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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쪼잔해 보이면 큰 정치 못한다

김진국 고문 오늘(28일)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취임 1주년이다. 1년 전 그는 대선 패배 5개월 만에 77.77%를 얻어 당 대표에 취임했다. 그러나 지난 1년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내내 ‘사법 리스크’에 시달렸다. 그 사이 민주당의 지지율은 고전하고 있다. 이 대표의 ‘리스크’가 그대로 민주당에 부담을 주고 있다.대선에 패배하자마자 대표로 복귀한 건 이례적이다. 경쟁자들은 사법 리스크에 대비해 ‘갑옷’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당 대표가 아니었다면 수사의 진척이 더 빨랐을 수 있다. 그렇지만 ‘절대 방패’는 아니었다. 이 대표는 검찰 조사를 네 번 받았다. 곧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으로도 소환될 예정이다. 구속 영장 청구가 임박했다. 내년 4월 총선이라 공천을 둘러싸고 당내에서도 논란이다.검찰이 정치의 주체가 되면 안 된다. 그렇다고 정치가 사법의 치외법권이 되어서도 안 된다. 정치에는 부패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국민의 불만도, 걱정도 거기 있다. 분명한 증거만 있다면 정치 부패는 엄단해야 한다는 게 다수 국민의 희망이다.그런 점에서 이 대표의 대응은 적절하지 않다. 정치지도자다운 당당함보다 법의 허점을 파고들어 어떻게든 처벌을 피하려는 안간힘 같은 인상을 준다. 어떤 탤런트는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라고 말했다. 국민의 믿음을 먹고, 희망을 대변하는 지도자라면 쪼잔한 행보는 피해야 한다.검찰이 30일 소환한다고 하자 이 대표는 (이번 주에는)“일정상 도저히 제가 시간을 내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내일(24일) 오전에 바로 조사받으러 가겠다”라고 말했다. 검찰이 거부해 24일 출석은 무산됐다. 또 8월 31일까지 소집해놓은 임시국회 회기를 ‘25일까지’로 단축했다. 비회기 중 영장을 청구하라는 것이다.검찰도 소환하려면 준비해야 한다. “내일 오전 가겠다”라는 통고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사해보라는 뜻이다. 이 대표 조사에 반영해야 할 이화영 전경기도 부지사의 재판이 이 대표 지지자들의 방해로 지체되고 있다. 이 대표는‘불체포 특권’을 이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회기 중에 구속하려면 본회의에서 투표해야 한다. 민주당이 분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겠다면 민주당 의원들에게 찬성하라고 말하면 된다.당당하면 소환 날짜가 무슨 상관인가. 조금이라도 유리한 조건에서 조사받겠다고 신경전을 펼치는 것은 쪼잔해 보인다. 불체포 특권을 던지기로 했으면 부를 때 나가면 된다. 한 사람의 체포동의안 표결을 피하려고 국회의 회기를 줄이고, 날짜로 씨름하는 것 역시 좀스럽다.이 대표는 변호사다. 재판에서 유불리를 따지는 게 체질일 수 있다. 그럴수록 국민 눈에는 혐의가 짙어진다. 국민이 궁금한 것은 범죄 혐의의 사실 여부다. 대장동 개발에서 1000억 원이 넘는 이익을 삼킨 민간 업자들로부터 특혜의 대가가 없었나. 백현동 특혜의 대가는 없었나. 쌍방울의 대북 송금을 이용해 방북하려 한 것은 아닌가.이런 의혹들에 정면으로 답변해달라는 게 국민의 요구다. ‘증거를 대라’, ‘불법으로 취득한 증거는 효력이 없다’라며 ‘법비’(法匪)나 쓰는 법 기술로는 국민을 설득하지 못한다. 무죄 가능성이 1%만 있어도 일반 국민은 보호받는다. 일반 국민은 검찰 수사에 문제가 있으면 무죄다. 그러나 정치지도자는 다르다.검찰이 어떻게 하든, 국민이 무죄라고 믿어야 한다. 더구나 출석 시기나 국회투표의 유불리를 따지는 건 국민을 답답하게 만든다. 가장 좋은 방어는 ‘진실’이다.쌍방울 김성태 전 회장과 이화영 전 부지사가 모두 쌍방울 대납을 인정했다. 김 전 회장이 조폭 출신이라고 공격한다고 뒤집을 수 없다. 더구나 경기도 법인카드로 음식을 사 먹고, 생활용품을 사들인 것을 모른다는 말로 넘어갈 수는 없다. 공무원을 머슴이나 하녀처럼 부리고도 모른다고 해서는 믿음을 주기 어렵다. 해외여행, 골프를 함께 한 부하직원을 모른다고 하면 누가 믿겠나. 설령 그렇게 재판은 넘길 수 있어도, 국민이 나라의 운명을 맡기겠나. 공직자의 가장 큰 악덕은 거짓말이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8-27

다양성을 존중해서 자유민주주의다

김진국 고문 한·미·일, 3국이 19일 ‘캠프 데이비드 합의’를 발표했다. 이로써 동북아의 신냉전 구도가 더욱 뚜렷해졌다. 북한 핵무기 등을 겨냥한 군사 안보는 물론 신흥 기술을 보호하는 경제 안보까지 3국이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선언에 그치지 않았다. 매년 정상회담을 열기로 했다. 안보실장, 외교·국방·재무·산업부 장관 사이에도 협의 틀을 만들었다.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는 동맹이 아니라고 했지만, 오히려 더 굳건하게 발전할 수 있는 구조다.국제 정세와 3국의 리더십이 제대로 맞아떨어진 덕분이다. 한반도는 강대국이 첨예하게 대치하는 지점이다. 게다가 적대적으로 분단 상태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로 위험하게 불장난한다. 중국 굴기(5D1B起)로 미·중 대결이 날카롭다. 우크라이나 침략을 계기로 미·러 갈등이 세계 경제를 흔들고 있다.북·중·러, 세 나라가 더 가까워졌다. 미국은 태평양 건너 한국과 일본의 협조가 절실하다. 북한 핵 위협이라는 당면 위기가 한국과 일본을 미국에 밀착하도록 몰아간다. 여기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외교 리더십, 윤석열 대통령의 과감한 결단력이 돌파구를 만들었다.한·미·일 협력체제의 가장 큰 걸림돌이 한·일 관계였다. 북·중·러가 흔들기 쉬운 가장 약한 고리이기도 했다. 윤 대통령으로선 국내 정치에서 큰 부담을 각오하고, 과감한 결단을 했다. 더구나 여소야대 상황에서 집권 전반기를 마치고, 내년 4월 총선을 치러야 한다. 임기 후반의 승패가 걸려 있다. 일본 문제는 언제나 비인기 정책이다. 그런데도 정면 돌파했다.8·15 경축사에서 그 기초를 깔았다. 우리 현대사를 자유민주주의와 공산 전체주의의 대결로 압축해, 세계의 자유·평화·번영에 이바지하는 것을 국가 과제로 설정했다. 한·미 동맹 70년의 연장으로 한·미·일 3국 협력체제를 그리고 있다. 광복절 경축사로는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있었지만, 캠프 데이비드 3국 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포석이었던 셈이다.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대통령의 단호한 결기를 평가한다. 그렇지만 몇 가지 짚어야 할 대목이 있다.대통령은 국민 통합의 상징이다. 자유민주주의는 포용이다. 윤 대통령은 “공산 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라고 말했다. 그말이 맞는다. 하지만 민주주의·인권·진보 가치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이러한 가치에 적대적 선을 긋는 것으로 비쳐서는 안 된다.또 그는 “공산 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 치고 있다”라면서 “속거나 굴복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야당과 시민단체를 반국가세력으로 몰아가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프레임 전쟁으로 비칠 수도 있다. ‘빨갱이’, ‘종북’, ‘토착왜구’처럼 총선을 겨냥한 또 다른 ‘딱지’ 붙이기여서는 안 된다.최근 한국 외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널을 뛰고 있다. 3국 협력체제는 역내안보 질서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다. 내부 공감대를 만드는 과정 없이 밀어붙였다. 정권과 관계없이 효과를 지속하는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최근 윤 대통령을 조문한 노사연 씨에게 ‘개딸’들은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이철규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멀쩡한 배에 구멍이나 내는 승객은 승선할 수 없다”라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온 사회가 양극으로 치닫고 있다. 윤 대통령과 참모들의 대화가 일방통행이고, 앞에서 입바른 소리를 못 한다는 말이 아직도 들린다.독립운동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한 분들만 한 게 아니다. 실체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국제공산주의에 기대한 분들도 있다. 북한의 선동, 심리전, 통일전선 전략이 계속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모든 시민운동, 야당 활동에 딱지를 붙여서는 안 된다.윤 대통령 지지도는 30%대에 머물러 있다. 귀를 닫고 극단적인 편향성으로 스스로 고립되면, 정권 재창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훌륭하다. 관용적이고, 다양성을 인정하고, 소수파를 포용하기 때문이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8-20

“내 새끼가 아니다…”

김진국 고문 “내 아이는 왕의 DNA를 가졌기 때문에 왕자에게 말하듯 말해라.” 한 교육부 사무관이 자식의 담임교사에게 이런 메일을 보내 충격을 던졌다. 보도에 따르면 한 사설 자녀 교육 지도 단체가 부모들에게 가르친 내용과 유사하다고 한다. 장애가 있는 아이가 왕의 DNA를 가졌다고 생각하고 양육하라고 부모를 교육한 내용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해할 수도 있다.그렇지만 ‘왕의 DNA’를 가진 아이가 그 공무원의 자식만이 아니다. 그 반에 있는 아이들 모두에게 해당한다. 그런데 “또래의 갈등이 생겼을 때 철저히 편들어 달라”고 요구했다니 자기가 실천할 것을 교사에게 요구하는 난독증(難讀症)인가. 자기 아이 외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내 새끼 지상주의’를 전파하는 건가. 그는 “나는 담임을 교체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압박하고, 실제로 직전 담임교사를 직위해제 시켰다. 이런 사람이 교육부 고급공무원이라니 더 어이가 없다.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정황상 학부모의 갑질 때문이라고 교사들은 의심한다. 전국의 교사가 분노했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는 영화 제목에나 써먹는 말이 됐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건 케케묵은 잔소리다. 스승에게 주먹질하는 세상이다. 버릇없는 학생을 훈계하지 못하고 참으며, “내 새끼 아니다”라고 주문을 왼다고 한다. 스승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우리 사회에 분노가 가득하다. 취업이 안 되는 사회적 원인이 크다. 휴대폰에 갇혀 가족이고, 친구고, 대면 소통이 단절된 기술적 요인도 있다. 그렇지만 의사가 치료해야 할 부분은 논외로 하더라도, 누군가는 사회 규범을 가르쳐야 할 것 아닌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개인의 쾌락만이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에 기여하고, 작은 어려움은 이겨내는 인내심도 길러야 한다. ‘왕의 DNA’를 가지고, 안하무인인 아이들만 설친다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되겠나.자식 문제는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보면, 고위공직자들도 가장 큰 약점이 자식이다. 몰래 자식에게 재산을 넘기려는 사람, 자식의 교육·병역·국적·취업을 위해 편법을 쓰는 사람…. 아득바득 불법으로 재산을 불리는 것도 결국 자식을 황제로 살게 하겠다는 욕심 아닌가.대통령들도 예외가 아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아들 김현철 씨가 국정에 개입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재임 중 아들을 구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인 손명순 여사는 “이러려고 대통령 됐느냐”라며 울었다고 한다. 그는 회고록에서 “진작 해외에 내보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일었다”라고 썼다.김대중 전 대통령은 임기 중에 아들 삼 형제를 모두 비리 혐의로 구속했다. 그는 야당 총재 시절에도 아들에게는 엄하게 하지 못했다. 장남 홍일을 권노갑 전 의원 지역구이던 목포에 공천하면서, “나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해서…”라며 반대 의견에 입을 막았다.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극으로 몰아간 것도 자식 문제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던 어느 날 정상문 비서관이 권양숙 여사와 돌처럼 굳어진 얼굴로 심각하게 이야기했다. ‘(아들) 건호가 관련되었다는 500만 달러, 아내가 받아 쓴 3억 원과 100만 달러’(자서전 ‘운명이다’) 문제였다. 노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 “그때만 해도 미국에 있는 아이들에게 쓴 것인지 몰랐다”라고 썼다. 역시 자식 문제였다.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집안이 풍비박산한 가장 큰 배경도 자식 사랑이다. 이미 박근혜 정부 때 최순실 씨의 딸 사랑이 얼마나 큰 재앙을 가져왔는지를 보고 배운 이후다. 그런데도 자식 문제에는 눈이 멀어버린다.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은 평생 두 딸에게 재산을 다 쏟아부었지만, 가난뱅이가 되자 외면당하는 노인 이야기다. 두 딸은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다. 뒤늦게 고리오는 “부모는 자식에게 생명을 주지만, 자식은 부모에게 죽음을 준다”라며 정곡을 찌른다.자식 사랑을 나무랄 순 없다. 하늘이 정한 본능이다. ‘딸 바보’, ‘아들 바보’가 미담일 수 있다. 그래도 내 새끼밖에 안 보이는 사람이, 사회 지도층으로 존경받아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8-13

