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똘이들이별의 운행을 맡아가지고는수고로운 저녁입니다가끔 단추처럼 핑글떨어지는 별도있습니다가을 해질녘 창가에 붙어 우는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삼라만상 중의 미물인 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밤하늘 별의 운행에 관여하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귀뚜라미 울음이 낭자하게 퍼지는 뜰에 내리는 별 싸라기들은 서로 아름다운 소리와 빛으로 화답하며 어우러져 그윽한 수묵화 한 장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시인
2019-08-12
회전문 속에서 가방을 놓치고회전문 밖으로 밀려나와 가방을 본다이것은 죽음의 한 경험인가회전문 밖으로 밀려나온 여기가 후생(後生)이라면가방 든 시절이 전생의 이승이었단 말인가회전문 밖에서 떨어진 가방을 들여다본다내용물은 별것도 아니지만나 없으면 육신의 껍질이나 쓰레기에 불과하지만그것을 지금 잃는다면 아쉬움도 꽤 따를 것이다장례식에는산 자들이 억누르는 슬픔의 총체보다 더 큰죽은 자의 고요한 슬픔이 뒤따른다회전문 속에 가방을 떨어뜨리고 나와 밖에서 그 가방을 바라보며 시인은 인생을, 인생의 삶과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 가방은 우리가 평생 살아오면서 쌓아온 재산과 명예와 지위 같은 소유를 의미하는데 회전문 속의 가방처럼 나를 떠난 그것은 크게 가치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장례식에서의 이런 느낌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것을 표현하면서 부질없는 소유에 대해 경계하는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시인
2019-08-11
기쁨과 슬픔은 붙었다 녹슨 쇠붙이의 몸에는녹슬지 않은 하얀 얼룩 같은 것이 떨어질 듯, 붙었다대문을 삐끔 열고 나온 늙은이가 하아얀 치아의웃음을 문간 위에 걸어놓고 돌아간다 그 집에는 곧느닷없는 기쁨의 손님들이 들어찬다 굽은 삭정이,그 집의 감나무 가지 위에도 오늘은 하얀 웃음 달이 걸렸다삭정이 감나무는 여름에 불 같은 푸른 잎을 달았다몇 해 전 칠순을 넘겨 공중목욕탕에 들어간 그 노인은까닭 없이 미끄러져 머리통의 피를 타일 바닥에다 쏟았다지구는 돈다! 다 아는 진리가 그에게는 믿기지 않았으나빙빙 도는 둥근 지구를 따라 회전 춤을 추기가 쉽지 않았을 때그는 벌렁 타일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웬일로 노인을 걱정하던노인의 할멈이 되레 그 가을, 간암으로 횡사했다 ‘할망구무덤에 잔디가 곱게 자라서…’ 노인이 씁쓸한 얼굴로말을 얼버무릴 때 그의 입속에서 이승과 저승은 아귀처럼 붙어 있었다기쁨인 이승의 혀끝에 슬픔인 저승의 몸통이 따라붙었다내 눈알과 시신경과 힘줄이 붙어서 수술한 자리 시신경이 땡기니,온몸에 퍼진 피붙이 크고 작은 그의 이웃들이 따라 아프다노인의 집을 버리고 어수룩한 샛골목을 더듬는데,무심코 발길에 채인 빈 양은냄비 하나가그동안 모았던 소리를 다 풀어놓고, 또 왕- 운다울지 마라! 네 울음의 빈 껍질에도 언젠가그것만큼의 족한 기쁨의 물이 넘쳤었다시인은 동네 노인의 집을 방문해서 마주친 어느 노인을 그리고 있다. ‘녹슨 쇠붙이’로 표현된 노인에게서 ‘녹슬지 않은 하얀 얼룩’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노인의 하얀 치아를 일컫고 있다. 시인은 생을 마감해 가는, 소멸되어 가는 존재에게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하나를 발견한 것이다. 살아있는 존재의 절실한 모습이 감각적으로 표현된 잔잔한 감동을 거느린 작품이다. 시인
