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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쇠고기 국밥

쇠고기 국밥 하면 옛날 시골 큰장날 생각이 간절하다. 쇠고기를 잘게 찢어서 끓인 것이 아니고 옛 방식은 고깃덩어리를 삶아 자연스럽게 고기의 결이 풀리도록 푹 익히는 것이 특징이다. 요즘의 요리법과는 달리 살고기에 기름치를 섞어 대파, 무, 콩나물, 고사리, 토란 줄기를 널고 맵게 끓여낸 국이 육개장이다. 육개장 하면 현대적 미각을 가리키지만 쇠고기 국밥 하면 흘러간 시절의 보양식이다. 시골 장터 큰 가마솥에서 오랜 시간 끓인 그 당시는 최고급 요리에 속하는 음식이다. 뜨겁고 얼큰한 국물이 속을 풀어주기 때문에 해장국을 겸한 정식이다. 복날이나 잔치집에서 육개장을 먹은 것은 이열치열로 여름을 이겨낸다는 실용적 음식이다. 쇠고기 국밥에는 별 반찬이 필요없다. 뜨겁고 매운 음식인데 마늘, 풋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서 기운을 돋운다. 쇠고기 국밥인 육개장은 고춧가루를 듬뿍 풀어 넣고 빨갛게 끓인다. 후추를 쳐서 누린내를 없애고 습한 여름에 흘리는 땀을 보충해야 했던 것이다. 시골 장터 천막으로 가린 평상에 앉아 가마솥에서 풍기는 연기를 마시면서 제격인 국물에 특이한 묘미가 있어 국물을 먼저 먹고 다시 공짜로 국물을 청하면서 배를 채운다. 여기에 탁주 한 사발 마심으로 오전의 일과는 끝이 난다. 살기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보약이라고는 밥 밖에 없던 시절이 한 없이 그리운 계절이다. 한국전쟁 이후 쫓기듯 남하했던 국민들이 추위를 견디고 허기를 채우는 음식은 값싸고 영양가 많고 음식량이 많은 것이 국밥이 최고 였다. 형편이 나아지고 음식이 다양화하기 시작하자 좀 비싸더라도 밥따로 국따로 시켜 먹던 시대가 왔다. 그래서 생겨난 국밥이 바로 쇠고기 따로국밥이다. 경상도 사람들의 기질과 식성에 맞게 개조된 것은 고추기름을 넣어 끓이기에 빛깔이 더 빨갛게 된 것이다. 빨간색은 잡신이 싫어하는 색깔이라 안성맞춤이다. 몸에 붙은 귀신도 쫓고 배불이 먹을 수 있는 추억의 음식 중 하나다. /손경호(수필가)

2012-01-31

남의 말 들어주기

▲ 손경호 수필가우리나라 사람들의 국민성은 은근함을 좋아하는 민족이다. 바로 면전에서 털어 놓고 화끈하게 얘기하기 보다는 이심전심으로 시간을 두고 서로 느낌을 통해서 서로를 알기를 원한다. 말많은 다변가를 싫어하고 얌전하고 조용하며 과묵한 성품을 선호하는 편이다. 상대방 사람을 평가할 때는`말 많은 사람`이라고 소개하면 상종하기를 꺼리는 편이다. 대화란 마주 대하여 이야기함을 말함이요 소통은 뜻이 서로 통해 오해가 없음을 말하고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을 뜻한다. 민족성이 오랜 전통문화에 젖어 소위 정치판에서 왈가왈부되는 대화와 소통은 그렇게 활발하지 못한다. 그래서 말은 안해도 상대방의 깊은 뜻을 잘 헤아려야 한다는 독심술(讀心術)이 상호간에 크게 작용하는 실정이다. 독심술은 기술이다. 상대의 미묘한 몸가짐이나 표정 따위로 그의 생각을 알아내는 마음 읽기다. 협상의 대가니 상담의 권위자도 상대의 생각과 마음을 빨리 잡아내는 기술에서 오는 것이다. 필자도 교육학을 공부하면서 상담심리학도 배웠고 상담에 참여한 일도 많았다. 상담의 제1조는 상대의 의견을 최대한 경청하는 것이다. 상담의 주목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고민하고 해결하기를 원하는지 잘 들으면 오가는 대화에서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다. 사람들은 이해받는다는 느낌이 들 때 쉽게 가까워진다. 가족도 마찬가지이다. 부모가 자기를 잘 이해한다고 느끼는 자녀들은 부모를 아주 가깝고 따뜻하게 느끼며 산다. 사람들은 남이 자기를 알아주기를 기다린다. 여기에서 이해와 오해가 생기고 대화와 소통의 문은 닫고 열기를 반복한다. 바로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들어주기`방법이 소통의 열쇠이다. 그리고 공감을 느끼고 동감을 느끼면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고 문제의 해결은 시간 문제다. 요즘 청소년들의 말로 `서로 통한다`는 말의 의미가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다. 오해도 대화와 소통에서 해소됨을 깊이 인식하자. 남의 말이 최고./손경호(수필가)