김은경혁신위가 민주당 미래인가

김진국 고문 더불어민주당의 김은경 혁신위원장이 구설에 올랐다. 그는 지난달 30일 청년좌담회에서 “남은 수명에 비례해서 투표해야 한다”라는 말을 해 ‘노인 폄하’라고 비난받았다. 중학생 시절 아들의 말을 인용했다지만 “합리적이고 맞는 말”이라며 본인의 의지를 실었다.대한노인회를 중심으로 거세게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는 사과를 거부했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당 지도부가 사과를 종용하자, 그는 “사과하고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자존심상 허락되지 않는다”라며 버텼다고 한다. 답답한 당지도부가 나서 사과했지만 거절당했다. 나흘이 지난 3일에야 김 위원장이 대한노인회를 찾아가 사과했다.혁신위를 만든 건 당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다. 변화의 진심이 있건 없건, 변화하는 모양새를 갖춰야 내년 총선에서 표를 얻을 수 있다는 절박한 마음에서 출발했다. 기왕에 변화한다면 국민이 불신하는 기성 정치인보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자는 생각으로 외부 인사를 모셔 왔다. 그러나 혁신위 활동을 보면 왜 만들었는지 알 수 없게 흘러간다.혁신은 나라를 바꾸겠다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 민주당을 바꾸자는 것이다. 그런데 당내 문제에는 입을 다물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 다 알고 있지만 건드리지 못한다. 국민의 불만을 풀어줄 만한 새로운 생각을 보여준 게 없다. 안에서 지지부진한 처지를 밖에서 풀어보려다 설화만 일으켰다. 본인도 민주주의 국가에서 불가능한 제도라고 말한, 반민주적인 ‘제한선거’가 합리적이라는 사람이 무슨 혁신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이미 김 위원장은 여러 차례 헛발질했다. 이재명 대표와 대통령 후보 경선을 벌인 이낙연 전 대표를 겨냥해 “자기 계파를 살리려 (정치적 언행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라고 계파 대변인 같은 말을 해 반발을 샀다. 초선의원 간담회에서는 “코로나 때 딱 그 초선들이다”라고 말해 분란을 일으켰다.김 위원장은 노인 폄하 발언과 관련해 “교수라서 철없이 지내서 정치 언어를 잘 모르고 깊이 숙고하지 못한 어리석음이 있었다”라고 말했지만, 교수라고 다그런 건 아니다. 노인 폄하를 변명하다 또다시 교수들을 모욕한 셈이다. 국민의 지지를 끌어오기 위해 만든 혁신위가 지지율을 떨어뜨리고 있다. 도와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지도부가 혁신위의 사고를 수습하느라 바쁘게 만들었다.여야를 막론하고 비대위를 만들어도 대부분 임시방편으로 끝났다. 혁신위도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 사법 리스크에 걸린 이재명 대표 대신 욕을 먹어주는 방탄 효과 외에는 존재 이유가 이미 사라졌다. 김 위원장은 사과 성명에서도 이름도 ‘민주당 혁신위’가 아니라 ‘김은경혁신위’라고 붙였다. 그만큼 ‘자존심’을 내건 모양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한계를 드러내면서 ‘김은경혁신위’ 전체가 무력화됐다. 당내에서조차 해체하라는 말이 나온다. 이런 판국에 혁신위가 어떤 안을 내놓은들 박수받을 수 있겠는가.김은경 위원장은 나흘 만에 사과했다. 버티다 사과했다. 더구나 그는 사과하지 않고 버티는 동안 “윤석열 밑에서 (금융감독원 부원장) 임기를 마치는 게 치욕스러웠다”라고 새로운 분쟁 거리를 만들었다. 윤 대통령을 ‘대통령’이란 직함을 빼고 맨이름으로 불렀다. 조국 사태 때처럼 개인적 잘못을 진영싸움으로 바꿔 극성 지지자들로부터 지원받으려 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다. ‘개딸’의 힘으로 밀어붙이려 했다는 말이다. 철없이 정치를 잘 모르는 게 아니라 너무나 ‘정치적’인 행보다.전임 이래경 혁신위원장은 임명한 지 10시간 만에 낙마했다. 김 위원장도 낙마하건 않건, 이미 실패했다. 혁신위원장 자리에 의외의 인물들이 임명되고, 추락하기를 반복하는 것은 이재명 대표가 기존 여의도 정치와는 다른 길을 모색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대표의 책임이다. 두 사람의 실패는 이 대표가 생각하는 새로운 길을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개딸정치’로는 정권 교체가 어렵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8-06

정전협정 70년, 무엇이 두려운가

김진국 고문 정전협정을 체결한 지 70년이 지났다. 1953년 7월 27일 동족 간에 총을 겨눈 3년간의 비극을 끝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정전협정에 반대했다. 그러나 정전협정은 체결됐고, 그렇게 70년을 살아왔다. 70년간 전쟁이 없으면 사실상 종전이다. 그런데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적대 상태다. 서로 통일을 최대과제라고 외치기 때문이다. 항구적인 평화 체제가 필요하다.그러나 전쟁은 말로 하지 않는다. 문서보다 위험한 건 끝없이 고조되는 긴장이다. 남북한은 평화를 약속하는 문서를 여러 번 합의했다. 1972년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은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자주·평화·민족대단결, 3원칙을 담았다. 이를 바탕으로 박 전 대통령은 1974년 8월 15일 ‘한반도 평화 정착→ 상호 문호개방과 신뢰 회복→ 남북한 자유 총선거’라는 ‘평화통일 3단계 기본원칙’을 발표했다.1991년 12월 13일에는 ‘남북기본합의서’에 합의했다. 서로 체제를 인정하고,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않고, 비방·중상하지 않고, 파괴·전복 행위를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남북 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규정한 것도 의미가 크다. 통일헌장의 기초와 같은 문서다. 이와 함께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에도 합의해, 핵무기는 물론 핵 재처리시설이나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 이후로도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김대중),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노무현)으로 평화가 왔다고 당시 대통령들은 흥분했다. 그러나 문서는 지키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비핵화선언을 해놓고,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잠시도 중단한 적이 없다. 박근혜 정부 때 한·일 위안부 합의를 문재인 정부는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도 그렇다. 체제가 다른 나라 사이의 합의는 더 위험하다. 국제정치는 냉혹하다. 합의를 강제할 힘이 있어야 지켜진다.북한은 미국이 자신들을 침략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북한 주민들에게 주입된 두려움은 미국의 북침이다. 그것을 핵 개발의 명분으로 삼고 있다. 평화협정과 미군 철수를 요구한다. 상대는 우리가 아니라 미국이다. 핵무기로 그것을 얻어낼 수 있을까.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나. 전쟁의 참극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 분단은 아픔이다. 그러나 통일하려고 전쟁까지 할 수는 없다. 한반도가 방사능이 가득찬 죽음의 폐허가 된다. 조금 더 기다려도 좋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아무리 더러운 평화라도 이기는 전쟁보다 낫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전쟁을 피하려고 북한 체제로 통일 당할 수는 없다. 양측이 동의하지 않는 통일은 전쟁의 구실이 된다.북한은 끊임없이 도발해왔다. 청와대로 무장 공비를 보내고, KAL기를 공중 폭파했으며, 미얀마의 아웅산에서 남측 대통령 살해를 시도했다. 민간인이 사는 연평도로 포탄을 퍼부었고, 천안함을 격침했다. 북한은 한반도는 물론 미국 전역을 사정거리에 넣은 핵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김정은은 중국과 러시아의 대표단과 함께 전승절(정전협정 기념일) 열병식을 사열했다. 한·미·일 정상은 다음 달 18일 미 대통령 전용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회담할 예정이다. 신냉전체제로 점점 깊이 들어가고 있다. 당신 생각은 어떤가. 어떤 시나리오로 갈 것 같은가. 미국의 북침인가, 북한 정권의 도발인가. 아니면 미국이 새로운 애치슨 라인 뒤로 물러나는 것인가.핵 경쟁이라는 공포의 균형보다 평화의 균형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핵무기는 절대무기다. 비대칭 전력이다. 재래식 무기를 아무리 많이 쌓아도 견제할 수 없다. 때리면 몇 배로 보복당한다는 두려움만이 공포의 균형을 이룬다. 핵무기가 아니면 국제 공조밖에 없다.6·25 때 우리는 아무 대비가 없었다. 북한이 중국·러시아의 지원을 받으며 침략을 준비할 때, 미국은 애치슨 라인을 긋고, 한반도를 버렸다. 국군 장교들은 주말을 맞아 무더기로 외출했다. 단숨에 삼킬 수 있을 것 같은 무방비가 오히려 전쟁을 부른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7-30

