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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아프간의 비극이 한국에 주는 교훈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아프간의 수도 카불이 탈레반에 함락됐다. 시민들은 패닉에 빠져 공항으로 달려갔고, 아수라장이 된 군중 속에서 두 살 아기는 압사하고, 미군 수송기에 매달렸던 청년들은 모두 추락사했다. “아기라도 살려 달라”고 철조망 위로 자식을 건네는 엄마의 모습이 눈물겹다. 게다가 IS의 자폭테러로 수백 명이 사상했다. 아비규환(阿鼻叫喚)이 된 카불의 비극이다.누구를 탓하랴. 자업자득(自業自得)이었다. 허울뿐인 30만 정부군이 6만 탈레반에게 백기 투항했다. 결사 항전하겠다던 대통령은 국민을 버리고 참모들과 함께 해외로 도주했고, 그의 동생은 탈레반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대통령부터 콩가루 집안인데 누가 나라를 지킬 수 있겠는가? 바이든 대통령이 “아프간 정부가 미래를 결정할 기회를 줬는데도 그들은 스스로 포기했다.”고 한 이유다.아프간 사태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확고한 현실주의 안보전략이다. 국제정치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 국가안보의 최선은 ‘자신의 힘’이며, 차선은 ‘동맹의 힘’이다. 하지만 동맹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도와줄 뿐이다. 바이든은 “아프간정부가 포기한 전쟁에서 미군이 희생돼선 안 된다.”고 하면서 “국익이 없는 곳에 계속 머무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했다. 비록 동맹이라도 스스로 지키려는 의지가 없거나, 동맹의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철수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따라서 한미동맹도 ‘미국우선주의’와 충돌되지 않도록 잘 관리되어야 한다.나아가 정치지도자에게는 ‘솔선수범’의 교훈을 준다. 전시에 영국은 지도층이 제일 먼저 전장으로 달려갔지만, 아프간은 대통령이 제일 먼저 도망갔다. 한국의 지도자들은 어떤가? 국정을 책임진 정부여당이 ‘내로남불’과 ‘흑백논리’로 국민을 분열시키는 것은 망국의 길이 아닌가? 무엇이 잘못되면 ‘내 탓이 아니라 네 탓’이라고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들이 지도자 자격이 있는가? 여당의 전 대표가 “윗물은 맑은데 아랫물이 흐리다.”고 한 궤변을 보면 ‘솔선수범’이 무엇인지를 알 리가 없다.국민에게 주는 교훈도 적지 않다. 민주공화국의 흥망은 권력 주체인 국민에게 달려있다. 도산 안창호는 “나라를 망하게 한 것은 일본도 아니요, 이완용도 아니요, 바로 나 자신”이라고 했다. 확고한 주인의식의 발로다. 국민이 항상 깨어 있어야 아프간 같은 비극을 막을 수 있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외침은 자유의 향유에 수반하는 국민의 책임과 희생을 일깨워 준다.아프간의 비극은 1975년 베트남 비극과 판박이다. 두 나라는 똑 같이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한 후 미군이 철수하자 붕괴했다. 6·25때 흥남철수와 카불의 난민철수도 다르지 않다. 북한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평화협정과 미군철수의 의도가 이제 명백해졌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던가? 오늘의 비극은 어제의 역사를 망각한 대가다. 우리의 내일을 위해 아프간의 비극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2021-09-06

대선 주자들, ‘부동산 블루’에 응답하라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부동산공화국에 살고 있는 서민들은 집값 폭등으로 ‘벼락거지’가 되었다. 손 놓고 앉아 있을 수 없어서 ‘영끌’과 ‘빚투’로 집을 샀지만, ‘빚 폭탄’을 안고 있으니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청춘들은 평생 빚 갚다가 인생 끝나게 되었으니 ‘이생망’이라고 한탄한다. ‘부동산 블루(우울증)’가 덮친 대한민국의 민낯이다.나라꼴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무능한 정권의 오판과 오기가 주범이다. 집값 잡는다고 26차례나 내놓은 부동산 대책은 모두가 ‘사람 잡는 실책들’이었다. 인간본성과 시장논리에 대한 진단이 잘못되었으니 처방이 제대로 나올 수가 없었다.정권이 저질러놓은 잘못은 고스란히 국민의 고통이 되어 돌아왔다. 대출상환의 부담 때문에 출산까지 미루고, 위험한 줄 알면서도 가상화폐와 같은 투전판에 뛰어들어 아슬아슬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심지어 아파트 매입문제로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참극까지 벌어졌다.온 나라가 부동산 블루를 앓고 있으니 대선의 최대 이슈는 집값 안정이다. 하지만 후보들은 유권자의 표심을 잡으려고 실효성 없는 포퓰리즘 정책들을 남발하고 있다. 부동산 규제가 문제라고 진단하는 후보는 공급확대와 세금완화를 주장하고, 투기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후보는 투기규제와 세금강화를 역설한다. 이는 프리드먼(M. Friedman)이 지적한 ‘샤워실의 바보(a fool in the shower room)’현상이다. 부동산 정책의 중심을 잡지 못한 채 급격하게 냉·온탕(규제와 공급)을 반복해서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이제는 정치지도자의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부동산을 많이 가진 것이 고통이 되게 하겠다”고 했던 것처럼, 부동산 문제는 보수나 진보의 이념문제가 아니다. 후보들은 각자의 대책을 제시하고 상호검증을 통해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특히 집값 안정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이슈, 즉 ‘공급확대’와 ‘투기규제’ 그리고 ‘지방발전’이 정책경쟁의 핵심이다.공급확대와 투기규제는 동전의 양면이다. 공급확대는 부지확보와 재원조달방안이 핵심이며, 투기규제는 실수요자 보호를 위해 필수적이다. 특히 후보들은 투기규제의 가장 강력한 수단인 ‘보유세 인상’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혀야 한다. 또한 공급확대는 지방발전과 연계되어 있으며, 지역균형발전을 통해 수도권에 집중된 주택수요를 분산시킬 수 있다. 서울공화국을 해체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을 지방 거점도시로 분산시켜야 한다. 대선 주자들이 수도권 유권자들의 표심을 의식하여 국가균형발전의 당위성을 회피하면서 부동산 블루를 해결하겠다고 한다면 ‘소가 웃을 일’이다.부동산공화국은 ‘존재가치’가 아니라 ‘소유가치’를 추구하는 나라다. ‘꿈’을 쫓는 사람은 어리석고 ‘돈’을 쫓는 사람이 똑똑하다고 평가받는 이 부동산 광풍(狂風)의 나라에 정말로 희망은 없는가? 국정을 책임지겠다는 대선 주자들은 이 엄중한 물음에 반드시 분명한 응답이 있어야 한다.

