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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어머니의 발 ... 서 애 숙

오랫만의 나들이에 어머니는 밤 내 가슴을 뒤척였다몇 년 동안 옷장에 걸려있던 투피스를 입기위해 스타킹을 신는데문득 어머니의 종아리에 마른 길이 생겼다그 때 마다 어머니는 조심해서 신어야겠다고 살살 잡아 올리지만스타킹엔 다시 새 줄이 늘어났다스타킹에 자꾸만 길을 내는 어머니를 위해나는 어머니의 발에 풋크림을 발라준다풋크림을 바르고 맛사지를 해준다그 때마다 손바닥에 걸리는 어머니의 발바닥어머니의 굳은 발바닥에 길을 내는 동안어머니의 종아리 살은 더욱 더 마른 길이 되고내 손도 그 길을 따라 마른길이 되고 있었다몇 켤레의 스타킹을 더 버리고서야 비로소길 위의 길이 된 어머니의 발그 샛길 위로 둥근 보름달이 떠오르고 있었다세상에 가장 위대한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어머니의 희생과 정성과 사랑이 아닐까. 늙은 어머니가 거친 한 생을 건너오시면서 만들어온 길. 그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들을 함께하면서 시인은 그 길을 보고 가슴 저미는 슬픔을 느끼고 있다. 아니 자기 자신도 어느덧 그 비슷한 길을 만들며 그 길을 걸어오고 있음을 느낀다. 이제는 길 위의 길이 된 어머니, 둥근 보름달로 떠오른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의 눈물이 잔잔히 흘러오는 시이다.시인

2011-04-13

`36`...유용주

기를 쓰고 반환점을 통과하자 맨 먼저 배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한다 찬 것을 먹으면 이가 시리다 신 음식이 싫다 잠이 없어졌다 눈이 흐릿하다(한 이틀 걸려야 술이 깬다) 세상에 대한 열망이. 삶의 또 한 굽이가 그저 밋밋하고 낡은, 부석부석한… 코치는 시계를 들여다보며 죽어라 악다구니를 쓰는데 긴장으로 뭉친, 탄력으로 내달았던 장딴지가 흐물흐물 녹작지근 길이, 느닷없이 벌떡 일어나 세차게 뺨을 후려친다 노을이 되어 번지는 코피, 한 손으로 틀어막으며 반바지 추스르는데 무엇보다 오오, 이걸 어쩌나 새벽에 좆이 서지 않는다 날이 벼려지지 않는다유용주 시집 `크나큰 침묵`(솔,1996)서른다섯 살이 인생의 반환점이라면 나는 이미 10년이나 지나 와버렸다. 시의 내용이 꼭 내 이야기인 것만 같다. 몸이 허물어지고 세상에 대한 열망이 그저 밋밋하고 낡고 부석부석한 것이. 시`36`은 유용주 시인이 인생의 반환점을 통과한 36세에 쓴 자기 삶의 낭패감에 대한 진지한 반성문이다. 이런 처절한 인생 반성문은 곧 삶의 무서운 결의(決意)로 다가서는 일이다. 이 시를 읽으며 단기4333년(2000) 12월에 보내준 그의 산문집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솔, 2000)를 다시 펼쳐본다. 붉은 볼펜으로 밑줄을 죽죽 그어가며 감동적으로 읽었던 그 때의 기억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내 문학은 내 삶뿐이다”라는 건강하고 당당한 선언으로 시작하는 이 산문집은 그를 일약 유명인사로 만든 책이다. 1부 `그 숲길에 관한 짧은 기억`은 여러 편의 아포리즘을 묶은 것인데, 편편마다 삶과 문학에 대한 시인의 거침없는 육성이 감동적으로, 아름답게 새겨져 있다. 먹물 든 사람들의 현학적이고 나약한 아포리즘을 일거에 넘어서는 위대한 아포리즘이라고 여러 사람들에게 책을 들이밀던 기억이 새롭다. 포항에 한 번 오겠다던 시인을 올 겨울에는 불러서 바닷가 선술집에서 과메기 안주로 소주잔을 나누며 그 당당한 生의 육성을 들어봐야겠다.시인

