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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화재의 재발견, 골동품 축제

▲ 하재영 시인종종 가까이 있는 국립경주박물관을 찾는다. 조상들이 만든 섬세한 물건을 볼 때마다 그 놀라운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나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 방문객 역시 놀라움과 신기함으로 전시 작품을 뚫어지도록 쳐다보는 것도 그곳에서 쉽게 볼 수 있으니 말이다.사람마다 관심 분야가 다르듯 박물관에 전시된 물건을 감상하는 시선도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성덕대왕 신종 앞에서 발길을 떼지 못하고, 또 누군가는 안압지 출토 유물관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다.전시된 모든 물건들이 백두산이나 독도처럼 우리 민족의 소중한 자산임에 틀림없다. 그 중에서도 난 금관총에서 발견된 `금제대관` 앞에서 오래 머무르게 된다. 금관을 비롯하여 금띠, 금반지, 금팔찌, 금목걸이의 모습이 얼마나 정교하고 화려한가. 그리스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에서 만난 `아가멤논의 황금` 가면이라든지, `황금 컵` 그 이상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최근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재청은 10월29일부터 내년 2월23일까지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열리는 `황금의 나라, 신라`특별전에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반가사유상을 전시하기로 했다고 번복 발표했다.반가사유상과 함께 반출을 불허했던 경주국립박물관의 국보 제91호 기마 인물형 토기와 국보 제195호 토우장식 장경호의 전시는 허가하지 않았다. 기마 인물형 토기와 토우장식 장경호는 파손 우려가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박물관에 들러 그런 귀한 문화재를 볼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우리나라 가정에도 국보급 물건을 보관하고 있는 집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는 옛 물건이라고 천대하며 토광이나 다락방 한 구석에 처박아 놓은 것도 있을 것이다.며칠 전 고흐가 1888년 7월5일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언급했던`해질녘 몸마주르에서`란 대작이 진품으로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노르웨이의 소장가는 20여년 전 한 차례 감정을 의뢰했지만 진품으로 인정받지 못했단다. 그것을 다락방에 처박아 두다 재차 감정을 의뢰했고 발전한 과학 기기의 판정으로 이번에 진품임을 확인했다는 것이다.우리 가정에 숨어 있는 옛 물건 또한 그것처럼 국보급으로 인정받지 말란 법이 어디 있을까. 특히 전통 문화의 흔적이 많은 경주와 안동은 낡아 빛나는 유물이 어느 도시보다 발견될 가능성이 많은 도시다.그런 도시 한 곳에서`길거리 골동품 축제`를 개최하는 것은 어떨까.박물관 수장고에 있는 작품 몇 점도 길거리로 내 보내 햇빛을 쬐게 하고, 집안 한 구석에 박혀 있는 옛 물건도 들고 와서 감정도 받을 수 있게 하는 `길거리 골동품 축제`는 분명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것이다. 일부러 그런 축제를 펼치기 힘들다면 기존의 축제 일정에 이와 같은 프로를 넣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길거리 골동품 축제`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게 될 뿐만 아니라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우리 옛 물건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게 할 것이다.가을이다.다가오는 주말 국립경주박물관을 다시 찾아야겠다. 그곳에서 만나게 되는 금관총 출토 유물도 보고, 국보 195호 토우장식 장경호 앞에 한참 서성여야겠다. 그릇 둘레의 새, 오리, 토끼, 물고기, 개구리, 뱀 그리고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에로틱한 토우를 보며 그릇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선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겠다.그와 비슷한 느낌을 어느 후일 경주든, 안동이든 `길거리 골동품 축제`장에서 새롭게 발견하는 기쁨까지 갖게 된다면 얼마나 좋으랴. 세월의 흐름으로 그냥 없어지는 것을 재발견하고 보존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일, 그것은 분명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할 일이다.

2013-09-13

아버지

▲ 조현명 시인고1 아들이 학원에 새로 등록했다. 아무래도 영어과목이 좀 부진하다 싶어 보충을 해야겠다는 것이다. 그래라 하고 보니 마치는 시간이 늦어 기다려주지 못했는데 하루는 작정하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자야겠다는 생각으로 기다렸다. 그런데 새벽 1시를 넘겨도 돌아오지 않는 것이 아닌가.`마칠 시간이 지났는데` 아들에게 전화해도 받질 않고, 이 시간에 학원으로 전화하기도 그렇고 졸리지만 애쓰며 참고 기다렸다. 새벽 2시가 다 되어서야 이제 마쳤다며 들어온다.“다음부턴 좀 빨리 다녀라”한마디 하고 잠에 들었지만 편칠 않아 잠에 잘 들 수가 없었다. 다음날 하루가 다 멍멍하고 잠이 쏟아지고 무기력한 하루였는데 녀석은 어떨까. 이건 기형도의 `엄마걱정`을 바꾸어서 자식걱정이다.“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한 빗소리/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가족이 돌아오지 않아 기다리는 걱정은 닮았지만 기형도의 쓸쓸함에는 비교도 되지 않는 자식걱정은 그래도 아비로서 깊은 정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아침 밥상머리에 “녀석아 아빠가 기다렸다”라고 하니 웃으면서 “시험기간이라 좀 더 늦는데 앞으로 그러실 필요 없어요”라고 말한다. 아버지 노릇하기도 몸이 좀 고달프다는 생각이 든다.대학시절 다니던 교회 청년부 회지에서 읽은 아버지에 대한 글이 문득 생각난다. 회지를 잃어버려서 본문은 싣기 어렵고 요약해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농번기에는 학교에 가지도 못하고 농사를 도왔던 적이 있었다. 휴일에는 당연히 농사를 도와야했다. 가을 즈음에 참새들이 나락을 까먹을까봐 허수아비도 세워놓고 깡통도 두드리고 하던 때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학교 마치고 돌아온 토요일 오후 깡통과 막대기를 들고 논에 나가 새들을 쫓고 있었다. 그러다 지루하고 재미없고 힘겨운 그 일을 그만두고 놀 마음이 생겼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마당에 가서 그만 어울렸다. 구슬치기를 한 참 집중해서 하고 있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낮은 담장 너머로 아버지의 얼굴이 지나간 것 같았다. 아버지는 매우 완고하시고 무서운 분이셨다. 이제 큰일 났구나. 겁이 덜컥 나서 구슬을 내려놓고 도망 나왔다. 갈 데는 없고 오리쯤 떨어진 읍내로 가서 저녁이 되어 어둑어둑 할 때까지 돌아다니다가 배고파 허기져서 참지 못할 지경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올 생각이 났다. 어두워져 새벽 2시나 되었을 것 같은데 아버지가 불을 켜놓으시고 마루에 앉아 계셨다. 아버지는 이후에도 그날 일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도 안하셨다.가부장적인 가치가 매우 중요했던 시절 그래도 엄한 아버지는 부자유친(父子有親)의 친(親)자가 말해주는 친한 사람이다. 즉 사랑으로 자식을 기르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지금 시대에도 이런 가치는 유효해서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으로 가르치지 못하면 온갖 문제가 발생한다. 최근 존속 살해사건이 많아진 것에서도 그 결과를 볼 수 있다. 가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이 부재하면 자녀들이 올바로 클 수가 없다. 그것은 결국 더 큰 사회문제로 확대 재생산되어질 것이기 때문에 시급히 고쳐야 할 문제이다. 나는 오래전 아버지학교를 수료했다. 거기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조선시대 `사주당(師朱堂) 이씨`가 쓴 태교에 관한 책`태교신기`1장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고 한다. `가르침 중의 가장 근본이 되는 가르침은 태교이며, 태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기를 가질 때의 아비의 올바른 마음이다` 아버지의 마음가짐이 아기에게 이미 씨로서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생겨날 때부터 영향을 미친다는 놀라운 이야기다. 이처럼 자녀에 대한 아버지의 영향력은 작지 않다. 그 마음 속 깊이에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많지는 않겠지만 자꾸 늘 약한 듯해서 안타깝다. 아들이 어렸을 때, 그 작은 놈이 아파서 열병이 났을 때 처음으로 아버지가 되었던 것이 생각난다. 내속에 자녀에 대한 사랑을 발견하는 것은 쉽다. 그 녀석이 넘어지거나 아플 때, 쓰러질 때, 내 팔이 필요할 때이니 말이다.