2019-08-08
아무도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금빛 넘치는 금빛 낙엽들햇살 속에서 그 거죽이살랑거리며 말라가는금빛 낙엽들을 거침없이즈려 밟고 차며 걷는다만약 숲 속이라면독충이나 웅덩이라도 숨어 있지 않을까 조심할 텐데여기는 내게 자명한 세계낙엽 더미 아래는 단단한, 보도블록보도블록과 나 사이에서자명하고도 자명할 뿐인 금빛 낙엽들나는 자명함을퍽! 퍽! 걷어차며 걷는다내 발바닥 아래누군가가 발바닥을맞대고 걷는 듯하다시인은 단조롭고 권태로운 생활의 굴레를 ‘자명함’이라 지칭하며 거기서 벗어나려 하고 있음을 본다. 매일 아침 산책하며 마주치는 것들은 모두 자명한 것들뿐이다. 그렇다고 독충이나 웅덩이가 있는 위험한 산책길을 원하지는 않지만 아무런 자극도 변화도 없는 삶의 굴레를 권태로워하고 있음을 본다. 시인
2019-08-07
내가 아직입에 담지 못한한마디 말지하의 검은 꿈속에서피와 살의 강림을 기다리며있는 한 덩이백치(白痴)한밤중문득 눈 떠차고 검은 어둠에 엎디어인공호흡을해본다사랑이라는 제목의 시(詩)지만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은 않음을 느낀다. 자신의 시 쓰기 작업에 닿아 있다. 시를 창작하는 데서 오는 절망감, 최후통첩 같은 열망이나 침묵과 절정 같은 내면의 고통스러움을 고백하고 있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2019-08-06
그대, 알알이 고운 시 이삭 물고 와잠결에 떨구고 가는 새벽푸드덕새 소리에 놀란 나뭇잎이슬을 털고빛무리에 싸여 눈뜬내 이마 서늘하다평생 궁구하며 시를 써온 시인은 이렇듯 어느 순간 새소리에 놀란 나뭇잎처럼, 이슬처럼 시가 찾아온다고 고백하고 있다. 기나긴 어둠의 끝을 밀며 열리는 새벽, 빛 무리에 싸여 시가 찾아온 것처럼 우리네 인생에서도 간절히 열망하고 기다리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바램의 끝을 물고 아름다운 성취의 순간이 찾아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이 시에 얹어놓고 있음을 본다. 시인
2019-08-05
길을 가던 아이가 허리를 굽혀돌 하나를 집어 들었다돌이 사라진 자리는 젖고돌 없이 어두워졌다아이는 한 손으로 돌을 허공으로던졌다 받았다를 몇 번반복했다 그때마다 날개를몸 속에 넣은 돌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허공은 돌이 지나갔다는 사실을스스로 지웠다아이의 손에 멈춘 돌은잠시 혼자 빛났다아이가 몇 걸음 가다돌을 길가에 버렸다돌은 길가의 망초 옆에발을 몸 속에 넣고멈추어 섰다길 가다 돌 하나를 집어들고 놀다가 길가에 버린 아이와 돌과 허공, 망초가 있는 그림 하나를 보여주며 시인은 그 하나하나에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본다. 비록 무정물(無情物)일지라도 나름대로 존재 태를 가지고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삼라만상에 어느 것 하나 무의미하게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것을 가만히 들려주는 것이다. 시인