2009-10-05

아버지의 바다...김동헌

그는 강남구 신사동 어느 식당에서 노랠 불렀네 영일만에서 부르던 박양숙의 어부의 노래를 서울 한복판에서 부르려니 뭔가 이상하게 생각되기도 했을 것이네 카피가 좋아 코피를 쏟고 카피가 좋아 커피를 즐겼던 그는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었네 카피가 좋아 아버지의 바다를 떠났지만 옆방의 숨결까지 스며들던 때늦은 고시원에서 돌아갈 수 있었네 잠든 대벌리 깨우셨던 아버지의 바다로 선잠 자듯 깨어나 꿈결 속에서 들었던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선 곳에 따라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태풍이 몰려 왔네 맑은 날은 새벽 참을 먹었네 시큼거리는 김장 김치 송송 썰어 넣고, 먹다 남은 식은 밥 넣어서 끓여낸 국도 밥도 아닌 밥국으로 새벽을 열었던 아버지, 개 짖는 소리 컹컹 밟고 물 보러 갔네 고래 뱃속 같은 터널 지나 세상 끝, 방파제에 서면 쌀뜨물 흘리듯 아침은 그렇게 오고 있었네 바다신발 갈아 신고 물 보러 가던 아버지의 아침은 시작되곤 했네 시오리 바닷길, 학교 가는 길에 아버지와 마주 치곤했던 그는 이제 카피라이터가 되어 아버지의 바다를 그렇게 꿈인 듯, 현실인 듯 걸어가고 있네 시동인지`푸른시`(심지, 2006)나는 김동헌의 시 `아버지의 바다` 속으로 들어간다. “언제 어디서나 통한다”로 시작되는 초창기 SK텔레콤 휴대전화 광고 문구를 만든 카피라이터 김동헌 시인. 그는 커피가 좋고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어 아버지의 바다(포항)를 떠나 서울 강남구 신사동으로 떠났지만 끝내 “잠든 대벌리 깨우셨던 아버지의 바다”로 되돌아 왔다. “먹다 남은 식은 밥 넣어서 끓여낸 국도 밥도 아닌 밥국으로 새벽을 열었던 아버지”, 그 아버지가 열었던 새벽 아침이 바로 아버지의 바다요 마당이다. 우리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 그 마당의 힘으로 학교로 가 공부하고 세상으로 걸어나가 직장을 얻고 여자를 얻어 아이를 낳고 또 아버지가 되었다. 아버지가 되어보니 아버지의 바다와 마당, 그 큰 넓이를 어렴풋이 알 것만 같다. “바다신발 갈아 신고 물 보러 가던” 시인의 아버지가 이제는 연로하셔서 아침 바다를 쉽게 열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바다는 이미 아버지의 대(代)를 이은 김동헌이라는 아비가 또 바다를 펀하게 열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의 마당이 환히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시인