지도층은 국민과 공감해야 한다

김진국 고문 중국의 역사는 치수(治水)로 시작한다. 하(夏)나라를 세운 우(禹)왕은 치수에 성공해 선양(禪讓) 받았다. 나라를 경영하는 근본이 치수였다. 4천 년 전에 세워진 지도자의 역할이니, 지금은 당연히 많이 바뀌었다. 그렇지만 4천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치수에 실패하는 건 아이러니다.조선시대에는 가뭄·홍수·지진 같은 재해를 임금에 대한 하늘의 경고라고 생각했다. 세종도 즉위하고 몇 년간 가뭄에 시달렸다. 고기를 좋아하던 세종도 수라상을 줄이며(減膳) 근신했다. 임금이 소박하게 먹는다고 비가 내리지는 않지만 굶주리는 백성들과 고통을 나누는 것이 군주의 덕목이다.경주 최부자댁의 가훈은 이런 군자의 도덕을 담고 있다. 재산이 불어나면 소작료를 줄여서라도 만석 이상은 하지 않고,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않고,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했다. 며느리가 시집오면 3년 동안은 무명옷을 입혔다. 높은 벼슬을 마다한 최 부자댁이 그러한데, 지도자를 자처하면서도 이런 공감(共感) 능력이 결핍된 사람들이 있다. 사방이 물난리고,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고개를 치켜들고, 그게 왜 내 책임이냐고 소리친다. 농민이 죽건 말건, 산사태가 나고, 집이 부서지건 말건, 남의 일이다. 가뭄이 들어 논밭을 헐값에 내놓을 때 곳간을 열어 사들이면 땅은 계속 불어난다. 그러나 어려운 이들 형편을 헤아리지 않고, 그들의 약점을 이용해 불린 부(富)는 하늘이 용서하지 않는다고 선현들은 생각했다. 공감이 없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고, 그런 사회 체제는 오래가지도 못한다.그래도 이번 물난리 중에 집을 잃은 이웃을 재워주고, 밥을 먹이고, 위험을 무릅쓰고 인명을 구하고, 내 일처럼 팔을 걷어붙이고 복구를 도운 사람이 많다. 그런 따뜻한 이웃들이 살아갈 희망을 준다. 국회 윤리특위 윤리심사자문위원회는 지난주 민주당을 탈당한 김남국 의원에 대해 제명을 권고했다. 김 의원은 상임위 중에만 200번이 넘게 코인 거래를 했다고 한다.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절, 민생을 논의하는 상임위에서 청년들의 눈물이 묻은 ‘흉년 땅’을 사고도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김 의원과 생각이 비슷한 의원들이 많아 제명안이 본회의를 통과할지 의문이다.홍준표 대구시장은 물난리 중에 골프 친 일로 사과했다. 처음에는 “주말에 테니스를 치면 되고 골프를 치면 안 되느냐”, “공직자들의 주말은 비상근무 외에는 자유”라며 트집 잡지 말라고 반발했다. 더구나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았다’라고 사과한 뒤에도 이를 ‘과하지욕’(跨下之辱)이라고 표현했다. 한신이 큰 뜻을 위해 불량배의 사타구니 사이를 긴 것을 말한다. 국민이 불량배인가. 국민에게 사과한 것이 그렇게 치욕스러웠나.21일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 씨가 항소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수백억 원의 잔고증명서를 여러 차례 위조한 혐의다. 최씨는 공범에게 속았다며 울부짖었다. 그러나 사회 지도층이라면 아무리 큰 이익이 돌아온다고 해도 그런 불법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속았다 하더라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최 씨가 그 일을 저지른 건 사위가 대통령이 되기 전이다. 그렇지만 그때도 사위가 검찰의 고위층이었지 않나.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는 12일 리투아니아에서 명품 가게 5곳을 들어가 논란이 됐다. 명품을 샀다, 아니다. 매장 직원의 호객 행위에 끌려 잠시 들렀다, 아니다.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문화·예술계에 전문성이 있는 대통령 부인이 부가가치가 높은 명품 시장을 둘러볼 수도 있다. 그러면 떳떳하게 공식 일정에 넣을 일이다.때를 가리고, 장소를 가려야 한다. 물난리가 나기 직전이지만 큰비가 예보된 때다. 더구나 김 여사는 국민의 주목을 받고, 민심에 큰 영향을 주는 대통령의 부인이다. 일거수일투족이 메시지다. 서민의 삶은 고달프기 짝이 없다. 나라 살림이 위태위태하다. 환난이 닥친 유대 왕처럼 자루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 쓰지는 않더라도, 최 부자 댁 며느리처럼 무명옷을 입지는 않더라도 근신할 때다. 명품매장은 임기 뒤에 얼마든지 갈 수 있지 않은가.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7-23

스스로 판단해야 좋은 정치 만든다

김진국 고문 정치에 대한 불만이 많다. 지난 3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2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정부 기관 중 가장 국민 신뢰도가 낮은 기관은 국회(24.1%)였다. 4명 중 3명은 국회를 못 믿는다는 말이다.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는 유권자가 30%였다. 국민의힘 지지가 33%, 더불어민주당 32%, 정의당 5%다. 보수층의 72%는 국민의힘을, 진보층의 59%는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중도층은 25%가 국민의힘을, 32%가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했고,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가 37%였다.그렇다고 이것만 믿고 제3당을 만들면, 성공할 확률이 매우 낮다. 무당층이 50%를 웃돌 때도 제3당 시도는 대부분 실패했다. 성공 신화로 거론하는 사례가 88년 4당 체제다. 소위 ‘1노 3김’ 체제다. 1987년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되고, 분열한 양 김 씨(김영삼·김대중)와 김종필 총재까지 4당 체제가 만들어졌다.통일민주당을 탈당해 평민당을 만들기 전 몇 달 동안 김대중 고문은 필자를 만날 때마다 “한국 국민의 80% 이상이 자신을 대변하는 정당이 없다고 한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서울대 연구소 조사를 인용해 중산층·서민·노동자·농민을 대변하는 정당이 없다며 분당(分黨) 논리를 다듬었다.그러나 그 체제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지역 할거였기 때문이다. 호남과 영남을 쪼개고, 영남을 다시 경남과 경북으로 나누었다. 그러자 ‘핫바지’론을 들먹이며 충청도당도 만들어졌다. 독재와 반독재라는 구분을 보수와 진보, 지역대결로 바꾼 셈이다. 그 정도 강력한 구심력이 없는 한 쪼개기가 쉽지 않다.4당 체제도 오래 가지 못했다. 3당 합당 탓만도 아니다. 대통령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정당의 최고목표는 집권이고, 대통령선거승리다. 내가 좋아하는 후보보다 ‘내가 싫어하는 후보를 떨어뜨리고 당선될 가능성이 있는 후보’를 찍는 양상이 벌어진다. 차악(次惡)의 선택이다. 지난 대통령선거를 봐도 비호감도가 호감도를 압도했다.양극화된 증오 정치에서는 불만이 넘칠 수밖에 없다. 한때 ‘안철수 현상’이 풍미하고, 국민의힘이 이준석을 선택했던 것도 기성 정치에 대한 불만이 탈출구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패했다. 기대와 차이가 있었다. 정치 혐오가 가득 찬 이 상황에는 유권자의 책임이 크다.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은 유권자의 수준과 비례한다는 말이 있다.유권자가 스스로 주인이 되어야 한다. 나와 지연·혈연·학연이 얽힌다고 무조건 지지하고, 감싸는 일을 그만해야 한다. 한 가지가 마음에 든다고 무조건 응원해서도 안 된다. 눈을 감고 따라가는 추종자가 아니라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우리 편도 시시비비를 가려줘야 건강해진다. 유권자를 무시하지 않는다.통신 기술이 발달하면서 목소리가 큰 사람들이 과대 대표된다. 사회통신망을 통해 자기 목소리를 증폭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조직적으로 움직일 때 영향력은 더 부풀려진다. ‘킹크랩’ 사건이 그런 경각심을 던져줬다. 최근 ‘개딸’에 휘둘리는 민주당도 그렇다. 국회의원조차 조직적인 온라인 테러에 꼼짝을 못 한다. 유권자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선동가에 끌려다니면 안 된다.4당 체제가 공고하던 시절, 호남에서는 김대중 총재가 막대기를 꽂아도 당선된다는 말이 있었다. 칠곡 출신인 이수인 영남대 교수를 전남 함평-영광에 공천해 당선시킨 일도 있다. 무조건 당선은 정치인을 타락시켰고, 지역 주민들은 당선시키면서도 불만이 커졌다. 무조건 지지의 당연한 결과다.1등만 목표로 하는 제왕적 대통령제, 차악을 선택하는 전략적 투표는 양극적 양당제로 가게 된다. 당선 가능성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 틈에 극단세력이 목소리를 높인다. ‘개딸’이나 조국 사태, 태극기 부대, 괴담…. 합리적 주장은 힘을 잃고, 극단적이고, 과장된 선동이 설친다. 결국 부패하고, 쇠망으로 가는 길이다. 유권자가 무조건 지지가 아니라, 스스로 주인이 되어 판단하고,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어야 정치도 건전해진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7-16

주민에게 피해를 떠넘길 순 없다

김진국 고문 나랏일이 공깃돌보다 가볍다. 1조 7천억 원이 넘는 사업이 하루아침에 이리저리 뒤집히고, 생겼다 사라진다.공자는 “군자가 신중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고, 배움에도 단단함이 없다”(君子不重 則不威 學則不固)라고 했다. 이순신 장군도 옥포해전에 앞서 부하들에게 “망동하지 말고 태산처럼 침착하고, 무겁게 행동하라”(勿令妄動 靜重如山)라고 당부했다. 나랏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을 놓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 민주당은 특위까지 만들어 조사에 나섰다. 그러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노선 검토뿐만 아니라 도로 개설 사업 추진 자체를 전면 중단하고, 이 정부에서 추진됐던 모든 사안을 백지화하겠다”라고 발표했다. 무슨 아이들 장난도 아니고, 일을 이런 식으로 하는지 기가 찬다.2017년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이후 추진돼 오던 사업이 그냥 사라졌다. 지역 주민들은 얼마나 황당할까. 그들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책임을 다 떠안아야 하나. 결국은 정치 싸움 탓이다. 야당은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땅 때문에 고속도로 노선을 바꿨다며 정치 공세에 나섰고, 원 장관은 “그러면 다 하지 말자”라고 어깃장을 놓았다.사실 다 있을 수 있는 일들이다. 고속도로 노선이 갑자기 바뀌었는데, 바뀐 종점 부근에 대통령 부인 일가의 땅이 축구장 5개 크기가 될 정도로 많다고 한다. 그러면 당연히 의문을 품을 만하다. 야당 정치인이라면 문제를 제기하고, 조사해야 마땅하다. 사실 옥신각신하는 여야 공방을 보면서 필자도 그 인과관계를 깔끔하게 판단하기 어렵다. 정치적으로 호불호에 따라 어느 쪽을 편들 수는 있겠지만, 의문이 말끔하게 해소된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물론 정부나 집권당이 걱정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취임 이후 야당은 한 번도 협조한 적이 없다. 사사건건 발목을 잡았다. 특히 대통령 부인은 야당이 공격을 집중하는 표적이다. 한번 문제를 제기하면 합리적인 해명조차 받아들이지 않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일부 네티즌은 무속 문제 등을 제기하며 사진을 조작하는 등 가짜뉴스도 만들었다. 심지어 13년이 지난 천안함 피격사건조차 아직 의혹을 제기하는 세력이 있으니 말해 무엇하겠나. 해명을 해봐야 내년 총선까지는 의혹을 끌고 갈 것이라는 걱정이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그렇지만 국정을 계속 이런 식으로 끌고 가야 하는지 걱정이다. 야당은 온갖 의심과 의혹을 부풀리고는 합리적 조사와 정리, 대안 만들기는 회피하고, 정부·여당은 감정적으로 대응하며 수조 원짜리 국가사업을 기분에 따라 마구 뒤집고…. 다 할 말은 많겠지만, 정치인들의 진흙탕 싸움에 죽어나는 건 국민이다. 차라리 일론 머스크와 마크 저커버그처럼 이종격투기라도 하는 게 국민에게 피해는 덜 주지 않겠나.원 장관이 백지화하겠다는 건 사태를 수습하는 속임수에 가깝다. 그 정도의 충격적 요법이 아니면 야당의 공세를 막아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국 욕하면서 같은 길을 간다. 국민의 공포, 두려움, 혐오감을 창과 방패 삼아 정치적 이익, 총선 의석을 지키려는 것이다.문제는 절차다. 바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양서면으로 그어졌던 노선을 갑자기 강상면으로 바꾸려면 합당한 과정을 거쳤어야 옳다. 그렇게 바뀐 이유와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 먼저다. 나들목이 아니라도 서울 가는 시간이 단축되는 건 사실이다. 억지 해명은 오히려 의혹을 부풀린다. 또 해명대로 아직 결정되지 않은 여러 대안 가운데 하나라면, 왜 다른 대안들을 추가로 검토해야 하는지 설명해야 한다. 사업 백지화로 의혹을 해소할 수는 없다.야당도 무조건 과거 노선으로 돌아가자고 할 건 아니다. 원래 노선과 대안 노선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나은지는 따져봐야 한다. 전략환경영향 평가 결과를 보면 대안 노선이 우수한 이유를 많이 설명해놓았다. 김 여사 가족 땅이라고 무조건 피해 갈 수는 없다. 공청회를 열든 여론 수렴을 거쳐 노선을 정리하고, 사업은 다시 진행하도록 정치권이 합의하는 게 옳다. 애먼 주민들에게 피해를 감당하라고 할 수는 없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7-09

