`를 위해 지은 자택 옆에 묻혔다. 아침부터 잔뜩 흐려있던 하늘에서는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듯 굵은 빗방울이 눈물처럼 내리기 시작했다. /연합뉴스
2009-08-07
봉화 출신 애국지사 김중문사진 선생이 30일 오전 2시30분 경산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7세. 김 선생은 항일운동을 위해 흑색청년자유연합회라는 비밀결사 조직을 결성했다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김중문 지사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1남2녀(1남 김호상, 1녀 김호현, 2녀 김정숙)가 있다. 빈소는 분당 재생병원 영안실 8호(장례식장 031-781-7628)에 마련돼 있으며, 발인은 8월1일 오전 6시, 안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3묘역이다. /이현주기자 sun@kbmaeil.com
2009-07-31
광복군에 여군으로 입대해 항일독립운동을 벌인 애국지사 신순호사진 여사가 30일 오전 7시 별세했다. 향년 87세. 1922년 충북 청원에서 태어난 여사는 1938년 8월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입대해 중국과 합동으로 항일 운동을 전개했다. 1940년 9월 한국광복군이 창립되자 오광심 김정숙 조순옥 여사 등과 함께 여군으로 광복운동에 참가했다 1942년 임시정부 생계위원회 회계부에 파견되어 근무하다가 1943년 8월 임시정부 외무부 정보과로 전보돼 활동하던 중 광복을 맞았다. 여사의 남편인 고(故) 박영준 선생도 광복군 제3지대에서 훈련총대장으로 활약한 애국지사다. 정부는 여사의 공훈을 기려 1977년 건국포장을,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각각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박천기씨와 딸 천민(교사), 사위 이홍권(변호사)씨가 있다. 발인 8월1일 오전 9시, 장지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빈소 삼성병원 영안실 19호 (02)3410-6919./연합뉴스
광복군에 입대해 항일독립운동을 벌인 애국지사 박성관 선생이 28일 오전 3시40분 별세했다. 향년 86세. 1923년 평북 용천에서 출생한 선생은 중국으로 건너가 광복군 제3지대 `부양판사처`에 입대, 국내 독립운동가들과 광복군을 연결하는 공작활동을 전개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가들을 안전하게 중국으로 안내, 광복군과 접선토록해 지령을 받고 독립운동을 할 수 있도록 공작활동을 벌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 대통령표창을,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박창호(영풍전력 전무) 씨와 1녀가 있다. 발인 30일 오전 7시30분, 장지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 1묘역, 빈소 원자력병원 장례식장 6호 02-931-3171. /연합뉴스
2009-07-29
한국 천주교회사 연구의 선구자로 불리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최석우(안드레아) 몬시뇰이 20일 오후 6시45분 서울 성모병원에서 선종했다. 향년 87세. 최석우 몬시뇰은 1922년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나 1950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1956년 벨기에 루뱅대학과 독일 본 대학에서 교회사를 전공, 1961년 8월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교회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몬시뇰은 1964년 `한국교회사연구소`를 설립해 교회사 연구의 밑거름을 마련했으며 가톨릭대 신학부 교수, 명동·수유동 본당 주임 등을 겸직했고 1975년부터 교회사 연구에 전념했다. 빈소는 명동대성당 내 지하성당에 마련됐으며 장례미사는 22일 오전 10시 명동대성당에서 정진석 서울대교구장 추기경과 사제단의 공동집전으로 치러진다. 장지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용인 공원묘지 내 성직자 묘역./연합뉴스
2009-07-22