2021-08-23

과학방역인가, 정치방역인가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방역은 ‘정치’가 아니라 ‘과학’이다. 정치가 과학을 지배, 통제하면 방역은 실패한다. 인간은 정치권력을 두려워하지만 바이러스는 영국 수상도 감염시켰다. 과학이 말해주는 방역에 정치논리가 개입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물론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정치가 해야 할 역할은 중요하다. 외교를 통해서 충분한 백신을 확보하여 조기에 집단면역을 달성하고,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델타 변이에도 효율적으로 대응하며, 집합금지와 제한으로 경제적 고통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과 사회적 약자들을 보살펴야 한다. 성공적인 방역은 정치와 과학의 유기적 협력에서 나온다. 이 과정에서 ‘정치가 과학을 지원하는 과학방역’인가, 아니면 ‘정치가 과학을 통제, 악용하는 정치방역’인가는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문재인 정부의 방역정책은 정치적이라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감염의 위험이 크고 바이러스 변이가 거듭될수록 정치적 판단을 삼가고 과학적 접근을 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전문가와 의료인들의 변이바이러스 확산 경고에도 불구하고 방역을 완화함으로써 4차 대유행을 촉발시켰다. 당황한 정부는 방역을 최고단계로 높이고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대한 통제를 더욱 강화했다. 과학적 합리성이 결여된 정치적 판단이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더 큰 희생을 강요한 것이다. 정부의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한 전형적인 정치방역이었다.방역 컨트롤타워인 청와대의 방역기획관에 코드 인사를 강행함으로써 정치방역의 의혹은 더욱 커졌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국립암센터의 기모란 교수(암관리학)를 임명한 것은 코로나 방역이 아니라 청와대 방어를 위한 것이었다. 기 교수는 청와대 입성 전부터 정부가 의학적·과학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방역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정권을 방어했던 정치교수(polifessor)였다. 컨트롤타워가 정치성이 강하면 ‘사실(fact)’에 입각한 과학방역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최선의 방역은 신뢰다. 과학적 근거가 없는 차별적 영업제한이나 형평성을 상실한 방역조치는 신뢰를 떨어뜨린다. 보수단체의 집회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재를 가하면서 진보단체에 대해서는 소극적 대응을 하는 것은 정치방역이다. 시민들의 인내와 희생으로 이루어낸 K방역의 성과를 정권홍보에 이용하는 정치방역은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문 대통령이 교회지도자와의 간담회에서 “방역은 신앙의 영역이 아니고 과학과 의학의 영역”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대통령 자신도 “방역은 정치의 영역이 아니라 과학과 의학의 영역”임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의 생명을 좌우하는 방역만큼은 정치논리가 개입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정치가 방역에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은 백신확보와 민생지원이다. 이스라엘은 변이 바이러스에 대응하여 이미 ‘부스터 샷(3차 접종)’을 시작했는데, 우리는 아직 1, 2차 접종도 지지부진하다. 국민의 삶은 무너지고 있는데 국정을 책임진 정권이 대선 승리에 혈안이 되어 정치방역을 해서야 되겠는가?

2021-08-09

진흙탕 대선레이스, 국민이 두 눈 부릅떠야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정치인들의 고질병이 재발했다. 대선이 다가오면서 진흙탕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건전한 후보검증이 아니라 폭로와 인신공격, 중상모략과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있다. 대선레이스가 ‘아사리판’이다.국민에게 비전과 희망을 주는 정책경쟁은 하지 않고, 자극적이며 천박한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이고 있다. 여당후보는 유력한 야권후보 부인이 유흥업소에서 일했다는 이른바 ‘쥴리’의혹을 제기하는가 하면, 어떤 후보는 국민이 지켜보는 토론회에서 “바지를 한 번 더 내릴까요?”라고 한다. 혐오스런 저질 흥신소의 수준이 바로 지금 우리가 지켜보고 있는 대통령하겠다는 사람들의 모습이다.게다가 권력을 잡을 수만 있다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대선 때마다 후보들은 포퓰리즘(populism)과 감언이설(甘言利說)로 유권자들을 속였다. 정의의 사도처럼 행세한 그가 바로 두 얼굴을 가진 악마였다. 집값을 반드시 잡겠다고 약속한 정권의 말을 믿었던 서민들은 ‘벼락거지’가 되고 말았다. 오직 대권을 잡기 위한 ‘권력에의 의지’만 있을 뿐, 국민의 힘든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합리적 대책은 없었다. 권모술수에 능하고 표리부동한 정치꾼들의 이중성이다.이처럼 대통령에게 줄곧 속고 살아 왔으니 이번에는 또 누구에게, 어떤 거짓말에 속을까 벌써부터 걱정이다. 후보들에게 속지 않으려면 국민이 두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다. 교활한 정치꾼들의 행태에 실망해서 정치적 관심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정치적 무관심은 민주정치의 반동화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특히 제왕적 대통령의 선출에 대한 정치적 관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그렇다면 대선레이스를 펼치는 후보들의 무엇을, 어떻게 체크할 것인가?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분명한 비전, 소통능력, 위기관리능력, 현명한 인사정책, 고결한 인품’ 등이다. 대통령은 국내외 환경변화에 대처하면서 당면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국정수행능력이 있어야 하며, 국가원수로서 품격도 갖추어야 한다. 유권자들은 ‘입만 살아 있는 무능한 후보’나 ‘천박한 저질 후보’는 반드시 탈락시켜야 한다. 국가미래연구원이 지적한 바와 같이 ‘2021 대한민국 시대정신’은 ‘공정·정의·안전’이다. 따라서 이번 대선레이스를 통하여 기회와 노력에 대한 공정, 범죄·비리에 엄정, 질병·범죄로부터 안심할 수 있는 사회로의 전환 등을 해결할 수 있는 시대정신과 능력을 겸비한 인물을 찾아야 한다.이를 위해 우리는 대선레이스의 예선 및 본선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주권자의 힘과 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각 정당은 후보경선에 당원여론(당심)과 국민여론(민심)을 함께 반영한다. 예선에서 왜곡된 당심을 바로잡아 줄 수 있는 것이 민심일 뿐만 아니라, 본선에서의 최종 승자도 역시 민심이 결정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현명하고 올바른 판단력이다. ‘국민의 질이 정부의 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2021-07-26

대통령 후보들에게 드리는 고언(苦言)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왜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가? 후보들이 출마의 변에서 말하는 공정과 정의, 화합과 통합, 자유와 민주 등은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정치적 수사(修辭)였다.대통령이 되고 나면 ‘내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돌변하니 ‘공약(公約)이 아니라 공약(空約)’이었다. 정의는 대통령 입맛에 맞는 ‘선택적 정의’였고, 민주는 ‘다수의 독재’로 변질되었으며, 통합은 내편의 결집에만 관심을 두었으니 나라는 완전히 두 동강 나버렸다. 그러니 국민은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한 대통령에게 “이것도 나라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전임자들의 실패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정수행 능력’과 ‘높은 도덕성’인데, 특히 다음과 같은 점에 확고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첫째, 국정철학과 시대정신이다. 철학이 없다는 것은 능력이 없다는 말이다. 후보들은 집값·청년실업·불공정 등과 같은 당면과제들을 해결하는 능력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시대가 바뀌었음을 깨닫고 미래 가치를 위해 변화와 혁신에 솔선수범해야 한다. 산업화·민주화시대에 갇혀있는 후보는 이미 흘러간 옛 노래만 부른다. 대통령이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국민을 지도하지 못하면 반대로 국민이 대통령을 지도할 수밖에 없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진다.둘째, 권력의 오만을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대통령의 권력이 대통령을 망친다.”는 ‘권력의 역설(power paradox)’을 명심하라. 권력은 마약과 같다. 권력에 취하면 자기통제와 자기감시가 불가능하다. 게다가 제왕적 대통령의 주변에는 목숨 걸고 직언하는 충신은 없고 권력을 쫓아다니는 불나방들만 우굴 거린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대통령의 독선을 바로잡아 줄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이 절실하다. 후보들은 그의 비판적 역할을 법적·제도적으로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셋째,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이 되라. 역대 대통령들의 불행은 표리부동(表裏不同)과 언행불일치 때문이었다. 정치지도자의 생명은 ‘신뢰’다. 신뢰할 수 없는 지도자를 누가 따르겠는가? 감언이설(甘言利說)로 국민을 속여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하더라도 신뢰를 잃은 권력은 국정의 동력을 잃게 된다. 후보들은 당선을 위해 지키지도 못할 공약을 남발할 것이 아니라, 그 약속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마지막으로 대통령은 ‘공명정대한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 편 가르기와 흑백논리, 내로남불과 아전인수(我田引水)는 당신들이 가야할 길이 아니다. 특정 이념에 갇혀 진영논리를 펴는 사람이 어떻게 ‘대화와 타협이 원칙인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겠는가? 지역·이념·세대 간의 갈등이 심각한 우리의 경우, 대통령의 확증편향은 국론분열을 심화시킬 뿐이다. 따라서 대권에 도전하는 사람은 반드시 ‘공정·균형·통합의 정치철학’이 확고히 내면화되어 있어야 한다.

