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라이프

夢魂 ... 이옥봉

近來安否問如何(근래안부문여하) 요사이 안부를 묻노니 어떠하시나요? 月到紗窓妾恨多(월도사창첩한다) 달 비친 사창(紗窓)에 저의 한이 많습니다. 若使夢魂行有跡(약사몽혼행유적) 꿈속의 넋에게 자취를 남기게 한다면 門前石路半成沙 (문전석로반성사) 문 앞의 돌길이 반쯤은 모래가 되었을 걸. - 시문집 `가림세고(嘉林世稿)``옥봉집(玉峰集)`은 조선 선조 때 옥천 군수를 지낸 이봉의 서녀(庶女)로 태어나 조원의 소실(小室)이 된 숙원이씨 이옥봉의 시집이다. 조원·조희일·조석형 3대(代)의 시문(詩文)을 묶은 `가림세고(嘉林世稿)`의 부록으로 전한다. 유교적 가부장 중심의 조선 사회에서 서출(庶出)로 더구나 여자로 태어난 것 때문에 시를 마음껏 써보지 못하고, 또 시 창작으로 남편과 영원히 헤어져 살아야 했고 끝내 자신이 쓴 시를 안고 바다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한 비운의 여류 시인 이옥봉. 그가 남긴 32편의 한시는 대부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다림과 그리움의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칠언 절구의 `몽혼(夢魂)`도 기다림과 그리움의 노래다. 임을 만나기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니 꿈속의 넋을 빌리는 가정법을 사용하여 자신의 애절한 사랑을 그려내고 있다. 꿈속의 넋인 몽혼(夢魂)이 그리움에 목메어 하도 찾아 달려가 당신 사는 문 앞의 돌길이 모래가 되었을 것이라는 저 여인의 깊은 한(妾恨多)을 어찌할꼬? 시적 화자가 부르는 이 사랑의 노래가 너무 애틋하고 절절하다. 비운의 모습으로 끝나버린 여인 이옥봉의 삶과 그 한이 안타깝고 애절타. 내 전생(前生) 또 그 전생의 삶에서 이러한 여인을 남겨 두지는 않았는지? 그녀의 다른 시 오언 절구 `규정(閨情)`이라는 작품도 애절한 기다림과 그리움의 노래다. “有約來何晩(돌아온다 언약해놓고 어찌 이리 늦나요.)/庭梅慾謝時(뜰에 핀 매화는 벌써 시들려 하는데)/忽聞枝上鵲(문득 가지 위의 까치소리 듣고서)/虛畵鏡中眉(부질없이 거울 보며 눈썹 그려요.)” 이 시의 화자는 까치 우는 소리에 새로 화장을 하며 임을 기다린 게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부질없는 것인 줄 알면서 또 거울을 보며 눈썹을 그리는 저 여인의 마음이 못내 안타깝기만 하다.해설이종암·시인

2009-06-25

동행...이원규

밤마다이 산 저 산울음의 그네를 타는소쩍새 한 마리섬진강변 외딴집백 살 먹은 먹감나무를 찾아왔다저도 외롭긴 외로웠을 것이다.- 이원규 시집 ‘옛 애인의 집’(솔·2003) 빨치산의 자식 이원규 시인. 입산, 환속, 노동해방문학, 지리산, 생명평화결사 삼보일배 등의 이력을 가진 이원규 시인은 언제나 ‘길 위’에 서 있는 사람이다. 진보진영 문학 단체의 실무와 언론사 기자로 활동하던 10년간의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그는 홀연히, 표표히 지리산의 품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중고 오토바이 한 대로 지리산 자락에서 새 삶을 꾸린지 6년 만에 펴낸 시집이 ‘옛 애인의 집’이다. “밤새 너무 많이 울어서 두 눈이 먼 사람이 있다”(‘부엉이’ 전문)의 부엉이도 그렇고 위 시 “밤마다/이 산 저 산/울음의 그네를 타는//소쩍새 한 마리”는 시인 자신의 등가물일 테다. 그는 이 생에서 ‘외로움의 울음’ 때문에 늘 ‘길 위’를 서성이며, “세상 처처 곳곳 옛 애인의 집처럼 기웃거리며 들고나는”(박남준) 것인가. 그러나 그는 그 누구보다도 자기 삶 앞에서 정직하고 용감한 시인이다. “길이라면 어차피/아니 갈 수 없는 길이었다”(뼈에 새긴 그 이름)라는 그의 진술처럼 자기 앞에 맞닥뜨린 길을 피하지 않고 당당히 걸어가는 것 또한 삶을 바르게 사는 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원규형! 처처가 형의 집일 테지만 이제 그만 외로움의 울음을 끝내고, 형의 작은 집 하나 장만하면 어떨까요?해설이종암·시인

