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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교수의 품격, 딸깍발이 선비정신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최고의 지식인집단이라고 하는 교수사회가 하루가 다르게 무너져 내리고 있다. 지식을 팔아서 권력을 사려는 ‘정치교수(polifessor)’들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며, 연구비 수주에 혈안이 된 교수들은 ‘비즈니스맨(businessman)’을 뺨치는 영업활동을 하고 다니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약자의 입장에 있는 제자들에게 치졸한 갑질을 자행하는가 하면, 잊힐 만하면 또다시 성희롱과 성폭력이 불거지고 있다. 연구비를 해외 부실학회 출장비로 남용했으면서도 무엇이 잘못이냐고 되레 항의하는 교수들도 있고, 심지어 연구력도 없는 미성년 자녀를 대학입학에 유리하도록 공동연구자로 넣는 부정행위도 서슴지 않는다.이처럼 대학교수들의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자 교육부는 다음 달부터 3개월 간 전국 15개 대학에서 특별감사를 실시하기로 하였고, 교육부 홈페이지에는 ‘갑질 신고센터’를 개설했다.또한 대학원생들은 자구적 차원에서 교수들의 갑질을 근절하기 위하여 ‘대학원생 119’를 출범시켰다. 더욱이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대학이라는 서울대 학생들은 며칠 전 스승의 날을 맞아 ‘반복되는 교수 갑질과 성폭력사건으로 학생인권이 사라져 버렸다’고 하면서 ‘진짜 교육은 죽었다’고 ‘교육영결식’을 열었다. 스승의 날에 버젓이 살아 있는 교수들을 향해 ‘스승은 죽었다’고 울고 있는 제자들과 마주해야 하는 교수들의 마음은 참담하다. 여러 대학에서 적지 않은 교수들이 교육부의 특별감사를 받거나 제자들로부터 버림을 받고 있는 이 빗나간 교수사회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물론 이러한 문제들은 일부 교수들에 국한된다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지식인사회의 일탈(逸脫)이다. 지식인을 대표하는 교수사회가 부도덕하고 돈과 권력에 유착되어 심각하게 병들어가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절대로 과소평가할 수 없다. 당위적 가치를 추구하는 교육자이자 연구자로서 명예를 먹고 살아가야 할 교수가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돈과 권력을 쫓아다닌다면 결국 자신은 물론이고 국가적 불행을 초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국어학자 고(故) 이희승 교수는 그의 작품 ‘딸깍발이’에서 “청렴개결(淸廉介潔)을 생명으로 삼는 선비가 재물을 알아서는 안 된다. …현대인은 전체를 위해서 약은 것이 아니라 자기중심, 자기본위로만 약다”고 하면서 청빈(淸貧)한 남산골샌님(별명 딸깍발이)의 ‘의기(義氣)와 강직(强直)’을 배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식인으로서 사회공동체의 정의 구현에 앞장서야 할 교수들에게 ‘딸깍발이 선비정신’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어떤 사람은 교수도 생활인이기 때문에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현재와 같은 대학의 위기상황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는 교수들에게 ‘딸깍발이 선비정신’을 요구한다는 것은 시대착오(時代錯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그러나 교수들은 자신의 존재가치가 어디에 있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교수의 품격은 돈이나 권력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교수의 본업인 교육·연구·봉사에 얼마나 충실한가에 달려있다. 따라서 교수에게 요구되는 ‘딸깍발이 선비정신’을 고리타분한 옛날 얘기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남산골샌님의 고지식함과 절개는 교육자로서 교수가 당연히 가져야 할 자세이다.누구보다도 깨끗하고 공정해야 할 교수들이 돈과 권력의 유혹에 무너진다면 사회정의는 누가 지킬 수 있겠는가? 최고의 지성이라고 할 수 있는 교수들마저 정도(正道)에서 벗어난다면 우리는 더 이상 희망을 말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황금만능주의와 극단적 이기주의가 난무하고 있는 오늘날의 교수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딸깍발이 선비정신’이다.

2019-05-27

무엇을 위한 원로와의 대화인가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사회원로들을 청와대로 초청하여 오찬간담회를 가졌다. 청와대가 원로와의 대화를 앞두고 “국정운영에 대한 조언을 구할 예정”이라고 발표하였던 것처럼, 이번 간담회는 국내외의 어려운 국정현안들에 대한 원로들의 지혜를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원로와의 대화’에서 보여준 인식과 태도는 청와대의 간담회 목적을 의심케 한다. 보수와 진보를 가릴 것 없이 대다수 원로들의 고언(苦言)은 매우 중요한 국정현안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통합·적폐청산·소득주도성장·한일관계 등에 집중되었는데, 이에 대한 대통령의 반응과 수용가능성은 매우 부정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국민통합과 관련하여 대통령은 모두 발언에서 “정치권의 대립과 갈등이 심해지고 그에 따라 국민들 간에 적대감이 높아지는 현상들이 가장 걱정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김우식 전 부총리가 “대통령은 한 계파의 대통령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대통령”이라면서 ‘탕평과 통합’을 강조하였고,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이 “국회가 극한 대결로 치닫는 상황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정국을 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충언(忠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이 웨이(my way)’를 고집하고 있다.“적폐청산 피로증이 심하다”(윤여준)는 지적에 대해서 대통령은 “살아 움직이는 적폐수사는 정부가 통제할 수 없고 통제해서도 안 된다.”고 답변하였다. 과연 그럴까? 적폐청산을 이유로 검찰과 경찰에 철저한 수사를 지시하던 사람이 누구인가. 청와대의 지시로 각 부처에 ‘적폐청산TF’가 만들어졌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대통령은 “적폐청산이 이루어진 다음, 그 성찰 위에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나가자는 데 대해서 공감이 있다면 협치하고 타협할 수 있다.”고 하니 적폐청산과 정치보복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송호근 포스텍 교수는 소득주도성장정책에 대해서 “이 정책은 효과가 없으니 고용주도성장으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하였으나 대통령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게다가 송 교수가 지적한 “노조가 이익집단화 됨으로써 촛불민심이 왜곡되었다”는 뼈아픈 지적은 간담회 내용을 소개한 청와대 대변인의 기자발표문에서 제외됨으로써 그 의도를 의심케 하고 있다.최악의 한일관계에 대해서도 “일본의 국왕이 바뀌었으니 새로운 움직임이 필요하다.”(이종찬 전 국정원장)는 조언에 대해서 대통령은 “일본이 과거 역사에서 비롯된 불행한 문제들(위안부·징용문제)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했다. 한일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일본 못지않게 현 정부도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임을 정말로 모른다는 말인가.이처럼 원로들의 고언에 대해서 대통령은 변명에 급급하거나 답변을 회피하였으며, 일부 날카로운 충고는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에서 아예 삭제되었다. 이 간담회에 참석한 한 원로는 “대통령이 중요한 문제는 바꾸지 않겠다고 하니 걱정”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수용하지도 않을 원로와의 대화는 무엇 때문에 하였는가? 청와대는 비판적 의견들도 경청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정치적 쇼’를 할 필요성이 있었는가?원로와의 대화에서 보여준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은 상당히 우려된다. 문제는 자신에게 있는데도 자신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처럼 말하는 그것이 바로 문제이다. 사회원로들이 고언을 하게 된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대통령이며, 그러한 문제들을 반드시 해결해야 할 책임도 대통령에게 있다. ‘좋은 약은 입에 쓴 법’이니 부디 원로들의 고언을 국정운영에 잘 반영하여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2019-05-13