2021-07-12

이준석의 혁신정치가 성공하려면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꼰대보수’가 ‘혁신보수’의 역동적 이미지로 변신했다. 여야 구태정치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야당에서 먼저 폭발했기 때문이다. 36세의 정치신예, 이준석의 당선은 변화를 열망하는 민심(民心)이 당심(黨心)을 추동한 정치혁명이었다. 졸지에 ‘꼰대진보’로 내몰린 여당은 야당에 뒤질세라 ‘혁신경쟁’에 나서고 있다.이준석의 혁신정치는 무엇을 지향하는가? 그는 대표수락연설에서 “공존·공정·혁신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문제해결중심의 국민정당으로 발전해나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기성정치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플랫폼을 제시한 것이다. 당의 진로와 관련해서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선 새로운 미래가치 창출을 위해 ‘변화와 자강(自强)’을 주문했다. 지하철과 자전거를 이용하는 모습은 탈권위, 실용정치의 한 단면을 보여주면서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가 당선된 이후 당원 가입이 평소보다 10배나 상승했다는 사실은 국민들의 큰 기대를 말해주는 것이다.반면에 이준석 대표의 경험부족과 젊은 혈기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그가 제시한 반페미니즘은 남녀 갈라치기라는 공격을 받고, 능력지상주의는 보수가치의 퇴행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후보 인선에 적용하겠다는 자격시험이나 토론배틀은 정치적 흥행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당 체질의 근본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는 없다. 노회(老獪)한 보수꼴통들의 견고한 기득권의 벽을 허물고 당을 혁신할 수 있는 리더십과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는 당의 ‘혁신과 통합’이라는 상충되는 난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혁신보수와 꼰대보수의 분열가능성이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이처럼 이준석의 혁신정치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되고 있지만,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당대표의 올바른 인식과 역할이 중요하다. 그의 당선은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의 전략적 선택이었다. 정권교체를 위해 세대교체를 선택한 것이다. 정권교체를 위해 당을 혁신하는 한편, 당 밖의 유력 대권주자들을 영입하고 공정하게 관리해야 한다. 특히 야권후보 지지율 선두에 있는 윤석열의 영입에 실패할 경우, 당은 균열될 것이고 이준석체제는 무너질 수도 있다. 따라서 당 안팎의 비판과 고언(苦言)을 경청하고 자기성찰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혁신정치의 성공을 위해서는 당 중진들의 역할과 책임도 무겁다. 중진들은 경륜과 지혜로서 젊은 대표의 강점은 밀어주고 약점은 보완해주어야 한다. 권력의 이해관계로 혁신을 거부하는 것은 국민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다. 중진들이 먼저 낡은 사고와 기득권을 내려놓고 국민의 열망, 특히 캐스팅 보트(casting vote)를 쥐고 있는 2030세대가 요구하는 변화와 혁신에 부응해야 한다.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를 생각하라. 이미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 중진들이 2030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들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다. 내가 먼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

2021-06-28

문재인 정권, ‘집단사고의 늪’에 빠지다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문재인 정권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분노로 바뀌었다. 대통령 취임식에서 촛불의 이름으로 공정과 정의를 역설했고, 통합과 협치를 선언했으며,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4년이 지난 지금, 공정과 정의는 무너졌고, 나라는 완전히 두 동강 났으며, 국민은 ‘이것도 나라냐?’고 묻고 있다.이처럼 참담한 결과를 초래한 원인은 무엇인가? 문재인 정권이 ‘집단사고(groupthink)의 늪’에 빠졌기 때문이다. 집단사고란 ‘응집력이 강한 집단이 다양한 의견들을 억압하여 획일적으로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에 이르는 현상’을 말한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고 했는데, 현 정권은 ‘코드인사’로 일관했다.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장관급만 33명이나 임명을 강행했다. 동종교배(同種交配)적 인사는 필연적으로 집단사고의 오류를 범한다.여당 내에서 정부정책과 다른 의견을 말하면 즉시 ‘문빠’와 ‘대깨문’의 집중공격을 받을 뿐만 아니라, 적당한 구실을 만들어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거나 공천에서 탈락시킨다. ‘민주 없는 민주당’에서 당내민주주의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비판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의사결정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편향된 사고를 가지고 있는 대통령이 예스맨(yes man) 참모들에 둘러싸여 있으니 집단사고의 오류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정책결정과정에서 집단사고의 응집력은 ‘양날의 칼’이다. 응집력이 강하면 집단 내부의 의사소통은 원활하지만, 외부와 차단됨으로써 독단에 빠질 위험성이 훨씬 더 커진다. 그렇다면 집단사고의 늪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먼저 법적·제도적 차원에서 권력을 통제하고 견제와 균형을 통하여 합리적 의사결정이 가능하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면, 정책결정과정에서 선의의 비판자 역할을 하는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을 두는 것이다. 그는 항상 반대편에 서서 비판적 의견을 제시하여 토론을 활성화시킴으로써 보다 나은 대안을 모색하도록 유도한다. 특히 대통령에게 고언(苦言)하는 비판자 역할을 법적으로 보장한다면 집단사고의 오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제왕적 권력을 가진 대통령의 민주적 리더십’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고 할지라도 그 기능을 살릴 수도 있고 형해화(形骸化)시킬 수도 있는 것이 바로 대통령의 권력이다. 권력의 집중과 집단사고는 대통령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비극의 원천’이었음을 역대 대통령들의 말로(末路)가 증명하고 있다.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해 집단사고의 늪에 빠지는 순간, 대통령은 독재의 길을 가게 되고, 그 길의 끝에서 비극과 마주하게 된다.따라서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은 집단사고의 문제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자기집단의 도덕성과 완전성에 대한 환상을 버리는 한편, 집단 밖의 의미 있는 비판들을 경청하는 것이 민주적 리더십이다. 대통령이 확증편향과 진영논리에 갇히면 집단사고의 늪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2021-06-14

꼰대공화국에서 민주공화국으로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꼰대공화국에서 ‘왕 꼰대 선발대회’가 열리고 있다. 참가 자격은 ‘꼰대력 테스트’에서 최고 수준인 5등급을 통과해야 한다. 참가자들은 늙은 꼰대와 젊은 꼰대, 보수 꼰대와 진보 꼰대, 남성 꼰대와 여성 꼰대 등 각양각색이다. ‘꼴통꼰대’들의 치열한 경연이다 보니 영국 BBC가 보도할 정도다. 한국의 꼰대가 세계로 수출(?)되었으니 참 가관이다.꼰대란 어떤 사람인가? 국립국어원은 “늙은이를 이르는 은어”라고 했지만, 이제는 ‘젊은 꼰대’의 등장으로 “권위적이고 말이 통하지 않는 고루한 사람”을 통칭하고 있다. BBC에서는 ‘꼰대(Kkondae)’를 “자신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 연장자”라고 소개했다. 이처럼 꼰대는 ‘구태의연한 자기중심적 사고’를 타인에게 강요, 즉 ‘꼰대질’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속어다.꼰대공화국은 ‘말로만 민주주의체제’다. 유교문화·군사정권·냉전시대를 거치면서 서열을 중시하는 집단주의가 견고해졌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집단주의 의식은 ‘나’의 존재를 ‘우리’라는 울타리 속에 가두었다. 하지만 자유주의의 확장과 함께 성장한 개인주의 세대는 그 울타리를 탈출함으로써 ‘우리’를 강조하는 집단주의와 ‘나’를 강조하는 개인주의가 정면충돌하고 있다.토크빌(A. Tocqueville)이 “개인주의는 민주주의를 이끄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지적했던 것처럼, 민주주의 정신의 바탕은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다. 개인이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할 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책임도 개인이 진다는 것이다. ‘꼰대질’은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침해함으로써 민주주의 정신을 훼손한다. 꼰대공화국에서는 대화와 토론은 없고 지시와 강요만 있을 뿐이다. 꼰대는 흑백논리에 입각해서 아군과 적군, 우파와 좌파로 양분하고 자신이 속한 집단은 ‘선’이고 그 외는 ‘악’으로 간주한다. 꼰대들의 상투적 표현인 “나 때는 말이야….”에서 알 수 있듯이, 이기심과 우월의식이 상대방의 의견·능력·존재를 모두 부정한다. 개인주의는 타자(他者)를 수용하지만, 이기주의는 타자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갈등을 격화시킨다.꼰대는 시대에 뒤떨어진 ‘우물 안 개구리’다. 세상은 변하는데 자신의 작은 경험을 일반화해서 그것만이 옳다는 ‘병적 믿음’을 가지고 있다. 오만과 독선, 내로남불이 꼰대의 특성이다. 정치적으로 볼 때 시대의 흐름과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하는 정당은 ‘꼰대정당’이 된다. 대통령 탄핵에도 불구하고 정신 못 차린 ‘꼰대야당’은 선거에서 4전 4패했고, 권력에 취해 민심을 읽지 못하고 마이웨이(my way)를 고집한 ‘꼰대여당’은 4·7보선에서 참패했다.꼰대공화국은 우리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진정한 민주공화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대통령은 물론이고 국민 각자가 ‘꼰대성’을 버려야 한다. 대통령이 꼰대가 되면 독재를 하게 되고, 국민들이 꼰대가 되면 ‘한 나라 두 국민’으로 분열된다.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항상 ‘열린 마음’으로 배우고 공부해야 한다. 입은 다물고 귀를 열어라.