2013-09-06

`피치 퍼펙트`

▲ 조현명 시인할리우드 영화중 음악을 소재로 하는 영화가 제법 있다. 그중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하이스쿨 뮤지컬`이 있지만 대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가 `피치 퍼펙트`이다. 이 영화는 아카펠라 그룹들끼리의 경연을 중심으로 서로의 대결과 사랑을 다루는 2012년에 나온 코메디 멜로영화이다. 물론 우리나라엔 올해 개봉되었다.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가 독특한 것은 리더에 대해 생각할 점들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최근 학교에서 `피치 퍼펙트`를 재료로 토론수업을 진행했다. 학생들은 영화를 본 뒤 다음 제목에 대해 글을 쓰면서 생각할 시간이 주어졌다. `1. 영화를 보면서 리더가 갖추어야할 덕목들을 써보아라`, `2. 여성 아카펠라 그룹 벨라스의 리더 오브리가 가진 리더로서 장점과 단점을 적으라`, `3. 나중에 리더가 된 베카의 장점과 단점을 적으라`는 내용이었다. 그 뒤 토론이 이어졌다.오브리의 장점은 오합지졸이었던 벨라스의 신입생들을 엄격함과 독려로 끝까지 훌륭한 팀으로 만들어내는 좋은 리더였다. 그러나 독선적이어서 자신의 목표달성에만 열중해 팀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 팀을 끌고 가는 단점이 있다. 베카는 음악에 탁월한 재능이 있고 자신을 친구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그래서 팀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내는 매력적인 힘이 있는 리더이다. 그러나 역시 자신의 재능만 믿고 팀원들과 상의하지 않은 채 앞서 나간적도 있다. 또한 인정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을 밀어내는 내면에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으로 단점 투성이 인간이다.학생들은 이런 오브리와 베카의 모든 장단점들을 잘 지적해낸다. 원탁토론이어서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한 바퀴 돌아가면서 모두 이야기를 다하고 나자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이야기 중 몇 가지 의문이 생겨났다.오브리의 단점이었던 독선은 사실은 팀을 위한 승부욕이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과 베카의 규칙이나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닌 배려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다른 친구들을 배려하는 공감능력이 만들어내는 통솔력은 과연현실에서 가능할까 라는 의문들이었다.아내가 뇌종양으로 진단되고 난 뒤, 여름방학 전, 다니던 중학교에 병가를 내고 3개월 치료에 들어갔었다. 2학기가 시작되면 남은 병가와 병휴직으로 2학기를 모두 집에서 요양하면서 보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학교에 그 사실을 알리자 교장선생님은 강하게 만류하였다. `집에서 쉬면서 보내면 주변에서 이제 정말 더 병이 중해진줄 알게 될 것인데 그 영향은 어떡하며, 집에 쉬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자꾸 우울해져서 오히려 더 힘들테고, 게다가 오랫동안 해오던 생활 패턴을 무너뜨리는 것은 건강에 더 나쁘다. 수월한 업무를 맡고 학교에 나와 다시 근무하라`는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었다. 의외의 교장선생님의 맞닥뜨림 앞에 아내는 결국 뜻을 굽혔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교장선생님의 강한 말씀에 내가 도움을 받아 잘못된 생각을 바르게 고칠 수 있었다. 참 고마운 분`이라고…. 이런 이야기를 아내에게서 들으면서 `그 교장선생님이야 말로 정말 좋은 리더이다`라는 생각을 했다.베카의 공감능력은 이 시대에 부드러운 리더십이라고 불리면서 팀을 아우르는 훌륭한 리더의 자질로 말하여진다. 그러나 학생들의 지적은 이랬다. “부드러운 선생님들은 우리에게 참 편안하고 좋은 그리고 훌륭한 가르침을 주십니다만 어떨 때는 우리 스스로 그 안에서 통제력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선생님(웃음)”, 그러므로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매우 사려 깊은 선택 같은데 그 문제의 핵심이 무얼까 질문해보니 집단이 가진 시스템의 한계라든지 구성원의 밑바닥에 깔린 정서나 문화의 문제 등을 지적하기도 했다. 즉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고 공감해주고 자발성을 살려주는 것은 참 좋은데 어떨 때 통솔력을 잃어버리는 한계를 만드는 내부적(한 없이 놀고 싶은) 외부적 요인(온갖 유혹)들이 상존해있으니 반쯤 성공할 것이라는 깜찍한 결론이었다. 영화를 보고 토론하는 시간이 영화처럼 훌쩍 흘러갔다.

2013-08-30

선풍기

▲ 조현명 시인선풍기가 멈추어 섰다. 바람이 뚝 그치고 그 특유의 날개소리도 자취를 감췄다. 수명을 다한 것이다. 한 20년쯤 됐으니 그럴 만도 하다. 물론 오래전부터이지만 어제 저녁에 소음이 심하고 고개를 자꾸 숙이는 게 이거하나 바꿔야겠다며 낮에 새것을 하나 장만해뒀는데 바로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수명을 다했다. `나의 목숨도 저럴 것이다`라고 생각하니 안쓰럽고 쓸쓸했지만 감정도 없고 생각도 없는 저 기계를 사랑할 일 없으니 그저 내다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마트에서 새 선풍기를 사면서 이미 구선풍기용 폐기물 딱지를 사두었던 것인데 곧바로 쓸 줄이야 생각하진 못했다.최초의 선풍기는 부채를 닮았다. 1600년대 천장에 매달아 놓은 추의 무게를 이용하여 한 장으로 된 커다란 부채를 시계추 모양으로 흔들어 바람을 일으켰다. 이어 1850년대에 탁상선풍기가 발명됐는데 태엽을 감아 사용하는 것이었다. 전기를 이용한 선풍기는 에디슨이 발명했으며, 점차 발달하여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 보호망을 씌운 선풍기가 만들어졌고 현재 선풍기처럼 아름답고 정교한 것으로 발전해왔다. 심지어 날개 없는 선풍기 까지 만들어져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처음 선풍기가 나왔을 때 얼마나 사람들 사이에 신통한 기계로 여겨졌을까. 그런데 이젠 날개가 없이 바람을 일으킨다니 참 신통방통한 일이다.어릴 때, 할아버지가 선풍기를 틀어놓고 주무시는 것을 옆에서 오랫동안 지켜본 일이 있다. 술이 취하셔서 더우신지 잠꼬대를 하시며 선풍기 바람을 얼굴에다 대고 낮잠을 주무셨다. 그래도 끄떡없이 몇 시간 후에 일어나셔서 내게 냉수를 달라고 하신 것이 기억난다. 그때 선풍기들은 대체로 `골드스타`같은 상표를 달고 있었는데 선풍기 날개에 손가락을 다치는 경우가 많아 얇은 그물 망을 씌어놓기도 했다. 에어컨이 없던 시절 이 선풍기가 더운 여름을 나는 가장 훌륭한 일등 공신이었는데 이젠 보조용 기계에 불과해졌다. `골드스타` 상표를 단 선풍기가 아직도 있다면 그것은 골동품 가게에서나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박태훈의 `해학이 있는 아침`에는 다음 같은 옛날 선풍기에 얽힌 풋풋한 이야기가 나온다.1969년에만 해도 서민들은 선풍기 구경을 하지 못했다. 당시 월남에서 근무했던 친구가 현지 제대하면서 한국에서 선풍기를 살 수 있는 쿠폰을 받아 맡겼다. 어디 선물 할 거라는 14인치 `골드스타` 선풍기 쿠폰이었다. 그때가 봄이라 판매점에서 수령 해와 보관했다. 여름은 무척 더웠다. 부채로 넘기던 시절인데 더워도 참을 수 밖에 없었다. 하도 더워 아내가 보관중인 선풍기를 뜯었다. 걱정하면서 시원한 바람에 즐거워했다. 하지만 남의 물건인데 딱 한 시간만 써 보고 원상태로 했다. 시험 가동을 한 셈이다. “선풍기란 게 요런것이야. 정말 덥네! 정말 더워!” 그래도 나와 아내는 `사람은 신용이 제일`이라고 생각 했다. 그래서 선풍기를 원상태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바보스러운가? 더위와 싸우는 아이와 엄마를 생각해서 선풍기를 써도 됐지만 그해 여름, 더위와 맨몸으로 싸우며 보냈다. 다음해 봄, 친구가 귀국해서 선풍기를 찾아갔다. 아내는 친구에게 한 번 썼다는 사과를 했다. 친구는 말없이 선풍기를 받았다.1970년 여름에는 큰 마음먹고 선풍기를 장만 했다. 우리 집 가보 2호가 됐다. TV가 1호 였으니 말이다. 더운 여름이면 생각나는 지난 모습이 우습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에어컨을 켤 때마다 그 시절 생각이 나 마음을 조린다. 가끔씩 켜는 에어컨은 손님 올 때만 쓰고 평소에는 선풍기를 켜고 지낸다. 금년 여름이 아무리 덥다고 해도 전기요금을 생각하니 아껴야겠다.왜일까? 그래도 선풍기 바람이 없을 때 사람들 마음은 더 따뜻하고 시원 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선풍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현대 사람들 생각 또한 왜일까?