북·러 정상회담의 국제정치적 의미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권 후 처음으로 러시아를 방문하였다. 북·러 정상회담은 ‘힘(power)’과 ‘국가이익(national interest)’이 지배하는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지난 2월 베트남에서 개최된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됨으로써 북한의 비핵화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시점에서 이루어진 이번 북·러 정상회담은 양국이 상호협력을 통하여 대미협상력을 제고하는 동시에 정치경제적 이익을 공유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힘의 열세에서 초래되는 북·미 협상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우호적인 중국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후원도 절실하다. 북·러 협력의 강화는 북한의 대미협상력을 제고시켜줄 뿐만 아니라, 중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에서 야기되는 문제점을 완화시킬 수 있다. 게다가 러시아는 중국과 함께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적·동시적 비핵화방식을 지지해 왔다는 점에서 북·중·러 3국 공동전선을 구축할 수도 있다. 또한 경제적 차원에서 러시아는 유엔제재로 인한 북한의 경제난 극복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며, 현재 러시아에서 일하고 있는 만 여 명의 외화벌이 노동자들의 체류기간이 연말에 만료됨으로써 초래되는 추방위기를 시급히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한편 러시아의 입장에서 볼 때 김정은의 방문은 한반도문제에 대한 영향력을 제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러시아는 북·미 중심의 비핵화 협상과정에서 중국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북·러 정상회담의 개최를 지속적으로 타진해 왔다. 북한이 중국에 지나치게 편향되는 것은 러시아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러시아는 북한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는 상황이며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대항하여 러시아의 국익을 확대하기 위하여 북한 및 북·미 협상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이 매우 유용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번 북·러 정상회담에서 러시아가 북한의 비핵화에 따른 안전보장을 위해서는 자신을 포함한 ‘6자(남·북·미·중·일·러)회담’과 같은 ‘다자안보체제’가 필요하다고 제안한 것도 바로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이처럼 북·러 정상회담은 ‘힘’과 ‘국가이익’이라는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에 철저히 기초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북한과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일치되는 한 앞으로도 북·미 비핵화협상의 과정에서 양자 간 협력은 물론이고, 북·중·러 3국의 공조도 계속될 것이다.그런데 우리 정부의 외교는 어떠한가? 북한의 비핵화 협상전략을 둘러싸고 한·미 동맹은 균열되고 있고, 한·일 관계는 사상 최악이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과 공조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가 한·미 동맹관계에 있는 우리의 입장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더욱 참담한 것은 현 정부가 집권이후 남북협력에 거의 올인 하다시피 했는데 김정은으로부터 돌아온 것은 ‘오지랖 넓은 중재자’라는 비판이었다. 이처럼 현재 한국의 외교는 ‘사면초가(四面楚歌)’이다. 이것은 현 정부가 힘과 국가이익이 지배하고 있는 국제정치의 본질적 속성을 경시하고 ‘무지개’를 쫓아다닌 결과이다. 북한의 비핵화라는 이상(理想)은 냉혹하고 변화무쌍한 국제정치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 토대를 둔 전략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 끝나고 만다.따라서 이제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를 실질적으로 견인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을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해야 한다. 국제정치의 역사는 어떤 외교도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한 결코 성공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다. 한반도문제의 이해 당사국들은 모두가 현실주의 외교에 혈안이 되어 있는데, 오직 우리 정부만 이상주의에 집착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2019-04-29

청와대의 ‘춘풍추상(春風秋霜)’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청와대의 모든 비서관실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선물한 ‘춘풍추상’이라고 적힌 액자가 걸려 있다. 춘풍추상은 채근담(菜根譚)의 ‘대인춘풍(待人春風) 지기추상(持己秋霜)’에서 나온 말로서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관대하고, 자기를 지키는 데는 가을서리처럼 엄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통령이 비서관들에게 이 액자를 선물한 이유는 자신을 비롯한 모든 청와대 공직자들이 업무수행에 있어서 그러한 자세를 가지자는 것이었음에 틀림없다.그런데 최근 국회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이 주문한 ‘춘풍추상’과는 전혀 다른 ‘말과 행동의 이율배반(二律背反)’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국토교통부장관 후보자는 부동산 투기는 물론 아파트를 딸에게 증여한 후 다시 월세로 살고 있는 사실이 드러나 낙마하게 되었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후보자는 자녀유학자금 문제, 인턴채용 비리, 연구비 부정사용, 부동산 투기 등이 문제되어 역시 낙마하게 되었다. 게다가 헌법재판관이 되겠다는 판사는 자신이 맡은 재판과 관련 있는 기업의 주식에 거액을 투자한 사실이 문제되자 “남편이 한 일로서 나는 몰랐으며, 재판관에 임명되면 매각하겠다”고 했다가 여론이 악화되자 본인과 남편 명의의 주식을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의(義)가 아니라 이(利)’를 위해 살아온 사람들이 공직에 취임한다고 해서 ‘춘풍추상’을 실천할 수 있겠는가?더욱이 통일부장관 후보자는 전현직 대통령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저질 발언과 막말 욕설을 일삼았던 사실이 드러나자 청문회를 통과할 목적으로 “깊이 반성한다.…해당자에게 사과한다.…앞으로 주의하겠다”고 머리를 숙였다. 대학교수라는 사람이 이 지경이니 강단에서 학생들에 대한 교육을 어떻게 하고 있을지는 보지 않아도 삼천리다. 야당이 자질부족이라고 강력히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장관 임명을 강행하였다. 전형적인 코드정치이자 불통정치의 사례이다.이처럼 청와대는 법적·도덕적 정당성이 결여된 사람들을 장관과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하여 큰 파장을 불러일으켜 놓고도 인사검증에 실패한 수석의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 현 정부에서 청문회에 나온 장관 후보자들은 ‘위장전입과 부동산투기, 다주택은 기본조건’이라는 야당과 국민들의 비판을 청와대는 왜 계속 외면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대통령은 ‘춘풍추상’이라는 액자를 비서관실에 장식용으로 선물하였다는 말인가? 청와대 사람들은 ‘춘풍추상’을 걸어놓고 행동은 거꾸로 ‘대인추상(待人秋霜) 지기춘풍(持己春風)’, 즉 요즈음 표현으로 말한다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다.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청와대의 이율배반이 반복되고 있으니 지난 정부의 사례들과 비교해 보아도 ‘역대급’이다.‘대통령의 입’이라고 하는 청와대의 김의겸 전 대변인은 고가부동산 투기의혹으로 결국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기자 시절 “재개발은 가난한 자들을 쫓아내는 것”이라고 강력히 비난하였는데, 청와대에 들어와 권력을 가지면서 전혀 다른 행태를 보였다. 그는 야당이 “당신의 흑석지구 건물구입은 가난한 자들을 보호하는 착한 재개발이었기 때문이었는가?”라는 비난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그의 행위는 ‘내가 하면 정상 매입’이고 ‘남이 하면 부동산 투기’라는 ‘내로남불’의 전형이었다.보통사람들도 언행이 불일치되면 신뢰를 잃게 되는데 하물며 고위공직자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는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대통령의 말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으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고, 그러한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오늘날처럼 ‘내로남불’이 만연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지도자에게 특히 요구되는 덕목은 바로 법적·도덕적 정당성의 토대가 되는‘춘풍추상에 대한 언행일치(言行一致)’이다.

2019-04-15

동맹외교 vs 중재외교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문재인 정부는 ‘한미동맹의 당사자’인 동시에 ‘북미협상의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국제관계에서 하나의 행위자가 ‘동맹외교’와 ‘중재외교’라는 상이한 두 개의 외교정책 목적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가? 이 두 개의 외교정책은 모순되거나 충돌할 가능성은 없는가? 동맹외교와 중재외교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인식하고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이러한 의문들은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북한의 비핵화외교에서 시급히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당면과제들이다.지난 2월말 베트남에서 개최된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우리 정부의 중재외교는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정상회담의 결렬 후 북한 외무성의 최선희 부상은 “한국은 워싱턴의 동맹으로서 중재자가 아니라 플레이어(player)”라고 비판한 바 있다. 또한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전면 철수했다가 3일 만에 일부 복귀한 것도 북미협상을 둘러싼 우리의 중재 역할에 대한 불만의 표시인 동시에, 향후 북미협상의 과정에서 그들의 의사를 제대로 대변하라는 압력이었다.미국 역시 우리 정부의 대북인식과 비핵화 접근방식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서는 강력한 제재가 지속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입장을 무시하고 한국이 북한에 기울어져서 단계적 비핵화 조치에 따른 제재완화를 주장하면서 남북경협을 가속화하려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국제외교무대에서 보여주는 문대통령의 행태가 한미동맹의 당사국으로서 자신과 공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북한의 입장에 동조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이처럼 정부의 중재외교는 북미 양측으로부터 모두 그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북한의 위협에 대처할 목적으로 결성된 한미동맹의 당사자인 한국이 북미협상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은 그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제 정부는 중재외교와 동맹외교가 지니는 의의와 한계를 정확히 분석하고 향후 비핵화 외교전략을 제대로 설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중재외교는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나오도록 설득하고 북미협상을 촉진함으로써 평화적 방법으로 북핵문제를 해결해 나가려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특히 2차 북미정상회담의 결렬 이후 교착상태에 빠진 비핵화협상의 불씨를 다시 살려내는 것이 절실하다는 점에서 중재외교의 필요성은 인정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대통령과의 통화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대화해서 그 결과를 알려주는 등 적극적인 중재역할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사실은 바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재외교가 동맹외교보다 결코 우선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한미동맹은 북핵 위협에 대처하는 국가안보의 초석이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이 현재의 국가안보’를 보장해주는 것이라면, ‘중재외교는 미래의 한반도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미래의 평화구축을 위한 중재외교가 현재의 국가안보를 위한 동맹외교를 위태롭게 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더욱 중요한 것은 강력한 한미동맹의 바탕 위에서 중재외교를 추진할 때 비로소 북한의 비핵화를 견인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은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대미협상력을 제고하기 위해서 중국 및 러시아와의 공조외교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처럼 국제협상의 현실은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한미동맹의 균열은 오히려 우리의 중재외교 역량을 약화시킬 뿐이다. 따라서 한미동맹을 토대로 중재외교를 추진하고 있는 정부로서는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한미 양국의 대북협상 목표가 상충되지 않도록 긴밀한 협의를 통하여 정책조율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 국제협상에서 ‘중재가 실패할 경우에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동맹밖에 없다’는 사실은 냉혹한 세계외교사가 가르쳐주고 있는 교훈이다.