2012-01-30

화해의 정도(正道)

사리에 맞는 훌륭한 말을 명언(名言)이라 한다. 가르쳐서 훈계가 되는 말을 잠언이라 하며 옛적부터 민간에 전해 오는 알기 쉬운 이야기를 속담이라 하고 사리에 맞으며 교훈이 될 만한 짧은 말을 격언이라 한다. 모든 말이 들으면 약이 되고 행하면 덕이 되는 좋은 말씀들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93)이 더반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발언한 명언이 있다. “27년의 감옥살이가 도움이 된 것이 있다면 고독의 정적을 통해 말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진실한 말이야말로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고 한 것이다. 남아공 백인정권의 인종격리정책의 종식을 이끌어낸 주역이면서도 그동안 차별을 가하면서도 흑인을 짐승처럼 여겼던 백인을 용서하고 화합하는 정신을 보여준 그는 세계적으로 발언 내용이 가장 많이 인용되는 지구천 저명인사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명언집을 발간했다. 명언 317개 주제어가 목록으로 정리돼 있다. 특히`승리`라는 주제어는 `복수`와 `폭력`사이에 끼어있어 눈길을 끈 대목이다. 만델라 전 대통령은 1990년 유럽의회 연설에서 “우리는 흑인과 백인이 모두 승리자가 되는 방식으로 전진 할 것”이라고 말해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반면 `폭력`에 대해서는 “거대한 분노와 폭력으로는 국가를 건설할 수 없다”고 배격했다. 또 그는 대통령에 당선된 이듬해인 1995년에는 “화해란 과거의 부당함을 함께 바로 잡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몽테뉴도 그의 `수상록`에서 “자연이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먼저 권고한 것은 화합”이라 했다. 지난날의 적과 화해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 아니라 현명한 처사이다. 그래서 말다툼의 기쁨이 화해를 낳는다. 맹자의 말씀에도 “적절한 시기도 지리적으로 좋은 것만 같지 못하고 지리적으로 좋은 것이 사람의 화합만 같지 못하다”고 했다. 화해는 사랑이다. /손경호(수필가)

2012-01-27

족발을 먹어보면

요즘 육류를 좋아하는 호식가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육류보다는 채식을 많이 먹는 것이 성인병 예방에 좋다고 조언하지만 삼겹살, 족발인구가 불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내산 보다는 수입고기가 매년 증가하고 값도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치킨이나 피자 등도 수요자가 기하급수로 상승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한 가지 집고 갈 식도락 가운데 서양사람들과 달리 한국 사람들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족발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족발이라고 하는 것은 우족(牛足) 보다는 돼지족발을 말한다. 우족은 곰탕에 주로 쓰는 탕의 재료가 되지만 돼지족발은 구하기도 쉽고 값도 싸다. 과거에는 재래시장에서 싸구려 음식으로 인정 받았지만 지금은 마트에 까지 진출해 구하기가 쉽고 편리해 졌다. 옛날 사람들은 동물의 정기가 발에 모인다고 여겼기 때문에 과거에는 족발이 최고급 요리로 대접을 받았다는 것이다. 족발의 종류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했으니 돼지는 물론 닭, 소, 심지어 곰, 사슴, 낙타의 발바닥까지 요리를 했다는 것이다. 특히 여자들이 족발을 많이 찾는다. 입덧이 심해 제대로 먹지 못하는 임산부가 식욕이 당긴다며 족발을 주문한다. 물론 술안주도 좋고 식사나 간식으로 출출할 때 먹어도 맛있다. 대부분 족발의 특이한 맛은 구수한 깊은 맛에 쫄깃쫄깃한 식감이 일품이고 물리지 않고 많이 먹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맛도 맛이지만 할머니들은 산모가 아이를 낳고 모유가 부족할 때 족발을 구해 푹 고아 먹이면 거뜬히 해결된다고 했다. 특히 돼지족발은 체인점을 거쳐 유통이 잘되므로 보다 위생적이고 갖가지 부식으로 그 가지 수도 많다. 각종 야채와 양념까지 잘 포장이 돼 믿고 먹을 수가 있고 식중독 예방 차원의 새우젓까지 곁들여 선호하는 호식가의 숫자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정으로 배달돼 여러 손을 거치지 않고 금방 해결할 수 있는 장점이 자극을 더한다./손경호(수필가)