한국 정치에서 대화가 사라졌다

김진국 고문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라고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특히 그 말을 자주 했다. 신호등처럼 빨간불은 정지, 파란불은 통행이라는 식으로 분명하게 규정하는 게 쉽다. 특히나 착한 사람, ‘범생’일수록 가타부타를 분명히 해주는 게 선택을 편하게 한다.법은 분명하게 규정돼 있다. 그렇지만 들여다보면 사안마다 사연이 다르고, 복잡하다. 같은 법으로 같은 죄를 심판하는 재판 결과가 모두 다르다. 좁은 골목길에 마주 달리는 자동차가 서로 자기주장만 하면 모두 손해를 본다. 이해가 부딪칠 때 어떻게든 꼬인 매듭을 풀어낼 사람이 필요하다. 그게 정치다.그래서 정치권 농담 가운데 하나로 ‘여자를 남자로 만드는 것 빼고는 다 할 수 있는 게 정치’라고 한다. 국제정치에서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라고 한다. 어물쩍 적응력이 뛰어난 사람을 ‘정치적’이라고 하기도 한다. 대개는 부정적인 의미다. 그렇지만, 정치인은 욕을 먹더라도 국민을 위해서라면 능소능대(能小能大)해야 한다.공자는 군자불기(君子不器·논어 위정편)라고 말했다. 특정 재능에 얽매인 한정된 용도를 벗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틀에 얽매이지 말고, 실용적이고, 창의적으로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요즘 우리 정치는 어떤가. 거꾸로 행진하고 있다. 뻔히 아는 것도 청개구리 심보로 정적(政敵)과는 반대로 간다. 정치인이 청개구리처럼 움직이니 진영에 갇힌 지지 세력은 눈을 감고 뒤따라 돌진한다. 과거 당쟁이 심하던 시절을 빼닮았다. 한쪽이 생선을 홀수로 올리면, 다른 쪽은 짝수로 올리고, 한쪽이 생선 머리를 오른쪽으로 놓으면 다른 쪽은 왼쪽으로 놓았다. 정치인이야 오기 싸움인지 몰라도 그걸 음양으로 풀어 해설까지 붙여놓으니, 그 진영에 있는 백성은 금과옥조로 여긴다. 그걸 지키지 못하면 조상 모독이요, 대죄라고 여긴다.민주주의의 핵심은 대화와 타협이다. 그중에서도 대화다. 타협이건 대결이건, 대화를 해야 정치가 시작된다. 그런데 우리 정치에서 대화가 사라진 지 오래다. 일방적으로 내지르는 말만있지, 대화는 없다. 대화가 아닌 일방적인 말은 독이다. 서로 상처를 내고, 죽이는 무기다. 타협과 합의는커녕 적의만 쌓고, 골만 깊게 한다.정치가 사라진 책임을 어느 한쪽에만 묻기는 어렵다. 굳이 따지자면 힘이 있는 쪽, 권력을 쥔 쪽 책임이 더 무거울 수밖에 없다. 국민을 통합하고, 국정을 원활하게 풀어갈 책임을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았다.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당선된 지 310일째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는 420일째다. 대통령 선거를 한 지도 벌써 478일이 지났다. 그런데 행사장에서 마주친 것을 제외하면 두 사람이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두 사람만 만나는 것은 물론 여러 사람이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도 없었다.검사나 판사는 사건 당사자를 따로 만나는 게 금기다. 만나는 것만으로도 청탁 의심을 받게 된다. 그러나 정치는 다르다. 정치는 재판처럼 선과 악, 이기고 지는 것을 반드시 가릴 필요가 없다. 상생, 윈-윈이 최선이다. 더군다나 정치는 정치고, 재판은 재판이다. 외국 정부와 국제소송이 걸려 있다고 정상회담이나 외교부 장관 회담을 피하지 않는다.대통령과 야당 대표만 안 만나는 게 아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대표도 말로만 서로 만나자고 떠든다. 그래 놓고는 이 구실, 저 핑계로 만나지 않고 있다. 우선 만나야 조건이고, 주제고, 이야기를 풀어가지, 만나기도 전에 무슨 핑계와 비난만 그리 많은가. 그러고 무슨 대화를 하나.야당도 비난할 자격이 없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귀국하자 이재명 대표와 만나는 문제로 신경전이다. 같은 당에서 전·현 대표 사이에 먼저 만나자고 나서기가 그렇게 어렵나. 대통령 후보 경선한 지는 630일이 지났다. 골은 더 깊어졌다. 한번 경쟁하면 영원한 원수가 되는 건가.정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되는 게 없다. 무능한 탓이다. 민주주의는 착한제도다. 그렇지만 운영은 영악해야 한다. 정치인이 때를 묻히더라도 착한 결과를 만들어야 국민이 편안하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7-02

일 오염수 방류하면 죽도시장 문 닫나

김진국 고문 30년쯤 지난 얘기다. 한·일 대학생이 일본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주제가 독도였다. 첫날 토론에서 한국 대학생들이 압도했다. 한국 학생들의 기세에 일본 학생들이 눌렸다. 둘째 날은 한국 학생들이 고전했다. 일본 학생들이 각종 고서와 샌프란시스코 조약 등을 꺼내놓고 따지는데, 한국 학생들은 모르는 자료가 많았다. 사흘째는 한국 학생들이 더 밀렸다.당시 같이 다녀온 지도교수의 말이다.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근거가 훨씬 풍부하다. 그런데도 그 당연한 사실을 입증할 논리적 근거를 굳이 찾고, 공부하지 않았다. 그것을 부정하는 주장에 분노가 넘쳐 오히려 논리적 설득에는 실패했다. 그 교수는 “공부를 너무 안 했다”라고 반성했다. 같은 생각을 가진 학생들끼리 ‘으샤으샤’만 했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상대방 주장에는 귀를 닫았다. 모르니 반박이 어려웠다.독도 문제를 대하는 요즘 젊은이의 자세는 매우 다르다. 훨씬 구체적으로 알고, 실천적 활동을 한다. 정부도 동북아역사재단(2006년 설립)을 세우는 등 체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때 그 토론회를 소환한 건 최근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같은 길을 가기 때문이다. 너무 남의 얘기를 안 듣는다.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독도는 당연히 한국 땅이지 무슨 소리야”라고 아무리 외쳐봐야 제3국의 사람을 설득할 수 없다. 일본 사람이야 말할 것도 없다. 열정만으로 해결이 안 된다. 속이 시원하게 고함질러봐야 자기만족뿐이다. 수치가 필요하고, 논리가 필요한 곳에서 중독성 강한 노래나 부르며 굿판을 벌여봤자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이런 잘못은 국정을 이끌어가는 정치권이 더하다. 선동으로 지지세를 모으면 국내 정치에 유리하고, 힘으로 자기 생각을 밀어붙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국제 사회에서는 어림도 없다. 국민만 바보로 만든다.2008년 이명박 정부 초기 광화문이 촛불시위로 뒤덮였다. 코믹영화 ‘파 송송 계란 탁’을 패러디한 ‘뇌 송송 구멍 탁’이란 기가 막힌 구호로 무장한 광우병 공포가 덮쳤다. 인기 연예인들이 “차라리 입에 청산가리를 털어 넣겠다”라며 아이들을 선동했다. 고기 좋아하던 아이들이 미국산은 물론 국산 쇠고기도 못 믿겠다며 먹지 않겠다고 울었다.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소동이 벌어졌다.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로 위협했다. 방어용 미사일 배치를 무작정 거부하기 어려웠다. 지역주민의 불안감을 사드를 막을 방패로 삼았다. 정치인들이 가발을 쓰고 춤을 추며 ‘전자파에 튀겨진다’라고 선동했다. “…외로운 밤이면 밤마다 사드의 전자파는 싫어, 강력한 전자파 밑에서 내 몸이 튀겨질 것 같아.…” 그러나 환경영향평가 결과 사드 전자파는 측정 최댓값이 인체 보호 기준의 0.2%보다 낮았다. 성주 참외는 전자파에 튀겨지지 않았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로 시끄럽다. 원전 오염수를 방류하면 우리 수산물도 못 먹을 듯이 말한다. 그 탓에 소금을 사재기한다, 김·멸치·새우·미역·다시마 같은 건어물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린다.후쿠시마 오염수가 우리 바다로 오려면 태평양을 완전히 돌아와야 한다고 국립해양조사원은 말한다. 미국과 캐나다, 필리핀, 대만 등을 거쳐 온다는 것이다. 웨이드 앨리슨 영국 옥스퍼드대 물리학 명예교수는 오염수의 방사선량이 X선에 노출됐을 때보다 적다고 말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로부터 ‘돌팔이’라는 말을 들은 그는 “과학을 좀 배우라”고 말했다.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조사를 거쳐 일본이 다음 달에는 방류할 가능성이 크다. 방류를 막으려면 과학적 근거로 국제 사회를 설득해야 한다. 과학적 근거는커녕, ‘과학과 숫자는 못 믿겠다’라는 답답한 소리만 한다. 논리가 없다. 그래서는 국제 사회를 설득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방류가 시간문제다. 그때 우리 수산물은 어떻게 하나. ‘뇌 송송 구멍 탁’처럼 수산물도 공포의 대상이 되나. 죽도시장 문을 닫아야 하나. 방류를 막을 과학적 근거를 찾기보다 여야 모두 국내 정치에만 열심이다. 그 피해는 꼬박 어민들의 몫이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6-25