2019-04-01

문재인 대통령의 아세안 순방외교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10일부터 일주일 동안 브루나이·말레이시아·캄보디아 등 3국을 방문하였다. 이번 아세안(ASEAN: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순방외교는 2017년 11월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으로 인도네시아·베트남·필리핀을 방문한 이후 두 번째로서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남방정책’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다.신남방정책은 문 대통령이 인도네시아 방문에서 사람(People)·평화(Peace)·번영(Prosperity) 등 이른바 ‘3P’를 중심으로 인도 및 아세안 회원국들과의 정치적·경제적·전략적 협력관계를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주변 4강 수준으로 높이겠다는 것을 천명한 외교정책 선언이다. 이 정책은 그동안 강대국에 편중된 한국외교의 다변화를 모색함으로써 우리의 외교적 입지를 확대하고 이를 통하여 강대국이 지배하는 국제정치에서 한국의 자율성과 발언권을 제고하고자 하는 것이다.이번 순방은 신남방정책의 지속적 추진을 위한 구체적 실행외교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과거 정부에서도 유사한 정책선언들이 있었으나 지속적인 후속조치들이 미흡했던 반면에, 현 정부에서는 대통령이 신남방정책의 구체적 청사진을 밝힌 후 또 다시 아세안 국가들을 방문하여 협력강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평가할만하다. 또한 올해는 우리가 아세안과 대화관계를 수립한지 30주년을 맞이하여 제3차 ‘한·아세안 특별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 아세안측 대화조정국인 브루나이를 직접 방문하여 사전에 협의하였다는 점도 시의적절한 조치였다.그럼에도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남방정책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여전히 해결해야할 과제들이 적지 않다. 우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신남방정책이 ‘일회성 외교 이벤트’가 아니라 실질적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제도적 장치와 전문가그룹의 역할이다. 이미 신남방정책을 지원하기 위하여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에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가 설치되어 있지만, 이 위원회가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최근 이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던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50, 60대는 댓글 달지 말고 아세안에 가라”는 막말파문으로 경질됨으로써 한 동안 신남방정책의 차질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한 나라의 외교정책은 대통령의 정책선언이나 일회성 순방외교로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과 아세안의 협력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 회담, 즉 외교부를 비롯한 관계부처 각료회의, 고위관료회의 등 실무적 차원의 외교가 지속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양측이 서로 다른 입장과 이해관계를 조율해 나가면서 상생과 번영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전문가그룹의 자문도 절실하다. 게다가 실용성과 중립성이 강한 아세안 국가들과의 대화에 있어서는 이념적·정치적 색채가 강한 사람들보다는 실용주의적 전문가들이 문제해결에 유리하다. 이 점은 이념적 성향이 강한 참모들에 둘러싸여 있는 문 대통령으로서는 특히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나아가 향후 아세안 국가들에 대한 신남방정책은 그 구체적 미래비전이라고 할 수 있는 ‘한·아세안 미래공동체 구상’이 보다 명확한 지향점을 설정하고 상호관계가 양적 성장과 함께 질적 도약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추진되어야 한다. 한·아세안 관계는 지난 30년 동안 양적으로는 크게 성장하였으나 그것이 질적 심화로 연계되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우리의 인식과 접근방법이 그들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아세안의 국제협력은 이른바 ‘아세안 방식(ASEAN way)’, 즉 주권존중, 협의를 통한 합의(consensus), 조용한 외교(quiet diplomacy), 비공식적 접근 등을 중요한 특성으로 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신남방정책의 추진에 있어서도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자세는 성공의 기본이다.

2019-03-18

교수는 무엇으로 사는가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대학교수 38년을 마무리하고 며칠 전 정년퇴임을 하였다. 돌이켜보면 교수의 3대 책무라고 할 수 있는 교육·연구·봉사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고 노력했지만 능력과 덕(德)이 부족하다보니 회한(悔恨) 또한 적지 않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학의 위기상황에서 고군분투(孤軍奮鬪)하고 있는 후배 교수들의 ‘행복하고 가치 있는 교수생활’을 위하여 선험자로서 몇 가지 조언을 드리고 싶다.최근 급속히 악화되고 있는 대학을 둘러싼 환경, 즉 학령인구의 급감, 대학의 구조개혁, 교수연봉제 시행, 기업마인드(mind) 요구, 가중되는 행정업무, 돈과 권력에 대한 유혹 등 교수들의 신분과 품위를 위협하고 있는 요인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따라서 교수로서 당연히 걸어가야 할 정도(正道)로부터 일탈(逸脫)의 위험에 직면에 있는 사람들은 특히 다음과 같은 점들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교수는 무엇으로 사는 존재인가’에 대한 자기 성찰이다. 교수를 둘러싼 교내외적 환경이 악화될수록 자칫 본연의 책무를 잊어버리기 쉽다. 교수는 ‘생업(career)으로서의 교수’가 아니라 ‘천직(vocation)으로서의 교수’가 될 때 비로소 연구·교육·봉사라는 본업에 충실할 수 있다.교수는 돈이나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식과 명예를 먹고 살아가는 존재임을 명심하여야 한다. 학생들에게 삶의 소중한 가치와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 즉 ‘가치와 당위의 문제’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는 먼저 자기 자신부터 ‘올바른 교수관’이 정립되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둘째, ‘정치권력과 일정한 거리두기’, 즉 교수는 권력의 유혹에 무너지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보다 엄격해야 한다. 정치의 계절이 오면 언제나 철새처럼 권력자를 쫓아다니는 폴리페서(polifessor)들, 즉 정치교수들에게서 학생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겠는가?마찬가지로 대학의 총장선거에 개입하거나 각종 보직을 탐하는 ‘캠퍼스 폴리틱스(campus politics)’에도 초연해야 한다. 캠퍼스 밖의 권력이나 캠퍼스 안의 권력이나 ‘권력의 속성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셋째, 교수의 사회봉사는 개인적 영달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발전과 정의구현이라는 공동체의 대의(大義)를 위한 것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교수가 대외적 봉사활동을 수행함에 있어서 객관성을 상실하고 개인적 이익을 고려하거나 특정의 정치성향을 앞세우는 것은 봉사자의 자세가 아니다. 따라서 교수는 사회봉사에 있어서 언제나 ‘공정한 심판자’이자 ‘적극적 관찰자’의 자세를 견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넷째, 힘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아픈 청춘들’, 즉 우리 제자들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명의(名醫)’가 되어야 한다.‘아프면 환자이지 뭐가 청춘이냐’라고 항의하는 제자들에게 청춘의 고통은 인생에서 당연히 겪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위로한다면 설득력이 있겠는가?나아가 교수는 아픈 청춘들의 인기에 영합하여 일시적으로 고통을 잊게 하는 마약과 같은 ‘진통제 처방’을 할 것이 아니라, 병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있도록 정확히 진단, 처방해주는 ‘명의’가 되어야 한다.마지막으로 교수는 가진 자로서 당연히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해야 한다.교수에게는 사회를 이끌어가야 할 지식인으로서 솔선수범(率先垂範)하는 선비정신이 요구되고 있으며, 그것은 결국 ‘행복한 교수’로 거듭나게 해 줄 것이다.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의 노래 ‘마이 웨이(my way)’처럼 교수는 아무리 비바람이 몰아쳐도 당당하게 ‘교수의 길을 교수답게’ 걸어가야 한다.