2011-12-26

눈물의 속심은

눈물은 슬픔이기도 하고 기쁨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랑에는 눈물이 끼고 기쁨도 낀다. 행복이 더할 나위 없이 클 때에는 미소와 눈물이 한꺼번에 등장한다. 톨스토이는 “눈물에는 선한 눈물과 악한 눈물이 있다고 했다. 선한 눈물이라는 것은 오랫동안 그의 마음속에서 잠들고 있었던 정신적 존재의 각성을 기뻐하는 눈물이고 악한 눈물이란 자기 자신과 자기 선행에 아첨하는 눈물인 것”이라고 말했다. 사랑이 아름다운 것처럼 눈물도 아름답다. 눈물이 진주요, 보석이라고 한 것도 다 그런 연유다. 미인이 흘리는 눈물은 그녀의 미소보다도 사랑스런 것이다. 과연 여자의 눈물과 남자의 눈물은 그 성분이 다를까. 여자의 눈물은 천성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덫이 숨겨져 있다는 말이 있다. 여자의 눈물은 여자의 심술음에 대한 향신료이다. 그리고 잔인한 사람은 눈물에 감동하지 않고 눈물을 즐긴다고 한다. 기쁨보다는 아무래도 슬픔의 흔적이며 눈물은 슬픔의 말없는 언어가 되기도 한다. 남자의 눈물은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었다고 생각하고 흘리지만 여자의 눈물은 상대를 충분히 괴롭히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흘린다. 눈물은 인간의 마음이요 속을 가리킨다. 눈물이 없다는 것은 그에게 마음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느지도 모른다. 사회학자이며 심리학자인 로렌스는 “지상의 모든 언어 중에서 최고 발언자는 눈물이다. 눈물은 위대한 통역관”이라 한 것이다. 이 세상에는 눈물로 씻어지지 않는 슬픔은 없다. 땀으로써 낫지 않는 번민도 없다. 눈물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액체의 하나이다. 비가 와야 무지개가 생겨 나듯이 눈물을 흘려야 그 영혼에도 아름다운 무지개가 돋는다는 말도 있다. 일본의 한 심리학자의 견해는 “여자의 눈물은 승리의 눈물이며 남자의 눈물은 패배의 눈물”이라고 한다. “눈물이 진주라면/ 흐르지 않게 싸 두었다가/ 십 년 후 오신 님을/ 구슬성(城)에 앉히련만/ 흔적이 이내 없으니/ 그를 설워하노라”눈물은 귀한 것이다./손경호(수필가)