`장군의 아들` 故 김두한의 후계자로 알려진 조일환씨가 향년 72세를 일기로 13일 오후 7시15분께 단국대 천안병원에서 간암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해방 전후 충남 천안지역 주먹계를 평정한 뒤 김두한을 만나 그의 후계자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는 1974년 육영수 여사 피살사건 당시 울분을 토하며 천안시내 유관순 동상 앞에서 새끼손가락을 잘라 항의한 바 있으며 최근에는 기독교에 귀의했다. 유족으로는 아내 박경자(70)씨와 아들 승규·범규·인규씨와 딸 수경씨 등 3남1녀를 두었다. 고인의 빈소는 단국대 천안병원 장례식장 9호실, 발인은 17일 오전, 장지는 천안공원묘원이다. (041) 550-7180. /연합뉴스
2009-07-15
일제강점기 강제 입대당한 뒤 소속된 일본군 병영시설 파괴공작을 세웠다가 체포돼 옥고를 치른 애국지사 이철영(李哲永) 선생이 28일 별세했다. 향년 90세. 1919년 함남 북청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4년 1월 일본군 평양사단 내 47포병부대에 강제입대당했다. 당시 일본군 평양사단은 42~44 보병부대 및 47 포병부대와 48 공병부대 등으로 편성되어 있었는데, 고인은 그해 7월 42부대를 중심으로 학병 항쟁이 계획되던 때 이에 가담해 의거를 준비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80년에 대통령표창을,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전초월 여사와 아들 재학(항공해양연구원) 재인(진주교육대 교수) 재오(독일한인교회 목사) 재율씨와 딸 영자 영희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삼성의료원 장례식장 17호실(02-3410-6917, 010-8862-7373), 발인 7월1일 오전 7시, 장지는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 제4묘역이다./연합뉴스
2009-06-30
`오발탄`, `아낌없이 주련다`를 내놓으며 한국 영화계를 풍미한 유현목 감독이 28일 별세했다. 향년 84세. 유 감독은 지난 2007년 뇌경색으로 병원 신세를 진 이후 최근에는 당뇨합병까지 겹치면서 병세가 악화돼 동국대 일산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고인은 1925년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에서 태어나 휘문고와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1956년 영화 `교차로`를 감독하면서 영화계로 입문했다. 1961년 제작된 `오발탄`은 전후세대의 암울한 현실을 잘 포착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미국 `샌프란시스코 영화제`에 초빙되기도 했다. 이후 기복 없는 꾸준한 작품활동으로 `아낌없이 주련다`(1963), `잉여인간`(1964), `순교자`(1965), `사람의 아들`(1980) 등 인간의 내면적 갈등과 종교문제 등을 조명하는 다수의 영화를 연출하며 50여 년간 영화계의 `거목`으로서 자리매김했다. 서양화가인 부인 박근자 여사가 있으며, 빈소는 서울 반포동 서울성모병원에 차려질 예정이다. 발인은 7월2일. 문의 02-2258-5940. /연합뉴스
2009-06-29
한국 성악계의 `거목`으로 꼽히는 원로 성악가 오현명 한양대 음대 명예교수가 24일 저녁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5세. 중국 만주에서 출생한 고인은 1948년 서울대 음대 성악과 졸업 후 서울예고 교감, 한양대 음대 학장 등을 역임하며 평생을 가곡 발전과 성악 교육에 힘써온 한국 성악계의 산증인이다. 1948년 한국 최초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 출연한 이래 60여편의 오페라에 출연하고, 50여편의 오페라를 직접 연출한 그는 1964년부터 1982년까지 국립오페라단장을 맡는 등 오페라 발전에도 헌신했다. 특히 한국 가곡에 대한 남다른 애착으로 1960년대부터 한국 가곡만으로 독창회를 여는 등 `가곡 전도사`로서 역할을 든든히 해왔다. 또한 가곡에 얽힌 뒷이야기를 후세에 남기기 위해 암투병으로 고통을 받던 최근까지도 세일문화재단의 진행으로 구술 작업을 진행해왔다. 유족으로는 아들 영인(오페라 연출가), 영석(사업), 영진(성악가), 딸 순방(주부)씨 등 3남 1녀가 있다. 빈소는 행당동 한양대병원이며, 발인은 27일 오전 8시, 장지는 경기도 강촌의 경춘공원 (02)2290-9442. /연합뉴스
2009-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