2019-03-04

한국당, 죽어야 산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한국당 의원들이 벌이고 있는 ‘정치코미디’는 국민에게 웃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짜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아직도 한국당이 자신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는지 유영하 변호사를 통하여 당대표에 출마한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친박이 아니라고 옥중정치를 통해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다. 한국당의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의 ‘5·18 망언’은 한국당을 ‘정신이상자 집단’으로 만들고 있고,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이유로 당대표 경선 연기를 주장했던 후보자들과 당 선거관리위원회의 충돌은 현재 한국당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이러한 한국당의 ‘자해(自害)소동과 정치코미디’에는 공통점은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국민과 당은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정치적 이해득실만을 계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박 전 대통령은 한국당이 누구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정말로 모른다는 말인가? 옥중정치로 당대표 경선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은 당을 두 번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때 국가원수였던 정치지도자로서 그를 선택했던 국민들의 참담한 심경(心境)을 생각한다면 옥중에서라도 최소한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품위는 지킬 줄 알아야 한다.한편 대법원은 이미 5·18에 대해서 ‘전두환 일당의 국헌문란의 내란 행위’라고 최종 판단을 내린 바 있는데, 공당(公黨)인 한국당 의원들이 5·18을 ‘폭동’으로 규정하고 5·18 유공자들을 ‘괴물집단’으로 폄하함으로써 당을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 이들에 대한 제명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고 국민적 비판에 부딪치자 뒤 늦게 당 지도부가 마지못해 사과하는 모습은 한국당의 현실인식이 얼마나 안이한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자해적 행위는 한국당에 대한 ‘보수꼴통’의 이미지를 더욱 심화시킴으로써 최근 상승세를 보이던 당 지지율을 다시 떨어뜨리고 있다. 게다가 당대표 경선에 나온 후보자들과 당 선관위의 갈등도 이해하기 어렵다. 일부 후보자들의 선거 연기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선관위의 설명도 명쾌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자 선거를 보이콧하는 후보자들은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있는가?이처럼 한국당 내부에는‘언제 터질지도 모르는 잠재된 폭탄들’이 많다. 그 이유는 한국당에는 ‘보수’라는 정치이념과는 전혀 상관없는 ‘정치꾼’들이 많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치개혁가 클라크(James F. Clark)는 “정치가(statesman)는 다음 시대의 일을 생각하지만, 정치꾼(politician)은 다음 선거에 대해서 생각한다”고 하였고, 프랑스 전 대통령 퐁피두(G. Pompidou)는 “정치가는 나라를 위해 자신을 바치는 사람을 말하고, 정치꾼은 자신을 위해 나라를 이용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하였다. 한국당에 이러한 정치꾼들이 득세하고 있는 한 국민들의 마음을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재기는 불가능하다.따라서 이제 한국당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유일한 처방은 ‘죽어서 다시 사는 길’이다. 진정한 보수에게는 성실함과 겸손함이 있어야 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한 비전과 전략이 있어야 한다. 국민은 보수에게 걸맞은 품격과 책임지는 정도(正道)정치를 기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나부터 죽겠다’는 각오가 절실한데 모두가 ‘나만은 살겠다’고 아우성이니 한국당의 미래가 암담하다. 누구를 위해서 옥중정치를 하고, 누구를 위해서 5·18을 폄훼하며, 누구를 위해서 당권투쟁을 하는가. 이기적인 정치꾼들이 권력을 가지려고 발악을 하면 할수록 그들의 정치생명은 더욱 단축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왜 정치를 하는가? 한국당 의원들은 ‘정치가’로서의 꿈을 잊어버리고 언젠가부터 ‘정치꾼’이 되어버린 자신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성찰을 통하여 죽어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2019-02-18

권력자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선현(先賢)들은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李下不整冠)”고 하였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남에게 의심받을 행동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누구나 명심하면서 살아야 할 금언(金言)이지만, 특히 정치권력을 가진 국회의원이라면 더 말할 필요가 없다.손혜원 의원의 부적절한 처신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그의 행동이 위법인가의 여부는 검찰에 고발되었으니 수사를 통하여 법원의 판단으로 가려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치권력자의 행동이 ‘법적 정당성’은 물론이고 ‘도덕적 정당성’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만약 권력자의 행위가 위법은 아니었지만 매우 비윤리적인 것이었다면 그의 정치생명은 끝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적지 않은 정치인들이 법원의 무죄 선고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재기하기 어려웠던 것은 이미 도덕적으로 매장되었기 때문이다.목포의 문화재 사랑에 대한 손 의원의 선의(善意) 여부는 본인만이 알고 있기 때문에 확인할 수가 없다. 또한 정치인의 행위가 선의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법을 위반해서는 안 된다. 정치쿠테타의 장본인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국민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그 선의를 역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법적 행위가 합법화되는 것은 아니다. 설사 손 의원의 선의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적지 않은 특권과 영향력을 가진 국회의원으로서 올바른 처신을 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손 의원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여당 간사로서 문체부와 문화재청에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남편 재단의 작품을 피감기관에 판매하였고, 그 재단의 이사를 문화재위원으로 추천하였으며, 국립박물관의 인사에도 압력을 행사한 의혹을 받고 있다.나아가 그가 목포 구도심에 가족·인척·지인의 명의로 사들인 20여 채의 부동산은 이 지역이 근대문화유산 공간으로 지정됨으로써 경제적 이익을 얻게 되었다. 국회 문체위 간사라는 ‘공적 권한’과 본인을 비롯한 친인척의 ‘사적 이익’이 연결되어 있다는 의혹은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손 의원이 주장하는 ‘문화재 사랑’의 진정성은 설득력이 약해진다. 그의 문화재 사랑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이 모든 일들을 ‘사적·비공개적’으로 추진할 것이 아니라 ‘공적·정책적’으로 접근해야 했었다. 권력자의 진정성은 ‘그가 하는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떻게 행동했는가’를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노엄 촘스키는 ‘책임의 윤리’를 논하면서 “책임은 특권에 정비례한다.”고 하였다. 특권이 많은 정치인일수록 그만큼 책임도 무거운 것이다. 모든 권력자는 자신의 특권을 사용한 행위에 대해서는 무한 책임을 져야하며, 그 책임에는 법적 책임은 물론이고 도덕적 책임도 따른다. 만약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는 정치인이 나라의 정신문화 육성을 말한다면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목포 부동산 구입을 계기로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손 의원과 친동생 간의 진실공방을 지켜보아야 하는 국민들의 마음은 참담하다. 어느 쪽이 진실인가를 떠나서 왜 우리는 이런 정치인들의 모습을 자주 보아야 하는가? 한 때 도지사 동생은 ‘형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더니 이제는 국회의원 누나가 “동생의 말을 믿지 말라”고 한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이것은 정치인의 개인적 불행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지켜보아야 하는 모든 국민들의 불행이기도 하다. 개인적 불행도 슬픈 일인데 굳이 국민적 불행으로까지 확산시켜야 속이 시원한가? 누구를 위해서 이렇게 해야 하는가?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내로남불’을 주장하는 데는 뛰어난 언술을 구사하고 있지만, ‘가진 자로서 도덕적 의무’를 실천하는 데는 매우 인색하다. 우리는 언제쯤 품격 있는 정치인들을 만날 수 있을까?

2019-02-07

김정은의 핵외교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국제외교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가 초미의 관심사인데다가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중 및 북미 정상회담이 계속되면서 국제적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김정은의 핵외교는 그의 국제정치적 위상을 제고함으로써 대내적으로는 권력기반을 강화하고 대외적으로는 대미협상력을 증대시키는 이중효과를 거두고 있다.김정은의 핵외교는 북미협상의 ‘후원자로서는 중국’을, 그리고 ‘중재자로서는 한국’을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는 동아시아지역에 대한 미중 패권경쟁뿐만 아니라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을 최대한 이용하여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제고시킴으로써 중국의 지원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 결과 중국은 북미협상에서 양국 동시행동, 즉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제재완화’를 동시에 요구하는 북한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고, 유엔제재의 장기화에 따르는 북한의 경제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은밀한 방법으로 대북지원을 계속하여 왔다.한편 북한은 한국을 북미협상의 중재자로 활용함으로써 외교적 성과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통하여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이를 바탕으로 문재인 정부를 북미협상의 중재자로 나서게 함으로써 북한의 주장을 반영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채널을 확보하였다. 김정은은 지난 해 5월 트럼프 대통령의 전격적인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연기 발표가 있자 긴급히 문 대통령의 중재를 요청함으로써 가까스로 회담이 열릴 수 있었다. 또한 문대통령은 작년 10월 유럽방문 때 비핵화의 단계적 조치에 따른 유엔의 제재완화가 필요하다는 북한의 대변인 역할을 하였다. 김정은의 입장에서 본다면 문재인 정부의 중재외교는 ‘손도 안 대고 코를 푸는 격’이니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우리민족끼리’라는 명분으로 남북관계 개선과 남북경협을 모색함으로써 한미동맹을 균열시키고 경제제재도 극복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외교전략은 없다고 할 것이다. 이처럼 김정은의 비핵화를 명분으로 한 외교는 다차원적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김정은의 핵외교가 한국안보에 미치고 있는 중대한 영향을 경시(輕視)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정은이 북미협상에서 적극 활용하고 있는 미중경쟁과 갈등을 우리가 해소하기는 어려우며, 중국도 역시 미중협상의 과정에서 북핵문제를 최대한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비핵화과정이 결코 녹록치 않을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북핵은 해결되어야 할 일이지만 북한을 절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핵 위협에 대응하는 한미동맹은 균열상을 보이고 있다. 국내적 위기에 몰려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적 입지 강화와 다음 대선을 위하여 북미협상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또한 최근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북미협상과 관련하여 “궁극적으로는 미국 국민의 안전이 목표”라고 한 발언은 동맹국인 한국에 대한 안보 공약을 의심케 한다. 최악의 경우에는 동맹국도 배신할 수 있는 것이 냉혹한 국제정치이다. 마찬가지로 한국도 북미협상에서 중재외교를 자처하고 있으니 미국 역시 한국의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남북관계 개선이 북미협상의 진전 속도를 초과하여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우려와 불만도 적지 않다. 이처럼 한미동맹의 이견이 너무 심하다보니 ‘북핵은 제거가 아니라 동결로 끝날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따라서 이제 정부는 ‘동맹의 당사자인 동시에 협상의 중재자’로서 그동안 추진했던 ‘동맹외교’와 ‘중재외교’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를 냉정하게 분석, 평가하여 향후 외교전략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2019-01-21