2013-08-23

침묵, 멈추어 걸러내고 새롭게 떠나는 길

▲ 정석수 신부·성요셉복지재단 상임이사폭염이 떠날 줄 모르고 매미는 지칠 줄 모른다. 그러나 처서가 지났기에 한 밤 중 풀벌레 소리 듣는 호젓함 그 누가 앗아갈 수 없는 즐거움이다. 몇 년 전 백담사에 들러 여유로움을 누린 적 있었다. 다리를 건너면서 흐르는 개울에 쌓인 돌탑, 물장난 소리와 어머니와 함께 돌을 쌓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남았다. 경내에 들어서자 처마의 가지런한 모습처럼 댓돌에 놓인 하얀 고무신의 행렬이 인상적이었다. `묵언`이라는 글씨를 본 순간 한 낮의 열기보다 더 한 치열함으로 살아가는 침묵의 수행자들이 있다는 전율을 잊을 수 없다.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는 못 본 그 꽃” 고은 시인의 짧은 시를 읽으면서 내 중심의 활동에 빠져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돌이키게 했다.컬린 터너는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고 했다. 기억력으로 지식을 얻는 단계를 넘어 지혜를 추구하는 시간을 가진 것이리라. “침묵으로 들어가는 것, 완전한 고요함을 가지는 것이 내면의 소리를 활성화하는 법을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교수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갖도록 세계 유수의 대학들이 요구하고 있고 탁월한 기업가들은 방해받지 않는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며 현재를 정리하고 미래를 찾아가고 있다. 역사에 길이 남는 정치인들도 다양한 장소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고 통찰력을 얻었고 마침내 그것을 발휘했다. 넬슨 만델라는 27간의 감옥에서 출소하여 10만명의 군중에게 새로운 사회를 제시했다. “아파르트헤이트에는 미리가 없습니다. 우리 흑인들이 총과 폭탄을 들고 과격한 저항을 했던 것은 모두 스스로를 지키고 정당한 권리를 되찾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아파르트헤이트가 철폐된 지금, 우리 모두 힘을 합하고 단결하여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침묵은 숙고의 시간이며 생각의 여과기이다. 일상의 삶에서 침묵으로 소음을 걸러내고 온갖 정보를 걸러내며 새로운 방향을 찾을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답으로 컬린 터너는 자신만의 후퇴장소를 마련하라고 했다. 즉 “다락방이나 지하실이라도 좋다. 당신은 모든 것을 떠날 수 있는 자신만의 세계를 꾸며라”고 했다. 한 평의 작은 공간이라도 방해받지 않는 자신만의 장소에 머물 수 있다면 치열한 전투를 통해 삶에 긍정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봉쇄수도원도 아니면서 한 적한 시골에 터를 잡고 각자 몸 둘 장소를 만들어 침묵으로 생활하는 이들이 있다. 가끔씩 찾아가서 그분들을 뵙고 차 한 잔을 얻어 마시고 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그들은 먼 길을 걸어 성당에 다니면서 지역 주민의 농사를 거들어 주기도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삶의 조건을 살펴보면 가장 불안정한 삶을 선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먹을 걱정 없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다. 좁은 골방 같은 처소에서 그들은 하느님 말씀, 성경을 벗으로 침묵으로 살아가고 있다. “너희는 멈추고 내가 하느님임을 알아라”는 시편의 말씀에 따라 멈추고 하느님을 알아가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말씀 앞에 침묵으로 멈추어선 이들의 삶, 근원에서 끌어올린 행복한 미소가 아니겠는가.`아주 특별한 순간`의 저자 안토니오 신부가 침묵 피정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는 침묵 피정으로 “우리는 조금 말하고 하느님이 더 말씀하시도록 침묵합니다”는 말씀에서 자신을 비우는 자세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께로 자신을 열어두는 자세를 설명했다. “네 길을 주님께 맡기고 그분을 신뢰하여라. 그분께서 몸소 해 주시리라”는 다윗의 자세를 배우게 한다. 침묵으로 모든 소음을 걸러내고 자신을 내어 맡긴 주님의 손길은 삶의 어떤 위기에도 위로요 일어설 힘이 될 것이다.

2013-08-16

수박 이야기

▲ 조현명 시인`보름달 같은 수박 한 통/ 혼자서는 먹을 수 없지/ 다 함께 먹어야지 나눠서 먹어야지` 안도현 시인의 `수박 한 통`이라는 시다. 안 시인의 시에는 의외로 수박에 대한 표현이 많이 나온다. 아버지가 수박농사를 지었기 때문이리라. `축구공`이란 시에 보면 `아버지는 수박을 키웠고 나는 축구공을 뻥뻥 찼다 수박을 뻥뻥 찼다` 란 구절이 나온다. 아예 `수박`이란 제목을 단 동시도 있고 `중요한 곳`이란 시에는 `마음에 수박씨 박히듯`이란 아름다운 표현이 나오기도 한다. `붉은 달`이란 시에서는 그 붉은 속을 빗대어 수박이 붉은 달로 불리기도 한다. 수박이 온통 시인의 삶에 오롯이 들어와서 넝쿨을 뻗어 이곳 저곳 열매를 맺어놓고 있다.여름의 대표적인 과일 수박은 원산지가 남아프리카로 유럽을 거쳐 실크로드를 타고 송나라와 고려에 전해졌다고 한다. `수박 한통 값이 쌀 다섯 말`이라고 하면 엄청 비싼데 이건 요즘 시세가 아니라 조선 세종23년(1441년)때의 가격이다. 당시의 수박은 어찌나 귀한지 세종실록 23년 11월15일자 기록을 보면 수박을 훔쳐 먹다 곤장을 맞고 귀향을 가거나 심지어 수박 때문에 목숨을 잃은 정승에 대한 기록도 나올 정도다. 금덩이처럼 귀한 수박이어서 세종임금 마저도 수박도둑에게 만큼은 참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세종5년 주방에서 일하던 한문직이라는 내시가 수박을 훔쳐 먹다가 들켜 곤장 백대를 맞고 귀향 갔다고 했고 또 세종12년에도 궁중 물품을 공급하는 내시 관리가 수박을 훔쳐 먹다가 곤장80대를 맞았다는 기록이 있다.베트남에는 우리나라의 흥부전과 비슷한 수박이야기가 전해진다. 한 소년이 8살이 되던 해 수도에 가서 왕을 만나게 된다. 소년의 총명함을 본 왕은 이 소년을 수양아들로 삼고 이름을 마이 안 띠엠이라 지어준다. 안 띠엠은 성장하면서 힘이 세고 일을 매우 열심히 하자 흥 왕은 안 띠엠을 결혼을 시키고 숲을 개간하게 하여 나무를 심게 한다. 얼마 되지 않아 안 띠엠은 집을 짓고 많은 벼를 수확하여 풍족하게 되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시기하여 왕에게 말하기를 “안띠엠이 왕을 무시한다. 그의 집과 재산이 임금의 은총 때문인데 자신의 재능에 의한 것이라 떠들고 다닌다” 라고 했다. 왕은 이 말이 정말인지 거짓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몹시 화를 내고 안 띠엠의 가족을 동해의 무인도에 귀양을 보내라고 명령하게 된다. 그리하여 안 띠엠의 가족은 바다를 떠다니다가 무인도에 다다른다. 안 띠엠은 그곳에서 뾰족한 나무를 발견하여 땅을 파 들어가서 마실 물을 발견한다. 이어 자식들과 함께 나뭇가지를 꺾어 비를 피할 집을 만들고 아내는 해변에 나가 게를 잡아 전 가족을 먹였다. 그러던 어느날 안 띠엠은 머리 위에 날아가는 하얀 새를 발견하는데 이 새가 하얀 모래 변에 까만 씨앗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는 이 씨앗을 가져와서 심어 보았다. 몇 달 후 이 씨앗은 모래 위에 많은 넝쿨로 자라나게 되고 이 넝쿨엔 사람 머리만큼 크고 푸른 과일이 달렸다. 안 띠엠은 이 과일을 따서 집으로 가져와 갈라보니 과일 속이 붉고 달았으며 수분이 많고 맛이 있었다. 안 띠엠은 이 과일이 너무 마음에 들어 여러군데 심었다. 과일이 많아지자 안 띠엠은 작은 상자에 글자를 새기고 과일을 담아 바다로 띄어 보낸다. 이 상자는 여러 장소로 떠다니게 되고 배들이 오가며 이 상자를 발견하고 과일을 먹어 보니 달고 맛이 있었다. 점차 이 상자가 어느 섬에서 온 것이라 알려지게 되자 상선들은 옷감, 쌀 등 많은 물건들을 들고 와서 이 과일과 교환하고 이 과일들을 다른 곳에 팔게 되었다. 이것이 수박 즉 붉은 수박이었던 것. 붉은 수박의 명성은 왕의 귀에 들어가게 되고 왕은 안 띠엠의 재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안 띠엠을 다시 육지로 불렀다. 왕은 안 띠엠의 가족에게 큰 포상을 하고 모든 백성들에게 이 과일을 심는 방법을 가르치도록 한다. 이후로 베트남에 수박이 심겨지고 농부들이 먹기도 하고 팔기도 하게 되었다.안도현의 수박이든 세종대왕의 수박이든 마이 안 띠엠의 수박이든 내가 지금 앞에 놓고 한입 베어 무는 수박이 제일 맛있고 시원하다. 그래도 이런 수박이야기를 알고 있으면 더욱 맛이 난다. 두런두런 같이 먹는 아이들에게 이야기라도 하면 잠시 여름 더위를 잊고 시원하게 지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든다.

