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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학이 남는다

2010학년도 대구·경북지역 대학신입생 정원은 8만 명 남짓이다. 그런데 이 지역의 수학능력시험 응시자의 수는 6만2천여 명이다. 단순하게 이 지역 수험생이 전원 이 지역에 진학한다고 해도 거의 1만8천 명이 모자란다. 교육의 과잉공급이 눈으로 보인다. 몇몇 대학을 제외한 대학의 교수들이 자기 대학의 강의실을 비우고 고등학교의 진학지도실을 수시로 드나든다는 소문이 있다. 심지어 고등학교에서 교수들을 냉대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신입생이 미달되면 인사상의 불이익을 주겠다는 대학 운영자의 협박을 받아 속이 상한 교수도 있다고 한다. 민망하고 민망한 소식이다. 대학은 고비용구조이다. 학교 건물은 번듯번듯하고 교정은 광활하다. 교수의 강의 담당 시간은 적고 월급은 많다. 게다가 중고등학교처럼 교육부가 교육비를 맡아주는 것도 아니다. 모든 비용은 학생을 빙자한 학부모의 돈이다. 만약 정원을 채우지 못하면 훨씬 더 고비용저효율구조로 전환될 것이다. 과연 이 모든 대학교육이 필수적인 것일까. 교육을 통해 사람이 성장한다는 것, 특히 대학교육을 통해 명명덕(明明德)하고 신민(親民)하고 지어지선(止於至善)하리라는 것을 신뢰한다. 그러나 요즘의 교육과목을 보면, 정말 대학에서 비싼 교육비를 내고 배워야 할 내용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대학이 많다. 그냥 많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남아돈다. 대학이 많은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산업의 요구에 비해 지나치게 고급화된 인력은 결국 사회의 부담이 된다. 대학에서 2년 또는 4년 이상 비싼 등록금 내고 공부해서는 전공과 아무 관련없는 직업에 종사하기도 한다. 심지어 이제는 그렇게라도 대학에 갈 학생이 모자란다. 우리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일까. /可泉

2009-09-16

두려운 것은 진실이다

신종 플루가 대대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사망자 보고가 자주 나오더니, 어제는 하루에 두 명이나 희생되었다. 기온은 점점 내려가고 학교는 개학 중이다. 그러니 감기의 계절은 왔고 사람을 모두 방 안에 격리할 방법은 없다. 유행은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유행을 이겨내야 한다. 이겨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사실을 아는 것이다. 지금 몇이나 이 감기에 걸렸는지, 각 학교에는 얼마나 퍼져 있는지, 사회와 군대에는 감염자가 어떤 조치를 받고 있는지, 정확한 사실을 알려야 한다. 금년 2학기를 시작할 때는 수없이 휴교 또는 개학 연기 소식이 들리더니, 갑자기 잠잠한 것이 걱정이다. 혹시 유행이 끝났는가. 아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조용한가. 지금 감염자 수를 밝히면 휴교가 불가피하다고 해서 혹시 숫자를 숨기는 것은 아닌가. 어느 대학이든지, 처음으로 휴교하는 대학은 바로 중요한 뉴스로 등장할 것이다. 지금 신입생을 모집 중인데 휴교를 발표하면 신입생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진 것인가. 고등학교는, 입시가 코앞인데 휴교하면 성적이 떨어질 것이라고 두려워하는 것은 아닌가. 건강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없다. 더욱이 청소년의 건강은 두고두고 중요하다. 학교가 쓸데없는 걱정을 앞세워 학생의 건강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고위험군의 노약자가 아니면 개인적으로도 극복이 가능하다고 한다. 더 퍼지기 전에 확산을 차단하고 치료해야 한다. 신종 플루는 분명히 유행 중이다. 부인하지 말고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자. 진실을 분명히 알려야 한다. 지난 외환위기 때도, 허둥대는 정부가 스스로 해결하려고 애쓰다가 일을 키웠었다. 진실을 알리고서야 극복의 길이 보였다. 이번도 그렇다. 진실만 알면 우리는 그보다 더한 일이라도 해낼 수 있다. /可泉

2009-09-15

겸재

우리 진경산수화의 완성자로서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의 명성은 당대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드높다. 모든 중고등학교 미술교과서에 그의 그림이 실려 있으며, 국사와 미술사 교육과정에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는 58세 되던 영조 9년 1733년에 우리 포항 청하현의 현감으로 부임했다. 겸재는 청하에 재직 중 내연산을 매우 사랑하여 자주 탐방하고 중요한 작품을 남겼다. 그는 자신이 답사한 바위에 이름을 새겨 지금까지도 남아 있고, 특히 그의 득의작인 내연삼용추도(內延三龍湫圖)에는 우리가 오늘날 바람을 쐬며 바라보는 내연산 폭포와 힘찬 바위들이 그대로 그려져 있다. 또 자신이 현감으로 재직하면서 그린 청하성읍도(靑河城邑圖)는 오늘날 허물어진 돌무더기로 남아 있는 청하읍성의 옛 모습을 역력히 보여 주고 있다. 가깝고 먼 마을과 들판과 소나무 숲까지, 이 그림에는 지금도 볼 수 있는 청하 덕성리가 고스란히 보인다. 가을 바람이 깊어가는 오늘, 어쩐 행운인지 겸재기념관에서 발간한 겸재 작품 도록을 얻게 되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의 깊은 의취와 호방하고 즐거운 붓놀림이 마음에 가득 담겨 온다. 그러면서, 이런 대선배가 우리 고장에 와서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았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 생각한다. 새삼 청하읍성의 낡은 돌더미가 정겨워지고 내연산의 폭포들이 반가워지는 마음이다. 그러면서, 우리 역시 겸재처럼 우리의 산하를 사랑하고 감사했던가 생각한다. 겸재는 오랜 전통처럼 내려오던 관념적 산수화의 기풍을 넘어서서, 우리 산수와 삶의 아름다움을 가슴으로 받아들였다. 우리 눈앞에 있는 바로 이 산하를, 그는 민족 최고의 미술품으로 승화시켰다. 우리는 오늘 우리 산하를 사랑하는가. 혹은, 정말 겸재가 여기 왔던 것을 알기나 하는가. 겸재는 청하현감으로 부임한 지 2년이 된 1735년 모친상을 당해 사임하고 포항을 떠났다. /可泉