김정은의 ‘투 트랙’ 협상전략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새해 첫날에 발표된 김정은의 신년사는 비핵화협상과 관련해 북한이 어떠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그는 미국과 한국을 ‘두 개의 트랙(two track)’으로 분리해 미국에 대해서는 비핵화 이행에 상응하는 제재완화 조치를, 그리고 한국에 대해서는 유엔제재와 관계없이 남북경협의 가속화를 요구하고 나섰다.북미협상과 관련해서는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서 “언제든지 미국 대통령과 마주앉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한편, “미국이 우리의 인내심을 오판하면서 일방적으로 제재와 압박으로 나간다면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을 함께 경고하고 있다. 이는 북미협상의 교착상태를 타개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비핵화 과정에서는 북한이 주장하는 ‘양국 동시행동’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미국이 고수해 온 ‘선(先) 비핵화, 후(後) 제재완화’라는 정책의 변화를 촉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이 고집할 경우 ‘핵·경제 병진노선’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음을 경고하는 ‘강온 양면전략’이다.반면에 남북협상과 관련해서는 한반도 전역에서의 적대관계 해소와 더불어 한미연합훈련 및 미군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의 ‘완전한 중지’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작년 3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방북했을 때 “김 위원장은 한미연합훈련이 연례적이고 방어적 훈련이라는 점을 이해했다”고 밝힌 것과는 다른 태도이다.이러한 북한의 ‘투 트랙 협상전략’은 한미동맹의 균열, 남남갈등의 심화 등 한국안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정부는 치밀한 대응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북핵 위협에 대응하는 한미동맹의 약화 내지 균열의 가능성이다. 중재외교를 자임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북한이 요구하고 있는 제재완화에 동조하거나 남북경협을 가속화하기 위하여 미국의 양보와 협조를 요청할 경우 비핵화 공조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또한 김정은이 요구하고 있는 한미연합훈련의 전면중단에 대한 양국의 입장 차이를 조율해 나가면서 안보위협에 대처해야 한다. 게다가 최근 미국의 중간선거로 하원을 장악하게 된 민주당이 트럼프 대통령의 북핵 협상방식에 대해 제동을 걸고 나와서 향후 북미협상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한편 북한의 비핵화를 둘러싼 남남갈등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정부여당은 김정은의 신년사에 대해서 비핵화 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야당은 실질적인 비핵화에 진전이 없으며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기정사실화 하려는 전략에 불과하다고 혹평한다. 남북경협과 대북지원에 대한 여당과 야당의 커다란 인식차이에다가 김정은의 서울 답방을 둘러싸고 일부 진보단체들의 ‘백두칭송위원회’ 결성과 이에 대한 보수 단체들의 격렬한 비판은 우리사회 남남갈등의 실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이처럼 김정은의 투 트랙 전략은 한미갈등과 남남갈등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는 향후 북핵 협상의 과정에서 한미공조와 국론통일에 각별히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협상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미국은 대북제재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속도조절론’을 피력하고 있고, 북한은 협상의 장기화에 대비하여 ‘자력갱생노선’을 신념화할 것을 또 다시 선동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 정부가 북미협상의 촉진자로서 중재외교를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필요성을 말해주는 동시에 만약 북한의 비핵화가 우리의 의도대로 진전되지 않을 때를 대비한 ‘플랜B’도 함께 강구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국제협상은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으며, 국가안보전략은 이 두 가지 가능성에 모두 대비하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2019-01-10

한국당, 인적 쇄신 제대로 하라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한국의 보수정치를 대표하는 한국당은 과연 회생할 수 있을까. 한국당의 개혁 핵심인 ‘인적 쇄신’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하는 것과같은 한국정치를 염려하는 사람들은 한국당의 재건을 애타게 지켜보고 있다. 그것은 한국당이 좋아서가 아니라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정치현실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권력남용을 막을 수 있고 정치발전도 가능하기 때문이다.그럼에도 최근 한국당의 비대위가 발표한 ‘인적 쇄신안’을 둘러싼 당내 논란을 지켜보면 아직도 제정신을 못 차린 것같다. 전직 두 대통령이 구속 수감되어 있는 데다가 지난 지방선거에서 참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쇄신 같지도 않은 쇄신안’을 놓고 친박과 비박이 싸우는 꼴을 보면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것같다. 한국당 소속의원 112명 전원이 물러나도 모자랄 판에 고작 21명, 그것도 이미 총선 불출마 선언이나 재판 중에 있는 의원들을 제외하면 사실상 6명 정도에 불과한 당협위원장 배제라는 쇄신안을 두고 서로 네 탓을 하고 있으니 말문이 막힌다.그렇다면 한국당의 인적 쇄신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국민의 불신을 초래한 이른바 ‘친박·친이 핵심들’은 스스로 당협위원장에서 사퇴하는 것은 물론이고 총선 불출마도 선언해야 한다. 전직 두 대통령이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는 데도 측근 인사들이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강변한다면 정치도의는 고사하고 그들의 인간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잘못도 반성할 줄 모르는 사람이 국민을 위해서 정치한다고 말한다면 ‘소가 웃을 일’이다.한국당의 환골탈태(換骨奪胎)를 위해서는 ‘전면적인 물갈이’가 필요하다. 현재의 한국당 의원들은 대부분 지난 두 정권과 인연이 있었다는 점에서 ‘부정적 이미지’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따라서 당협위원장의 선출이나 총선 공천에서는 현역의원의 재임용보다는 새로운 인물들을 대거 영입함으로써 흐려진 물을 깨끗하게 정화시켜야 한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고, 썩은 물을 정화해도 마실 수가 없다. 진흙탕 싸움에 익숙해져서 악취풍기는 사람들을 그대로 두면 새로 영입하는 인물들을 오염시킬 뿐이다.그런데 최근 ‘인적 청산의 전권을 요구’했던 전원책 변호사가 김병준 비대위원장과의 갈등으로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위원에서 해촉된 사실은 인적 쇄신의 진정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비대위원장이 위기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위해서 좌고우면(左顧右眄)하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친박의 지지를 받아서 원내대표로 당선된 나경원 의원은 인적 쇄신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면서 당의 단합만을 강조하고 있어서 더욱 우려된다. 지난 잘못에 대한 반성과 청산없이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주장은 병의 원인을 찾아 치료할 생각은 하지 않고 ‘병이 없다’고 진단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돌팔이 의사’를 만나게 되면 ‘병든 한국당’이 일단 마음은 편할지 모르지만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이처럼 당 지도부의 안이한 태도로서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에 빠져 있는 한국당을 구할 수가 없다. 2014년 4월 16일 침몰해가는 ‘세월호’에서 자기만 살겠다고 ‘승객들을 버리고 제일 먼저 탈출했던 선장’ 때문에 더욱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선장은 선장다워야 하고, 정치지도자는 지도자다워야 한다. ‘자기 정치’를 위해서 인적 쇄신을 망설이거나 쇄신의 칼이 다시 자기를 향할까 두려워하는 장수(將帥)라면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모름지기 장수는 충무공 이순신의 가르침, 즉 ‘죽으려고 하면 살 것이요, 살려고 하면 죽을 것(必死卽生, 必生卽死)’이라는 진리를 명심할 일이다. 한국당은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는 각오로 쇄신하지 않으면 더 이상 미래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2018-12-25