대통령이 나서도록 외교부는 무얼 했나

김진국 고문 겸손이 늘 좋은 것일까. 성경은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고 가르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아랫사람이 억지로 밀려 윗자리에 앉는다면 불편하지 않을까. 유교에서는 장유유서(長幼有序)라고 한다. 아무리 위아래가 없어진 세상이지만 격(格)을 무너뜨릴 때 생기는 문제도 적지 않다.각국 정상이 사진을 찍을 때도 서로 가운데 서려 한다. 이런 다툼을 피하려고 의전 순서를 정한다. 정부 내에서도 의전 서열이 있다. 대통령-국회의장-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국무총리 순이다. 나라 간 이런 다툼이 더 치열한 때가 있다. 자칫 국민 정서를 자극하고, 국내 정치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대사를 교환할 때도 신경전을 벌인다.나라의 비중과 대사의 레벨이 접촉 범위를 좌우한다. 도널드 그레그 주한 미국대사는 회고록, ‘역사의 파편들’에서 노태우 당시 대통령과 골프와 테니스를 자주 쳤다고 밝혔다. 그는 “나보다 골프 실력이 훨씬 뛰어났던 노 전 대통령이 실수할 때면 난 웃으면서 놀렸고, 노 전 대통령도 내가 실수하면 웃으면서 놀렸다”라면서 “진짜 친구처럼 잘 지냈다”라고 회상했다.당시 한 외교관은 이런 관계에 대해 필자에게 불만을 표시했었다. 외교부가 대사관과 여러 통로로 협상하고 있는데, 대사가 직접 대통령을 통해 해결해 버리니 외교부가 협상력을 잃어버리고, 대사관이 무시한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테니스를 좋아했다. 자주 만나면 공(公)과 사(私)를 구별하는 게 쉽지 않다.주한미국대사는 오래전부터 예외적인 역할을 해왔다. 미군정을 거친 탓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수시로 주한 미국대사를 경무대로 불러들였다. 4·19혁명 때 월터 매카나기 대사는 경무대를 찾아가 이 전 대통령의 하야를 설득했다. 제임스 릴리 대사는 6월 항쟁 당시 전두환 대통령에게 레이건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고, 군 동원을 막았다.대통령이 나서 어려운 문제를 풀 때가 있다. 그렇지만, 자칫 잘못하면 우리 협상 카드는 다 보여주고, 무를 수도 없는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질 수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5년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자리에서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라고 말해 한·일 관계가 굉장히 어려워졌다. 외환위기의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2년 8월 독도를 직접 방문해 일본이 독도 문제를 노골적으로 제기하는 계기가 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 때의 위안부 문제 합의를 번복해서 한·일 관계를 최악으로 몰아갔다. 얻은 게 없다. 국익보다는 정치적 이익을 노린 경우가 많았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면 돌이킬 수 없다.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8일 중국 대사관저를 방문했다. 그런데 싱하이밍(邢海明) 대사가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라며 윤석열 정부를 대놓고 비판해 파문이 일고 있다. 대사는 자기 정부 입장을 상대국에 설득해야 하는 자리다. 굳이 갑·을로 따지면 을의 위치다. 그런 대사가 주재국 정부를 대놓고 비판하는 일은 드물다. 이 대표가 찾아가 만난 것도 격에 맞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모두 양보해도 싱 대사의 발언에는 바로 반박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선 것도 의외다. 윤 대통령은 싱 대사를 위안스카이에게 비유하면서 “국민이 불쾌해한다”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중국 정부의‘적절한 조치’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싱 대사의 발언은 도저히 묵과할 수없다. 이 대표도 사과해야 옳다.그렇지만 싱 대사는 외교부의 국장과 과장 사이에 있는 심의관급이다. 아무리 대사가 정부 대표라고는 하나 제1정당 대표가 찾아가고, 국회의원이 ‘말씀’을 받아적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했나. 중국 정부가 싱 대사를 교체해도, 대통령 말을 무시해도, 모양이 안 서게 됐다. 이런 상황을 막아줄 참모는 없었나. 윤 대통령이 나설 때까지 외교부는 또 무얼 하고 있었나. 참 답답한 정부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6-18

적의 적은 무조건 동지가 아니다

김진국 고문 자유가 서로 충돌할 때가 있다. 한 사람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의 자유를 수정헌법 제1조에 천명해놓은 미국도 이런 경우에는 일정한 범위에서 자유를 제한한다.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clear and present danger)’이 있는 때다.전형적인 예로 ‘극장의 공포’를 이야기한다. 깜깜한 극장 안에서 누군가 ‘불이야’ 하고 외친다면 사람들이 혼란에 빠지고, 아수라장이 된다. 심각한 재난이 될 수 있다. 그런데도 거짓으로 ‘불이야’를 외친 행동을 장난으로 넘길 수 있을까. 언론의 자유가 기본권이란 이유로 용납해야 할까. 1차대전 당시 전쟁과 징병을 반대하는 문서 배포가 문제가 됐다. 언론과 출판이 국가 기밀을 누설하거나 타인의 명예 또는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려고 하면 이를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 미국 대법원의 판례다.복잡한 법리 논쟁은 전문가에게 맡겨놓자. 상식적으로 말하면 공동체와 이웃을 위험하게 만드는 행동은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살고 있다. 이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동의하는 조건으로 우리는 보호받고 있다. 우리 손으로 민주적 절차에 따라 구성한 법질서이고, 정부다.기존의 질서를 무조건 고수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잘못된 부분은 당연히 문제를 제기하고, 고쳐야 한다. 일을 잘하지 못하는 정부는 교체해야 한다. 그렇지만 불법적인 방법으로 우리의 생명과 재산, 공동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행동은 용납할 수 없다. 더구나 우리 외부에 있는 세력, 우리 공동체를 집어삼키려는 집단을 위해 활동하는 것은 이적행위다. 낙랑공주가 같은 민족이라도 자명고를 찢도록 묵인할 수 없다.민주노총과 소속 산별노조 간부 4명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지난달 구속기소됐다.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나 그의 지령에 따라 노조 활동을 빙자해 간첩으로 활약한 혐의다. 공소장을 보면 어마어마하다. 주요 국가기관의 송전선망을 차단할 수 있는 자료, 경기도 화성·평택 2함대 사령부와 평택 화력발전소·LNG 저장탱크 배치도 등 비밀 자료를 수집하라는 지령도 받았다. 민주노총 내부 통신망 ID 및 비밀번호 등도 북한에 보고했다고 한다.이런 간첩 사건은 이전에도 보아왔다. 그러나 이번에 특히 걱정인 것은 국내 정치와 시민단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민주노총을 북한이 의도대로 움직이려 했다는 의혹이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민주노총의 핵심 간부인 이들은 북한 지령에 따라 반정부 투쟁, 반미·반일 감정 등을 조장하며 민주노총을 정치투쟁으로 치닫게 했다고 적시했다.더구나 이들이 북한에 보냈다는 충성 맹세문은 기가 막힌다. 북한 선전 자료에서나 보던 유치한 표현이다.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 받들어 대를 이어 충성”하겠다니. 진실은 재판을 통해 가려지겠지만, 어떻게 이런 사람이 민주노총의 핵심 간부가 될 수 있는지 불안하다.그런데도 민주노총은 아무런 공식 입장 발표가 없다. ‘개인적 일탈’로 정리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가 있었지만, 그것도 개인 의견인지, 지도부의 의견인지, 아리송하다. 법원의 영장을 받아 압수 수색할 때 완강하게 저항한 것을 봐도, 이들을 민주노총과 떼어서 생각하기 쉽지 않다. 그때 민주노총은 자신들에 대한 탄압, 공안정국 조성이라고 주장했다.간첩 몇 사람 적발한 것은 언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민주노총이란 거대한 조직에 북한의 영향력이 미칠 수 있다는 부분이다. 민주노총과 관계없는 개인적 일탈이라도, 간첩 혐의자가 이 조직을 이용하고자 침투해 핵심 간부로 활동했다면, 그것만으로도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일부 정치인’의 일탈에 대해 자신은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돌아보면 알 일이다.민주노총이 스스로 이들의 혐의를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의 행위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우리 사회가 진영으로 갈라지면서 ‘적의 적은 무조건 동지’라는 잘못된 생각이 퍼져 있다. 그렇더라도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는 세력과는 함께 하지 않는다는 선은 지켜야 한다. 그 정도의 자정 능력은 보여야 국민이 안심할 수 있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6-11

자식을 범죄자로 만들지 마라

김진국 고문 “느그 아부지 머 하시노?”배우 김광규는 이 대사로 떴다. 부산 조폭들을 그린 영화 ‘친구’에서 고교 교사로 나와 이 대사를 날리며 학생들을 구타했다. 옛날에는 학교에서 학생 신상을 탈탈 털었다. 아버지 직업은 물론 말하자면 숟가락 개수까지 조사했다.유오성이 (우리 아버지는) “건달”이라고 대답한 뒤, 선생님의 매질에 발끈해 뛰쳐나가자 김 씨가 당황하는 장면이 나온다. 교복을 입은 학생은 다 똑같았다. 학부모는 달랐다. 직업이 다르고, 재산이 달랐다. 부모를 살피면 학생은 뒷전이 된다.가계도에서 그 사람의 많은 부분을 엿볼 수 있는 건 사실이다. ‘본데없다’라는 말이 큰 욕인 것도 그런 맥락이다. 책보다는 경험으로 배우던 시절 가족과 친구를 보고 그 사람을 판단했다. 그러나 편견이 더 많다. 한 배에 난 동기 간에도 다른 구석이 많다. 부모 직업이라는 안경으로 학생을 보면, 공정하게 평가하기 어렵다.소설 ‘빨치산의 딸’을 쓴 정지아 씨는 같은 반 친구로부터 “느그 아부지가 빨갱이람서?”라는 말을 들은 뒤로 ‘천형(天刑)’처럼 외톨이로 살았다고 한다. 자신은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부모가 ‘빨갱이’ 노릇한 것을 본 적도 없다. 그런데도 나면서부터 낙인이 찍혔다. 혈통을 무시할 건 아니지만, 개인의 노력이 더 중요하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절이다.고려와 조선에는 음서(蔭敍)제도가 있었다. 5품 이상 고위 관리 자제는 시험을 보지 않고도 하급 관직을 받을 수 있었다.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고관이면 ‘빽’으로 관직을 얻었다는 말이다. ‘뼈대’가 있다느니, ‘씨’가 훌륭하다느니 하는 말을 한다. 그렇다면 시험을 쳐서 합격하지, 왜 몰래 뒷구멍으로 들어가나.검찰총장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건 ‘공정’이라는 시대정신을 업은 덕분이다. 야당 내에도 정권 교체의 1등 공신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많다. 조 전 장관이 한 일은 오히려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무슨 문제냐고 핏대를 올리는 통에 그 부담을 몽땅 민주당이 떠안았다.조 전 장관 말마따나 모두 개천의 용이 될 필요는 없다.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가 행복한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 그렇지만 내 자식은 부모 힘으로 용을 만들려고 하면서, ‘너희들은 가붕개로 살아라’라고 하면, 그걸 받아들일 사람이 어디 있겠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결정적 방아쇠도 정유라 씨의 ‘엄마 찬스’다. 정 씨가 페이스북에 “능력이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라고 올리면서 민심이 폭발했다.자녀 문제는 영원한 약점이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 필부야 그 본능을 피하기 어렵다. 그런데 공직을 맡은 사람도 자식 문제에는 눈이 멀어버리는 모양이다. 인사청문회에서 두들겨 맞는 문제 대부분이 자녀 욕심이다. 정권이 뒤집히는 일을 두 번씩이나 겪고도 정신을 못 차렸다. 2022년 교육부가 조사한 결과 대학 교원과 미성년 자녀가 공동 저자로 등재된 논문이 1천33편이나 된다. 새 정부가 발탁한 사람도 줄줄이 ‘아빠 찬스’ 의혹으로 물러났다. 정호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자녀 의대 편입, 김인철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자녀 장학금 수령에 발목이 잡혔다. 부모야 자기가 지은 죄니까 책임을 져야 하지만, 자식은 왜 죄인을 만드나.선관위 고위직들이 자녀 채용과 승진에 ‘아빠 찬스’를 썼다는 의심을 받았다. 지난해 김세환 전 사무총장에 이어 박찬진 사무총장과 송봉섭 사무차장이 지난달 말 자녀 채용 부정 의혹으로 퇴진했다. 채용 6개월, 1년 만에 승진도 했다. 사무와 감사를 총괄하는 사람들이 모두 연루됐다. 선관위 자체 조사에서 드러난 의심 사례만 10건이다. 아빠 찬스, 세습 채용이란 말까지 나온다. 외부조사를 하면 얼마나 더 많을지 알 수 없다. 감시받지 않은 조직인 탓이다.어디 선관위뿐이겠나. ‘아빠 찬스’는 이념과 여야, 귀천을 가리지 않는다. 자동차 노조는 고용세습 단체협약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일부가 특혜를 받으면 나머지 사람들은 고용 기회를 박탈당한다.사회 전반을 뒤져 불공정 채용과 승진은 뿌리 뽑아야 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6-04