2009-09-14

유행성 호들갑

우리는 따뜻한 몸이 찬 공기를 접하면 감기가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름도 찬 기운을 접했다는 감기(感氣), 그로 인하여 생긴 병이라는 감환(感患), 추위를 무릅쓰다 생긴 병이라는 감모(感冒), 찬 기운에 접촉했다고 하여 촉한(觸寒), 찬 계절에 찬 기운 때문에 생긴병이라고 한질(寒疾) 등으로 불렸다. 우리말로는 고뿔이라고도 했다. 감기는 그 자체가 치명적인 병으로 인식되지는 않았다. 감기에 걸려 결국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감기 때문이 아니라 감기로 약해진 몸에 덧쳐진 합병증으로 상하곤 했다. 그래서 감기에 걸리면 감기를 낫게 하는 데 힘을 쓰는 것보다 몸을 보완하는 데 더 애를 쓰곤 했다. 근래에 와서, 사람이 감기의 원인균을 발견하고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기술을 찾아내어 감기 자체를 고치는 재주를 가지게 되었다. 감기도 예방할 수 있게 되었고, 쉽게 고치게도 되었다. 그러자, 감기가 독해졌다. 사람이 추적하면 변종을 만들고, 다시 추적하면 다시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타났다. 이름도 다양하여 홍콩형 일본형 등의 이름을 가진 독감이 생겨났다. 이번에는 이름 자체가 `신종`인 독감도 나타났다. 결국 다시 감기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감기는 건강한 몸으로 이기는 병이다. 지금까지 이 병에 걸리거나 이 병으로 상한 사람들 대부분이 어린이와 노약자 또는 질병에 걸린 이른바 고위험군이었다.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어린이와 노약자를 보호해야 한다. 고위험군의 사람들에게는 누구보다 먼저 예방약과 치료약을 배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의 차분한 대응이다. 독감이 퍼지니 걱정이야 되겠지만, 호들갑을 떨거나 먼저 약을 받겠다고 꼼수를 쓰거나 약을 사재는 행태가 나타나서는 안 된다. 감기보다 더 저급한 유행이 호들갑이다. 오늘부터 날씨가 서늘해진다고 한다. 감기 바이러스의 활성화가 걱정되는 계절이다. /可泉

2009-09-11

말문

어린 시절을 큰 강 가에서 보낸 사람은 알 것이다. 강의 상류 먼 곳에서 비가 오면, 우리 동네에는 큰 비도 안 왔는데 강물이 갑자기 불어 오른다. 강물이 이유없이 좀 흐려지기 시작하다가 거품이 떠내려 오면, 강은 부풀어 오르듯이 불어난다. 풀들이 부스스 일어나고 자갈도 사르락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강 가에서 자란 사람들은 본능처럼 위험을 안다. 강이 스산한 움직임을 보이면 얼른 언덕으로 몸을 피한다. 강은 먼 곳에서 내린 빗물을 모아 도도한 흐름이 되어 마을 앞을 흘러 지나간다. 그러나 밤에는 그런 징후를 알기 어려웠다. 그래서 강가의 사람들은 밤에 강가에 나가는 것을 조심했다. 어떤 날 아침에는 뜻밖에 불어난 강을 볼 수도 있었다. 더러는 상류에서 떠내려오는 작물과 황톳물을 바라보며 자연 앞에 존재의 두려움을 깨닫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강이 댐과 보로 곳곳에서 막히면서, 강이 불어나는 것은 비가 내릴 때만이 아니다. 사람의 필요에 의해 가둬둔 물을, 엉뚱한 시기에 방류할 때가 많다. 비도 오지 않는 날 뜻밖에 불어나는 강물은 사람에게 위험하다. 그래서 단단히 감지장치를 만들고 경보음을 울리고 경보방송을 해서 강가의 사람들을 대피하게 한다. 강이 보내는 경고보다 훨씬 세밀한 경보를 하는 것이다. 이번 임진강 참사를 보면서 경보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한다. 자연의 경고와 다른 강물의 흐름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여러 겹으로 경보하고 경보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북한은 명백히 잘못했다. 미리 충분히 경보했어야 했고, 그러지 않아서 사람이 상했으니 당연히 사과해야 한다. 이제 이런 일이 없도록 하려면 경보와 소통의 많은 경로를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미리 위험을 알리기 위해서도 언제나 말을 걸 수 있는 통로가 있어야 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도 편히 말을 걸만한 통로가 있어야 한다. 남북간에는 더 많은 말문이 트여야 한다. 누구든지, 어떤 이유로든지, 말문을 닫아서는 안된다. 무고한 사람이 죽었다. 더 무슨 이유가 필요한가. /可泉

2009-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