대학의 위기, 교수의 위기

▲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대학의 위기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인하여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 압력이 가중되고 있는데다가 무크(MOOC: Massive Open Online Course)와 같은 온라인 강의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됨으로써 교육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또한 오랫동안 등록금 동결로 재정난이 가중되고 있고, 대학 정체성(identity)의 상실, 재단과 총장의 비리, 정치화된 교수들, 입학생들의 수학능력 저하 등 위기의 요인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러한 ‘대학의 위기’는 결국 ‘교수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고, ‘교수의 위기’는 또 다시 ‘대학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대학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할 교수들이 위기에 직면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대학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연구와 교육을 천직으로 알고 교수의 책무를 다해야 할 사람들이 권력 해바라기가 돼 권력자 주변을 기웃거리는 정치교수, 즉 폴리페서(polifessor)로 전락되는가 하면, TV출연에 혈안이 된 ‘예능 지식인들’이 목에 힘을 주고 있다. 학생들의 인기에 영합하는 교수들의 ‘포퓰리즘(populism)’도 문제이고, ‘연구프로젝트’라는 명분으로 지식을 팔아서 돈을 구하는 ‘지식장사꾼들’마저 나타나고 있다. 또한 대학의 총장선거에서 볼 수 있듯이 정치판을 방불케 하는 ‘캠퍼스 폴리틱스(campus politics)’ 역시 우리나라 교수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오죽하면 현직교수가 “대학의 총장 선거판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보면 웬만한 비위 좋은 사람도 구역질이 나오는 것을 참기 어려울 것”이라고 하였겠는가.이처럼 오늘날 교수의 위기는 학령인구의 감소와 대학구조개혁이라는 외부적 요인보다 교수들 자신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 연구자이자 교육자, 그리고 사회봉사자로서 교수가 본업에 충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교수신문의 조사에 따르면 “지식인의 죽음, 대학이 죽었다라고 하는 일부 사회적 시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해서 70.2%의 교수들이 ‘그런 편이다’ 또는 ‘매우 그렇다’라고 대답하였다. 교수들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듯이 지식인으로서 교수들이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사회 변화에 이끌려가고 있는 것이다. 병든 사회를 치료해주어야 할 ‘교수들이 먼저 병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큰 교수사회의 위기라고 하겠다.물론 외풍(外風)에 흔들리지 않고 연구자로서 부끄럽지 않게 밤늦게까지 연구에 몰두하는 한편, 교육자로서 열정적인 강의와 성의있는 학생지도로 본연의 사명을 다하고 있는 교수들도 적지 않다. 혼탁한 사회의 광풍(狂風)에도 꼼짝하지 않고 ‘올곧은 선비의 길’을 고수하고 있는 ‘청정(淸靜)한 교수들’이 우리사회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고지식하고 원칙적인 자세를 견지하는 ‘딸깍발이’ 교수들이 대학에서 점점 더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따라서 대학의 위기가 지속되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는 교수들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수사회의 대오각성(大悟覺醒)이 절실하다. 사회지도층인 교수들이 대학의 위기를 핑계로 본연의 책무에서 벗어나 일탈행위를 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오히려 역설적이지만 현재 당면한 대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교수들은 더욱 더 정도(正道)를 걸어가야 한다.대학을 둘러싼 환경이 아무리 어렵다고 하더라도 교육자인 교수가 정치권력과 돈에 민감하여 ‘좌고우면(左顧右眄)’하면서 정치꾼이나 장사꾼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교수는 돈이나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명예를 먹고 살아가는 사람’이며, 학생들에게 ‘가치와 당위의 문제를 가르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의 ‘최후 보루’라고 할 수 있는 교수들마저 돈과 권력 앞에 허무하게 무너진다면 우리는 더 이상 희망을 이야기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2018-12-18

동맹론 vs 자주론

▲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국정감사장에서 ‘동맹론자’와 ‘자주론자’가 격돌하였다. 한국당의 김무성 의원은 ‘북핵 위협에 대처하는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민주당의 송영길 의원은 ‘한반도문제의 주체로서 자주적 자세’를 역설하였다. 동맹론자는 ‘현재’의 북핵위협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려는 ‘현실주의자’이며, 자주론자는 ‘미래’의 바람직한 남북관계에 역점을 두고 있는 ‘이상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국가안보전략으로서 이 두개의 관점은 각기 장단점이 있다. 현실주의자는 국가안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힘, 즉 ‘국력’임을 명확히 인식시켜준다. 평화는 ‘힘의 균형(balance of power)’에서 유지되는 것이기 때문에 핵무기가 없는 한국이 북한의 핵위협에 대처하는 유일한 방법은 ‘미국의 핵우산’이며 그것을 보장하는 수단이 바로 한미동맹이라는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 역시 강력한 한미동맹과 대북제재가 뒷받침될때 비로소 진전될 수 있다는 인식이다. 다만 한미동맹은 ‘힘의 불균형 동맹’이기 때문에 미국의 지나친 간섭 또는 이익을 위해 우리의 이익이 훼손될 수도 있는 위험성이 수반된다.반면에 이상주의자는 주권국가의 안보전략은 주체적으로 결정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한반도문제 당사자는 한국이기 때문에 우리의 대북정책과 비핵화접근법에 대해 미국은 당연히 존중하고 협력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할 수 있는 것은 지속적 제재가 아니라 협상에 따른 제재완화라고 주장한다. 다만 이상주의자는 ‘비핵국가인 한국’이 ‘핵보유국인 북한’에 독자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는 반면,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선의는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또한 한미 사이에 엄존하는 현저한 ‘힘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국제정치관은 비현실적이다.그렇다면 북한의 핵위협으로부터 우리의 생존을 확보하는 동시에 평화통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떠한 인식과 접근이 필요한가. ‘생존은 현재의 위협’이며 ‘통일은 미래의 과제’다. 미래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현재의 위협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평화통일은 정확한 현실인식을 토대로 모색할 때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 남북한 간의 ‘핵 비대칭성’과 북한의 ‘우리민족끼리 전술’의 의도를 경시하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고 이상을 고집’하는 것이나 다름없다.이러한 이유 때문에 동맹론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생존이 전제되지 않는 통일이란 자유민주주의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권국가로서의 자주성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냉혹한 국제정치에서는 힘이 없으면 지켜지기 어렵다. 만약 우리에게 힘이 있었다면 1950년 북한의 남침을 유엔군의 도움없이 독자적으로 격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현재의 한미동맹은 그 연장선에 있음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당연히 자주국방을 희망하지만 북한의 핵위협에 독자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겪으면서 평화를 염원했던 미국의 이상주의자 윌슨(W. Wilson) 대통령은 국제연맹(LN)을 제창했으나 현실주의자들이 지배하고 있는 상원의 비준 거부로 가입하지 못했다. 그는 현실을 외면하고 이상만 추구함으로써 ‘자기모순(自己矛盾)’을 범했던 것이다. 국제연합(UN)에서도 안전보장이사회의 5대 상임이사국에게 ‘거부권(veto power)이라는 특권’을 주고 있는 것도 그들이 세계평화를 책임질 수 있는 ‘5대 핵강국’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제정치에서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이상만 추구한다면 그것은 결국 실현될 수 없는 공상(空想), 즉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 끝나고만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2018-12-04

북핵 협상의 장기화에 대비해야

▲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북미협상이 상당히 장기화되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무산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증대되고 있다. 미국과 북한은 비핵화의 절차와 방법을 둘러싸고 한 치의 양보가 없다. 북한은 고위급 또는 실무회담에서 ‘대북제재 완화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미국은 ‘선 비핵화 후 제재해제’에서 물러서지 않으려 한다. 양국은 ‘비핵화 조치’와 ‘제재완화 및 안전보장’에 대한 이견(異見)을 좁히지 못하여 결국 지난 8일 뉴욕에서 열기로 발표되었던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의 고위급회담이 연기됐다.북미협상이 지지부진하자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핵실험을 하지 않는한 협상이 오래 걸려도 상관없다”고 하면서 협상의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음을 여러 차례 밝히고 있다. 북한 역시 중국 및 러시아와의 전통적인 협력관계를 복원하여 협상력을 제고함으로써 미국과의 장기전에 대처하고 있다. 북한은 이른바 ‘살라미 전술(salami tactics)’로서 협상을 오래 끌면서 파키스탄이나 이스라엘처럼 사실상 핵보유국임을 인정받으려 한다는 우려가 증대되고 있다.이처럼 북미협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상당히 우려되는 상황들이 발생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비핵화를 공동노력으로 견인해야 할 ‘한미공조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남북협력’은 미국이 공들이고 있는 ‘북미협상’보다 앞서나감으로써 한미동맹이 삐꺽거리고 있다는 사실은 ‘불편한 진실’이다. 또한 정부의 중재외교는 ‘잘하면 술이 석 잔이고, 잘못하면 뺨이 석 대’이다. 만약 중재외교가 실패할 경우에는 동맹국도 잃어버리고 국가안보도 위험에 빠뜨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 이 점은 북핵 ‘위협의 당사자인 한국’이 ‘제3자적 입장의 중재외교’를 추진함에 있어서 항상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북미협상의 장기화는 방위력과 안보의식의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 북한의 비핵화과정에는 실질적으로 아무런 진전이 없고 여전히 갈 길이 아득한데,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으로 인한 화해무드로 마치 한반도에 평화가 온 것처럼 ‘평화의 착시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 협상은 이제 시작단계에 불과한데 벌써 일부 언론에서는 곧 통일이나 될 것처럼 북한에 대한 투자와 관광을 보도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 13개 진보단체들은 ‘백두칭송위원회’를 결성하고 서울의 한 복판인 광화문에서 ‘김정은 만세’를 외치고 있다. 나라의 안보를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그렇다면 우리는 북핵협상의 장기화가 초래하고 있는 부작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그 핵심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반드시 이루어지도록 우리의 외교역량을 발휘하는 한편, 만약 협상이 실패할 경우에 대비해서 국방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데 있다. 중재자를 자임하고 있는 정부는 북미협상의 교착상태를 조속히 타개해 협상이 추동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양측에 설득력 있는 협상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정부는 협상이 장기화되면서 제기되고 있는 다양한 대내외적 갈등요인들을 잘 관리할 수 있는 대책도 함께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중재외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핵화 협상이 실패로 끝날 경우에도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협상의 실패’란 북미간의 ‘비핵화협상 자체가 결렬’될 경우 뿐만 아니라, 협상이 북핵의 ‘폐기가 아니라 동결로 타결’될 경우를 의미한다. 이 둘 중에 협상이 어느 쪽으로 끝나도 우리는 북핵의 인질이 됨으로써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비핵화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서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2018-11-13