2019-08-04
한 할머니가 시골길을 가고 있네맞은편에서 여학생 한 명이 등장하네둘은 뭔가 생각난 듯 훔쳐보며 갈라지고 있네서로의 뒤를 자꾸만 자꾸만….순간! 들녘 한가운데 놓이는저 아름다운 헌 길과 새길한 할머니와 여학생 하나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갈라서 가는 무심하고 고요한 풍경 하나를 펼쳐보이며 시인은 인생길을 떠올리고 있다. 왜 그들은 서로 훔쳐보며 갈라서서 가는 것일까. 그들은 그들에게 남아 있는 생의 시간을 줄이면서 서로의 길을 가는 것이다. 그게 인생이고, 허망하기 짝이 없는, 무의미한 것이라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2019-08-01
단 한 사람의 가슴도제대로 지피지 못했으면서무성한 연기만 내고 있는내 마음의 군불이여꺼지려면 아직 멀었느냐시인으로 살아가면서 자신의 시 쓰는 자세,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지고 다짐해보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자신이 쓴 시가 단 한 사람의 가슴이라도 따스하게 데워주고 감동에 이르게 하고 싶은 시인의 겸허하고 결의에 찬 시인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시인
2019-07-31
우리 식구들 우연히 밖에서 만나면서럽다어머니를 보면, 형을 보면밍키를 보면서럽다밖에서 보면버스 간에서, 버스 정류장에서병원에서, 경찰서에서….연기 피어오르는동네 쓰레기통 옆에서‘가족’이라는 말보다 ‘식구’라는 말이 훨씬 절실한 혈육 애를 느끼게 해준다. 한솥밥을 같이 먹는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밖’이라는 시어에는 식구들이 먹고살기 위한 벌이가 이뤄지는 곳이란 뜻을 품고 있다. 밖에서 우연히 만나는 식구들에게서 살가운 정을 느낌과 동시에 알 수 없는 어떤 서러움이 차오른다는 시인의 말에 깊이 공감이 가는 아침이다. 시인
2019-07-30
꽃뱀 한 마리가우리들의 시간을 물고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바람이 보라색과 흰색의 도라지 꽃망울을 차례로 흔드는 동안꼭 그만큼의 설레임으로 당신의 머리칼에 입맞춤했습니다그 순간, 내 가슴 안에 얼마나 넓은 평원이 펼쳐지는지얼마나 아름다운 색색의 꽃들이 피어나는지….사랑하는 이여, 나 가만히 노 저어그대에게 가는 시간의 강물 위에 내 마음 띄웁니다바로 곁에 앉아 있지만너무나 멀어서 먹먹한 그리움 같은언제나 함께 있지만 언제나 함께 없는사랑하는 이여,꽃뱀 한 마리 우리들의 시간을 물고 어디론가 사라져 돌아오지 않습니다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곁에 있어도 그립고 함께 있어도 사랑의 갈증에 목말라하는 것이리라. 시인은 그런 사랑의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사랑을 열망하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2019-07-29
서원(書院)의 자미목(紫薇木)은 그믐처럼 붉었다햇살이 하얗게하얗게 달구고 있는그믐의 한낮자미목 붉은 꽃들 위로상현에서 하현까지의 달이까맣게 떠올랐다혓바닥으로이지러지고 차오르는 여러 개의 달을핥아대는자미목의 뜨거운 꽃들붉은 꽃들의 자궁에서 피어나달은세상을 온통 뜨겁게 물들이고 있었다‘서원의 자미목’과‘그믐의 한낮’이라는 표현에서 정적 속의 화려한 꽃 색깔이며 역동적인 삶 속에 잠재된 죽음의 그림자를 표현하고 있음을 본다. 삶 속에 있는 죽음 혹은 죽음 속에 깃든 삶이라는 모순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듯 붉은색과 흰색, 검은색을 대비하면서 생멸(生滅)의 긴장감을 환기시키는 시인 의식을 느낄 수 있다. 시인