2009-06-16

곡강(曲江)...두보

一片花飛減却春 꽃잎 하나 날아도 봄이 줄어드는데일편화비감각춘風飄萬點正愁人 어찌 보리, 바람에 우수수 지는 모양!풍표만점정수인且看欲盡花經眼 눈 앞을 스쳐 사라져 가는 꽃들 바라보면서차간욕진화경안莫厭傷多酒入脣 지나치기 쉬운 술 입술 들어옴 마다 마시랴.막염상다주입순江上小堂巢翡翠 강가의 작은 정자(翡翠) 비취 깃들고강상소당소비취苑邊高塚臥麒麟 어원(御苑) 곁 높은 무덤 뒹구는 기린(麒麟)!원변고총와기린細推物理須行樂 이 세상 모름지기 즐겨야 하리니세추물리수행낙何用浮名絆此身 뜬 이름으로 이 몸 매어 무엇 하리?하용부명반차신- 이원섭 역해 ‘두보시선’(현암사·2006) 우리는 중국의 시를 말할 때는 으레 당(唐)나라를 제일로 들고, 당시(唐詩)를 말할 때면 이백과 두보를 거론하는 것을 당연지사로 알고 있다. 호방한 풍류의 기상이 넘치는 이백의 시가 도교적 색채가 짙다면 사실주의적 현실 인식을 중심으로 하는 두보의 시는 유교적이다. 그런데 757년에 일어난 ‘안녹산의 난’은 당나라의 정치 현실은 물론 두보(44세)의 삶을 파국으로 치닫게 했다. 이러한 현실적 삶의 파탄이 두보 시의 내용과 빛깔을 어둡게 한 결정적 계기였다. 시 ‘곡강이수(曲江二首)’는 좌습유라는 벼슬을 하면서 장안(長安)에 있을 때 쓴 작품이다. 삶의 처지가 비교적 순탄할 때 쓴 시여서 ‘곡강이수(曲江二首)’ 모두 봄날의 꽃과 술을 중심 제재로 하고 있는 호탕한 낭만적 서정시이다. 고희(古稀)라는 말의 출처로 널리 알려진 ‘곡강(曲江)2’보다 나는 “꽃잎 하나 날아도 봄이 줄어드는데(一片花飛減却春)”라고 봄날이 떠나가는 아픔을 노래한 ‘곡강(曲江)1’이 더 좋다. 꽃잎이 점점 떨어지고 봄날이 다 간다. 시인이여, 어찌 술을 마시지 않으랴. 떠나는 봄날의 아무 마당에서고 자리를 펴 술을 마시자. “뜬 이름으로 이 몸 매어 무엇 하리?(何用浮名絆此身)”라는 문장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봄날이 가는데 우리 술을 마시자. 그렇지 않은가, 우리의 삶 또한 바람에 떨어져 내리는 저 꽃잎처럼인데.해설이종암·시인