2011-08-23

진실이 편하다

그저께 어느 노인이 경찰에 폭행당해서 크게 다쳤다는 뉴스가 있었다. 노인을 폭행했다는 사실이 분명하고, 폭행당한 노인이 있는데, 경찰은 당시 현장을 찍은 폐쇄회로 화면을 공개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경찰에 의하면 가벼운 실랑이 정도였다지만, 아마 공개하기가 불편한 모양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잠잠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마 재판도 진행될 것이고 보상도 있어야 할 것이다. 결국 화면은 공개될 것이고 폭행 당사자 이상으로 은폐 당사자는 큰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용산 재개발 철거 과정에서 사람이 죽고 다친 일은 참사(慘事)라고 불린다. 그만큼 일이 참혹했고 피해가 컸다. 그 사태에 대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재판은 당연히 진실을 바탕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검찰은 진실이 담긴 기록을 감추고 있다. 어떤 주장에 따르면 무려 3천 쪽 분량의 기록이라고 한다. 감추기에도 버거울 양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진실은 드러날 것이다. 경찰의 가혹한 진압이 있었든지, 철거민의 불법 폭력이 있었든지, 책임은 그들만이 아니라 문서를 감춘 당사자까지 확대될 것이다. 대부분 진실을 감추는 사람은, 본래부터 감추려고 감추지는 않는다. 지금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이 일을 처리하는 데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고 능률적인 방도를 알기 때문에 진실을 잠시 말하지 않을 뿐이다. 선의의 은폐라는 것이다. 그러나 항상 문제는 복잡해진다. 결국은 은폐를 책임지는 사태에 이르산 한다. 앞서 말한대로, 국가의 위기라도 전 국민에게 진실을 알리는 것이 극복에 도움이 된다. 질병이 유행해도 진실을 말하면 예방과 치료가 쉬워진다. 지금 일시적으로 비난이 두려워 진실을 감춘다고 그게 영원히 감추어지는 것이 아니다. 진실이 가장 편하다. /可泉

2009-09-17

대학이 남는다

2010학년도 대구·경북지역 대학신입생 정원은 8만 명 남짓이다. 그런데 이 지역의 수학능력시험 응시자의 수는 6만2천여 명이다. 단순하게 이 지역 수험생이 전원 이 지역에 진학한다고 해도 거의 1만8천 명이 모자란다. 교육의 과잉공급이 눈으로 보인다. 몇몇 대학을 제외한 대학의 교수들이 자기 대학의 강의실을 비우고 고등학교의 진학지도실을 수시로 드나든다는 소문이 있다. 심지어 고등학교에서 교수들을 냉대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신입생이 미달되면 인사상의 불이익을 주겠다는 대학 운영자의 협박을 받아 속이 상한 교수도 있다고 한다. 민망하고 민망한 소식이다. 대학은 고비용구조이다. 학교 건물은 번듯번듯하고 교정은 광활하다. 교수의 강의 담당 시간은 적고 월급은 많다. 게다가 중고등학교처럼 교육부가 교육비를 맡아주는 것도 아니다. 모든 비용은 학생을 빙자한 학부모의 돈이다. 만약 정원을 채우지 못하면 훨씬 더 고비용저효율구조로 전환될 것이다. 과연 이 모든 대학교육이 필수적인 것일까. 교육을 통해 사람이 성장한다는 것, 특히 대학교육을 통해 명명덕(明明德)하고 신민(親民)하고 지어지선(止於至善)하리라는 것을 신뢰한다. 그러나 요즘의 교육과목을 보면, 정말 대학에서 비싼 교육비를 내고 배워야 할 내용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대학이 많다. 그냥 많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남아돈다. 대학이 많은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산업의 요구에 비해 지나치게 고급화된 인력은 결국 사회의 부담이 된다. 대학에서 2년 또는 4년 이상 비싼 등록금 내고 공부해서는 전공과 아무 관련없는 직업에 종사하기도 한다. 심지어 이제는 그렇게라도 대학에 갈 학생이 모자란다. 우리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일까. /可泉