2013-08-09

기존의 것을 뛰어 넘어서려는 긴장감

▲ 정석수 신부·성요셉재활원 상임이사사람은 기존의 것을 뛰어 넘어 나아가려는 긴장감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인간의 모습을 철학적 인간학에서는 자기 초월이라고 한다. 자기 초월은 수평적 초월과 수직적 초월이 있다. 수평적 초월은 단지 앞으로 미래로 나가는 시간과 공간의 지평으로 역사적 시선이다. 수직적 초월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 무한자에게로 나아가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 속에 살아가는 수평적 차원에서 인간은 자신이 만든 디지털의 시대를 살면서 미래를 다시 쓰고 있다. 에릭 슈미터와 제러드 코언은 `디지털 권능화(digital empowerment)`, 인류가 만들어 놓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가운데 하나로 무형의 지속적인 변화 상태를 경고하고 있다. 인터넷은 선과 악의 새로운 근원이 될 수도 있고 그것에 의한 영향력을 전 세계가 이제 목도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인터넷의 선기능이 강화되어 소외 없는 세상, “누구나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변화”의 물결에서 벗어남이 없기를 바란다. 희망적인 것은 사회 모든 계층이 연결되어 가고 있다.그러나 가상공간 인터넷으로만 연결되고 존재하게 될 때 인간을 호모인터넷꾸스(homointernetcus)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으로만 존재할 때, 얼마나 암울해질까 두렵다. 호모인터넷꾸스이면서 동시에 호모트란센데꾸스(homotranscendecus), 자신이 만든 모든 것과 시간적 공간적 잣대를 뛰어넘어 무한자에게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GIGO(garbage in, garbage out)라는 컴퓨터 용어가 있다. 이는 잘못된 정보를 넣으면 잘못된 정보가 나오고 쓸모없는 정보를 넣으면 쓸모없는 정보가 나온다는 뜻이다.`자아를 찾기 위한 도보 사파리`프로그램을 실시한 리처드 레이드는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을 걸으며 자신의 배낭을 점검할 수밖에 없었노라고 했다. 프로그램 안내자 코이예는 맨몸으로 앞장서고 자신은 필요한 것이라고 여긴 물품을 가득 지고 하룻길을 갔다. 숙소에 도착하여 코이예의 질문을 받는다. “배낭 속의 물건을 볼 수 있습니까?” 그래서 비상약품 등 하나하나 꺼내어 주었을 때, “이 물건이 있어야 당신은 행복한가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우리는 여기서 인생의 배낭, 자신을 확장하고 있는 보따리를 살펴보는 시간이 필요로 하다.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 등 일본의 지도자들은 오일삼성(吾日三省)을 실천한 증자를 멘토로 삼아 자신의 배낭을 살펴보았으면 한다. 박재희 교수는`3분 고전`에서 오일삼성을 설명하고 있다. 공자의 제자 증자는 하루를 마감하면서 세 가지를 반성 하였는데 첫째, 다른 사람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 살았는가. 둘째, 친구와 이웃에게 신뢰를 얻으며 살았는가. 셋째, 오늘 배운 것을 내 몸에 익혔는가.일본의 자기반성의 틀이 보편적이지 않을 때 결국 하고 싶은 대로 할 수는 있지만 GIGO의 법칙처럼 잘못된 것이 투입되고 산출 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 기본적으로 아소 다로는 입법권을 정부가 행사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될 때, 국회의 기능은 나아가 삼권분립의 기본 틀이 문제가 된다. 그렇게 되었을 때 수평적 차원에서 이웃국가와의 관계는 어디로 갈 것이며 미래는 어떻게 될까 걱정이다.그런데 가능성의 싹을 본다. 애니메이션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다. 그는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진작에 청산했어야 할 과제요 위안부 문제가 오르내리는 것은 일본의 굴욕으로 사죄해야 한다”고 했다. 나아가 헌법 개정은 당치 않은 일이라고 기고를 하면서 한국과 중국에 사과해야 됨을 밝혔다.`오직 독서뿐`인 책에서 정민은 장횡거(張橫渠)의 글을 첫 머리에 두었다. “책은 마음을 지켜준다. 한때라도 놓아버리면 그만큼 덕성이 풀어진다. 책을 읽으면 이 마음이 늘 있게 되고, 책을 읽지 않으면 마침내 의를 보더라도 보이지 않게 된다”

2013-08-02

한 여름밤의 불빛 이야기

▲ 이정옥 포항시축제위원장여름은 젊음의 계절이다. 인간으로 치자면 한창 혈기 왕성한 청년기요, 인생시계로 보면 이른 아침에 해당되는 시작의 시기다. 작열하는 태양의 에너지가 생명과 번식의 에너지로 바뀌는 계절이요, 대지의 뭇생명이 가장 왕성하고 풍요롭게 자라는 시기이다. 이 계절의 역사는 모두 밤에 이뤄진다. 한여름밤. 태양이 지고 어둠이 깔리면 신부의 옷자락처럼 육감적이고 신비로운 기운이 대기를 감싼다. 현실 세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아주 기이하고 신비로운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를 놓치지 않고 셰익스피어는 희곡을 썼다. 그의 희극 `한여름 밤의 꿈`의 배경이다. 마이클 호프만 감독의 이것을 바탕으로 더욱 몽환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그 전에 멘델스존은 명랑한 음악을 만들기도 했다.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고 친숙한 결혼행진곡이 여기서 나왔다.희곡 `한여름밤의 꿈`에서 한여름 밤이란 일 년 중 가장 낮이 긴 하지의 전날 밤, 가톨릭 절기로 치면 성 요한제의 전날 밤이 된다. 서양에서는 예로부터 이날 밤에 기이하고 신비로운 일이 벌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바로 이 점에 착안해서 셰익스피어가 신비롭고 환상적인 작품을 쓴 것이다. 신비로운 이야기의 배경은 숲속이었다. 야단스럽고 시끌벅적한 한바탕의 결혼 소동이 4쌍의 연인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사랑스러운 코미디다.오늘, 여기 포항에서는 또 다른 `한여름밤의 불빛이야기`가 시작될 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무더운 시기, 전국민이 부지런히 일하던 일터를 벗어나 잠시 휴식을 취할 시기 약 열흘동안, 그들의 이야기를 할 참이다. 셰익스피어의 숲속이 아닌, 포항의 영일대해수욕장과 해변, 그리고 형산강가에서 신비롭고 아름다운 우리들의 꿈 이야기를 말이다.포항국제불빛축제는 올해로 꼭 10년째가 됐다. 오늘의 글로벌 포항을 있게 한 포스코가 시민들을 위한 꿈의 선물, 불꽃을 쏜 것은 2004년 6월12일, 시민의 날이었다. 당시만 해도 쉽게 볼 수 없었던 외국 유수의 연화팀을 초청하여 연출한 밤하늘의 불꽃은 그야말로 `한여름밤의 꿈과 같은 선물`이었다. 덕분에 포항시민들은 신비롭고 낭만적이고도 몽환적인 꿈을 꾸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자긍심 또한 대단했다. 그리하여 10년, 그 불꽃쇼는 해마다 규모가 커졌다. 2006년 포항시와 함께 불빛축제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단 하룻밤의 불꽃쇼가 아닌 명실상부 축제가 됐다. 3년전부터는 대한민국문화관광축제로 선정되면서 포항시민들만이 아닌, 전국민이 즐기는 축제가 됐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보고 싶은 축제 3위에 꼽힐 정도로 유명한 축제가 됐다.실로 불과 빛은 포항의 처음이요 끝이다. 포항의 시작이었듯이 미래이기도 하다. 포항의 정체성이다. 포항의 옛 지명 영일은 해를 맞이한다는 뜻이다. 신라시대 사라진 해와 달의 빛을 다시 찾아 맞이한 곳이라는 역사적, 혹은 신화적 장소였다. 산업화의 불을 지펴서 오늘날 이렇게 잘살게 된 포스코의 용광로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곳이다. 바다를 향해 열려 있어 앞으로 더욱더 큰 꿈을 품고 있는 도시다.올해는 더욱 다양한 빛의 잔치가 펼쳐질 것이다. 영일대해수욕장에 바닷속에서 솟은듯이 만들어진 해상누각 영일대를 배경으로 영상미술, 미디어아트는 세상에 둘도 없는 환상을 선물할 것이다. 포스코의 야경을 배경으로 한 형산강에서의 불꽃쇼는 밤하늘을 캔버스 삼아 한여름밤 낭만과 몽환의 세계를 그려낼 것이다.힘들고 지쳤다면 포항으로 오시라. 꿈을 꾸고 싶으면 포항에서 축제를 즐기시라. 어린이는 불꽃과 모래에서 미래의 꿈을 찾아라. 젊은이는 사랑을 춤출 준비를 하라. 어른들은 두런두런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한여름밤을 꼬박 새워도 좋을 터이다.