의원님! ‘관광’이 아니라 ‘연수’입니다

▲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청명한 하늘이 유혹하는 여행의 계절, 가을이다. 이 좋은 계절에 의원님들이라고 해서 여행하는 것이 문제될 것은 없다. 다만 공무를 위한 ‘해외연수’라는 이름으로 시민의 혈세를 쓰면서 ‘해외관광’을 하고 있으니 문제이다. 바야흐로 전국의 지방의회 의원님들이 연수라는 명분으로 서로 앞다퉈 해외로 나가고 있으니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다.지방의원들의 ‘외유성 해외연수’에 대한 비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 필자는 대구의 한 기초의회가 추진하고 있는 해외연수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는데, 제출된 연수계획서를 살펴본 결과 문제점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심사위원들은 장시간 토론 끝에 당초의 연수계획을 연수목적에 맞게 완전히 수정해 시행함은 물론, 연수가 종료된 후에 ‘결과보고서’의 제출과 함께 반드시 ‘연수보고회’를 개최하는 조건으로 통과시켜 줬다.이처럼 지방의원들의 해외연수는 계획수립, 내용심사, 연수실시, 결과보고 등 전반적인 과정에서 모두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다. 의원들이 연수계획의 수립과정에서 연수목적의 달성에 필수적인 충분한 연구와 준비가 없으니 연수는 형식화되고 관광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심사위원회가 내용을 심사하는 과정에 연수 당사자인 의원들이 참여하는 것은 심사의 공정성을 저해하는 것이며, 연수 후에는 ‘형식적인 결과보고서’만 제출할 뿐 ‘실질적인 연수보고회’가 없다는 사실은 주민의 감시를 받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물론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가치있는 해외연수를 다녀온 의원도 없지 않다. 지난 해 대전시의회의 김동섭 의원은 동행하는 연수단과 함께 수차의 협의회를 통해 사전에 연수준비를 직접 했을 뿐만 아니라, 연수단이 5명 이하로서 심사제외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연수계획서의 심사를 자청했다. 또한 해외연수에 관행화돼 있는 의회사무처 소속 공무원의 동행도 없었으며, 연수결과를 3개 분야 120쪽 분량의 보고서를 만들어서 연수보고회까지 열었다. 이는 매우 모범적인 해외연수사례로서 지방의회의 발전에 대한 함의가 크다.따라서 지방의원들의 해외연수가 그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의원 자신의 해외연수에 대한 분명한 자각이 절실하다.주민의 봉사자를 자처해서 당선된 지방의원들이 당선 후에는 주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파렴치한(破廉恥漢)이 돼서야 되겠는가? 의원들은 연수목적을 충분히 인식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전에 철저히 준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해외연수는 계획의 수립단계에서부터 방문기관의 접촉이나 방문국 관계자와의 공동회의 등과 관련하여 전문가의 자문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그러나 지금까지의 해외연수 실태를 볼 때 지방의원들에게 이러한 노력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따라서 지방의원들의 바람직한 해외연수를 위해서는 ‘법적, 제도적 장치’의 강구와 함께 ‘지속적인 감시’가 이뤄져야 한다. 제도적 장치로서는 의원들의 외유성 연수가 불가능하도록 조례를 개정하는 한편, 해외연수 심사위원회의 구성에서 의원은 배제돼야 하며, 연수 후에는 반드시 ‘주민을 대상으로 한 연수결과보고회’의 개최를 의무화해야 한다. 또한 지방권력의 부패를 막을 수 있는 감시자로서 ‘언론과 시민단체의 역할’도 중요하다. 주민들의 정치적 관심은 대부분 ‘중앙권력’에 집중되고 있어서 ‘지방권력’에 대한 상대적 무관심이 지방의원들의 부패행위를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점에서 지역주민의 여론을 대변하고 지방의원들의 부정부패를 감시하는 언론과 시민단체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2018-10-31

한미공조의 균열에 대한 우려

▲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정부의 대북정책에서 협력해야 할 가장 중요한 국가는 한미동맹과 북미협상의 당사자인 미국이다. 북한의 핵위협에 공동으로 대처하고 있는 한국과 미국은 북핵 폐기에 공동이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미공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북미협상의 중재자를 자임하고 있는 한국이 협상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미국과의 공조가 원활하지 못하면 북한의 비핵화를 효율적으로 견인해 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태를 볼 때 한미공조의 균열이 우려된다. 미국 폼페이오(M. Pompeo) 국무장관이 남북정상회담에서 채택된 군사분야 합의사항들이 미국과 사전협의가 없었음에 격분하면서 항의하였다는 사실이 국정감사에서 밝혀졌다. 또한 폼페이오의 북한 방문을 앞두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북한에 대해 핵무기 보유목록 제출(핵신고) 요구를 보류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한국의 외교장관이 북한의 논리로 미국을 압박한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이뿐만 아니다. 강 장관은 국감에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의원의 질의에 대해 ‘5·24 조치를 해제하는 문제를 관계 부처와 검토 중’이라고 답변해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정부의 입장이 미국에 알려지자 즉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은 우리의 승인(approval) 없이는 대북제재 해제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승인’이라는 거친 표현을 세 번이나 반복했다. 트럼프의 발언은 주권국가에 대한 ‘외교적 결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강도 높은 것이었다. 이렇게 미국의 비판이 일어나자 다음 날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5·24 조치의 해제를 검토한 적이 없다”고 하면서 외교부 장관의 발언을 하룻만에 뒤집었다.이처럼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한국이 남북관계개선을 서두르는 것을 마땅찮게 여기고 있다. 갈루치(Robert L. Gallucci) 전 미 국무부 북핵특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이 바라는 속도보다 더 빨리 북한과 일을 진행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는 것이 우려스럽다”고 하면서 “한국과 북한이 이루는 진전은 한미동맹관계에 균열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역시 같은 맥락에서 피츠패트릭(M. Fitzpatrick) 전 미 국무부 비확산담당 부차관보는 “대북제재 틀 안에서 한국정부가 할 수 있는 대북경협사업은 극히 제한적”이라고 하면서 “제재를 위반하면서까지 북한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은 실책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물론 한국과 미국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에서 일치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양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기 위한 방법론에 있어서도 이견(異見)이 존재할 수 있다. 한국은 남북관계 개선을 통하여 비핵화를 견인하고자 하는 반면, 미국은 제재와 압박을 유지해야 비핵화를 이룰 수 있다는 입장이다.따라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한미 간 협의와 소통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한미공조에 문제가 생기면 북한은 그 틈새를 파고들 것이다. 최근 북한의 대남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판문점선언을 이행하는 데서 그 누구의 눈치를 보아서는 안 되며 모든 문제를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풀어나가야 한다”고 한미공조의 균열을 겨냥하고 있다. 또한 북한은 협상력을 높이기 위하여 북·중·러 3국 공조를 강화하고 있다. 김정은은 이미 세 차례나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의 지원을 확보했으며, 3국은 러시아에서 차관급 외교회담을 통해서 대북제재 완화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미공조의 균열이 계속된다면 북한의 비핵화는 물 건너간다.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8-10-17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위하여