2009-05-21

산수유-알 1...정진규

수유리라고는 하지만 도봉산이 바로 咫尺이라고는 하지만 서울 한복판인데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정보가 매우 정확하다 훌륭하다 어디서 날아온 것일까 벌떼들, 꿀벌떼들, 우리집 뜨락에 어제 오늘 가득하다 잔치잔치 벌였다 한 그루 활짝 핀, 그래, 滿開의 산수유, 노오란 꽃숭어리들에 꽃숭어리들마다에 노오랗게 취해! 진종일 환하다 나도 하루종일 집에 있었다 두근거렸다 잉잉거렸다 이건 노동이랄 수만은 없다 꽃이다! 열려 있는 것을 마다할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럴 까닭이 있겠는가 사전을 뒤적거려 보니 꿀벌들은 꿀을 찾아 11킬로미터 이상 往復한다고 했다 그래, 왕복이다 나의 사랑도 일찍이 그렇게 길 없는 길을 찾아 왕복했던가 너를 드나들었던가 그래, 무엇이든 왕복일 수 있어야지 사랑을 하면 그런 특수 통신망을 갖게 되지 光케이블을 갖게 되지 그건 아직도 유효해! 한 가닥 염장 미역으로 새카맣게 웅크려 있던 사랑아, 다시 노오랗게 사랑을 採蜜하고 싶은 사람아, 그건 아직도 유효해!- 알詩(세계사·1997)봄을 이끌고 오는 꽃들의 행진 맨 앞에 하얀 매화와 노오란 산수유가 자리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한반도 남쪽 포항에는 그 꽃들이 엊그제 막 지나갔는데, 그들은 지금 한반도 어디쯤 가고 있을까? 서울까지는 갔는가 몰라. 정진규의 ‘산수유-알1’는 서울 한복판 수유리 시인의 집 뜨락에 노오란 꽃숭어리들로 만개한 산수유와 그 꽃에 노오랗게 취해 잉잉거리며 잔치를 벌이고 있는 꿀벌떼들의 풍광, 또 거기에 그대로 교접(交接)된 정진규 시인의 몸과 마음이 펼쳐놓는 한바탕 사랑의 잔치 마당을 펼쳐 보이고 있다. 그 모양이 가히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이다. 시인은 꽃을 찾아 11킬로미터 이상 왕복으로 드나드는 꿀벌을 보면서 ‘사랑의 光케이블’을 발견한다. 그래서 “나의 사랑도 일찍이 그렇게 길 없는 길을 찾아 왕복했던가 너를 드나들었던가”라고 자신의 사랑을 떠올린다. 그리고 다시 노오랗게 채밀(採蜜)할 사랑을 갖고자 한다. 꽃이 사랑이요, 사랑이 생명이다. 그건 알의 본래적 모습 바로 그것이다. 정진규 시인의 연작시집 ‘몸詩’(세계사·1994)와 ‘알詩’(세계사·1997)는 지난 90년대 우리 시단에 생명(생태)과 몸(육체)의 문제를 분명하게 각인시켜놓은 중요한 시집이었다. 시집 속에 수록된 시편들의 형태가 대부분 산문시인데, 그 줄글이 갖는 리듬감이 또한 놀랍다. 평범한 운문시의 율격을 훌쩍 뛰어넘는다. 지금 다시 소리 내어 시를 낭독해보라. 시의 리듬을 따라 일어서는 사랑의 꽃 사태를 만날 테니.해설이종암·시인

