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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도 죽여보고, 펜으로도 죽여보고…”

등록일 2024-01-21 20:20 게재일 2024-01-22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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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고문
김진국 고문

자기가 잘해 이기는 선거는 별로 없다. 경쟁상대가 실수해 당선되는 후보가 많다. 지난 대통령선거를 봐도 누가 더 비호감인가를 다투는 선거였다. 그러니 실수를 안 하는 게 중요하다. 말 한마디가 전체 판도를 뒤집는 일이 허다하다. 그래서 선거 때마다 입단속을 한다.

4월 총선 결과는 어떨 것 같으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 수도권은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한쪽으로 쏠린다. 조그만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곳이 많다. 그런데 전체 의석의 절반이 몰려 있다. 작은 실수 하나가 바람 방향을 뒤집어 놓을 수 있다. 바람 방향은 늘 바뀐다. 가장 큰 변수는 실수로 만든 악재(惡材)다.

슬픈 일이지만 지금 민심을 움직이는 변수도 이런 악재다. 지금 드러난 최대 악재는 ‘영부인 리스크’다. 지난 칼럼에서 언급한 ‘명품 가방’도 그중 하나다. 그다음으로 꼽을 수 있는 게 ‘이재명 리스크’다. ‘응급의료 헬기’가 특히 아프다.

선거에는 언제나 악재가 따른다. 중요한 것은 그런 악재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다. 악재도 잘 대처하면 오히려 호재(好材)가 되는 일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장인의 좌익 전력을 “이런 아내를 제가 버려야 합니까?”라는 말로 뒤집어버렸다. 사상 문제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에서 오히려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기회로 만들었다.

거꾸로 악재를 덮고, 만회하려다 무리수를 두기도 한다. 사실을 인정하고 진심을 드러내 마음을 얻을 수도 있고, 거짓으로 거짓을 덮으려다 점점 더 수렁에 빠지기도 한다. 성경에서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도 죄를 인정하지 않았으면 반전(反轉)이 없다. 노 전 대통령도 사실을 인정했기에 뒤집기가 가능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20억 원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고, 2년 뒤 당선됐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테러당한 건 큰 사건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대처가 잘못돼 오히려 손해를 보고 있다. 선거에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욕심이 앞서기 때문이다. 테러의 배후에 현 집권 여당이 있다는 틀을 짜놓고 몰아간다. 민주당은 “백범 김구, 몽양 여운형 선생 이후 초유의 암살 미수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너무 성급하다.

더구나 이 대표가 응급헬기로 서울대병원으로 간 것이 악재가 됐다. 한국은 ‘특권’을 정말 싫어하는 사회다. 조그만 차별도 못 참는다. 보통 사람은 서울대병원에서 진료받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이 대표는 응급실을 쇼핑하는 모양을 보여줬다. ‘피해자’가 순식간에 ‘특권층’이 됐다. 여러 여론조사 결과들이 그대로 보여준다.

민주당은 이것을 다시 반전시키려고 무리한다. 일반 국민은 이번 사건에서 백범이나 몽양이 아니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커트 칼 테러를 떠올린다. 민주당은 “경찰은 무엇이 두려워 정치테러 범죄의 진상을 축소하고, 은폐하느냐”고 주장했다. 혹시라도 다른 배후가 있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하지만 억지로 몰아가면 역풍만 일으킨다. 민주당은 ‘당대표정치테러대책위원회’라는 걸 만들었다. 정치적 음모가 있다고 단정했다. 사건 직후 문자로 사건 보고를 한 대테러종합상황실 공무원을 고발했다. 소방본부 보고 문서에 ‘목 부위 1.5센티미터 열상’이라고 적혀있는데 ‘1센티미터’로 축소했다는 것이다. 무슨 큰 차이인지…. 피의자의 당적과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 것을 따지다 직접 공개했다. 공공장소인 현장을 물청소한

것, 피습 당시 입었던 와이셔츠가 수술 폐기물과 함께 버려진 것도 은폐라고 의혹을 제기했으나 해프닝으로 끝났다.

이재명 대표는 당무 복귀 직후 “법으로도 죽여보고, 펜으로도 죽여보고, 그래도 안 되니 칼로 죽이려고 하지만 결코 죽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주어를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윤석열 정부를 지목한 말이다. 자신의 사법 리스크도 이번 테러와 연결해 정치 탄압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응급헬기 비난 여론을 포함해 자기 잘못으로 야기된 여론도 ‘펜으로도 죽여보려는’ 정권의 의도라고

몰아간다. 열성 지지자라면 몰라도 일반 민심은 따라가기 힘든 비약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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