2021-05-31

2030세대의 반란에 응답하라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그것은 반란이었다. 정부 여당의 무능과 실정, 오만과 위선을 더이상 참을 수 없었던 2030세대의 분노가 4·7 보선에서 무섭게 폭발했다. 그 충격으로 ‘멘붕’이 된 문재인 정권은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정부 여당은 청년들의 ‘이유 있는 반란’에 대해 성실하게 응답해야 한다.작년 총선에서 민주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던 2030세대가 가장 큰 비토(veto)그룹으로 돌변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의 대답은 명쾌하다. 경제정책의 실패로 집값은 폭등했고, 부의 양극화를 구조화시킴으로써 ‘미래세대의 미래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자신의 딸은 ‘용’을 만들기 위해 온갖 부정을 저지르면서 지옥고(지하방·옥탑방·고시원)에서 신음하는 청년들에게는 ‘가재·개구리·붕어’로 살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그 위선에 참을 수가 없었다. 3포·5포·7포로 좌절된 청춘들을 위해 본질적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채, 돈 몇 푼 던져주고 결혼과 출산을 지원한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 미래에 희망이 있어야 결혼도 하고 출산도 할 것이 아닌가?이처럼 무능하고 위선적인 정권에 자신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고 판단한 청년들은 ‘고위험·고수익’의 주식과 가상화폐에 눈을 돌리고 있다. 성실하게 미래를 준비해야 할 청춘들이 ‘폭탄 돌리기’와 같이 언제 폭발할지도 모르는 투기판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미래의 경제적 안정을 위해 도박판에 ‘빚투’하는 이중적 위험을 무릅쓰고 있다. 위험한줄 알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계층 사다리’를 건널 수 있다고 항변하는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이미 군 병영에서도 주식·코인 광풍(狂風)이 불고 있다니 상황이 심각하다.정치권은 2030세대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들은 상황과 이슈에 따라서 가장 합리적 선택을 하는 ‘스윙보터(swing voter)’들이다. 정권이 잘못하면 돌아서는 속도가 부모세대보다 훨씬 빠르다. 이념이나 진영논리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하며 현실적으로 판단한다. 사고는 매우 유연할 뿐만 아니라 정치성향도 다양해서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언제든지 회초리를 들 수 있다.따라서 노회(老獪)한 기득권의 시선으로 이들을 가르치려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다. 역사 변화의 추동력은 맑고 깨끗한 청년들에게 있기 때문이다.이제 정치권이 답해야 할 차례다. 특히 국정을 책임진 정부 여당이 진솔하게 응답해야 한다. 그 전제는 철저한 반성과 성찰이다. 이번에도 ‘영혼 없는 반성’으로 넘어가려고 한다면 내년 대선에서는 정권이 넘어가게 될 것이다. 투전판에 뛰어든 청년들을 비난하기 전에 그렇게 만든 책임을 통감하고 미래가 있는 삶의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2030은 취업·주거·결혼·육아·교육 등의 문제로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다. 지난 3년 사이에 정신과 병원을 찾은 2030이 6배나 급증했다. 이 심각한 고통에 ‘포퓰리즘 진통제’ 처방을 해서는 안 되며, 그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정교한 수술법이 시급히 개발, 적용되어야 한다.

2021-05-17

2022 대선의 필승 키워드 ‘혁신’과 ‘중도’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군주민수(君舟民水)’라고 했던가? 성난 민심이 배를 뒤집었다. 4연승 후 서울·부산 보선에 참패한 여당은 1년도 채 남지 않은 대선에 당황하고 있다. 그렇다고 승리한 야당의 형편이 나은 것도 아니다. 국민의힘은 여당의 실정에 반사이익을 얻었을 뿐, 유력한 대선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자중지란(自中之亂)으로 구태가 재연되고 있다.2022년 대선에서 누가 승리할 것인가?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生物)’이어서 속단할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혁신(革新)’과 ‘중도(中道)’가 승패를 가르는 핵심 키워드(key word)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편견과 독선을 버리는 중도정신으로 혁신하고, 혁신을 통해서 중도의 마음을 얻는 정당이 승리한다. 공정과 통합을 위한 혁신과 중도가 시대정신이기 때문이다.혁신이란 무엇인가? 나를 바꾸는 것이다. 진보는 진보를 내려놓고, 보수는 보수를 내려놓아야 혁신할 수 있다. 한국정치를 지배하고 있는 ‘흑백논리’와 ‘내로남불’은 진영정치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위선적인지를 말해준다. 이념에 갇힌 좌우 꼴통들의 수구적 행태로서는 민심을 얻을 수 없다. 기득권이 되어버린 진보가 비판을 수용하여 혁신하지 못했으니 참패한 것이다. 권력도 술처럼 취하면 판단력이 흐려진다.중도란 무엇인가? 중도는 중간(中間)이 아니라 근본(根本)바탕으로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바른 길이다. 중도는 이분법적 사고를 초월하며, 극단적 견해를 삼가고,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정신이다. 정치적 중도층은 보수와 진보의 중간이 아니라, 더 높은 차원에서 정도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공정·정의·실용을 지향하는 심판관이다. 여론조사기관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유권자들의 성향은 대체로 중도 48%, 보수 25%, 진보 27% 내외로 분석되고 있다. 보수든 진보든 ‘극단적 지지층’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 진영논리로부터 자유로운 ‘합리적 중도’가 ‘캐스팅 보트(casting vote)’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여당과 야당은 물론이고 제3지대 인물들도 일제히 대선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누가 대권을 잡을 것인가? 민심을 얻는 자가 대권을 잡는다. 어떻게 민심을 얻을 수 있나? 혁신과 중도다. 이 두 개념은 제3지대 인물, 예를 들어 현재 대선후보 지지도 1위인 윤석열과의 연대도 가능하게 해주는 필승의 키워드이다. 어느 진영이든 혁신을 부정하면 중도가 이탈함으로써 패배할 수밖에 없다.나라를 위해 나를 희생하는 정치인(statesman)들의 정당은 제대로 혁신할 것이지만, 나를 위해 나라를 이용하려는 정치꾼(politician)들의 정당은 속임수를 쓰려고 할 것이다. 중도를 우습게보고 오판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념에 구속되지 않는 합리적인 중도는 ‘누가 국민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가’를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실정의 책임을 남 탓으로 돌리지 말고 내 탓임을 깨달아서 과감히 혁신하는 정당의 후보자가 중도의 마음을 얻음으로써 대권을 잡게 될 것이다.