2009-10-01

돌아가는 길...문정희

다가서지 마라 눈과 코는 벌써 돌아가고 마지막 흔적만 남은 석불 한 분 지금 막 완성을 꾀하고 있다 부처를 버리고 다시 돌이 되고 있다 어느 인연의 시간이 눈과 코를 새긴 후 여기는 천년 인각사 뜨락 부처의 감옥은 깊고 성스러웠다 다시 한 송이 돌로 돌아가는 자연 앞에 시간은 아무 데도 없다 부질없이 두 손 모으지 마라 완성이라는 말도 다만 저 멀리 비켜서거라문정희 시집`양귀비꽃 머리에 꽂고`(민음사, 2004)이 시는 문정희 시인의 제16회 정지용 문학상 수상작이다. 인각사(麟角寺)는 경상북도 군위군에 있는 자그마한 사찰로 고려 충렬왕 때 일연 선사가 `삼국유사`를 저술한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인각사(麟角寺)라는 이름은 절 앞 내(川) 건너 깎아지른 듯한 바위에 기린이 뿔을 얹었다는 데서 유래된 것으로 전한다. 이 시의 제재는 인각사 대웅전 앞마당에 서 있는 석불이다. 모양이 다 이지러져 가는 석불 한 분을 깊이 본 데서 문정희 시인은 `돌아가는 길(道)`의 진리를 발견한다. 어른이 `돌아가셨다`는 말 속에 내재된 돌아감의 진리 그것 말이다. 부처를 버리고 다시 돌이 되는 순간, 마지막 흔적 속에 이루어지는 `완성`의 찰나를 훔쳐본 시인이 토해내는 그 말씀은 깊고도 그윽하다. 그것은 “시간은 아무 데도 없다”는 깨달음으로 정리될 수 있다. 끝내 우리가 돌아가는 그 길을 보려면 마음공부를 크게 해야 하리라. 욕망과 집착을 버리고 타인에게 원한을 쌓지 않는 일에서, 나를 버리는 일에서 그 공부는 시작되리라. 정녕 우리는 돌아가야만 하는가?시인

2009-09-29

이 가을에 오신 손님...서정주

이 가을에 오신 손님 이 세상에서 제일로 쓸쓸한 신발을 신고, 이 가을에 오신 손님 이 세상에서 한 송이 코스모스 얼굴이 되네. 이 가을에 오신 손님 이 세상에서 또다시 저 혼자서 떠나서 가네. 뀌뚜리 울음소리 바지로 꿰고, 기러기 울음소리 웃옷을 입고, 흰구름의 벙거지 머리에 쓰고 또 떠나네 또 떠나 떠나서 가네. 옛날에 도망쳐온 흰말 한 마리 서성이며 헤매이듯이 또 떠나가네. `미당 서정주 시전집 2`(민음사,1991)이 가을에 오시는 손님은 누굴까? 가을이 빚어내는 서럽고도 고운 풍경을 가장 오래도록 깊이 들여다보고 그 기쁨과 아픔을 노래하는 사람은 아마도 시인(詩人)일 것이다. 나는 `이 가을에 오신 손님`으로 미당 서정주 시인을 모신다. 그가 70세에 펴낸 제11시집 `노래`(정음문화사,1984)에서 `이 가을에 오신 손님`이라는 시를 읽는다. 2연으로 구성된 이 시는 그의 다른 시들에 비해 형식미가 매우 정제되어 있다. 6행으로 된 각 연의 동일한 길이와 3음보의 동일한 각 시행들 그리고 앞과 뒤의 의미가 대응되면서도 점층적으로 확산되는 시의 구조가 한국 가곡으로 부르면 딱 그만이겠다. 서럽고도 고운 우리의 노래가 되겠다. “뀌뚜리 울음소리 바지로 꿰고,/기러기 울음소리 웃옷을 입고,/ 흰구름의 벙거지 머리에 쓰고” “한 송이 코스모스 얼굴”로 “이 세상에서/제일로 쓸쓸한 신발을 신고,” “또 떠나네 또 떠나 떠나서 가네.”의 주인공은 그 누굴까? 또 “서성이며 헤매이듯이 또 떠나가”려는 “옛날에 도망쳐온 흰말 한 마리”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승에서의 삶이 끝날 때까지 언어를 손에서 놓지 않고 한 평생 이 땅의 서정시를 써 온 `80소년 떠돌이` 미당 자신이 아닐까. 시인

