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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추석달 가불

김시종前 문경중 교장호사다마(好事多魔)란 말이 추석이라고 예외 일 수가 없다. 한 해 중 가장 밝은 달이 추석에 뜨는 보름달이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날이 궂어 추석의 보름달을 안타깝게도 못 보는 해도 더러 있다. 이런 돌발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나는 나름대로 비결을 마련했다. 추석 전날 밤에 미리 열나흘 달을 보아 두는 일이다. 열나흘 달을 미리 보아 두니추석 달을 못 보았다고 크게 탄식할 것도 없다. 매사에는 두름성이 필요하다. 요사이는 별로 없는 일이지만 실탄(?)이 모자라면 회사 경리과에서 가불받는 일이 종종 있는데 나는 팔월 열나흘 밤에 보름달을 하루 앞당겨 가불하여 본다. 뜻밖의 기상변화로 추석날 달을 못 보아도 조금도 아쉬울 게 없다. 인간은 매사에 예방장치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어찌 슬기라고 하지 않을 수 있는가. 올해 중추절은 개천절과 겹쳐져 태극기를 게양하게 되었다. 추석날 게양된 태극기를 보니 벌써 59년이 흐른 1950년 추석날 아침이 생각난다.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6·25가 돌발하여 휴교를 하던 날 초등학교 3학년생이던 나는 전쟁이 터진 것은 생각도 안 하고 학교를 안 나와도 된다는 말에 환성을 질렀다. 점촌이 적치하에 들어간 것은 1950년 7월31일이었다. 피난간 사람은 굶주림과 질병 때문에 죽살이를 치렀고 피난 못 간 잔류민들은 매일 공습의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1950년 9월26일 추석날 아침 해 떠오르는 이른 아침에 영강제방을 좌우로 하여 행군종대로 국군이 다시 진격을 해왔다. 초대형 태극기를 네 명의 국군이 펼쳐들고 대오의 맨 앞에 서서 입성을 하고 있었다. 거의 두 달 만에 태극기를 보자 언덕에는 빛나는 아침이슬이 내 눈에도 뜨거운 이슬이 맺혔다. 애국심이란 별 게 아니다. 오랜만에 국기를 보니 반가워 눈물이 나고 국군의 진격이 너무 감격스러워 만세를 부르는 것이 원초적 애국심으로 긴 설명이 필요 없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올해 추석은 각별히 소중하게 느껴진다. 60년을 두고 추적해온 초등학교 2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의 이름을 추석 직전에 알아냈고 그 선생님의 생사도 알게 되었다. 우락부락한 성격에 자부심이 지나친 담임선생님은 동료교사에 대해서도 우월감을 지니고 지냈다고 했다. 해방 직후 초등교사는 보통학교출신이 주종을 이뤘는데 김성태 선생님은 5년제인 계성고보를 나왔다고 했다. 음악과 체육에 특기가 뛰어나서 초등학교 2학년 아동에게 체육 시간에 교련을 가르치고 음악 시간에는 음악 교과서 지도는 물론이고 동요작곡 집에 있는 노래도 가르쳤다. 초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을 희미하게나마 기억하고 있는 아동이 1~2명에 불과한 것은 60년이 지난 워낙 오래전 일이요 김 선생님이 지도한 기간도 지극히 짧았다. 김 선생님은 그해 학기 도중에 퇴직하고 단기 육사에 입교했다고 한다. 6·25 전쟁에 참전하여 1951년 대대장(당시 소령)으로 안흥 횡성전투에 참전하셔서 중공군의 포로가 되었는데 대대장인 김소령(김 선생님) 뿐만 아니라 1개 대대 전원이 포위당하여 전원이 포로가 되었다 한다. 지금도 북한의 식량난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거북하지만 내 담임교사를 역임했던 김 소령님도 인민군포로수용소에서 갖은 수모와 기아를 이기지 못하고 포로교환 직전에 포로수용소에서 안타깝게 아사를 했다고 한다. 초등 2학년 담임 시절 부진아에게 밥통이라 놀려댔는데 정작 당신께서 밥이 없어서 밥을 못 먹고 굶어 죽었다니 세상에 이런 비극이 따로 없다. 하루에 아침 저녁 두 끼를 간장종지에다 삶은 옥수수를 한 종지씩 주었다 한다. 하루 동안 삶은 옥수수 두 종지로 겨우 연명을 했단다. 그래서 영양실조에 걸려 다리를 못 쓰는 앉은뱅이가 되고 변소도 힘이 없어 혼자 못 가고 같은 방 포로와 어깨동무를 하고 겨우 갔다고 한다. 어린 아동들에게 모진 말을 자주 하긴 했지만 인생의 말로가 너무 비참하셨던 것 같다. 잘난 선생님이 교단을 떠나 대대장이 되고 포로가 되고 포로수용소에서 굶어 죽었다니 활극 같은 인생이 비극으로 끝났다. 김 선생님 아닌 김 소령님의 명복을 뒤늦게나마 빈다. 올해의 추석 달이 밝은 것도 우연이 아니라 순국선열의 덕분이다.