2021-05-03

제주올레, 그 길에서 길을 묻다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제주올레! 그 이름만 들어도 옥빛 바다, 정겨운 돌담길, 아름다운 오름이 눈에 선하다. 나는 10년 전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올레 길을 걸었다. 제주올레 26개 코스 425km를 3회 완주하였고, 지금 또 다시 그 길 위에 서 있다.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 길을 걷게 하는가?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에 끌려오는 것도 사실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기 때문이다. ‘이순(耳順)’을 지나 ‘종심(從心)’의 나이에도 삶은 여전히 알 수 없는 안개 속이니, 이 길을 걸으면서 황혼의 인생길을 찾으려는 것이다. 올레꾼들의 65%가 ‘나 홀로 여행자’라는 사실을 보면 그들이 걷는 이유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인생길에는 수많은 갈림길이 있다. 소유의 길과 존재의 길, 잘 사는 길과 바르게 사는 길, 이기적인 길과 이타적인 길 등과 마주하게 된다. 올레 길처럼 방향을 알려주는 리본이라도 달려있으면 좋겠지만, 인생길에는 그 어떤 표지판도 없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져야 하는 길이다. 의미 있는 삶을 위해서는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래서 걷는 것이다.길을 걷기에 앞서 자연과 대화를 위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길을 걷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자연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올레 길에서 많은 스승들을 만났다. 제주의 해안·오름·돌담길을 걸었고, 유채·동백·벚꽃·수선화와 만났다. 이념의 광풍(狂風)이 불었던 제주4·3의 비극적 현장도 보았고, 홀로 걷는 석양 길에는 ‘산담’이 친구가 되어주기도 했다. 봄 꽃길, 가을 단풍 길도 걸었고, 삼복(三伏) 무더위와 혹한(酷寒)의 제주바람에 맞서기도 했다. 비록 몸은 지치고 힘들었지만 정신은 더욱 맑아졌다.이 길에서 나는 무엇을 얻었는가? 인간 존재와 이성의 유한성을 깨닫고 겸손을 배웠다. 인간은 영겁(永劫)의 시간 속에서 찰나(刹那)에 사는 존재이고, 인간의 능력 또한 매우 제한적이니 겸손하지 않을 수 없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다. 모든 것이 한 때일 뿐이니 잘났다고 목에 힘줄 일도 아니고, 못났다고 기죽을 일도 아니다. 인간의 ‘오만과 독선’은 근본적으로 ‘무지와 욕심’에서 비롯된다. LH사태로 정부여당이 궁지에 몰리자 이해찬 전 대표가 “윗물은 맑은데 아랫물이 흐리다”고 자연의 이치에 맞지 않는 궤변을 늘어놓았으니 민심은 폭발하고 선거에서 참패할 수밖에 없었다.진흙탕싸움을 벌이는 정치인들은 수시로 자연과 마주해야 한다. 초심을 잃어버린 권력의 오만과 독선은 자멸의 길이다. 길을 잃었을 때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다.자연의 질서는 공존과 협력 속에 유지된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나만 살겠다고 아우성치면 공동체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권력이라는 마약에 취해 중병을 앓고 있는 외눈박이 정치인들이 ‘위대한 스승, 대자연’의 교화(敎化)로 치유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21-04-19

2021 한국의 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계절의 봄은 어김없이 돌아왔는데, 마음은 봄 같지가 않다. 코로나 팬데믹(pandemic) 속에서 봄을 맞이하는 어려움 때문만은 아니다. 일제강점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절규했던 시인의 아픔처럼, 우울한 소식들이 내 마음의 봄을 빼앗아 가버렸기 때문이다.봄의 낭만을 즐기기에는 마음이 너무나 무겁다. 봄은 희망의 계절인데 절망의 탄식들뿐이다.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로 하루아침에 ‘벼락거지’가 된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서울에 취업해서 결혼을 앞둔 제자는 천정부지로 뛰어 오른 집값에 한숨만 나온다고 했다. 아파트 구입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고 전세조차 역부족이니 절망이라고 한다. 평생을 벌어 저축해도 소형아파트 한 채 살 수 없게 되었다는 청춘의 탄식에 스승은 가슴이 먹먹하다. 그렇다고 LH직원들처럼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투기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는가. “흙수저로 태어난 것을 한 번도 원망해 본 적이 없었는데….”라면서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새 학기를 시작하는 봄, 대학 캠퍼스에도 활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전국의 수많은 대학에서 대거 미충원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정부의 고등교육정책 실패로 대학이 위기에 내몰리자 연구와 교육에 몰두해야 할 교수들까지 신입생 유치에 동원되고 있다. 폐교의 위기에 직면한 교수들은 감봉을 각오해야 함은 물론, 전직(轉職)까지 고민하는 상황이니 밤잠도 설치게 된다고 한다. 후배 K교수는 “지금 대학은 그야말로 ‘춘래불사춘’입니다. 대학의 미래에 희망이 없으니 연구와 교육이 제대로 될 리가 없지요.”라고 탄식이다. 캠퍼스에 피어나는 봄꽃들의 경연을 감상할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린 대학인들의 모습이 처연하다.어디 그뿐인가. 정치판은 봄이 오기는커녕 아직도 엄동설한(嚴冬雪寒)이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권력에 취한 정치꾼들의 행태는 더욱 가관이다. 나는 천사, 당신은 악마라는 ‘흑백논리’, 내가 하면 정의요, 당신이 하면 불의라는 ‘내로남불’의 궤변과 억지로 상대를 죽이고 나만 살겠다고 아우성이다. 게다가 권력에 취한 ‘표리부동’한 정권이 ‘포퓰리즘(populism)이라는 중독성 강한 마약’을 국민들에게 무차별 살포하고 있으니 제정신이 아니다.이것이 바로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2021년 한국의 봄이다. 이상화 시인이 “들을 빼앗겨서 봄조차 빼앗기겠네.”라고 한탄했듯이, 우리도 지금 빼앗긴 ‘마음의 봄’을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봄을 빼앗아 간 범인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인간의 지나친 욕심과 이기심, 오만과 독선이 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향유해야 할 마음의 봄을 빼앗아 가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봄꽃들은 우리에게 ‘자연으로 돌아오라’고 충고하고 있는 것이다. 루소(J. J. Roussea)는 “자연 상태가 인간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가장 아름다운 상태”라고 했다. ‘인간이 만든 문명 때문에 인간성이 상실되는 이 기막힌 역설(逆說)’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는 봄이다.