2019-07-28
아무도 모르게 풀잎을 매듭으로 엮어 두었다누군가 그것에 발이 걸리어 신나게 넘어질 일을 꿈꾸며우리는 웃었다 가끔 우리가 그 매듭에 쓰러지면서자기가 엮은 줄에 자기가 묶인다는 뜻으로 쓰이는 자승자박(自繩自縛)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되는 작품이다. 제 마음씨나 언행으로 인해 제가 꼼짝없이 얽혀 듦을 의미하는데 스스로 어려움에 들지 않으려면 결자해지(結者解之)의 마음으로 맺은 사람이 풀어줘야 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2019-07-25
내 마음은 우연한 나의 자연내 말은 우연한 나의 자연고속도로 위에 새가 죽어 있는 것을 보았다그 새의 살을 들고 가서 누구도 삶지 않았다우연히 죽은 새는 아무도 먹지 않네살해당한 새만 먹을 수 있네시인은 자신의 마을과 말이 우연한 자연이라고 말하고 있다. 고속도로 위에 죽은 새는 우연한 자연의 한 현상으로 우연히 죽은 것이라고 말하는 시인의 인식에는 우연에 대한 공포감이 스려있다. 우연에 대한 비극적 인식이 깊이 깔려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시인
2019-07-24
왕들은 문에 손을 대지 않는다그들은 저 낯익은 거대한 판때기를 부드럽게 혹은 거칠게 앞으로 미는, 뒤로 돌아서 그 판때기를 제자리에 놓는 - 문을 두 팔로 여닫는 행복을 모른다… 방의 가장 만만찮은 장애물의 배때기를 도자기 고리로 검어 쥐는 행복을, 빠른 몸싸움을 위하여 한순간 걸음 멈추니 눈이 뜨이고 전신이 새로운 실내에 적응한다정다운 한 손으로 아직은 문을 잡고 있지만 이내 아주 밀어 속에 갇힌다 2013 억세지만 유쾌하게 기름 친 용수철이 찰칵 작동하여 그걸 보증한다시인의 말처럼 옛날의 왕(王)들은 시종(侍從)들이 열어주는 문을 드나들지 직접 문에 손을 대지 않는다. 우리 시대에도 관직이 높거나 부자들은 비서나 운전기사들이 있어서 자동차의 문이나 각종 출입의 문을 직접 열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시인은 직접 문을 열고 닫는 기쁨에 대해 말하고 있다. 기름 친 용수철이 찰칵 작동하는 문에 대한 희열을 표현하며 문 여닫는 사소한 것에서 느끼는 기쁨과 행복을 표현하고 있다. 시인
2019-07-23
배를 민다배를 밀어보는 것은 아주 드문 경험희번덕이는 잔잔한 가을 바닷물 위에배를 밀어넣고는온몸이 아주 추락하지 않을 순간의 한 허공에서밀던 힘을 한껏 더해 밀어주고는아슬아슬히 배에서 떨어진 손, 순간 환해진 손을허공으로부터 거둔다사랑은 참 부드럽게도 떠나지뵈지도 않는 길을 부드럽게도배를 한껏 세게 밀어내듯이 슬픔도그렇게 밀어내는 것이지배가 나가고 남은 빈 물 위의 흉터잠시 머물다 가라앉고그런데 오, 내 안으로 들어오는 배여아무 소리 없이 밀려들어오는 배여배를 바다로 밀어 넣으면서 배와 분리되며 육지에 남겨지는 자신을 발견한 시인은 자신의 손이 환해지며 온 몸으로 차오르는 전율을 느낀다고 말하고 있다. 시인의 그윽한 사랑 노래를 듣는다. 배 떠나 자신의 안으로 소리없이 밀려드는 배는 사랑이기 때문이다.시인
2019-07-22