2009-09-16

두려운 것은 진실이다

신종 플루가 대대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사망자 보고가 자주 나오더니, 어제는 하루에 두 명이나 희생되었다. 기온은 점점 내려가고 학교는 개학 중이다. 그러니 감기의 계절은 왔고 사람을 모두 방 안에 격리할 방법은 없다. 유행은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유행을 이겨내야 한다. 이겨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사실을 아는 것이다. 지금 몇이나 이 감기에 걸렸는지, 각 학교에는 얼마나 퍼져 있는지, 사회와 군대에는 감염자가 어떤 조치를 받고 있는지, 정확한 사실을 알려야 한다. 금년 2학기를 시작할 때는 수없이 휴교 또는 개학 연기 소식이 들리더니, 갑자기 잠잠한 것이 걱정이다. 혹시 유행이 끝났는가. 아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조용한가. 지금 감염자 수를 밝히면 휴교가 불가피하다고 해서 혹시 숫자를 숨기는 것은 아닌가. 어느 대학이든지, 처음으로 휴교하는 대학은 바로 중요한 뉴스로 등장할 것이다. 지금 신입생을 모집 중인데 휴교를 발표하면 신입생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진 것인가. 고등학교는, 입시가 코앞인데 휴교하면 성적이 떨어질 것이라고 두려워하는 것은 아닌가. 건강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없다. 더욱이 청소년의 건강은 두고두고 중요하다. 학교가 쓸데없는 걱정을 앞세워 학생의 건강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고위험군의 노약자가 아니면 개인적으로도 극복이 가능하다고 한다. 더 퍼지기 전에 확산을 차단하고 치료해야 한다. 신종 플루는 분명히 유행 중이다. 부인하지 말고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자. 진실을 분명히 알려야 한다. 지난 외환위기 때도, 허둥대는 정부가 스스로 해결하려고 애쓰다가 일을 키웠었다. 진실을 알리고서야 극복의 길이 보였다. 이번도 그렇다. 진실만 알면 우리는 그보다 더한 일이라도 해낼 수 있다. /可泉

2009-09-15

겸재

우리 진경산수화의 완성자로서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의 명성은 당대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드높다. 모든 중고등학교 미술교과서에 그의 그림이 실려 있으며, 국사와 미술사 교육과정에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는 58세 되던 영조 9년 1733년에 우리 포항 청하현의 현감으로 부임했다. 겸재는 청하에 재직 중 내연산을 매우 사랑하여 자주 탐방하고 중요한 작품을 남겼다. 그는 자신이 답사한 바위에 이름을 새겨 지금까지도 남아 있고, 특히 그의 득의작인 내연삼용추도(內延三龍湫圖)에는 우리가 오늘날 바람을 쐬며 바라보는 내연산 폭포와 힘찬 바위들이 그대로 그려져 있다. 또 자신이 현감으로 재직하면서 그린 청하성읍도(靑河城邑圖)는 오늘날 허물어진 돌무더기로 남아 있는 청하읍성의 옛 모습을 역력히 보여 주고 있다. 가깝고 먼 마을과 들판과 소나무 숲까지, 이 그림에는 지금도 볼 수 있는 청하 덕성리가 고스란히 보인다. 가을 바람이 깊어가는 오늘, 어쩐 행운인지 겸재기념관에서 발간한 겸재 작품 도록을 얻게 되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의 깊은 의취와 호방하고 즐거운 붓놀림이 마음에 가득 담겨 온다. 그러면서, 이런 대선배가 우리 고장에 와서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았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 생각한다. 새삼 청하읍성의 낡은 돌더미가 정겨워지고 내연산의 폭포들이 반가워지는 마음이다. 그러면서, 우리 역시 겸재처럼 우리의 산하를 사랑하고 감사했던가 생각한다. 겸재는 오랜 전통처럼 내려오던 관념적 산수화의 기풍을 넘어서서, 우리 산수와 삶의 아름다움을 가슴으로 받아들였다. 우리 눈앞에 있는 바로 이 산하를, 그는 민족 최고의 미술품으로 승화시켰다. 우리는 오늘 우리 산하를 사랑하는가. 혹은, 정말 겸재가 여기 왔던 것을 알기나 하는가. 겸재는 청하현감으로 부임한 지 2년이 된 1735년 모친상을 당해 사임하고 포항을 떠났다. /可泉