2021-04-05

망국으로 가는 포퓰리즘 경쟁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베네수엘라에서는 굶주린 시민들이 거리의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국가부도 위기를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고, 그리스는 나라 빚을 갚기 위해 또 다른 나라에 빚을 구걸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교활한 정치꾼(politician)들이 집권을 위해 포퓰리즘(populism)을 악용했고, 국민들은 그것이 자신을 파멸시키는 마약인지도 모르고 받아먹었다는 사실이다.“죽어봐야 저승 맛을 안다.”고 하지 않았던가. 포퓰리즘의 비극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지금 한국에서도 포퓰리즘 광풍(狂風)이 불고 있다.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진정한 정치인(statesman)은 없고, 당장의 권력에 눈먼 정치꾼들이 포퓰리즘 마약을 국민에게 무차별 살포하고 있다. 막장으로 가는 한국정치의 현실이다.선거를 겨냥한 정치 포퓰리즘은 매표(買票)행위다. 여당이 포퓰리즘 선거로 재미를 보자, 이제는 야당도 포퓰리즘 공약을 서슴지 않는다. 부산시장 보선 승리를 위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가덕도 앞바다 선상(船上)에서 조속한 입법을 주문하자 민주당은 즉시 ‘가덕신공항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야당은 한 술 더 떠서 가덕 신공항은 물론이고, 부산과 일본을 연결하는 해저터널 건설까지 제안하고 나섰다.코로나를 명분으로 한 정치권의 포퓰리즘 경쟁도 치열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포퓰리스트(populist)의 전형적 특성인 편가르기·후견주의·내로남불 등으로 장기집권을 도모하고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주장하고 있고, 이낙연 전 민주당대표는 아동수당 확대와 상병수당까지 도입하자고 한다. 야당의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포퓰리즘이라고 해도 상관없으니 국민이 원하는 대로 해야 한다.”고 했다. 선거를 앞두고 선심성 현금살포를 견제해야 할 야당의 수장마저 유권자들을 의식해 포퓰리즘을 부추기고 있다.‘개 눈에는 똥’만 보이고 ‘정치꾼 눈에는 권력’만 보이는 법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권력을 잡을 수만 있다면 국민에게 마약도 주사하는 것이 그들이다. 결국 국가재정은 거덜 나고 국민은 굶주림에 허덕이게 된다. 베네수엘라 차베스(H. Ch00E1vez), 아르헨티나 페론(J. D. Per00F3n)의 포퓰리즘 정치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근면·성실했던 한국인들도 일단 포퓰리즘에 중독되면 폐인이 된다. 미래 세대를 위해 현 세대가 고통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부모는 살지만 자녀는 죽는다. 이것이 바로 포퓰리즘 정치의 비극이다.그렇다면 누가 포퓰리즘을 막을 것인가? 권력의 심판자인 국민이다. 스위스 국민은 모든 성인에게 매월 300만원의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헌법개정안을 77%의 압도적 반대로 부결시켰다. 반대 이유는 “일하지 않으면 스위스의 미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미래를 위해서 현재의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기로 했다. 서울·부산시장 보선과 20대 대선을 앞둔 지금 대한민국은 갈림길에 서 있다. 베네수엘라처럼 추락하느냐 아니면 스위스처럼 비상하느냐는 포퓰리즘에 대한 우리의 각성 여하에 달려있다.

2021-03-22

실용외교 vs 이념외교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12월 19일 국무회의에서 “국익과 국민을 우리외교의 최고 가치로 삼아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실용외교를 펼쳐나가고자 한다.”고 천명했다. 정치적 이념보다 실용적 가치를 중시하여 외교적 활로를 열겠다는 것이었다.하지만 실용외교의 성공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실용외교에는 필수적 전제조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첫째, 설정된 외교정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의 선택에 있어서 정치적·이념적 제약이 없어야 한다. ‘외교는 내정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에 대통령은 국내적 이념경쟁과 정치논리로 외교를 이용하려는 유혹을 받게 된다. 이는 외교가 대통령의 정치이념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용외교를 위해서는 변화무쌍한 외교환경에 대한 객관적 인식과 균형 감각이 매우 중요하다. 경직된 정치이념과 제한된 선택수단의 강요는 이념외교일 뿐이다.둘째, 실용외교를 위해서는 ‘이상보다 현실에 대한 민감성’이 있어야 한다. 북한의 핵보유, 남북대치, 미중갈등 등은 우리외교가 직시해야 할 분명한 현실이다. 현실의 국제정치는 힘의 정치이다. 힘의 논리를 정확히 이해하는 외교가 실용외교이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노련한 실용주의 외교전문가이다. 비핵국가인 한국이 북핵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실용외교는 한미동맹에 의한 확산억지력의 보장이다. 반면에 북한의 협상의도를 간과하고 대화를 통해서 비핵화를 유도하겠다는 것은 ‘장밋빛 환상’에 빠진 이념외교에 지나지 않는다.셋째, 실용외교는 반드시 외교전문가의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외교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이다. 외교관은 현안 장악력이 강력해야 효율적으로 협상을 진행할 수 있다. 전문성이 없는 정치권력이 ‘외교의 전문성’을 지배하면 실용외교는 사망한다. 외교부장관이나 대사들에게 중요한 것은 권력의 입맛에 맞는 정치이념이 아니라 실용외교에 걸맞은 능력이다. 그럼에도 진보라는 정치이념으로 무장한 청와대가 외교의 전문성을 부정하고 권력에 충성하는 ‘코드인사’를 통해 이념외교를 고집하였으니 외교참사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었다.마지막으로 최고정책결정자인 대통령의 열린 사고와 합리성이다. 실용외교는 열린 사고를 가진 사람들의 합리적 토론의 결과물이다. 때문에 닫힌 사고와 이념적 경직성은 실용외교의 적이다.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에서 동일한 사고를 가진 청와대의 집단사고나 대통령의 일방적 지시로 실용외교가 성공할 수는 없다. 국민과 권력, 국익과 이념이 충돌할 때 전자를 위해 후자를 기꺼이 포기할 수 있으려면 대통령의 열린 사고와 합리적 판단이 전제되어야 한다.이상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문 대통령이 대외적으로는 실용외교를 천명했지만 실제로는 그에 역행하는 인식과 행태를 보였으니 치열한 외교전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지금이라도 초심으로 돌아가서 이념외교의 환상을 버리고 실용외교의 길을 모색하기 바란다.

2021-03-08

북한의 전술핵, 그 대책은 무엇인가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8차 당대회에서 36차례나 핵을 언급하면서 “핵기술을 고도화하고 전술핵무기를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핵전략의 중대한 변화이다. 전쟁에서 사용하기 어려운 ‘절대무기’인 ‘전략핵’에 비해서 ‘전술핵’은 실제로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의 안보전략이 근본적으로 수정되어야 하는 이유이다.전술핵의 표적은 미국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이다. 북한은 당대회 보고에서 “15,000km 사정권 안의 전략적 대상들에 대한 핵 선제 및 보복 타격 능력의 고도화 목표가 제시되었다”고 함으로써 핵 선제공격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북한의 전술핵이 초대형 방사포나 KN23 미사일에 탑재된다면 한국안보에 치명적이다. 게다가 한반도 유사시 수도권에 대한 전술핵의 선제공격 가능성은 한미연합군의 대응을 제약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북한이 전술핵을 개발하면 한국과 일본을 인질로 해서 미국에 INF조약 체결을 제의하고 핵군축협상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주된 관심은 북한의 전략핵과 장거리미사일이지만, 한국은 단거리미사일이나 방사포에 전술핵이 탑재되는 상황이 더욱 두렵다. 이러한 사실은 북한이 한미동맹에 내재하는 이해관계의 차이를 핵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북한은 비핵화가 아니라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는 것이다.북한의 전술핵 개발은 한국의 미국에 대한 안보의존성을 더욱 심화시키게 될 것이다. 전술핵은 실제 전쟁에서 사용될 수 있고, 북한은 한국에 대해 선제공격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있기 때문이다. 핵무기는 전쟁의 양상을 한 번에 뒤집을 수 있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이다. 우리가 아무리 최첨단 재래식 무기를 증강하더라도 북한의 새로운 핵능력에 맞서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그렇다면 우리의 대책은 무엇인가? 그것은 강온 양면전략, 즉 한편으로는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기 위해 북미협상을 지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의 전술핵 공격에 대비하여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것이다. 평화적 협상과 무력적 억제의 병행이다. 평화적으로 비핵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대화·협상·제재가 모두 필요하다. 하지만 그동안 북미대화가 전혀 진전이 없었다는 점에서 이제는 협상보다 제재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는 한 평화적 접근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결국 ‘핵에는 핵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 ‘같은 민족에게는 핵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6·25 남침을 잊어버린 치매자의 어리석음이다. 평화를 말한다고 평화가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평화를 원한다면 핵을 막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중국 칭화대의 자오퉁(趙通)은 “북한이 전략핵으로 미국의 간섭을 막고, 전술핵으로 한국을 압박하여 한반도 통일을 시도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핵이 없는 한국이 북한의 핵공격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강력한 한미동맹에 의해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과 확장억제력(extended deterrence)’밖에 없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2021-02-22