나에게 정치적 편견이 없는가

김진국 고문 지난주 중앙일보가 흥미로운 여론조사를 보도했다. 정치 성향에 따른 확증편향이 어느 정도인지를 여론조사기관 STI가 조사했다. 조사 결과를 보면 민주당 지지자가 국민의힘 지지자보다 확증편향이 심하다. 확증편향을 가진 사람은 스스로 편향성이 없다고 생각한다.조사는 먼저 진보·보수 성향 응답자가 좋아할 만한 진짜 뉴스와 가짜뉴스를 각각 하나씩 주고,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5점 척도로 판별하도록 했다. 조사 결과 뉴스의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 성향에 유리한 뉴스를 더 믿고, 불리한 뉴스를 덜 믿는 경향을 보였다. 진보 성향 응답자는 진짜·가짜와 상관없이 진보에 유리한 설문을 ‘사실’이라고 보았고, 보수 성향 응답자는 보수에 유리한 설문을 ‘사실’이라고 답했다.이 가운데 민주당 지지자 중 진보 성향 가짜뉴스는 ‘사실’, 보수 성향 진짜뉴스는 ‘거짓’이라고 응답한 사람을 ‘확증 편향층’으로 분류했다. 거꾸로 국민의힘 지지자는 보수 성향 가짜뉴스를 ‘사실’, 진보 성향 진짜 뉴스를 ‘거짓’이라고 응답한 사람도 포함했다. 그러자 민주당 지지층 36.5%, 국민의힘 지지층 18%가 확증편향층이었다.우리 사회의 진영화가 심각하다. 이 조사에서도 드러났지만 보수 성향인 사람과 진보 성향인 사람은 상대방에게 감정 온도가 매우 낮다. 쉽게 말해 차갑다, 싫어한다는 말이다. 대화는 물론 밥도 같이 먹지 않고, 심지어 결혼 같은 대사에도 영향을 받는다. 사람마다 정치적 성향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확증편향 탓에 서로 다른 사실들로 구성된 역사와 공간에 산다. 대화도 타협도 어렵고, 그저 다투고, 비난하는 일밖에 하지 못한다.과거 권위주의 정부에서 ‘자유’와 ‘민주주의’가 제한됐다. 그 가치를 되찾기 위해 민주화 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자유와 민주주의를 경험하게 된 지금 두 진영은 오히려 더 극단적으로 대치한다. 민주화는 이루었지만 정작 찾으려 한 민주주의의 근본 가치를 잃어버렸다. 상대를 인정하고, 대화하고, 타협하는 관용성이다.필자도 평생 기자로 글을 쓰면서 항상 스스로 질문을 던진다. 내가 취재한 내용이 사실인가. 나의 판단이 옳은가. 내가 속하지 않은 반대쪽에 서 있는 사람의 생각은 어떻게 생각하나. 나의 존재 자체가 가져다주는 편견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틀릴 수 있다고 전제하지 않으면 토론도, 양보도 없다. 새로운 발견도, 발전도 없다. 그런데 의외로 오만한 사람이 많다. 반대 진영에 유리한 뉴스는 아예 보지 않는다. 그러고도 다 안다고 생각한다.이 조사를 보면 확증편향층이 오히려 정치·사회 현안에 관심이 많다고 응답했다. ‘매우 관심 있다’라고 응답한 사람이 37%다. 비확증편향층(24.9%)보다 많다. 또 이들이 정치·사회 현안을 접하는 주요 매체로 ‘유튜브’(21.8%)를 꼽았다. 비확증편향층(8.1%)보다 월등히 많다. 유튜브는 특정 진영의 입맛에 맞는 뉴스와 해설을 제공한다. 편향적인 시각을 더욱 강화한다.그런데도 확증편향층 응답자는 자신이 확증편향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확증편향층(3.06)은 비확증편향층(3.22)보다 5점 척도의 가운데인 3에 더 가깝게 스스로를 평가했다. 확증편향이 심할수록 자신이 얼마나 편향적인지모른다는 말이다. 그러니 고치지 않는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하자. 나의 존재, 지연·혈연·학연 등이 편향성을 가져온다고 생각하고, 반대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자. 그래야 우리 사회가 바로 선다.참고로 독자들도 STI가 여론조사에서 사용한 설문으로 자신의 편향성을 한 번 시험해보시라. 이 뉴스가 진짜인가, 가짜인가.① 2022년 대한민국 민주주의 지수가 작년에 비해 여덟 단계 하락했다. (진보 성향 진짜 뉴스)② 윤석열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을 하지 않은 유일한 대통령이다. (진보성향 가짜뉴스)③ 더불어민주당이 이사 추천에 응하지 않아, 북한 인권재단은 7년째 출범을 못하고 있다. (보수 성향 진짜 뉴스)④ 문재인 정부는 비밀리에 6억 달러 규모의 대북 송금을 하였다. (보수 성향 가짜뉴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5-21

국민이 그렇게 우스워 보이나

김진국 고문 참 실망이다. 민주당 김남국 의원의 가상화폐 투자가 논란이다. 그동안 김 의원의 언행과 보도 내용은 너무 딴판이다. 내 돈으로 내가 투자하는 것을 비난할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김의원은 그게 아니다. 김 의원은 “엄청난 손해를 봤다”라고 주장한다. 의혹을 제기한 언론에 대해 “강력한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한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아직도 모르는 것 같다.연일 돈 문제가 터지고 있다. 수천억 원을 만든 ‘대장동 게이트’부터 입에 오르내렸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연루돼, 주변 사람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여러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송영길 전 대표는 전당대회 때 돈 봉투를 뿌린 혐의로 수사받고 있다. 이제 대표적 소장파인 김의원의 코인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민나 도로보데스”(みんな泥棒です; 모두 도둑놈이다)란 말이 생각난다.‘공직자가 돈을 밝히면 안 된다’라고 하면 ‘어느 시대 사람이냐?’고 비웃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공직자에게는 금도(襟度)가 있어야 한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아 행사한다. 그걸 자기 치부(致富)에 이용하면 나라 꼴이 어떻게 되겠나. 김 의원은 그런 의심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핵심 의문에는 답하지 않은 채 보도한 언론 탓만 한다. 민주당 소속 청년 정치인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라고 요구했다. 민주당에서도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이와 별도로 윤리감찰도 시작했다.김 의원은 상임위에 참석하면서 코인 투자를 한 것만으로도 의원 자격이 없다. 그는 지난해 5월 9일과 10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 청문회를 하면서 9차례나 코인 거래를 했다. 청문회 전과 점심시간까지 합치면 31번이다. 그러니 ‘이모(李某) 교수’를 ‘이모(姨母) 교수’라고 착각했을 것이다. 핼러윈 참사를 논의한 상임위에서도 코인을 거래했다. 그래 놓고 변명이라는 게 “화장실·휴게실에서 한 것”이라고 한다.이해 충돌 가능성도 있다. 김 의원은 자신이 보유한 코인에 과세를 1년 유예하는 법안을 공동 발의해 통과시켰다. 게임머니를 가상화폐로 규정하는 법안을 공동발의, 처리했고, 민주당의 대선공약으로 채택하는데도 역할을 한 의혹도 있다.‘도둑맞은 가난’(박완서)이란 소설이 있다. 가난한 경험까지 탐내는 부자의 염치없는 허영을 신랄하게 꼬집는 내용이다. 김 의원은 ‘모텔 한 방에서 보좌진과 셋이 잤다.’, ‘매일 라면만 먹었다.’, ‘3만7천원 주고 산 운동화에 구멍이 났다’라며 가난을 호소해 지난해 의원 중 후원금을 가장 많이 모았다. 그를 믿고 응원한 사람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가난 코스프레’라는 말이 안 나올 수 없다.더구나 코인에는 청년세대의 한이 맺혀 있다. 부동산값이 폭등해 손댈 엄두를 못 내고, 코인에 투자해 그나마 모은 돈을 털린 청년이 많다. 그런데 돈과 정보와 인맥으로 무장한 국회의원이 수십억 원을 쓸어갔다니, 가장 청년을 위하는 척하면서 그들의 눈물을 훔쳐 간 꼴이다. 김 의원은 무슨 돈으로 투자했는지, 어떻게 사고팔았는지 감추고 있다. 주식을 판 돈이라고 해명했지만, 해명할 때마다 뒤집힌다. 양파처럼 새 의혹이 불거진다. 김 의원은 “하늘에서 떨어진 돈은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 조사팀도 종잣돈이 불법 로비 받은 게 아닌지 의심한다. 아무리 ‘공정’을 떠들어도 정책을 만드는 사람이 특권을 누리려 하면 그 정책은 실패한다. 공직을 맡은 사람이 자신에게 더욱 엄격해야 하는 이유다.공정이 시대적 화두다. 지난 대선의 최대 공신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라고도 한다. 그런데도 다시 내년 총선에서 조 전 장관이나 그의 딸 출마설이 나온다. 비위 사건이 터지면 잠시 무마하고, 곧바로 뒤집는 행태가 반복된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영웅으로 묘사한 영화가 나온다. 위장 탈당했던 민형배 의원을 복당시키고, 위안부 후원금을 유용한 윤미향 의원, 부동산투기 의혹으로 제명된 김홍걸 의원은 민주당 소속처럼 움직인다. 국민이 그렇게 우습게 보이나. 민주당이 우물쭈물하면 개인 비리가 아니라 당의 비리가 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5-14