2013-07-26

물음표에 관하여

▲ 조현명 시인`레미제라블`을 쓴 빅토르 위고가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독자들의 반응이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출판사에 `?` 만 쓴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상징적인 의미로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모양을 한 기호를 출판사에 보낸 뜻은 아마 노골적으로 `내 작품 어때`라는 말을 하기가 싫었던 것이다. 출판사 관계자의 답장은 어땠을까? 당연히 기지를 발휘해서 `!`로 된 답장을 보냈다. `놀라서 뛸 정도로 반응이 좋다`는 뜻으로 보낸 편지였다.그런데 우리는 `?`가 어떻게 `물음` 혹은 `의문`의 뜻을 가지게 되었으며 언제부터 그렇게 썼는지 잘 알지 못한다. 한 번도 그런 물음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물음표에 대해 물음을 가지지 못한 불편한 진실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인터넷을 뒤져서 물음표에 대해 알아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윗 부분은 머리모양이고, 밑에 있는 점은 만년필 펜촉으로 누르면서 생긴 것이다.`, `인간이 앉아서 쭈그리고 무언가를 생각하는데서 생겨난 기호`, `호기심이 많은 동물인 고양이의 꼬리를 형상화한 기호`, `프랑스 조각가 로뎅의 작품 생각하는 사람의 모양을 본뜬 기호` 이런 여러 가지 설들은 그 근거가 살짝 의심되는 듯한 것들이다. 그런데 물음표는 분명히 동양에선 사용하지 않던 부호이다. 서양에서 만들어 졌고 현재와 같은 형태의 `?`는 본래 `…을 찾는`이란 뜻의 라틴어 `quaestio(퀘스티오)`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 것이 정설이다. 중세 유럽 수도원 신학자들은 성경의 문장의 속 깊은 의미를 전하려 애썼는데, 신자들로부터 종종 질문을 받기도 했다. 질문은 곧 신학자의 문제가 되었는데, 이에 연유해 quaestio란 말은 `질문` `의문` `물음` `문제`라는 뜻으로 통했다. 그리고 질문이 있을 때마다 문장 끝에 quaestio를 썼는데 그것은 매우 번거로웠다. 그래서 quaestio의 머리글자를 대문자 Q로 쓰고 이어 꼬리글자 o를 붙여 간략하게 표기하는 글자가 생겨났다. 그러다가 아예 Q자 아래에 o자를 붙여 하나의 글자로 썼고, 마침내 `?` 모양으로 바꾸어 썼다고 한다. 또 다른 설로는 고대 그리스 학자들이 의문부호로 사용한 세미콜론(;)의 위아래를 뒤바꿔서 `?` 기호를 만들었다고 전하기도 한다.그러나 이 물음표 혹은 질문기호는 기호이기 이전에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이 `생각하는 사람(Homo sapiens)`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질문이 있었기 때문에 인간을 새로운 시간을 열고 발전해왔다. 내비게이션을 발명한 내비라는 발명가의 어머니의 질문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위대한 사람 뒤에는 항상 위대한 부모가 있는 법이다. 내비의 어머니는 학교에 갔다오면 항상 `오늘 무엇을 했니?`라고 질문하기 보다 `너는 오늘 선생님께 어떤 질문을 했니?`라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그것이 내비로 하여금 항상 모르는 것에 대하여 질문하게 만들었고 그가 발명가가 되게 하는 좋은 역할이 된 샘이었다.요즈음 토론수업이 매우 주목을 받고 있다. 토론수업은 질문 투성이의 수업이다. 교사와 학생의 발문들이 모두 `?`를 단 질문들이 많고 그것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토론수업이다. 가정의 밥상머리에서도 이 같은 토론은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얘 스마트폰에서 앱이라는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이니?`라든지 `네가 가진 그 앱 어떻게 다운받아?`등 아이의 관심사를 위주로 어른이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내가 아는 것으로 반박하든지 다시 질문하든지 하면 토론으로 발전하게 된다. 토론을 하지 않는 것은 결국 질문이 없기 때문인데, 질문이 없는 것은 모든 조직의 시스템에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묵묵히 따라가야만 하는 사회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이제 새로운 시대엔 새로운 인재가 필요하다고들 말을 한다. 학자들에 의해 미래 인재의 키워드는 `열정`,`창의성`,`역경 극복`으로 말하여지고 있다.`열정`은 목표가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창의성`은 끊임없는 질문과 엉뚱함이, `역경 극복`은 앞선 열정과 창의성의 선물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목표에 대해 항상 질문 하는 자` 그가 바로 미래 인재일 것이다. 그러므로 `?`는 미래 인재의 기호라고 말 할 수 있다.

2013-07-19

점심 한 끼

▲ 하재영 시인얼마 전 저녁 자리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누군가 이야기를 꺼냈다. 여름이 되니 점심 한 끼 해결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더운 날씨에 식당을 찾는 것도 불편하고, 뭘 먹을까 음식을 선택하는 일도 작은 일거리라는 것이다. 점심뿐이겠는가 가정이든 직장이든 한 끼 식사를 준비하고 해결하는 일은 어찌 보면 즐겁고 행복하고 신성하기까지 한 일인데 바쁜 생활 핑계로 우리는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그 말을 듣고 집으로 향하면서 고향에 들렀을 때를 떠올렸다. 지팡이를 잡고 움직여야 하는 부모님을 모시고 이른 점심을 먹으려 식당을 찾았더니 다른 식당으로 가라는 것이다. 예약이 꽉 찼기에 더 이상 손님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모처럼 부모님을 모시고 간 식당에서 난 낭패를 당한 기분이었다. 간신히 설득하다시피 하여 구석 자리 하나를 차지하였다. 즐겁게 먹어야 할 점심시간이 시간에 쫓기는 불편한 자리가 되었다. 굳이 그 식당을 찾은 이유는 어머니께서 원하고, 또 건강에 좋다는 우리 농산물 식재료를 사용한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웰빙과 힐링 열풍을 타고 좋은 식재료를 찾은 사람들이 많아졌다. 모든 식당들이 친환경 또는 유기농 식재료를 쓴다고 하지만 손님들은 그냥 믿을 뿐이다. 그 집 재료가 어디서 어떻게 들어왔는지 소비자로서 확인할 바 없기 때문이다.며칠 전에는 사료용 배추와 시금치로 밥에 뿌려먹는 맛가루를 2년 동안 팔았다는 업주가 구속되었다. 그것을 사다가 아이들의 밥맛을 돋게 한 집이 어디 한두 집이겠는가. 분명 건강한 식재료로 만들었다고 아이들의 엄마는 굴뚝같이 믿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산 조기를 국산으로 둔갑시켜 팔아 이익을 취했다는 악덕 업주도 구속되었다는 보도도 있었다.이렇게 우리 식탁을 불신으로 몰고가는 소식이 한두 가지 뿐이랴.식당에서 먹는 하나하나의 식재료를 살펴보면 정말 이것은 우리가 먹어도 괜찮은가, 란 의문이 든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모든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되어 있지도 않은 상황이다. 경제 논리에 대부분의 농산물은 피폐화되고, 많은 농산물이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이런 문제와 가장 밀접하고, 민감한 곳이 대량급식을 시행하는 학교일 것이다. 매일 점심 한 끼를 학교에서 먹는 학생들의 급식은 그야말로 우리나라의 미래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에는 건강한 먹거리의 중요성과 규칙적인 운동의 필요성을 전제로 한다.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며 성폭력, 학교 폭력, 가정 폭력과 함께 불량 식품을 `4대 악(惡)`으로 규정하고 뿌리 뽑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불량 식품을 제조 또는 판매한 사람에 대해 형량 하한제도를 도입하여 1년 이상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법을 고치겠다고 했다.`불량식품` 추방은 한 때의 구호처럼 머물러서는 안 된다. 수시로 터지는 불량 식자재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모든 국민이 불침번을 서듯 늘 눈을 크게 뜨고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런 식품이 발 뻗을 수 없고, 그런 식자재를 제조 판매하는 가게가 발붙일 수 없도록 당국에서는 지도 점검을 철저해야 한다. 이것과 함께 유전자조작(GMO)으로 입증되지 않은 제품이 우리의 식탁에 올라오지 않도록 과학적 점검도 철두철미하게 할 필요가 있다.식중독 사고 발생률이 높은 장마철이다. 한 끼의 점심을 걱정없이 맛있게 먹는 것은 진정 행복이다. 그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식재료의 출신지뿐만 아니라 유통과정도 관심 갖고 살펴봐야할 것이다. 불량 식재료를 제공하는 곳과 사용하는 곳을 추방해야 제대로 된 한 끼의 점심이 되고, 아침 저녁도 건강한 식사가 될 것이 확실하다.

2013-07-05

초등 글쓰기 왜 중요할까?