국민의힘이 가야 할 혁신의 길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국민의힘’은 현재 비상체제다. 선거 4연패 후 김종인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해서 환골탈태(換骨奪胎)를 모색하고 있다. 당의 간판을 바꾸고,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과오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5·18묘역에서는 무릎을 굻고 눈물로 사죄했다. 잘못된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한 것이다.물론 이러한 조치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외관(外觀)이 아니라 내면(內面)’이다. ‘국민의힘’은 변화와 혁신에 대한 수용성이 부족하다. 게다가 기득권을 지키려는 의원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 삼고초려(三顧草廬) 끝에 영입한 비대위원장을 자기들이 흔들어댄다. 여전히 변화를 외면하고 서푼 어치도 안 되는 권력놀음에 빠져있다. ‘영남당’이라고 조롱받는 상황에서도 ‘가덕신공항이라는 덫’에 걸려 TK와 PK가 자중지란(自中之亂)이다. ‘국민의힘’이 가야 할 혁신의 길이 결코 순탄치 않음을 말해주고 있다.국민은 제1야당의 회생(回生)을 바라고 있다. 여당을 견제할 수 있는 야당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힘’이 되겠다는 정당이 ‘국민의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혁신을 통하여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보수꼴통’이나 ‘진보꼴통’이 아니라 ‘건전한 상식을 가진 중도층’이 “여당도 싫지만 야당은 더 싫다”고 한다면 문제가 심각하다.선거의 승패는 확증편향에 갇힌 좌우의 꼴통들이 아니라 ‘캐스팅 보트(casting vote)’를 쥐고 있는 중도층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의힘’은 중도층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혁신보수의 길’을 가야 한다.혁신의 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식의 전환’이다. 생각이 바뀌어야 변화가 일어난다. 보수는 수구(守舊)가 아니다. 변화를 수용하는 유연성이 없으면 보수의 생명력은 사라진다. 과거의 낡은 패러다임(paradigm)을 가지고 새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소통할 수는 없다. 패러다임의 전환에 진보는 빠르고 보수는 느리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기혁신에 인색하고 작은 권력에 취해있으니 소탐대실(小貪大失)이다. 선당후사(先黨後私)의 정신이 없는 정당은 미래도 없다. ‘국민의힘’에 있어서 가장 힘든 싸움은 바로 ‘자신과의 싸움’이다.혁신의 길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미래를 열 수 있는 새로운 인재들이 필요하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노인은 과거에 살고 청년은 미래에 산다. 과거에 익숙한 사람들이 새 시대의 ‘혁신보수’를 이끌어 갈 수는 없다. 이제 기성세대는 보수의 미래를 젊은 세대에게 맡겨야 한다. 변화를 싫어하는 원로들이 기득권에 연연하면 할수록 혁신에 방해가 될 뿐이다.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끝나면 대선정국에 돌입한다. ‘국민의힘’은 선거에서 4전 4패할 때마다 머리를 조아리면서 말로는 혁신을 약속했지만 행동으로 실천하지는 않았다. 국민이 명령한 혁신을 거부한 정당에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 똑 같은 실수를 또 다시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2021-02-08

바이든 정부의 외교안보전략과 한미동맹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바이든(J. Biden)은 “미국이 돌아왔다”고 선언했다. 한동안 잊혀졌던 ‘팍스 아메리카나(Pax-Americana)’의 부활이다. 동맹과 협력하여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북한의 비핵화 전략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겠다고 한다. 우리의 외교가 비상한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트럼프(D. Trump)와 바이든의 외교안보전략은 그 기조(基調)가 다르다. 트럼프의 외교가 동맹을 고려하지 않는 ‘미국우선주의와 거래주의’였다면, 바이든은 동맹을 중시하면서 ‘다자주의와 국제협력주의’를 역설한다. 국제협상에 있어서도 트럼프는 정상회담을 통해 문제해결에 접근하는 ‘탑다운(top-down)’방식이었지만, 바이든은 실무협상을 토대로 한 정상외교, 즉 ‘바텀업(bottom-up)’방식을 선호한다.바이든 정부의 새로운 외교안보전략은 한미동맹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우선 미·중 패권경쟁의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은 동맹국들에게 반중(反中)전선 참여를 더욱 압박할 것이다. 바이든은 대선 승리 후 문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미동맹은 인도·태평양 안보와 경제의 핵심축(linchpin)”이라고 했다. 이는 ‘쿼드(Quad)’와 ‘경제번영네트워크(EPN)’에 한국의 참여를 우회적으로 압박한 것이다. 게다가 바이든은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민주주의 가치동맹’을 추진하고 있다. 때문에 문재인정부가 추구해 온 미·중 균형외교, 즉 ‘전략적 모호성’의 유지와 ‘안미경중(安美經中)’ 전략에 심각한 차질이 예상된다.한편 바이든 정부의 새로운 대북정책도 한미동맹에 영향을 미친다. 바이든은 “김정은이 핵능력 축소에 동의할 경우에 그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가 중요하며, 이를 위해 협상과 압박이 병행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트럼프는 김정은을 ‘좋은 친구’라고 했지만, 바이든은 그를 ‘폭력배(thug)’라고 했다. 바이든은 트럼프의 ‘정상회담 쇼’가 완전히 실패했으며 북한의 핵 능력만 강화시켰다고 비판했다. 바이든은 북한이 핵 폐기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않는 한 정상회담은 없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북한이 신형 ICBM과 SLBM의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함으로써 바이든의 대북정책은 ‘대화와 협상’보다는 ‘제재와 압박’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때문에 싱가포르선언을 토대로 또 다시 북미대화를 주선하려는 정부의 중재외교는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이 크다.이처럼 바이든 시대의 한미동맹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동맹은 ‘가치와 위협’에 대해 인식을 같이할 수 있어야 한다. 한미동맹이 ‘외교적 수사로서의 동맹’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동맹’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의 현실인식이 매우 중요하다. 최근 김정은이 제8차 당 대회에서 지시한 ‘전술핵’ 개발은 미국이 아니라 한국을 겨냥한 것이다. 비핵국가인 한국이 북핵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미동맹이다. 미·중 균형외교와 북·미 중재외교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주의적 동맹외교를 시급히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2021-01-25

‘윤석열 현상’의 정치적 함의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권력투쟁의 한복판에 ‘검찰총장 윤석열’이 있다. 그는 헌법정신과 법치주의를 역설한다. 정권안보의 선봉장, 추미애는 검찰총장 직무정지와 징계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사법부는 그 조치들이 모두 부당하다고 효력을 정지시켰다. 징계권자인 대통령이 사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민은 권력의 횡포에 맞서 싸우는 윤석열에 환호한다. 그는 대선후보 지지율 1·2위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것이 바로 ‘윤석열 현상’이다.윤석열은 정치인이 아니라 공무원이다. 그것도 대통령이 임명한 현 정권의 사람이다. 그런 그가 법치·공정·정의를 역설하면서 ‘살아 있는 권력’도 예외 없이 수사하고 있다. 정권과 협력하면 보장되어 있는 ‘꽃길’을 거부하고 권력의 야만과 싸우면서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다. 국민의 뜨거운 박수는 ‘국민의 검찰’로서 정도(正道)를 걷는데 대한 지지와 감사의 표현이다.‘윤석열 현상’이 주는 정치적 함의(implication)는 크다. 무엇보다 중요한 메시지는 정부여당에 대한 엄중한 경고다. 그를 유력한 대권후보로 키워준(?) 것은 바로 폭압적인 현 정권이다. 검찰총장에 대한 지속적인 협박은 부패한 권력의 반증이었고, 그에 대한 압력이 강해질수록 국민의 지지율은 빠르게 상승했다. 또한 법원은 ‘문재인의 정의’가 아니라 ‘윤석열의 정의’에 손을 들어주었다. 이 정권의 윤석열 찍어내기는 법적·정치적으로 완패했다. 정권이 걸핏하면 내세우는 ‘선출된 권력’은 주권자인 국민이 ‘위임한 권력’일 뿐이다. 위임한 권력을 남용할 경우 국민은 선거를 통해서 응징한다. 최근 실시된 리얼미터의 여론조사는 정권교체 51.8%, 정권유지 38.8%로 나타나고 있다. 개혁을 외치던 정권이 이미 개혁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한편 야당에 대한 경고의 의미도 크다. 대선 여론조사의 선두권에 오른 야당 후보는 없다. 정치의 뜻을 밝히지도 않은 윤석열이 가장 유력한 야권주자로 부상했다. 게다가 거대 여당의 폭주에 제동을 건 것은 야당이 아니라 윤석열이었다. 야당은 여전히 고언(苦言)의 수용에 인색하여 환골탈태(換骨奪胎)를 못하고 있다. 나라의 미래에 대한 큰 비전과 전략은 없고 작은 권력에 탐닉하는 소인배집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윤석열과 제1야당 중에 누가 ‘국민의 힘’이 되고 누가 ‘국민의 짐’이 되고 있는가? 윤석열을 정치판으로 끌어들인 것은 ‘야당의 무능’도 한 몫 했음을 깊이 반성해야 한다.윤석열 현상은 ‘한국정치의 슬픈 자화상’이다. 정치인들의 위선과 궤변에 지친 민심은 여야 정치권을 떠나고 있다. 마음 둘 곳 없는 국민들이 정의를 찾아 나선 길에서 희망을 보았다. 그가 바로 권력에 굴하지 않는 ‘사나이 윤석열’이었다. “그냥 편하게 살지 왜 이렇게까지 살아왔는지….”라는 그의 탄식은 ‘정의를 위한 고통’으로서 국민에게는 희망이었다. 정치권은 ‘윤석열 현상’을 ‘윤석열 대망론’과 연계하여 권력의 논리로 폄훼하지 말고 그 정치적 함의를 제대로 깨달아야 할 것이다.