크낙하게 슬픈 일을 당하고서도굶지 못하고 때가 되면 밥을 먹어야 하는 일이슬픔일랑 잠시 밀쳐두고 밥을 삼켜야 하는 일이그래도 살아야겠다고 밥을 씹어야 하는저 생의 본능이상주에게도, 중환자에게도, 또는 그 가족에게도밥덩이보다 더 큰 슬픔이 우리에게 어디 있느냐고시인이 말하는 ‘생의 본능’일까. 시인은 상주들, 중환자들, 또 그 가족들도 때가 되면 밥을 먹어야하는 밥덩이 속의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가슴 속에 슬픔이 가득할 때도 비어있는 위장은 왜 염치도 없이 밥을 달라하는 것일까. 피할 수 없는, 서글픈 생의 본능이다.시인
2019-07-21
바람도 한바탕 씽씽 불어라세차도록 칼칼히 시원스레 불어우리들 뛰놀았던 대숲 언저리죽순 같은 희망으로 뾰족한 그리움으로흔들어 들깨울 것들 죄다 깨워라할머니의 텃밭 가득 토란은 살쪄 알이 굵고마늘은 여물고 상추꽃은 쇠어서허옇게 허옇게 머리 풀고 날려라굴뚝엔 연기 오르고 사랑엔 등불 밝혀서그날 밤 뒤란 가득 탐스런 감꽃들도 수북이 쌓이거든쓰러진 토담벽 울타리를 넘어수심 서린 잔별들도 총총히 밝고주름 많은 빨래를 펴던 어머니의 방망이질 소리(중략)어수선한 대청마루 신발 흐트러진 토방 끝까지성가신 애기들의 울음 소리가사립짝 울바자 위에 소란스레 울리고옛집의 너른 마당귀 해마다 화들짝 피던허연 살구꽃 그늘, 그 아래 여린 풀잎 한 잎도다시금 남김없이 푸르름 들어라점점 피폐해져가는 농촌 사회를 바라보는 안타까운 눈빛을 본다. 시 전편에서 우리 농촌이 다시 활발히 일어서야한다는 당위성과 함께 역동성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어떻게 농촌을 살리고 고향 정신의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할 것인가를 우직한 목소리로 역설하고 있음을 본다. 시인
2019-07-18
보라 저 눈 트는 꽃잎보라 저 걷고 있는 나무어느 길손에게잃어버린 노래를 물으랴나 평생 헛된 꿈만 꾸고 살아왔구나종 울고 해 기울어서 일어나길 떠날 채비 이제서야 하느니가자 저 바람 속으로가자 물보라 지는바다의 저 어질머리저 바람 속으로 걸어나가 님의 가슴 속으로 가자고 토로하는 시인의 가슴 뛰는 연가(戀歌)를 듣는다. 그런데 제목인 별사(別辭)는 이별의 노래를 의미하는데 어찌된 일일까. 꽃이 눈 트고 나무도 걷는데 벌써 종 치고 해가 기운다는 데서도 느껴지는 불균형을 느낄 수 있다. 시 전체에 흐르는 이러한 불균형과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시인
2019-07-17
그 날 칠포 바닷가 모래밭에 수천 수만의 가시내들이 깔깔거리며 모래 틈새로 스며들더니 넋 나간 멀커니처럼 냉수대가 밀려온 오늘 아침 불현듯 진저리 치며 뛰쳐나와 손나발을 불어대는 연분홍칠포 바닷가에 피어난 갯메꽃을 보고 나팔을 부는 연분홍 난쟁이들이라 표현하는 시인의 상상력이 발랄하다. 바닷가 모래밭에서 깔깔대던 수천 수만의 가시네들의 사랑이 스며들어 피어오른 난쟁이꽃이라는 데서 미소를 머금게 되는, 시인의 특이한 상상력이 압축되어 표현된 재미난 시다. 시인
2019-07-16
한 그루 키 큰 나무로 서고 싶어요 나는그대의 집 높디높은 담장보다매일 한 뼘씩 더 올라 가지를 뻗고 싶어요그대, 눈부시게 화장을 하는 푸른 방의손거울을 반쯤이나 들여다볼 수 있는창문 밖에서, 잎 넓은 나무로 서서 가려주고 싶어요내 큰 손으로 가장 밝은 햇살만 따 담아 말렸다가비가 오는 날은 잘게잘게 갈아서그대의 이마 위에 뿌려드리고 싶어요목이 타는 한여름 가뭄이 들 때내 가슴 그늘로 자리 펴고 바람으로 짠 홑이불 덮어그대 고운 잠 자장가 불러 재우고 싶어요절절한 사랑의 노래를 듣는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섬세하고 부드러운, 따스하고 살가운 사랑을 보내고 싶은데 임은 먼 곳에 있어 늘 그리움에 젖어 애틋한 마음만 바람 속에 얹어 보내는 시인의 마음을 읽는다. 시인