2009-03-26

산수유-알 1...정진규

수유리라고는 하지만 도봉산이 바로 咫尺이라고는 하지만 서울 한복판인데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정보가 매우 정확하다 훌륭하다 어디서 날아온 것일까 벌떼들, 꿀벌떼들, 우리집 뜨락에 어제 오늘 가득하다 잔치잔치 벌였다 한 그루 활짝 핀, 그래, 滿開의 산수유, 노오란 꽃숭어리들에 꽃숭어리들마다에 노오랗게 취해! 진종일 환하다 나도 하루종일 집에 있었다 두근거렸다 잉잉거렸다 이건 노동이랄 수만은 없다 꽃이다! 열려 있는 것을 마다할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럴 까닭이 있겠는가 사전을 뒤적거려 보니 꿀벌들은 꿀을 찾아 11킬로미터 이상 往復한다고 했다 그래, 왕복이다 나의 사랑도 일찍이 그렇게 길 없는 길을 찾아 왕복했던가 너를 드나들었던가 그래, 무엇이든 왕복일 수 있어야지 사랑을 하면 그런 특수 통신망을 갖게 되지 光케이블을 갖게 되지 그건 아직도 유효해! 한 가닥 염장 미역으로 새카맣게 웅크려 있던 사랑아, 다시 노오랗게 사랑을 採蜜하고 싶은 사람아, 그건 아직도 유효해!- 알詩(세계사·1997) 봄을 이끌고 오는 꽃들의 행진 맨 앞에 하얀 매화와 노오란 산수유가 자리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한반도 남쪽 포항에는 그 꽃들이 엊그제 막 지나갔는데, 그들은 지금 한반도 어디쯤 가고 있을까? 서울까지는 갔는가 몰라. 정진규의 ‘산수유-알1’는 서울 한복판 수유리 시인의 집 뜨락에 노오란 꽃숭어리들로 만개한 산수유와 그 꽃에 노오랗게 취해 잉잉거리며 잔치를 벌이고 있는 꿀벌떼들의 풍광, 또 거기에 그대로 교접(交接)된 정진규 시인의 몸과 마음이 펼쳐놓는 한바탕 사랑의 잔치 마당을 펼쳐 보이고 있다. 그 모양이 가히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이다. 시인은 꽃을 찾아 11킬로미터 이상 왕복으로 드나드는 꿀벌을 보면서 ‘사랑의 光케이블’을 발견한다. 그래서 “나의 사랑도 일찍이 그렇게 길 없는 길을 찾아 왕복했던가 너를 드나들었던가”라고 자신의 사랑을 떠올린다. 그리고 다시 노오랗게 채밀(採蜜)할 사랑을 갖고자 한다. 꽃이 사랑이요, 사랑이 생명이다. 그건 알의 본래적 모습 바로 그것이다. 정진규 시인의 연작시집 ‘몸詩’(세계사·1994)와 ‘알詩’(세계사·1997)는 지난 90년대 우리 시단에 생명(생태)과 몸(육체)의 문제를 분명하게 각인시켜놓은 중요한 시집이었다. 시집 속에 수록된 시편들의 형태가 대부분 산문시인데, 그 줄글이 갖는 리듬감이 또한 놀랍다. 평범한 운문시의 율격을 훌쩍 뛰어넘는다. 지금 다시 소리 내어 시를 낭독해보라. 시의 리듬을 따라 일어서는 사랑의 꽃 사태를 만날 테니.해설이종암·시인

2009-03-26

봄비 그 친 뒤...남호섭

비 갠 날 아침에 가장 빨리 달리는 건 산안개다. 산안개가 하얗게 달려가서 산을 씻어내면 비 갠 날 아침에 가장 잘 생긴 건 저 푸른 봄 산이다. - 놀아요 선생님(창비·2007) 남호섭의 새 동시집 ‘놀아요 선생님’은 ‘타임캡슐 속의 필통’(창비·1995)이 나온 지 12년 만에 발간되었다. 12년이라니, 그동안 남호섭의 시집을 애타게 기다려온 독자에게 좀 심했다 싶다. 그래도 그는 시집 앞머리에서 어느 시인이 19년 만에 좋은 시집을 발간한 것을 상기하며 시집 내는 일을 부끄러워했다. 동시를 쓰는 남호섭 시인은 지금 경남 산청 지리산 자락에 있는 대안학교인 간디학교 교사다. 이번 동시집 ‘놀아요 선생님’은 지리산 자락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그 아래서 씩씩하게 뛰놀고 구김살 없이 공부하는 아이들과의 부대낌 속에서 얻어진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위 동시 ‘봄비 그친 뒤’는 달리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냥 소리 내어 한 번 읽으면 그 빛깔과 내용이 단번에 다 들어온다. 비 갠 날 아침에 하얗게, 빨리 달려가 산을 씻겨주는 저 고마운 산안개를 나는 남호섭 시인으로 읽는다. 각각의 이런저런 사정으로 자연 속 대안학교를 찾아온 아이들에게 우리말(시)과 올바른 삶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노고에 나는 두 손을 모은다. 한때 나는 남호섭 시인과 같은 직장 같은 문학 단체에서 활동을 한 적 있다. 그와 함께 했던 지난날의 그때가 무척 그립다. 가을 들녘에 핀 코스모스 같이 단아한 남호섭 형! 그가 보내준 시집으로 짐작건대 그곳의 삶이 참 좋아 보인다. 이 봄꽃 다 피고 지기 전에 지리산 아래로 훌쩍 한 번 달려가야겠다. 그곳에 가서 나도 말갛게 세수를 해야지. 해설이종암·시인

2009-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