2021-01-11

절망의 세밑에 부르는 희망의 노래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미국·캐나다·영국은 물론이고 이스라엘·멕시코·칠레까지도 코로나 백신접종을 시작했는데, 우리는 언제 그 수혜자가 될지 기약이 없다. 경제는 무너져 실업자가 속출하고, 부동산정책 실패로 아파트 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오만과 독선에 빠진 정권이 폭주하는데 야당은 무기력하고 무능하다. 엄동설한(嚴冬雪寒)에 서민들은 몸도 춥고 마음도 춥다. 절망 속에 아우성치는 백성들의 처연한 세밑 풍경이다.대통령 탄핵으로 유권자들이 선택한 정권이니 누구를 탓하랴. 촛불정신을 역설한 정권은 다를 줄 알았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말을 믿고 싶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겠다.”고 했을 때 박수를 보냈다. ‘착한 사람(?)’ 이미지를 가진 인권변호사는 대통령이 되어도 ‘권모술수(權謀術數)’를 부리지 않을 줄 알았다.착각이었다. 정치권력의 속성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통합을 약속한 대통령이 권력을 잡자, 편 가르기로 나라를 완전히 두 동강 내어버렸다. 적폐를 청산한다면서 ‘신 적폐’를 양산하고, 권력기관을 개혁한다면서 검찰을 ‘권력의 시녀’로 만들려고 한다. 오죽하면 대통령이 재가한 검찰총장 징계를 법원이 효력을 정지시켰겠는가? 촛불 덕에 권력을 줍다시피 한 정권이 촛불정신을 왜곡하고 국민을 배신했다. ‘후안무치(厚顔無恥)’의 끝판 왕이다.이처럼 무도한 정권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해도 우리는 절대로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 절망보다 무서운 것은 희망을 포기하는 것이다. 키에르케고르(S. Kierkegaard)도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며, 이것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치료제는 희망”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동안 우리는 권력밖에 모르는 위선자들이 나라를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따라서 이제 ‘우리 스스로가 희망’이 되어야 한다. ‘희망은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니 말이다.우리의 희망가는 시민이 만들고 시민이 함께 부르는 노래이다. 우리가 희망이 되려면 ‘권력의 편’이 아니라 ‘정의의 편’에 서야 한다. 우리도 성현들처럼 ‘불의의 꽃길’을 단호히 거부하고 ‘정의의 가시밭길’로 당당하게 나아가자. 권력에 빌붙어 사익을 탐하는 ‘간상배(奸商輩)’가 아니라 진실을 밝히는 ‘정의의 사도’가 되자. 공자·석가·예수·소크라테스와 같은 성현들의 말씀이 우리에게 구원(救援)인 것은 진리를 깨닫게 함으로써 삶에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우울한 세밑이지만 희망을 노래하자. 셀리(P. Shelley)는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으리”라고 노래했고, 푸시킨(A. Pushkin)은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반드시 기쁨의 날이 오리니…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이라고 했다. 바로 이것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선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우리가 목 놓아 부르는 ‘정의와 진리의 노래’는 반드시 새해를 밝히는 희망의 등불이 될 것이다.

2020-12-28

문재인, 루비콘 강을 건너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문재인 대통령은 “살아 있는 권력에도 엄정하라”고 당부했던 윤석열 검찰총장이 실제로 그렇게 하자 황급히 징계 수순에 들어갔다. 정치적 수사(修辭)에 능한 위선적인 대통령과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우직한 검찰총장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두 사람은 이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너고 있다. 이것이 바로 대통령이 약속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의 실체이다.대통령이 법무장관을 앞세워 검찰총장을 제거하고 공수처를 출범시키려는 것은 정권안보 때문이다. 대통령과 권력실세들이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사건들에 대한 검찰수사를 무력화하기 위해서다. 월성원전 경제성 평가조작, 울산시장 선거개입, 라임·옵티머스 사건 등은 청와대의 ‘아킬레스건’이다. 윤석열을 제거한 후, 이 사건 수사를 공수처로 이첩하거나, 공수처가 직권남용을 이유로 담당 검사들을 수사함으로써 검찰을 무력화할 수 있다.여론은 어떠한가? 국민은 ‘검찰개혁을 외치는 대통령’이 아니라 ‘법치주의와 헌법정신을 역설하는 검찰총장’의 손을 들어주었다. 윤석열은 ‘권력의 검찰’이라는 ‘꽃길’을 거부하고 ‘국민의 검찰’이 되기 위하여 ‘가시밭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전국의 검사들이 총장 징계가 부당하다는 성명을 발표하였고, 법무부 감찰위원회는 만장일치로 징계청구·직무배제·수사의뢰가 모두 부적정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법원에서는 윤총장의 직무배제 정지 가처분신청을 인용했으며, 전 대법관과 법무장관 등 600여명의 변호사들은 법치를 파괴한 추미애의 해임을 요구하였다. 최근 리얼미터 조사에 의하면 검찰총장 직무정지에 대해 56.3%가 잘못했다고 지적한 반면, 38.8%만 잘했다고 응답했다. 문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는 58.2%, 긍정평가는 37.1%로서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이러한 여론에도 불구하고 법무장관은 검찰총장 징계를 강행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여당은 야당의 거부권에 막혀 공수처법 처리가 어렵게 되자, 한 번도 시행해 보지 않은 이 법을 또 다시 개정하여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 검사는 물론, 판사와 국회의원까지도 수사할 수 있는 ‘괴물 공수처’의 출현은 3권 분립의 파괴로서 한국민주주의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이처럼 절제되지 못한 권력은 필연적으로 비극을 초래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대통령들의 불행한 말로(末路)를 벌써 잊었는가? 퇴임 후를 대비하여 법적·제도적 안전장치를 만들었던 그 어떤 대통령도 결코 자신을 지켜주지는 못했다. 정치의 세계에서 영원한 권력은 없기 때문이다.따라서 무도한 정권의 권력 폭주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투쟁의 최전선에 있는 야당의 정치력이다. 야당성도 투쟁전략도 없는 무기력한 ‘국민의 힘’은 전열(戰列)을 재정비하고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싸워야 한다. 또한 양심적 지식인과 정론(正論)언론을 중심으로 깨어있는 시민들이 결속하여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

2020-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