▲ 김현욱 시인읽기 능력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쓰기 능력`이다. 제 힘으로 글을 써보아야만 책이나 교과서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다. 글을 쓴 사람의 기분이나 심정을 상상한다거나 글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추측하는 것도 직접 글을 써본 아이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글을 써보지 않으면 글을 읽을 수도 없다. 독해 능력을 키우지 않으면 지식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논리적인 사고도 불가능하다. 단순히 과목으로서의 국어 실력이 아니라 모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수학도 사회도 물리도 그리고 수업시간에 발표하는 능력이나 다른 사람의 의견을 이해하는 힘도 모두 모국어 능력과 연관되어 있다.그러므로 아이들이 글 쓰는 습관을 익히고 그 시간을 좋아하게 되면 학업에 필요한 다른 능력은 자연스럽게 갖추어진다. 얼핏 보면 너무 멀리 돌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것이 바로 아이들의 실력을 높이는 지름길이다. 쓰기 능력은 학창시절뿐 아니라 대학시험을 치르고 취직을 하여 사회생활을 해나가는 데도 크나큰 도움이 된다. 이런저런 상황에서 글을 써야 할 일이 생길뿐더러 글을 통해 그 사람의 실력과 인간성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즉 쓰기 능력을 기른다는 것은 스스로 살아가는 힘을 키우는 일이기도 하다.초등 글쓰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초등 글쓰기가 아이의 10년 후를 결정한다`의 저자 히구치 유이치에 따르면 “글쓰기는 너무 즐거워!”라는 것을 경험케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아이 스스로 글을 쓸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어 일상생활 속에서 `아, 무언가를 쓰고 싶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밥 먹고 똥 누고 숨 쉬고 잠을 자듯이 생활 속에서 글쓰기도 자연스러운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 쓰고 싶은 마음을 북돋우는 것, 초등 글쓰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글쓰기 지도 교사는 아이의 마음에 쓰고 싶다는 생각이 일도록 도운 후 손을 떼면 가장 좋다. 어쩌면 그것으로 그리하여 글쓰기가 즐겁고 신나고 속 시원한 일이라는 것을 체득케 만드는 것으로 우리의 역할은 끝난 건지 모른다.그렇다면 쓰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하면 북돋울 수 있을까? 첫째, 아이가 좋아하는 것으로 시작해야한다. 공부와 연관되어 있지 않더라도 아이가 좋아하고 빠져있는 대상이나 사물이 뭔지 잘 알아야 한다. 그것을 응원하고 인정해주어야 한다. 공부는 뒷전이고 축구에 빠져있는 아이에게, “엄마한테 축구 이야기 좀 들려줄래?”라고 물으면 기꺼이 메모지를 꺼내 와 설명해 줄지도 모른다. 둘째, 아이가 공감할 만한 자료(텍스트, 이미지, 동영상 등등)를 잘 활용해야 한다. 제사지낼 때 엎드렸다 얼마나 있다 일어나야 하는지 몰라 아버지 눈치를 보았다는 어느 아이의 글을 읽고, “아, 나도 그랬어요.” 라고 맞장구를 친다면 쓰고 싶은 마음은 이미 조성된 것이다. 셋째, 노작과 체험활동을 통해 직접 겪고 체험케 해야 한다. 아이의 몸은 커다란 연필과 같다. 그러한 경험들은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확인한 것들을 기록하고 싶게 만든다. 넷째, 꼭 `글쓰기`가 아니라 다양한 방법의 `표현`을 허용해야 한다. 말로, 노래로, 춤으로, 그림으로, 악기로, 혹은 무표정과 침묵으로 그때그때의 느낌과 기분을 표현하고 드러낼 수 있도록 존중해야 한다. 꼭 연필을 들고 공책에 뭘 써야만 글쓰기가 아니라는 것을 부모와 교사는 알아야 한다. 다섯째, 글쓰기를 통해서 자신이 부모님과 선생님과 소통하고 있구나, 라는 믿음을 심어주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일기 쓰는 사람은, 일기 검사하는 담탱이를 만난 초등학생 밖에 없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숙제와 검사를 위한 일기는 아이나 교사 모두에게 고역이다. 하지만, 일기장이 교사와 학생의 아름다운 소통의 장이 되는 경우는 다르다. 그 일기장을 서로 기다리는 정도라면, 그 교실은, 이미 소통과 공동체의 아름다운 글쓰기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글쓰기는 자신과의 만남이면서 동시에 세상과의 만남이다. 글쓰기를 통해 진정한 자아를 만나고 참세상을 보게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궁극적인 목적이 아닐까?

2013-06-28

커피 이야기

▲ 조현명 시인`악마같이 검고, 지옥같이 뜨겁고, 천사와 같이 순수하고, 키스처럼 달콤하다`는 글귀로 프랑스 작가 타레랑은 커피를 표현했다. 믿거나 말거나 밥은 라면을 먹더라도 커피는 커피전문점에서 마신다는 한국에서 커피는 타레랑의 악마와 지옥, 천사와 황홀한 키스까지는 아니더라도 `오후의 나른함을 날리는 마약`으로 자리 잡은지 오래다.우리나라의 커피는 1890년 전후 선교활동으로 들어온 선교사들에 의해 전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공문서에 의하면 고종황제가 을미사변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피해있을 때 약 1년간 공사관에서 머물면서 커피를 마셨고, 덕수궁으로 돌아온 뒤에도 커피 맛을 잊지 못해 계속 찾아 마셔서 우리나라 최초로 커피를 즐긴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그 때는 커피가 `가비`라고 불렸다. 커피보다 가비가 더 신비롭고 아름다운 이름인 듯하다.당시의 커피는 너무나 비싸 부유한 사람들이나 마실 수 있었는데 최초의 근대식 다방은 명동과 충무로 소공동 종로 등에 소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6·25전쟁 이후에나 대중들에게 확산되었다. 그것은 미군의 전투식량인 씨레이션에 들어있던 인스턴트커피가 흘러나와 시장에서 팔린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렇게 시작되었기에 한동안 우리나라 커피 시장은 거의 인스턴트커피 위주였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90%이상을 인스턴트커피가 차지할 정도니 말이다. 아마도`빨리빨리`를 좋아하는 한국문화가 원두를 볶아서 갈고 드립해서 커피를 얻는 과정을 거치기보다 바로 물에 타 섞는 것에 더 식미가 맞았을 것이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부터 고급 커피전문점들이 생겨나고 테이크아웃 커피점들이 생겨나 지금은 커피전문점 전성시대가 됐다. 우리나라는 지금 세계 10위의 커피 소비국이 됐다. 심지어 경기도 남양주시에는 커피 박물관이 개관돼 운영 중일 정도다.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카페 라떼, 카푸치노, 카페 모카, 카페 마끼야또, 카페 비엔나, 아포카토와 같은 커피종류를 모르면 무식한 사람 취급당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에스프레소는 기계의 압력으로 30초안에 빠르게 추출하는 진한 커피를 말한다. 아메리카노는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첨가하여 농도를 흐리게 해서 마시는 커피이고 이탈리안 커피를 미국 커피처럼 즐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카페 라떼는 에스프레소와 우유, 카푸치노는 거기에다 우유거품과 초코가루를 뿌려 내는 것, 카페모카는 우유와 초콜릿, 휘핑크림이 조화를 이루는 부드러운 맛의 커피다. 알고 보면 에스프레소에 무엇을 얼마나 첨가하고 배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이름들인데, 별 어려운 것도 특별한 것도 없다.라떼는 이탈리아어로 우유를 뜻하고 모카는 예멘 남서안의 항구도시 이름이다. 모카에서 집하되고 출하되는 질 좋은 커피를 모카커피라고 하는데 부드럽고 맛이 있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찾는 커피이다. 마끼야또는 에스프레소에 우유 거품을 얹어`점을 찍는다(marking)`는 의미로 카푸치노 보다 강하고 에스프레소 보다 부드러운 커피이다. 카푸치노는 아랍인들의 터번을 닮은 데서 이름이 나왔다는 설이 유력하다.그런데 이 커피는 마셔서 나쁘다는 사람도 있고 좋다는 사람도 있고 매우 헷갈리는 음식이기도한데 유난히 커피에 든 카페인에 민감한 사람은 중독증세도 있다고 한다. 1900년경 카페인이 건강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 독일의 루드비히 로셀리우스는 커피에서 카페인 제거방법을 연구했다. 탄산가스를 이용해서 카페인을 추출했는데 디카페인 커피라 불린다. 이 방법 말고도 찬물에 우려내는 네들란드식 커피가 있는데 그것을 더치커피라 부른다. 카페인이 아무래도 뜨거운 물에서 잘 우러나기 때문에 양이 적다고 알려져 있다. 이렇게 카페인을 줄이고 커피향과 맛만 느끼려는 방법도 있는 걸로 보아 커피가 무조건 몸에 좋다는 말은 틀릴지도 모른다.그런데 웃지 못 할 이런 실험도 있었다.스웨덴의 18세기 후반의 구스타프 국왕은 쌍둥이 사형수 두 명을 사면해주는 대신 한 명은 평생 차를 두 잔 이상 나머지 한명은 평생 커피를 두 잔 이상 마시게 했다고 한다. 차를 마신 사람은 83세에 먼저 죽었고 결국 커피를 마신 사람이 더 오래 살아 커피의 승리로 승부는 마무리 되었다. 그때부터 그 결과를 받아들인 건지 스웨덴 사람들은 차보다는 주로 커피를 마신다고 한다.