2019-07-15
허공의 경계선을 지나운석처럼 버찌들이 떨어진다저들이 태어나 한 생애를 견디고끝내 가고자 하는 곳은 어디인가한 점 핏방울로 맺히는망명점, 북반구의 유월기억나지 않는 생애저 너머로지가 그 무슨열혈남이라도 되는 양핏빛으로버찌가 떨어진다이해받지 못한울음 덩어리의 생하얗게 세상을 밝히며 피었던 벚꽃 진 자리에 맺힌 짙붉은 버찌를 바라보며 시인은 화려했던 청춘의 시간이 휘발되어 지나가고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인생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열혈남아처럼 핏빛으로 떨어지는 버찌를 울음 덩어리로 표현하며 붉은 절망을 느끼는 시인을 본다. 시인
2019-07-14
밭을 갈아 골 만들어 씨를 뿌렸네하기야 사람도 채소처럼 씨가 던져져열매를 맺고 그렇게 살다가사라져 다시 흙이 되는 것인데지금까지 내가 적어 온 시들이몇 천 원어치 씨 한 줌 될 수 있을지몇 번이나 되물으며 씨를 뿌렸네이제야 씨 뿌린 후 해 뜨고비 내리고, 노을지고, 이슬 내려어떻게 한 줌 씨 되는지시가 되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하네채소씨를 뿌리며 자연의 이치를 깨닫게 되었고 자기가 써 온 시의 진실을 찾을 수 있었다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겸손하게 씨를 뿌리고 온 정성과 힘을 다 쏟아 결실을 얻는 농부처럼 자신의 시업(詩業)에도 열정을 쏟아 붓겠다는 겸허한 결의와 다짐을 하는 시인을 본다. 시인
2019-07-11
나를 일으켜세운 건사랑하는 아내도끝까지 버팅기고 남아 있는 동지도눈물겨운 시도 아니었다나를 일으켜세운 건평안도 용강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는 네 아버지와전라도 무안땅에서 왼종일 땅만 파는무지렁이 내 아버지의 탄식이었다태풍에 쓰러진 벼포기들을 일으켜세우던그 거친 손길이었다발간한 시집 때문에 한 때 국가보안법에 걸려 옥살이를 한 적이 있는 시인을 다시 일으켜 세운 건 그 어떤 것보다 농사꾼 아버지의 망설임 없는 결행과 실천이었다고 고백하는 시인은 어떤 이론이나 주장보다도 거침없이 행동하며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19-07-10
밤이 깊어갈수록벽에 걸린 시계 소리는 크게 들린다그것은뚜벅뚜벅 어둠 속을 걸어오는발소리 같기도 하고뚝뚝 지층을 향해 떨어지는물소리 같기도 하다그것은어둠을 한줌씩 물리치는 것 같기도 하고어둠을 한줌씩 더하는 것 같기도 하다그러나 어둠 속에서도 눈을 뜨면아무것도 걸어오지 않고아무것도 떨어지지 않는다시계의 바늘은 그저 일정한 간격으로벽 위에서 돌아가고 있을 뿐이다아마 저것은 시계 속의 건전지가 닳아버릴 때까지일정한 간격으로 끝없이 돌아가리라의미도 없이반성도 없이시인은 깊은 밤 반복적이고 연속적으로 들려오는 시계소리를 들으며 아무런 변화도 없이 어떤 변화도 추구하지 않고, 의미도 반성도 없는 단조로운 삶을 반복하고 답습하며 살아가는 자신을 반성하며 우리를 향해서도 따끔한 회초리를 대고 있는 것이리라. 시인
2019-07-09