만나는데 청탁을 가리지 마라

김진국 고문 10일이면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꼭 1년이다. 그 시간에 비해 참 많은 일이 일어났다. 무엇이라고 꼭 짚지 않아도 그 이전과 그 이후가 매우 다른 세상이라는 느낌을 준다. 지난 1년에 대한 평가가 참 다르다. 그렇지만 여론 추이의 변동 폭은 그리 크지 않다. 진영에 따라 이미 판단을 내려놓고, 고수하기 때문이다.한국갤럽의 윤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 조사를 보면 ‘잘하고 있다’가 취임 두 달 만에 30%로 내려온 이후 계속 그 주변에 머물러 있다. ‘잘못하고 있다’는 60% 전후에서 오르내린다. 정치적 사건들은 계속 벌어졌지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뚜렷하게 평가가 갈라지는 부분은 외교·안보다. 조사 시점인 최근 한·미 정상회담과 한·일정상회담이 논쟁거리가 된 탓도 있다. 중요한 국가 과제인 외교·안보 문제에서 여야의 의견이 똑같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외교·안보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 국내 정치와 맞물려 증폭되면 친미(親美), 혹은 친중(親中), 친북(親北), 혹은 반북(反北)으로 정책 방향이 유연성을 잃고, 어리석어진다.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또 방어하기 위해 논리를 단순화하면서 제풀에 넘어진다.지난 정부의 정책을 조정할 필요는 있었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거의 마무리하고, 실전에 배치했다. 미·중 갈등에 따른 신냉전이 큰 흐름을 형성하는 등 국제 환경이 크게 변했다. 싫든 좋든, 우리는 그 영향을 가장 민감하게 받는 나라다. 다만 그 과정에 여야 협의, 대국민 설득 노력이 너무 부족했다. 그것이 필요 이상으로 국내 갈등을 증폭했다. 이념 지향적인 정책들에 대한 조정도 불가피했다. 급격한 탈원전, 징벌적인 부동산 규제 정책 등이다.성역으로 여겨졌던 부분에 손을 대는 것도 꼭 해야 하는 문제다. ‘건폭’(건설 현장 폭력행위)을 비롯한 노조의 불법 행위에 대한 단속이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다. 정치권의 권력형 비리 수사도 필요한 부분이다. 정치 개혁을 논의할 때마다 걸림돌로 작용하는 게 정치 불신이다. 정치적 보복만 피할 수 있다면 정치인의 비리 축재는 엄벌해주기를 바라는 게 민심이다. 더군다나 공정과 정의가 시대적 화두다.과감한 결단력, 신속한 추진력도 윤 대통령이 평가받는 대목이다. 그러나 동전의 뒷면처럼 지나치게 독단적이라는 비판도 받는다. 취임 1년이 되도록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보다 자기 말을 너무 많이 한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 건 문제다. 대통령이 모든 사안을 잘 알 수는 없다. 많이 들어야 한다. 대통령의 말은 무겁다. 가벼운 한마디가 참모나 공직자들에게는 엄청난 무게로 전해진다. 마구 쏟아내면 정책의 혼선과 설화(舌禍)를 피할 수 없다. 노동시간 혼선이나 ‘날리면…’ 발언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야당을 외면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도어스테핑 중단은 불가피했다고 치자. 하지만 연두 기자회견이나 수시로 국민 앞에 설명하고 설득하는 일까지 포기해서는 안 된다.야당과의 대화도 그렇다. 윤 대통령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는 만나지 않고 있다. 새로 당선된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부터 만나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후보 시절 “범죄자와는 토론할 수 없다”고 말했던 기조를 이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굳이 이렇게 대화를 회피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옛날부터 정치인은 그리 깨끗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독재자조차 반대자들을 만나왔다. 대통령이 만나는 것은 범죄자든 아니든 그 개인이 아니라 한 정당의 대표다. 우리를 침략한 북한, 중국의 정상도 만난다. 야당 대표를 만난다고 범죄 혐의까지 사면하는 건 아니다. 수령 숭배에 철저한 북한조차 그 정책을 버렸다. 만나지 않는 건 범죄에 대한 증오가 아니라 해당 정당에 대한 무시다.국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민생이다. 그 총체적 중간 평가가 내년 총선에서 드러난다. 총선에서 제대로 평가받아야 남은 과제들을 풀어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도 윤 대통령이 가슴을 열고, 소통에 좀 더 유연해져야 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5-07

가짜 뉴스의 뿌리는 정치권이다

김진국 고문 ‘미국이 왜 이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때마다 미국을 모범 사례로 인용해왔다. 그런데 트럼프 전 대통령 등장 이후 ‘이게 미국 민주주의야?’하고 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그런데 역시 미국이다. 보수·극우의 선봉이었던 폭스뉴스의 간판 앵커 터커 칼슨이 전격 해고됐다. 그는 트럼프 당선을 위해 막말과 거짓말을 서슴지 않았다. 트럼프가 대선 불복의 근거로 든 투·개표 부정이 있었다고 거짓 방송해 폭스뉴스가 투·개표기 회사에 약 1조 원을 물어주게 했다. 칼슨의 메일과 메신저에서는 투·개표 부정이 없었다고 믿고 있었던 사실까지 드러나 더 충격이다.반대 진영의 CNN도 간판 앵커 돈 레몬을 같은 날 해고했다. 그도 트럼프가 패배하자 방송 중 기뻐서 눈물을 흘릴 정도로 편파적이었다.우리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낫다고 할 수 없다. 한국 언론의 진영화가 심각하다. 인터넷과 유튜브를 통한 1인 방송이 등장하면서 편파성이 더 심각해졌다. 수익을 올리기 위해 가짜 뉴스 경쟁을 벌인다. 공공방송까지 ‘아니면 말고’식으로 무책임하게 내지른다. 그럴수록 오히려 팬덤이 생기고, 수익이 오른다. 청담동 술자리가 전형적이다. 거짓으로 밝혀졌는데도 억지 의혹을 계속 쏟아내며 후원금 풍선을 주워 담았다.문화체육관광부가 20일 가짜 뉴스 퇴치 대책을 발표했다. 신고·상담센터를 설치하고, AI 가짜 뉴스 감지 시스템을 개발하겠다고 한다. 국민통합위원회과 방송통신위원회, 행정안전부도 허위 정보, 뉴스 대책을 잇달아 내놨다. 그러나 이런 대책들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 두고 볼 일이다. 민주당 정부 때도 가짜뉴스 처벌법을 추진했다. 한쪽 진영의 잣대를 들이대면 역시 실패한다.진짜 악성 가짜 뉴스들은 정치권에서 만들어낸다.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이다. 한눈에 진위를 알 수 있는 문제도 정치권이 나서면 진실이 감춰진다. 자기 진영에 유리한 것만 진실이라고 우긴다.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으로 떠나자마자 가짜 뉴스가 나왔다. 윤 대통령을 만난 넷플릭스 대표가 앞으로 4년간 K-콘텐츠에 25억 달러를 투자하겠고 밝혔다. 그러자 민주당의 양이원영 의원이 이 말을 거꾸로 알아듣고, “지금 해외에 투자할 때냐”며 윤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비난이 쏟아지자 이 글을 내렸지만, 사과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미 결정된 투자 건으로 넷플릭스와 사진 찍으러 가신 거 아닌가”라고 다시 비틀었다.같은 당 장경태 의원은 윤 대통령이 화동 볼에 입을 맞추며 답례한 것을 두고 “미국에서는 성적 학대 행위로 간주된다”라고 비난했다. 국민의힘은 부시 전 대통령이 화동 볼에 입을 맞추는 사진으로 반박했다. 장 의원은 김건희 여사가 캄보디아에서 심장병 어린이와 찍은 사진을 ‘빈곤 포르노’라며, 조명을 설치하고 설정 사진을 찍었다고 비난했다가 고발당했다. 전문가가 조명이 없다고 확인했지만, 이재명 대표도 “나도 조명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고발해라”라고 조롱했다. 잘못이 있으면 당연히 비판해야 한다. 언론의 자유가 중요하다. 하지만 비난을 위한 비난, 트집을 위한 트집은 보기에 영 불편하다.정부·여당도 별로 나아 보이지 않는다. 윤 대통령이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에 대해 “100년 전에 일을 가지고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 하는 이거는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파문이 일자 국민의힘은 ‘가짜 뉴스’라고 주장했다가 녹취록이 공개되는 바람에 망신당했다. 가짜 뉴스를 공격하면서 사실 확인도 안 했다. 워싱턴 선언을 ‘사실상 핵공유’라고 브리핑했다가 미국 측이 부인하는 일도 자초했다. 똑같다.‘바이든’이냐, ‘날리면’이냐 하고 옥신각신하더니, 또다시 설화(舌禍)를 만들었다. 사과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지향적으로 가자는 윤 대통령의 생각에 공감한다. 하지만 정치지도자의 말은 진중해야 한다. 마음이 아무리 급해도 국민을 설득하면서 함께 가야 한다. 혼자 서두르면 국민으로부터 버림받는다. 국민을 쫓아만 가서는 안 되지만, 정말 자기 생각을 실현하고 싶다면 외고집으로 돌진만 해서도 안 된다.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4-30

민심과 함께 가는 방법

김진국 고문 지난 대통령 선거는 비호감 대결이었다. 후보들의 비호감도가 모두 50%를 넘었다. 60%를 넘은 후보도 있다. 비호감 투표를 쉽게 풀어보면 이런 것이다.“A가 되는 꼴은 죽어도 못 보겠다. A만 아니라면 누가 되어도 좋다. A 외에 당선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이 B다. B에게 투표해 A의 당선을 막아야겠다.”비호감 투표에 정책이 끼어들 틈이 없다. 정책 때문에 표를 찍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후보들이 국가의 미래 비전을 그리는 데 힘을 쏟을 이유가 없다. 네거티브 캠페인이 당락을 결정한다. 경쟁 후보의 비호감을 키우기 위해 흑색선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당선 가능성을 따지다 보면 양대 정당 공천이 당선의 보증수표가 된다. 이런 선거를 계속하면 나라가 어떻게 될까.비호감이 늘어난다. 유권자는 정치로부터 멀어진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지지하는 정당이 없는 무당층(無黨層)이 지난해 대선 이후 가장 많은 31%에 이르렀다. 18~29세에서는 무당층이 54%, 30대도 37%나 됐다. 중도층에서는 무당층이 41%에 달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이 바람에 내년 총선에서 제3당이 생기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87년 헌법 체제에서 제3당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알려져 있는데도 말이다. 제3당 시도는 여러 번 있었지만, 매번 양당제로 돌아갔다. 3김 정당과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이 한때 성공했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오래가지 못했다.20~30대는 탈이념 성향이 뚜렷하다. 이들의 절반가량이 무당층을 형성하고 있는 것도 그런 탓이다. 진영에 얽매이지 않고, 사안별로 자기 의견이 분명하다. 양대 정당이 이들을 품으려 했지만 결국은 갈등을 겪으며 밀어냈다. 결국은 이들이 중심 세대로 커갈 것이다. 이들의 불만이 양대 정당에서 충족되지 못하면 제3의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더 중요한 것은 선거법이다. 현행 선거법은 고칠 수밖에 없다. 계속 위성정당을 만들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연동형’은 실패했지만, 큰 방향은 지지율과 의석수의 비례성을 높이는 쪽이다. 사표(死票) 심리에 막혀 비호감 정당을 계속 선택할 수는 없다. 선거구별 인구 편차는 2대 1까지 줄였다. 표의 가치를 같게 해야 한다는 이유다. 같은 논리로 늘어난 무당파에게도 선택권을 넓혀줘야 한다.선거법을 아무리 고쳐도 대통령은 어차피 한 사람이다. 당선된 대통령이 국민을 끌어안는 수밖에 없다. 역대 대통령들은 취임할 때마다 자신을 찍지 않은 사람까지 받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점점 더 갈등과 분열의 상징이 되어간다. 대통령은 국민 통합의 상징이다. 다른 누가 그 역할을 하겠는가.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갇혀 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4주째 30% 정도에 정체돼 있다. 취임 직후를 제외하면 내내 30%와 40% 사이에 머물러 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도 지지율만 깎아 먹었다. 잔치가 되어야 할 행사가 혐오만 불러일으켰다. 지도부는 출범하자마자 계속 사고만 치고 있다. ‘윤심’ 논란 탓에 부담을 윤 대통령에게 돌렸다.윤 대통령은 정부와 정치권을 재빨리 장악할 필요를 느꼈을 수 있다. 그러나 검찰과 정치권은 다르다. 검찰은 핵심 요직만 장악하면 전체를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정당은 그렇지 않다. 검찰 조직은 일사불란하다. 이견을 틀어막을 수 있다. 그렇지만 정당이 일사불란하면 유권자가 달아난다.정치는 표다.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선거를 해야 한다. 이기려면 지지 세력을 넓혀야 한다. 정치는 깎아서 빛이 나는 보석이 아니다. 깎으면 깎을수록 힘이 줄어드는 삼손의 머리카락이다. 민심은 물이다. 잘만 이용하면 땅을 비옥하게 하고, 무역선을 띄울 수도 있다. 물결을 거스르면 배가 뒤집힐 수 있다. 겁을 먹고 물길을 막으면 망조가 들 수도 있다.그렇다고 정치지도자가 민심에 끌려다녀서도 안 된다. 함께 가되 조금은 앞서서 이끌어야 한다. 마음이 앞서 너무 앞서 달리면 민심과 멀어진다. 한 발짝, 아니 반 발짝만 먼저 가야 한다. 목동은 혼자 달려봐야 소용없다. 양 떼와 함께 가야 빨리 간다.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4-23