2009-09-14

유행성 호들갑

우리는 따뜻한 몸이 찬 공기를 접하면 감기가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름도 찬 기운을 접했다는 감기(感氣), 그로 인하여 생긴 병이라는 감환(感患), 추위를 무릅쓰다 생긴 병이라는 감모(感冒), 찬 기운에 접촉했다고 하여 촉한(觸寒), 찬 계절에 찬 기운 때문에 생긴병이라고 한질(寒疾) 등으로 불렸다. 우리말로는 고뿔이라고도 했다. 감기는 그 자체가 치명적인 병으로 인식되지는 않았다. 감기에 걸려 결국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감기 때문이 아니라 감기로 약해진 몸에 덧쳐진 합병증으로 상하곤 했다. 그래서 감기에 걸리면 감기를 낫게 하는 데 힘을 쓰는 것보다 몸을 보완하는 데 더 애를 쓰곤 했다. 근래에 와서, 사람이 감기의 원인균을 발견하고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기술을 찾아내어 감기 자체를 고치는 재주를 가지게 되었다. 감기도 예방할 수 있게 되었고, 쉽게 고치게도 되었다. 그러자, 감기가 독해졌다. 사람이 추적하면 변종을 만들고, 다시 추적하면 다시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타났다. 이름도 다양하여 홍콩형 일본형 등의 이름을 가진 독감이 생겨났다. 이번에는 이름 자체가 `신종`인 독감도 나타났다. 결국 다시 감기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감기는 건강한 몸으로 이기는 병이다. 지금까지 이 병에 걸리거나 이 병으로 상한 사람들 대부분이 어린이와 노약자 또는 질병에 걸린 이른바 고위험군이었다.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어린이와 노약자를 보호해야 한다. 고위험군의 사람들에게는 누구보다 먼저 예방약과 치료약을 배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의 차분한 대응이다. 독감이 퍼지니 걱정이야 되겠지만, 호들갑을 떨거나 먼저 약을 받겠다고 꼼수를 쓰거나 약을 사재는 행태가 나타나서는 안 된다. 감기보다 더 저급한 유행이 호들갑이다. 오늘부터 날씨가 서늘해진다고 한다. 감기 바이러스의 활성화가 걱정되는 계절이다. /可泉

2009-09-11

말문

어린 시절을 큰 강 가에서 보낸 사람은 알 것이다. 강의 상류 먼 곳에서 비가 오면, 우리 동네에는 큰 비도 안 왔는데 강물이 갑자기 불어 오른다. 강물이 이유없이 좀 흐려지기 시작하다가 거품이 떠내려 오면, 강은 부풀어 오르듯이 불어난다. 풀들이 부스스 일어나고 자갈도 사르락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강 가에서 자란 사람들은 본능처럼 위험을 안다. 강이 스산한 움직임을 보이면 얼른 언덕으로 몸을 피한다. 강은 먼 곳에서 내린 빗물을 모아 도도한 흐름이 되어 마을 앞을 흘러 지나간다. 그러나 밤에는 그런 징후를 알기 어려웠다. 그래서 강가의 사람들은 밤에 강가에 나가는 것을 조심했다. 어떤 날 아침에는 뜻밖에 불어난 강을 볼 수도 있었다. 더러는 상류에서 떠내려오는 작물과 황톳물을 바라보며 자연 앞에 존재의 두려움을 깨닫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강이 댐과 보로 곳곳에서 막히면서, 강이 불어나는 것은 비가 내릴 때만이 아니다. 사람의 필요에 의해 가둬둔 물을, 엉뚱한 시기에 방류할 때가 많다. 비도 오지 않는 날 뜻밖에 불어나는 강물은 사람에게 위험하다. 그래서 단단히 감지장치를 만들고 경보음을 울리고 경보방송을 해서 강가의 사람들을 대피하게 한다. 강이 보내는 경고보다 훨씬 세밀한 경보를 하는 것이다. 이번 임진강 참사를 보면서 경보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한다. 자연의 경고와 다른 강물의 흐름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여러 겹으로 경보하고 경보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북한은 명백히 잘못했다. 미리 충분히 경보했어야 했고, 그러지 않아서 사람이 상했으니 당연히 사과해야 한다. 이제 이런 일이 없도록 하려면 경보와 소통의 많은 경로를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미리 위험을 알리기 위해서도 언제나 말을 걸 수 있는 통로가 있어야 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도 편히 말을 걸만한 통로가 있어야 한다. 남북간에는 더 많은 말문이 트여야 한다. 누구든지, 어떤 이유로든지, 말문을 닫아서는 안된다. 무고한 사람이 죽었다. 더 무슨 이유가 필요한가. /可泉

2009-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