잘가거라내 다람쥐 꼬리야그 꼬리와 내 육신 사이 멀어질수록꼬리 생각 간절하게 났다네은밀히 버린 추억들 시간이 흐를수록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네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기어이 난, 지금말꼬리 잡히지 않으려 끙끙대는시 쓰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네‘꼬리’라는 말에서 시인은 유년시절을 떠올리며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않은 채 간절하게 떠오르는 비밀스런 추억을 언급하고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추억의 타래를 품고 말꼬리를 잡고 시를 쓰는 시인이 됐다는 독백의 말에 미소를 머금게 하는 시다. 시인
2019-07-08
언제였을까 공원에서 한 컷나뭇잎 그늘끼리 모여 뒹구는 속에서누군가 찍어놓은 사진 한 장내 옆에서 웃고 있거나 눈을 감거나콧등을 찡그린 사람들이 영 낯설다언제 누가 불러 이 공원에 가서오후의 한때를 렌즈 속에 붙잡아 놓았을까햇살은 그늘 틈새로 튀밥처럼 흩어지고저마다 고만고만하게 행복한 표정들하지만 기억은 빛이 들어간 필름처럼 막막하다기억도 기억끼리만 모여 뒹구는지도무지 나를 거들떠보지 않는다나는 사진 속의 나와 겨우 눈 맞춘다끼어들지 마, 사진 속의 나는나를 힐끗 노려본 뒤 다시 표정을 잡는다이 낡은 사진의 얼룩은 세월의 더께가 아니다그들만의 오후를 침해받고 싶지 않다는완강한 거부의 흔적이다사진은 동적 심상을 정적인 정지상태로 만들면서 흔적을 남기는 것이라는 시인의 가정과 오래된 사진, 곧 흔적은 촬영의 순간을 독점하는 독자성과 배타성을 동시에 가진다는 시인의 인식이 매우 이채로움을 던져주는 작품이다. 시인
2019-07-07
얼마나 많이 뒤틀리고뒤틀려서 깊어져야사람의 몸 속에서는물 소리가 들려오는가어두워지기 전에 다시하늘에서 땅으로귀환하는 새들처럼그 새들을 받아들이며한없이 넓어지는 땅처럼!세상 살면서 여러군데 부딪히고 상처받아 뒤틀리고 망가지는 것이 우리네 삶이라는 시인의 인식 속에는 그 튀틀림이 오히려 자신의 삶을 더 부드럽고 말갛게 정화시켜나간다는 긍정적인 생의 자세를 보여주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2019-07-04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허공에 바람에 흔들리며 집을 지어놓고 하염없이 기다림에 빠져있는 거미의 모습이 시인 자신의 모습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언젠가는 지어놓은 거미줄에 뭔가가 걸려들어 올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기다리다 까맣게 타버린 서러운 거미처럼 자신의 처지도 서러움에 가득 차 기다리고 기다리는 존재라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2019-07-03
뒤늦게 애가 들어선 사십대 여자처럼늙은네 발톱 같은 껍질을 가르고 붉은 석류가 터져나오고 있었는데바람도 으스름달도 모르게먼데서 온 마수걸이 손님처럼이슬 하나까지 얹혀그래도 살아남은 꽃시절이 있었다추분(秋分)이 오기 전 백로(白露)라는 절기가 되면 석류가 익어 그 빠알간 보석들이 박힌 껍질이 터지는데 그 광경을 보는 시인은 마친 오랜 불임의 시간을 보내고 아이를 가진 사십대 여인에게 비유하고, 먼 데서 온 마수걸이 손님에게 비유하기도 한다. 시인은 오랜 시간을 견딘 후 얻은 황홀한 기쁨 같은 석류를 의미 깊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19-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