불법 저지른 후보가 유리하면 안 된다

김진국 고문 신뢰도 조사를 하면 국회가 언제나 꼴찌다. 지난해 전국 지표조사에서 국가기관별 신뢰도를 물었더니 국회는 15%였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 조사에서는 정치인을 믿는다는 응답자가 3.1%에 불과했다. 역시 바닥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불신이 넘친다. 신뢰를 생명으로 삼는 직업군에도 불신이 쌓여간다. 그렇지만 시공을 넘어 가장 불신받는 게 정치인이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정치는 4류”라는 말이 한때 유행했다. 정치인이 부정과 비리, 특권의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다. 그동안 많이 바뀌었다. 그러니 정치인들은 억울할지 모른다. 도매금으로 매도할 수 없는 훌륭한 정치인도 있다. 그렇지만 정치인의 비리 사건, 특권의식과 갑질이 수시로 불거지니 여론탓만 할 수도 없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다. 자치단체장도 마찬가지다. 국민이 투표로 선출한다. 그런데도 자기 손으로 뽑은 대표를 가장 믿지 못하니 참 딱하다. 정치인을 믿지 못하니 국민의 대표로서 수행한 일들을 믿을 수 없고, 대의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도 어렵다.범죄를 수사할 때 가장 먼저 돈을 추적하라고 한다. 정치야말로 돈을 따라가야 이해할 수 있다. 돈이 이권만 사는 게 아니다. 표도 사고, 권력도 산다. 특히 과거 일본의 파벌정치는 보스가 정치자금을 마련해 돈과 공천을 나눠주고, 충성을 받았다. 우리도 과거 그런 행태를 따라 했다. 3김 정치가 그 시대의 마지막인가 했다. 그런데 아직도 남았다.전두환 정부까지는 여야의 정치자금은 비교가 안 됐다. 집권당이 폭포수를 받아쓴다면 야당의 정치자금은 폭포에서 떨어진 물방울 정도라고 했다. 야당은 정치자금을 마련하기가 어려웠다. 야당에 정치자금을 전달한 기업은 세무조사 등 보복을 당하기 일쑤였다. 여당이 야당의 협조를 받기 위해 일부 나눠주기도 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당선된 1992년 선거에 3천억원을 썼다고 회고록에 썼다. 그런데 김대중 야당 총재에게 20억 원을 줘 95년 문제가 됐다. 그러나 정권교체가 가능해지면서 야당도 정치자금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얼마 전 인기를 끈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진도준(송중기 분)은 할아버지 진양철(이성민 분)에게 여당 후보에게 베팅하라고 조언한다. 진도준은 미래를 알기 때문에 그렇게 조언했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미래를 모르는 기업인들도 노태우 후보에게 훨씬 많은 자금을 지원했다. 당장 정권을 쥐고 있어 언제든 보복할 수 있었고, 정권교체 경험도 없었기 때문이다.자유당 시절은 물론 박정희 시대에도 막걸리, 고무신이 돌아다녔다. 5당4락이니 하며 선거자금으로 당락을 가르는 말이 나돌았다. 그에 비하면 많이 깨끗해졌다. 깨끗해진 만큼 정치도 자유로워졌다. 그런데도 아직 돈 선거의 잔해들이 남아 있다. 최근에는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돈을 뿌렸다는 혐의를 수사하고 있다. 현역의원 10명 등 40명 정도가 연루됐다고 한다. 민주당은 기획 수사라고 비난하지만, 녹취록이 나왔다. 녹음파일을 만든 이정근 민주당 사무부총장이 시인했다고 한다. 부인만 하기 어렵게 됐다. 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3만 건이나 되는 녹음파일을 풀고 준비작업을 한 것 같다며 민주당이 선제적으로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조직선거를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하소연한다. 돈이 필요하면 정당하게 정치자금법을 손질하는 게 옳다. 불법을 저지른 후보가 더 유리해서는 안 된다. 감춰진 돈에는 악취가 나기 마련이다. 불법 정치자금은 불법 선거로 이어지고, 당원의, 혹은 국민의 뜻을 왜곡하게 된다. 대장동 사건에서 보듯 용적률을 조금만 조정해줘도 수천억 원이 생긴다. 예산을 쏟아붓는 건 공짜 돈 같지만, 모두 국민의 세금이다.윤석열 정부가 아직도 아마추어라고 비판받는다. 잘하는 게 있다면 비리 수사다. 윤 대통령은 과거 여야를 가리지 않고 칼질한 경험이 있다.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시대적 과제가 공정과 정의다. 민주주의가 바로 서려면 독재는 물론 돈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 정치가 좀 더 깨끗해질 수 있도록 정치를 바로 세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업적이다.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4-16

선거법, 다 잃었을 때를 생각하라

김진국 고문 내년 총선에서 야당을 찍겠다고 한다. 지난주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다. ‘정부 견제를 위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라고 답한 사람이 50%로 ‘정부 지원을 위해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36%)는 사람보다 14%포인트 많았다. 3월 초 ‘정부 지원론’이 42%, ‘정부 견제론’이 44%였던 데 비하면 한 달 사이에 견제론으로 확 기울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지난주 울산시 교육감과 울산 남구 구의원 보궐선거에서도 민주당이 이겼다. 울산 남구는 국민의힘이 유리한 지역이다. 구의원 선거, 한곳이 대수냐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년 총선을 짐작하게 하기 때문이다. 유리한 지역을 더 뺏기면 윤석열 정부가 얼마나 더 어려워질까. 가뜩이나 야대(野大) 국회에 눌려 있다. 내년 총선이 같은 결과면 바로 레임덕이다.여론은 원래 조변석개(朝變夕改)다. 그렇지만 짧은 기간에 급격히 바뀔 때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나. 국민의힘 전당대회, 한일 정상회담, 근로 시간 개편안 혼선, 양곡관리법 거부권 행사, 국민의힘 최고위원 잇단 설화(舌禍), 여권 도지사 산불 때 골프, 술자리…. 모두 한 달 동안 벌어진 일들이다.전당대회는 컨벤션 효과를 기대하는 행사다. 그런데 역주행했다. 후보끼리 격렬하게 총질한 것은 불가피했다고 치자. 대통령 핵심 측근을 제외하고는 모두 몹쓸 인간으로 만들고, 주저앉혔다. ‘우리 세상’이라고 기고만장했는지, 이해 못할 언행들이 이어졌다. 그러고도 여론이 바뀌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많은 사람이 매운맛을 좋아한다. 정치에서도 화끈한 것을 바란다. 그렇지만 잠시 기분뿐이다.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水至淸則無魚)라는 말이 있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청빈한 공직자에게 부패를 유혹하는 되지도 않은 말”이라고 폄훼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그보다는 일도양단(一刀兩斷)의 흑백논리를 경계한 말이 아닌가 싶다. 세상이 그렇게 쉽게 양분할 수 있는 건 아니다.민주당에서는 자기 반성적인 의견을 내면 ‘수박’이라고 낙인을 찍는다. 국민의힘은 대표 선출 규정에서 여론조사 30%를 없애버렸다. ‘윤핵관’이 아니면 배신자, 나쁜 놈으로 몰아세웠다. 그렇게 다 쫓아내면 무엇이 남나. 극단적인 주장을 정체성이라고 강조한다. 한 치 앞을 못 보는 미련한 짓이다. 스스로 지지세력을 줄이고 있다. 당장 재·보궐선거 성적표를 받아봤다. 윤석열 정부의 명운이 걸린 총선이 바로 내년 4월이다.당내에서 이 모양인데, 여야 관계가 잘될 리 만무하다. 민주주의는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는 것이다. 대화로 타협하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경쟁 정당을 파트너가 아니라 무찔러야 할 오랑캐로 규정하는데, 무슨 타협이 가능하겠는가.2020년 총선은 치욕적인 선거다. 법을 만드는 거대 양당이 선거법의 취지를 대놓고 무시하고, 편법으로 의석을 훔쳤다. 어차피 다시 이 법으로 선거를 치를 수는 없다. 의석을 도둑질한 두 정당도 다 안다. 그런데도 어느 당도 사과하지 않았다. 또다시 선거법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바꾸기 위해 안간힘이다.선거법을 먼저 무력화한 것은 국민의힘이다. 그렇지만 선거 결과는 완패다.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갔다. 그냥 두었으면 민주당이 과반도 못 가져갔다. 민주당만이라도 자기가 밀어붙인 법을 지켰다면 도덕적 명분을 얻고, 반(反) 국민의힘 연대를 주도할 수 있었다. 정권을 지켰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양대 정당은 모두 완승을 꿈꾼다. 선거법 개정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득표율을 존중하는 상생의 길은 피한다. 두 정당끼리만 나누어 먹으면 파이가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모 아니면 도다. 야당일 때를 생각하고, 완패했을 때도 염두에 둬야 한다. 지면 윤 대통령 처지가 된다. 민주주의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상생이다. 선거법은 그렇게 고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생의 기반부터 닦아야 한다. 민주당은 다수당의 횡포를 포기하고, 정부·여당은 야당을 파트너로 인정하는 것이다.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