▲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우리는 초등학교에서부터 민주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민주주의 교육을 받아 왔다. 민주주의에서 ‘다수결원칙’의 전제가 되고 있는 ‘대화와 타협’은 민주시민이 반드시 지켜야 할 덕목이라고 배웠다. 다수결원칙은 단순히 다수 의사에 따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견(異見)과 갈등을 민주주의 공동체의 가치로 조정, 통합해 나가는데 그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구성원들의 다양한 가치관을 존중하며 이해관계의 차이를 인정한다. 따라서 대화를 통해 인식의 차이를 좁히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설득과 타협은 절차적 민주주의의 필수과정이다. 반면에 독제체제에서는 오직 하나의 가치관을 절대화하기 때문에 대화와 타협이란 존재할 수가 없다. 민주주의는 ‘상대성’을 가진 사람들의 공동체이지만, 독제체제에서는 신격화된 인간의 ‘절대성’, 즉 절대권력자에 대한 복종만 강요될 뿐이다. 그런데 민주시민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성장하면서 점차 혼란에 빠진다. 학교에서 배운 민주정치는 대화와 타협인데, 정치현실에서 정치인들은 ‘내로남불’의 ‘흑백논리’로 날을 세우고 있으니 말이다. 이미 한국 정치문화의 폐단이 되어버린 ‘승자독식(勝者獨食)’과 ‘승자의 일방통행’은 공동체의 대의를 위한 대화와 타협을 불가능하게 하고 패자(敗者)의 저항만을 부추기고 있을 뿐이다.한국정치의 비민주성은 정치인들이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강변하는 오류에서 비롯되고 있다. 보수 또는 진보라는 ‘프레임(frame)에 갇혀있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주장이 나의 견해와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것’이라고 비판한다. 진보주의자는 보수주의자를 통일반대 세력으로 매도하고, 보수주의자는 진보주의자들을 친북 세력이라고 비난하면서 서로 상대방의 주장에는 귀를 막는다. 노란색 안경을 낀 사람이 초록색 안경을 낀 사람에게 세상은 노란색인데 당신은 초록색이라고 하니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안경을 서로 바꾸어서 사용해 보는 것, 즉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이다.흑백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극단적 대결의 한국 정치풍토에서 대화와 타협을 주장하는 통합론자는 자칫 회색분자 내지 기회주의자로 낙인찍힐 수 있다. 이러한 풍토는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과연 당신은 천사이고 나는 악마인가? 파스칼(Pascal)이 갈파하였듯이 ‘인간은 천사도 아니고 야수도 아닌 중간적 존재’임을 명심할 일이다. 우리가 중간적 존재로서 보수와 진보의 장점을 수렴하고 그 단점들을 배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한국정치는 선진화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 ‘국가안보를 염려하는 보수’와 ‘남북대화를 강조하는 진보’가 허심탄회하게 대화와 협력을 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확고한 안보의 바탕 위에서 통일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한국정치에서 대화와 타협이 가능하려면 무엇보다도 정치권력을 가진 자의 솔선수범이 필요하다. 이는 보다 ‘큰 권력을 가진 정부여당’이 상대적으로 ‘작은 권력을 가진 야당’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우리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opinion leader)’라고 할 수 있는 언론인이나 교수 등 지식인들은 한국정치의 선진화를 위하여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 조성에 앞장서야 한다. 다만 이 경우에도 보수나 진보에 편향된 보도 자세를 취하는 ‘외눈박이 언론’이나 특정 정당에 밀착된 권력지향성이 강한 ‘폴리페서(polifessor)’들은 그러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가 없다. 그것은 오직 특정 이념이나 정파에 치우치지 않고 언제나 자유롭게 ‘경계선(境界線)에 설 수 있는 균형감을 잃지 않는 사람’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다.

2018-10-10

남북회담과 남남갈등

▲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1년4개월동안 벌써 세 번째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다. 한반도 평화정착에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정상회담을 할 수 있으며 또한 그렇게 해야 한다. 국가의 명운을 결정하게 될 북핵 폐기를 위해서 분투(奮鬪)하고 있는 정부에 대해서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그러나 정부의 대북정책과 남북회담이 성공하려면 반드시 국민적 합의를 기반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미동맹의 균열이나 남남갈등은 정책의 추동력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북한의 ‘우리민족끼리’라는 통일전선전략에 악용될 수도 있다. 특히 남북회담에 있어서는 한미동맹의 균열보다 ‘남남갈등’이 더욱 위험하다. 한미갈등은 기본적으로 양국의 이해관계 차이에서 비롯되고 있지만, 남남갈등은 통일의 주체인 국민들의 북한정권에 대한 인식·이념·전략의 차이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5월 10일 취임식에서 “오늘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또한 국정운영의 동반자인 ‘야당과의 협치’를 강조하면서 보수와 진보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하여 대통령이 직접 나서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처럼 문대통령의 초심(初心)은 남남갈등을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이루겠다는 것이었음이 분명하다.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대통령이 취임한지 아직 1년 남짓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초심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지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국민의 생존에 직결되어 있는 대북정책과 남북대화에 대한 청와대의 행태는 철저히 일방통행이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대북정책을 둘러싼 남남갈등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야당 및 보수진영과의 협의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최근 청와대는 3차 남북정상회담에 야당대표와 국회의장단의 동행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야당과는 사전에 아무런 협의도 없이 비서실장을 통해서 갑자기 발표한 것은 진정성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야당을 ‘평화반대세력’으로 몰고 여당지지층을 결집시키려는 ‘꼼수’에 지나지 않았다는 비판을 피할 수가 없다. 오죽하면 여당출신인 문희상 국회의장까지도 “청와대가 무례하다”고 비판하면서 국회의장단의 동행을 거절하였겠는가? 청와대의 일방적 발표는 진정성을 가지고 야당을 국정의 동반자로서 인정하고 협력을 구하는 자세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다음 날 또 다시 국회와 야당을 향해 “민족사적 대의 앞에 당리당략(黨利黨略)을 거두어 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야당의 거절을 ‘당리당략’이라고 비판하면서 동참할 것을 계속 압박한 것이다. 이는 야당과 협치를 하겠다는 자세가 아니며 또 다른 정략(政略)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남남갈등의 극복은 남북대화의 성공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함께 살고 있는 보수와 진보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면서 이념과 체제가 다른 남북한 간의 갈등을 해결하겠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남북대화에는 적극적이면서도 남남대화에는 소극적인 청와대를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정권의 코드와 색깔만을 고집하면 안 된다. ‘남남통일’은 ‘남북통일’의 초석(礎石)이기 때문이다.임시정부를 이끌었던 백범(白凡)이 분열된 독립운동단체들의 연대와 좌우익의 통합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던 것처럼, 문대통령은 초심을 잃지 말고 보수와 진보의 대화, 여당과 야당의 협치를 위해 진정성 있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독일의 통일도 서독 내부의 합의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다.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8-09-19

‘외교 포퓰리즘’의 시대

▲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정치지도자들이 국민의 단기적·일시적 이익에 편승하는 대중영합주의, 즉 포퓰리즘(populism)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포퓰리즘은 국내정치 뿐만 아니라 외교정책에서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외교는 내정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슬로건 아래 중국 및 유럽동맹국들과 무역전쟁을 벌이는가 하면, 중간선거 승리를 겨냥해 북한과의 비핵화협상을 계속하고 있다. 영국은 ‘브렉시트(Brexit)’ 지지자들이 요구하는 ‘영국의 통제권을 되찾자’는 요구에 편승하여 유럽연합(EU)을 탈퇴하였으며, 이탈리아의 ‘오성운동’을 비롯하여 그리스 체코 헝가리 폴란드에서 포퓰리즘 정당들이 집권하였다는 사실은 오늘의 국제정치를 잘 말해주고 있다.이처럼 ‘외교 포퓰리즘’은 대중에 영합하여 국익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주의보다는 국수주의, 자유주의보다는 보호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다.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하는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는 바로 이것을 증명한다. 또한 정치지도자가 추구하는 외교 포퓰리즘은 결국 자신에 대한 정치적 지지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과 연계되어 있다.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유권자의 요구에 대한 수용은 곧 득표와 연결되고 선거에서의 승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물론 정치지도자는 유권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다만 그 요구가 이해관계 당사국과 갈등을 일으켜서 장기적으로 국익의 손실을 초래할 경우가 문제다. 더욱이 유권자의 요구에 편승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정치인의 개인적 이익보다 국익의 손실이 더 클 경우에는 당연히 그 요구를 거절하는 이유를 국민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할 것이다.만약 외교부장관이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정치적·단기적 이익과 국가적·장기적 이익 사이에서 좌고우면(左顧右眄)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이와 관련해 지난 5월에 출범한 외교부 산하 ‘국민외교센터’의 기능과 역할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국민외교는 외교정책의 결정과정에 국민이 외교주체로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외교 민주화(democratization of diplomacy)’의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외교정책에 대한 정부의 일방적 홍보가 아닌 국민과 정부 간의 쌍방향 소통으로 정책수립과 집행에 절차적 정당성을 제고할 수 있다. 이처럼 국민외교는 공공외교가 더욱 중요해진 국제환경의 변화에 따라 엘리트외교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그렇지만 국민외교에는 한계와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외교는 매우 전문적인 영역이고 민감한 이슈들을 다루기 때문에 비전문가인 일반 국민들의 외교현안에 대한 인식과 평가를 그대로 정책에 반영할 수는 없다. 게다가 외교협상의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국가이익이지 국민 상호간에 갈등을 겪고 있는 개인적·집단적 이익이 아니다. 더욱이 민감한 외교현안일수록 국민들이 협상과정에 개입할 경우 오히려 협상의 입지를 약화시키거나 어렵게 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나아가 국민외교는 정치적으로 이용될 경우 ‘포퓰리즘 외교’로 변질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정치지도자는 외교적 수단을 활용하여 자신의 국내정치기반을 강화하기 위하여 여론에 편승하려는 유혹을 받을 수 있다. 또한 국민여론을 동원한 포퓰리즘 외교가 상대국의 그것과 충돌할 경우에는 국가 간 대립과 갈등을 심화시켜서 파국을 초래할 수도 있다. 따라서 정치지도자는 외교 포퓰리즘의 역효과를 항상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2018-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