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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슈퍼관리자
등록일 2009-08-18 22:30 게재일 2009-08-1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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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모와 미성(美聲)을 겸전한 만년소녀 같던 가수 백설희(본명 김미숙) 선생을 얼마전(몇해전?)부터 TV화면에서 볼 수 없어 아쉽기도 하고 조금 답답하기조차 했다.

그런데 운수 좋게도 어제(8월13일) TV채널 26에서 백설희 선생을 TV화면에서 볼 수 있었는데 옛날의 미모는 약에 쓸려 해도 찾아볼 수 없고 여성스럽던 미모가 남성진 무뚝뚝한 노파로 변모되어 있고 은쟁반에 옥을 굴리던 미성도 고음부 처리를 위해서는 애를 쓰는 딱한 모습도 언뜻 보였다.

백설희 선생의 히트곡 `봄날은 간다`처럼 백설희 선생에게도 `봄날`은 가고 낙엽 지는 늦가을 황혼에 예사 노파가 서 있다.

봄날의 화사하던 만년소녀 가수 백설희 선생의 모습은 전혀 볼 수 없다.

가요 `봄날은 간다`를 두고 작고한 중진시인 조병화 선생이 우리나라 대중가요 가사 중 가장 시(詩)적으로 잘된 곡으로 `봄날은 간다`를 꼽았다. 조병화 선생이 가사 1절을 그냥 외우시고 곡(曲)은 자신이 없다며 노래를 부르시지 않았다.

조병화 시인은 그림으론, 화백(畵伯)이요, 스포츠도 만능인 팔방미인인데, 흔한 대중가요 한 곡을 못 부르실 리 없지만 중진시인으로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노래를 부르시지 않은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필자도 나도 모르는 새에 `봄날은 간다`가 아니라 확실히 `봄날`은 갔다. 우산을 쓰고 가던 초등학교 4학년 쯤 돼 보이는 여학생의 우산이 내 어깨를 스쳤다. 여학생은 놀라며 `아저씨, 미안합니다`라고 미안해했다.

요사이 젊은이와 부딪치면 사과는 그만두고 `똑바로 보고 다니시오`하며 적반하장이 일수인데, 우산 조금 스쳤다고 사과까지 하다니 너무 여학생의 예절 바름이 귀여워서 `아니 괜찮아`하며 웃어 보였다.

여학생들이 내 앞을 지나가며 “저분은 아저씨가 아니고 할아버지야”하며 재잘거린다. 얼굴이 주름살이 없이 팽팽해도 나는 분명히 아저씨일 수는 없다.

저 아이들의 말처럼 어느새 나도 할아버지가 되었다. 노년에 가장 거북한 것은 건강문제가 되겠지만 내 경우엔 여가시간 처리가 가장 큰 문제다.

특강이라도 주문을 받으면 `사자후`를 토할 텐데 예수님의 지적대로 선지자가 고향에선 환영받지 못한다고 했는데 예수님의 가르침 중 가장 실감이 나는 가르침이라 생각한다.

요사이 문경시 인구가 준다고 아우성인데, 이참에 차라리 나도 서울로 주민등록을 옮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어디를 가도, 나의 전성시대는 끝났지만, 그동안 외면한 중앙문단에서 여생의 보람을 찾고 싶다.

`헛되고 헛되도다`하고 구약성서 전도서의 집필자는 탄식을 했다.

봄날은 이미 갔지만 남은 계절을 지난 봄철이상으로 화사하게 밝게 보내야 하지 않을까?

마음만 먹으면 안 될 것도 없다. 인간은 동물이다. 동물은 공기와 물만 있으면 어느 곳에서도 살 수가 있다.

이 세상 어디에도 낙원은 없겠지만 살아있는 동안 꾸준히 낙원을 찾아 헤매는 것이 인생의 본질이라 확신한다.

필자는 가능성이 높은 인생을 살았다.

나의 특기는 튀는 것이다. 아무도 나의 시도를 말리지 말기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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