2013-06-21

진로상담, 그 자욱한 먼지를 헤치고

▲ 조현명 시인진로상담을 `세 번의 인터뷰와 자욱한 먼지`라고 진로상담의 시조인 파슨즈(Parsons)가 말했다. 그만큼 상담결과를 얻기가 힘든다는 것을 뜻하는 말일 것이다. 세 번의 인터뷰는 무엇을 뜻하느냐하면 먼저 자기에 대한 이해 정도를 알아보고 방법을 제시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는 직업세계에 대한 이해 정도이고 세 번째는 의사결정능력에 대한 인터뷰를 말한다. 그런데 `자욱한 먼지`라니 그것은 무슨 말일까. 진로탐색을 위해 검사도 해보고 정보도 찾아보고 고민도 해보고 상담가와 함께 노력을 하긴 했는데 명쾌한 결론은 나지 않고 아직도 계속 탐색해야하는 그런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작년 말 작은 아들이 중3이었다. 녀석의 친구들은 학원이나 자기주도학습 캠프를 신청해서 학업에 열을 올릴 때 그야말로 집안에 틀어박혀 폐인이 되었다. 그동안 다니던 학원도 다 끊고 자신이 알아서 공부하겠다는 선언을 하고 묻을 걸어 닫았다. 3개월 지나면 고등학생인데 달라지겠지 하고 말았지만 점점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서 출근하는 나와 아내와는 얼굴 볼 시간이 없이 잠든 모습이 되어갔다. 혹시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일찍 퇴근해서 돌아보아도 드러누워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고 있고 내색은 안했지만 속으로는 걱정이 되었다.3월이 되었고 교복을 입고 입학식 후 첫 날 바로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밤 10시 넘어 들어오는 아들의 얼굴이 환했다. “처음 하는 야간자율학습이 좀 힘들진 않더냐?”란 질문에 “시간이 오히려 모자라던데요”라는 의외의 대답을 들었다. 그 말이 하도 신기해서 이유를 물어보니 자신은 목표가 생겼고 그것 때문에 열심히 하느라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라는 것이다.가만히 생각해보니 녀석의 중3에서 고1 넘어 가기 전 3개월이 스스로 진로를 찾는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녀석의 방에는 책이 늘어났고, 그것을 읽으면서 저 혼자 사색하는 시간들을 보낸 것이었다. 밤새 책을 읽었으니 낮에는 잠을 잘 밖에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속으로 걱정을 했었다.녀석의 3개월은 진로탐색의 가장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상담해주는 사람도 없지만 자유와 여유 속에서 자신의 이해하고 세계를 이해하고 의사결정능력을 높여 진로에 대한 깨달음을 어느 순간 얻은 것이다.현 정부가 추진하는 자유학기제는 바로 이런 취지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학력과 성적향상에 내몰린 학생은 숨 쉴 틈도 없이 학원과 학교를 맴돌다가 진로에 대한 깨달음도 없이 주변의 요구에 의해 진로를 결정하기 쉽다. 결국 그릇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늘어났고 현재 대학생의 절반 넘는 수가 재수나 전과를 생각하며 졸업 후에도 전공을 못 살리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이것은 얼마나 많은 전과나 편입 준비생, 재수생들이 있나 확인해보면 바로 드러난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자신이 잘 하는 것은 다 접어두고 성적과 부모의 뜻에 의해 진로를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불행한 젊은이들을 만들어내는지 모른다.다시 진로상담으로 돌아가서 학교 현장에서 진로상담을 해보면 참 매력 없는 상담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성숙하지 못한 학생들이 깨달음에 이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진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없는 아이들을 없다. 그러나 자신을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세상에 대한 앎도 부족할뿐더러 우유부단함까지 갖추고 있어서 구제불능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러나 녀석들은 결론이 나지 않아도 상담과정과 자신에 대한 관심에는 무척 즐거운 듯하다. 그러므로 자주 “너의 꿈은 뭐냐”라고 물어주는 사람이 주변에 있는 것은 절대적으로 좋은 일이다. 꿈에 대한 질문을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받아보는 녀석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내가 뭘 해야 하지. 앞으로 뭘 하고 살아갈까?`이런 질문은 언젠가 마침내 마침표를 찍을 날이 온다. 그러나 그동안 적극적으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과 그냥 목표 없이 마침표에 도달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를 나타낼 것이다. 그러므로 진로상담은 끊임 없이 목표를 묻는 과정이다. 물론 상담을 해보면 이런 녀석도 있다. 귀차니스트. 녀석에겐 만사가 다 귀찮은데 자신의 진로를 생각해보고 고민해본다니 참으로 귀찮은 일이다. 또 이런 녀석도 있다. “선생님 이 직업 다하면 안되요” 그래도 녀석들은 먼 후일에는 어떻게든 직업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꿈을 이루었던지 꿈이 아닌 삶을 살고 있던지 말이다.

2013-06-07

아이들에게 배운다

▲ 김현욱 시인올해는 3학년 친구들과 학급을 꾸렸다. 딱, 열 살. 아직 2학년 티를 벗지 못한 귀여운 아이들이다. 그간 고학년만 도맡아오다 오래간만에 어린 친구들을 만났더니 당황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를테면, 교과서 23쪽을 펴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여기저기서 똘똘한 눈으로 묻는다. “선생님, 교과서 몇 쪽 펴요?” 신청서 제출하라고 얘기하는 도중에 “선생님, 신청서 언제 내요?”라고 코밑까지 다가와 묻는데 그저 헛웃음만 나온다. 그렇다고 무조건 어리게만 봐서는 안 된다. 지난 3월부터 써온 글기지개를 봤더니 고학년보다 오히려 관찰이 날카롭고 생각이 깊다. 그중 몇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오늘 밤에 아빠가 나에게 재판을 내려달라고 했다. 나는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아빠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 보았다. 엄마가 스티커 복권을 사오라고 했다. 아빠는 담배랑 다른 복권을 사왔다. 아빠는 그 정도론 화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었고 엄마는 스티커 복권을 사오라고 했는데 그거 하나 못 사왔으니 아빠가 잘못했다고 한다. 나는 재판을 내렸다. 바로 아빠가 잘못했다. 왜냐면 아빠는 그 말을 안 들은 것 같다, 잘. 그리고 엄마의 마음속은 답답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작은 것도 사람한테 챙겨주는 것이 예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빠가 잘못했다. 오늘 재판의 결론은 가까울수록 작은 것도 챙겨주는 것이 엄마가 말하는 매너다. 사람은 매너가 있어야 한다”조은이가 쓴 글기지개다. 처음에 읽고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작고 사소한 것으로부터 가까워지거나 멀어진다는 이치를 조은이는 잘 아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마지막에 “사람은 매너가 있어야 한다”라고 못 박았다. 스티커 복권을 사오라고 했는데 다른 복권을 사온 건 중요한 게 아니다. 아빠가 엄마의 말을 잘 안 들었기 때문에 잘못이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청이다. 조은이는 그걸 `매너`라는 말로 썼다. 앞으로 조은이가 쓸 글이 무척 기대된다.“어제 할머니의 생일이 4월8일이었단 사실을 엄마가 알고 재빨리 전화했다. 잠시 후, 내 방으로 들어왔더니 엄마가 울고 있었다. 나는 왜 우는지 궁금했다. 내가 왜 우냐고 물어봤더니 엄마는 말하지 않고 눈물만 흘렸다. 나는 너무 궁금했다. 엄마가 전화를 끊고 나에게 말했다. “너는 엄마처럼 부모님 생일 잘 모르면 안 돼” 엄마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나는 엄마를 위해서 할머니에게 전화를 해드려야겠다”규민이가 쓴 글기지개다. 아침에 이 글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께 매일 전화 한 통 드리지 못하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글이었다. 평소 부모님과 형을 생각하는 마음이 기특한 규민이는 영화감독이 꿈이다. “좋은 영화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다”는 포부를 3학년 아이가 글기지개에 썼다. 그 꿈이 꼭 이뤄지길 고대한다.“오늘도 역시 예헌이가 안 왔다. 많이 걱정이 된다. 어젯밤에 전화를 해보았는데 예헌이가 입원을 했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예헌이가 빨리 나으면 좋겠다. “예헌아, 빨리 나아!” (다음날) 어제 엄마와 나는 예헌이가 치료받는 병원에 가보았다. 예헌이는 궁금해하는 게 너무 많았다. 체육에 대해 물어보았다. 나는 “꼬리잡기를 해, 예헌아”라고 했다. “와, 재미있겠다” 했다. 예헌이의 얼굴은 아직도 아픈 얼굴이었다. 그래도 빨리 학교에 가고 싶다고 했다. 또 예헌이에게 4번째 암송 시 `죽은 새`를 얘기해주었다. 그러자 예헌이가 “와, 쉽다”라고 했다. 예헌이가 일요일에 퇴원하면 월요일은 학교에 온다고 했다. 예헌이를 만나서 재미있는 학교이야기를 해서 좋았다”이틀에 걸쳐 관우가 쓴 글기지개다. 폐렴으로 입원한 친구 예헌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갸륵하다. 병문안까지 갔다니 대견하다. 올해 딱, 열 살이 되는 아이들이지만 글기지개를 보면 참 배울 게 많다. 아이들에게 배운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2013-05-31