2009-09-28

팽나무가 쓰러지셨다...이재무

우리 마을의 제일 오래된 어른 쓰러지셨다 고집스럽게 생가를 지켜주던 이 입적하셨다 단 한 장의 수의, 만장, 서러운 곡도 없이 불로 가시고 흙으로 돌아, 가시었다 잘 늙는 일이 결국 비우는 일이라는 것을 내부의 텅 빈 몸으로 보여주시던 당신 당신의 그늘 안에서 나는 하모니카를 불었고 이웃마을 숙이를 기다렸다 당신의 그늘 속으로 아이스께끼 장수가 다녀갔고 방물장수가 다녀갔다 당신의 그늘 속으로 부은 발등이 들어와 오래 머물다 갔다 우리 마을의 제일 두꺼운 그늘이 사라졌다 내 생애의 한 토막이 그렇게 부러졌다이재무 시선집`오래된 농담`(북인, 2008)이 시는 이재무 시인의 어린 시절의 꿈과 어설픈 연애가 들어가 있고, 당시 마을의 생활과 삶의 힘겨움을 다 받아주던 `당신`의 쓰러짐에 대한 조사(弔詞)이다. 당신은 고향 마을에 서 있던 노거수인 팽나무다. 고향 마을을 지키고 있던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팽나무가 쓰러졌다는 것이다. 시인은 나무와 그 행위에 시종 극존칭(당신)과 주체높임(-시-)을 쓰고 있다. 텅 빈 몸으로 입적하는 마지막까지도 “잘 늙는 일이 결국 비우는 일이라는” 삶의 깨달음을 준 당신의 쓰러짐에 대한 화자의 애석함이 시 행간 곳곳에 배어있다. 고향 마을을 지키고 있던 이 팽나무의 쓰러짐은 지난 연대의 사라짐을 의미한다. 그래서 화자는 “내 생애의 한 토막이 그렇게 부러졌다”라고 말로 시를 끝맺고 있다. 고향 마을의 당나무, 고향집, 고향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쓰러짐은 이렇게 젖은 물기를 띠고 나타날 수밖에 없다. 애석하고 슬픈 일이다. 다시 찾아가 그들을 올려다보자. 시인

2009-09-25

사라진 손바닥 ... 나희덕

처음엔 흰 연꽃 열어 보이더니다음엔 빈 손바닥만 푸르게 흔들더니 그 다음엔 더운 연밥 한 그릇 들고 서 있더니 이제는 마른 손목마저 꺾인 채거꾸로 처박히고 말았네 수많은 槍을 가슴에 꽂고 연못은거대한 폐선처럼 가라앉고 있네 바닥에 처박혀 그는 무엇을 하나말 건네려 해도 손 잡으려 해도 보이지 않네 발밑에 떨어진 밥알들 주워서진흙 속에 심고 있는지 고개 들지 않 네 백 년쯤 지나 다시 오면그가 지은 연밥 한 그릇 얻어먹을 수 있으려나 그보다 일찍 오면 빈 손이라도 잡으려나 그보다 일찍 오면 흰 꽃도 볼 수 있으려나 회산에 회산에 다시 온다면 나희덕 시집`사라진 손바닥` (문학과지성사, 2004) 지금쯤 연못에 연꽃은 가고 연밥이 익어가고 있을까. 시의 제목 `사라진 손바닥`은 철지나 사라진 연못 속의 연꽃을 뜻한다. 시의 도입부에서 그려낸 연꽃의 한해살이 묘사는 참으로 절묘하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연꽃이 지고 연밥 달린 대궁마저 꺾여져 연못 속으로 처박힌 그 풍광을 “수많은 槍을 가슴에 꽂고 연못은/거대한 폐선처럼 가라앉고 있네”라고 한 이 빼어난 표현은 기막힌 것이다. 그런데 정작으로 시인이 표현하고자 한 속내는 시의 후반부에 모여 있다. “백 년쯤 지나 다시 오면/ 그가 지은 연밥 한 그릇 얻어먹을 수 있으려나”에서 짐작할 수 있듯 나는 그것을 떠나간 옛사랑에 대한 그리움으로 읽는다. `회산`이라는 지명이 어딘지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시적 화자는 이 곳에서 떠나간 사랑을 애타게 찾고 있는 것이다. `사라진 손바닥`은 그러니 화자의 지나간 옛 사랑의 얼굴이다. 불교의 인연설(因緣說)을 바탕에 두고 있는 나희덕의`사라진 손바닥`은 `찬란한 슬픔`의 아름다운 시다. 시인

2009-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