무엇을 하지 말 것인가

▲ 박원재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새해가 시작된 지도 한 달이 지났다. 새해를 맞아 세웠던 갖가지 계획이나 다짐들도 연례행사처럼 하나둘씩 없던 일이 되어가기 십상인 시기이다. 새로운 결심이 무너지거나 흔들리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계획에 비해 의지가 너무 약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의지에 비해 계획이 너무 큰 것이다. 그 말이 그 말인 것 같지만 이 둘은 엄연히 다르다. 앞은 의지박약이고, 뒤는 의욕과잉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두 번째 경우이다. 의지박약으로 인한 실패는 보통 당사자에게만 영향을 미치지만 의욕과잉의 폐해는 주위까지 피곤하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때로는 무엇을 하는 것보다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유용할 때가 있다. 이는 개인의 삶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국가 경영에서도 마찬가지이다.`한족(漢族)`이라는 말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중국의 한(漢)나라는 오늘날 우리가 `중국적`이라 부르는 문화의 많은 원형들을 이룩한 시대이다. 서역(西域) 경영을 통하여 지상에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제국을 건설한 것도 이때이고, 음양오행설을 체계화하여 동양적 우주관의 기본틀을 마련함으로써 천상의 질서를 장악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이다. 하지만 이렇듯 강성한 한나라도 처음부터 팽창적 기조로 국가를 통치한 것은 아니다. 한나라는 전국시대의 오랜 병화와 뒤이은 진시황의 폭정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 유명한 초한전(楚漢戰)의 산고를 거쳐 탄생한 왕조이다. 이 때문에 건국초 한나라 통치집단의 입장에서 필요한 것은 적극적이며, 공격적인 정책이 아니라 누대에 걸친 국가적인 피로도를 회복시키는 데 필요한 휴식이었다. 한나라 초기 이와 같은 시대적인 요구를 읽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긴 황제가 3대 문제(文帝)와 4대 경제(景帝)이다. 40여 년 동안 계속된 이들 부자 황제의 통치 기간 동안 한나라는 오랜 전란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역사는 이 시기를 `문경지치`(文景之治)라고 부르며, 중국역사상 3대 태평성대 가운데 첫 번째 시기로 꼽는다. 한나라의 강성은 이때 축적된 국가적 역량을 바탕으로 뒤를 이은 5대 황제 무제(武帝)가 적극적인 팽창정책을 펼친 결과이다.이런 역사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무엇을 적극적으로 해나가는 정치보다 하지 않는 정치에 대한 예찬이 많다. 노자(子)가 대표적이다. 노자는 정치를 네 등급으로 나눈다. 이에 따르면, 최고의 정치는 백성들이 통치자의 존재를 전혀 의식할 필요가 없게 해주는 정치이다. 두 번째는 백성들이 통치자를 칭송하고 기리는 정치이다. 세 번째는 통치자의 이름만 들어도 백성들이 놀라고 두려워하는 정치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저급한 정치는 통치자 이야기만 나오면 백성들이 비웃는 정치이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최상의 정치는 두 번째 정치이다. 그러나 노자는 그것이 최고의 정치가 되기에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최고의 정치는 통치자 덕분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잘난 덕에 스스로 행복하다고 백성들이 생각하게 해주는 정치이다. 백성이 가지고 있는 본유의 능력들을 신뢰하고, 그것을 가로막는 일체의 인위적인 절차나 장치를 스스로 삼가는 동양적 무위(無爲) 정치의 이상이다.새 정부를 준비하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출범한 지도 한 달여가 다 되어 간다. 얼마 안 있어 새 정부 국정운영의 청사진이 담긴 보고서도 발간될 것이다. 의지박약이어서도 안 되지만 의욕과잉의 정책들도 삼갈 일이다. 무엇을 하는 것보다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유용할 때도 많다는 사실을 역사는 보여준다. 특히 건국 이후 시종일관 팽팽하게 당겨지기만 했던 `대한민국`이라는 활의 시위를 생각할 때 한 번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는 국가경영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2013-02-07

위대한 패자

요즈음 골프가 일반인의 취미로 상당한 대중화가 이루어 지고 있는 듯 하다. 골프에 관한 인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현재 생존하고 있는 전설의 골퍼 3 인방을 꼽으라면 잭 니클라우스, 게리 플레리어, 아놀드 파머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중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인 게리 플레이어는 잭과 아놀드에 대하여 이렇게 평한 사실이 있다. “잭은 경기에서 패하였을 때가 더욱 위대해 보였다. 하지만 아놀드는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잭을 상대로 승리한 사람은 패자인 잭으로 부터 진심어린 축하의 메세지를 받은 후에야 잭이 얼마나 위대한 선수인지를 알게 된다. 하지만 아놀드는 자신이 승리 하였을 때 만 위대해 보였을 뿐 패한 경기에서는 그 누구도 경기장에서 아놀드를 찾을수 없었다”라고. 어차피 많은 일들이 승패를 가리게 된다. 간혹 경쟁의 결과 승자만 있거나 승자도 패자도 없는 경우가 있기도 하고 오로지 패자만 존재하는 경우도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승패가 가려지기 마련이다. 승부에 지고 기분 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승부가 결정되고 나면 그것으로 모든 것은 끝이 났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이다. 이러한 생각은 어쩌면 하수의 승부책일지도 모른다. 위대한 패자의 의미를 필자 나름대로 정의하자면 세가지로 요약하고 싶다. 첫째, 결과에 깨끗이 승복할 것. 둘째, 승자에게 진심어린 축하를 잊지 않을 것. 세째, 패인을 분석하고 긍정적인 자세로 다음을 준비 할것. 자신의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고 승자에게 진정한 축하의 인사를 건네는 것이 승부에 이어 남겨진 참 승부인 사실을 망각하는 경우가 종종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남겨진 마지막 승부처에서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그 사람의 앞날을 좌우하지 않을까. 어떤 승부에서 패하였다면 상대방에게 이런 류의 진심어린 메세지는 어떨까. 골프라면 “오늘 자네의 샷은 내가 본 샷 중 가장 위대하였네”라고 표현하든지, 바둑이라면 “가장 멋진 수를 감상하였네” 라든지, 야구라면 “이렇게 위대한 승부는 처음이었어”라고 하든지. 뭐 이런 식으로. 지고 나서 상대방의 승리를 진정 축하해 주지는 못 할 망정, 온갖 변명과 험담을 늘어 놓으면서 승복하지 않는 불편한 패자들이 판을 친다면 우리네 세상의 앞날은 뻔하다. 변호사라는 필자의 직업 또한 승패를 전제로 한 것이 상당 부분이어서 늘 결과로 인하여 다소의 희비가 교차하는 것은 어쩔수 없다. 그래서 가능한 패소 할 사건의 경우는 미리 판단하여 선임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패배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 때문이라면 변명이 될까. 패자가 되는 것을 바라거나 즐기려 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위대한 패자가 됨으로써 또 다른 의미의 진정한 승리를 이끌어 낼수 있으면 그것이야 말로 큰 승리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연장선에서 부부싸움을 정의 하라면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부부싸움이란 가정의 평화를 지켜내기 위하여 위대한 패자의 길로 가는 과정`이라고. 필자 또한 아내와 가끔 다투기는 하지만 선뜻 지기는 싫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나고 생각하여 보면 먼저 나 자신이 사과 하고, 진솔하게 아내의 의견을 받아 들였을 때가 가장 후유증이 적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잭 니클라우스는 모든 골퍼들 중 가장 위대한 골퍼로 남아있다. 잭이 가장 위대한 승자였던 이유는 바로 가장 위대한 패자이었기 때문이다.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 골프채를 집어던지거나 경기에 패한 이후 황망히 골프장을 떠나는 젊은 타이거 우즈가 잭에게 한 수 배울때가 온 것이다. 부부싸움에서 이기고 당당해 하는 어리석은 승자나, 다수결의 원칙을 무시하고 결과에 승복치 않는 불편한 패자들은, 수 많은 위대한 패자들의 소리에 귀를 귀울일 필요가 있다. 아놀드는 알고 있을까. 자신이 골프를 통하여 축적한 거대한 부와 잭이 골프를 통하여 보여준 위대한 인간됨에 대하여 세상 사람들은 어느 쪽에 더 많은 사랑을 줄지에 대하여.

2009-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