2009-10-06

비교공화국

김시종前 문경중 교장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비교공화국이다. 예를 들면, 경제적으로 상위 20%가 하위 20%보다 사교육비지출이 4배를 추월한다는 식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면에서 상휘, 하위를 갈라 세워 사회분열을 부추기고 있다. 사흘이 멀다 하고 TV와 신문에 계층간 격차를 필요 이상으로 돌출시켜 국민계층간 괴리를 고의적으로 조장하고 있다. 바로된 방송과 신문이라면 계층간의 위화감을 해소 시키는데 앞장서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각계각층에 애국자는 전혀(!) 볼 수 없고 국가를 위해하는 위험인물과 위해기관으로 초만원을 이루고 있다. 한날한시에 태어난 다섯 손가락도 그 길이가 각각 다르다. 다섯 손가락의 길이가 각각 다른 것은 불공평 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합리적이다. 다섯 손가락 길이가 똑같은 사람은 정상인이 못되고 장애인이다. 사람이나 사물이나 차이가 나는 것이 자연스럽고 편리한 것이다. 지적 장애자는 치료가 불가능한데 천재아와 같이 다룬다면 지적 장애자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짓밟고 못살도록 만든다. 경제적으로도 만인이 평등할 수 없다. 재산관리에 수완이 부족하고 게으르고 낭비벽이 있는 사람이 알뜰하고 부지런하고 의욕적인 경제인을 당할 수 없을 것이다. 인위적으로 안 되는 일을 정치적으로 하면 다 된다는 망상을 버려야 한다. 오늘날 이 나라는 모든 부면중 정치인이 가장 열등하다고 정치인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국민이 공감하고 있다. 애국심이 없고 국리민복도 안중에 없고 조폭을 능가하는 폭력배(?)들이 정치의 최고 중심권에 포진하여 헌법재판소를 번거롭게 하고 있다. 툭하면 우리나라를 OECD 회원국하고 비교를 염불처럼 뇌는 방송인들에게 묻고 싶다. OECD 국가 중 우리나라 말고 딴 나라가 또 있는가? 언론이 힘이 있는 것은 언론이 진리 위에 섰을 때 가능한 것이지, 여론을 날조하여 국민의 눈, 귀를 가리는 것은 망국적인 언론의 폭력이다. 지금까지 이 나라의 최고독재세력은 군사정권이 아니라 언론의 양심과 양식을 저버리고 안하무인격으로 불법행진을 멈출 줄 모르는 매스컴 중에도 TV가 주범이요, 원흉이다. 진정한 언론의 힘은 겸손하게 과오를 인정할 줄 알고, 진리와 진실을 지키는 건실한 자세에 있음을 밝히 알아야 한다. 선진국의 문턱에 서서 맴도는 이 나라의 모습을 볼 때 국민의 애국심과 올바른 행동양식을 위해 깨어 있는 `광야의 소리`가 참으로 그립다. 이 시대에 진정 잘난 사람은 누구인가? 필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정답을 몰라 답답할 뿐이다. 비교의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하나만 두고 보는 것보다, 둘을 놓고서 견주어 보면 차이점이나 크기를 한눈에 알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지만, 비교상대 선정을 적정하게 해야 한다. 비교도 꼭 필요할 때만 해야지 사사건건이 비교만 하는 것은 비능률과 무모의 극치라고 본다. 비교에 빠져버린, 비교공화국보다 진짜 선진 민주국가가 되기를 주문한다.

2009-09-29

독안석(獨眼石)

김시종前 문경중 교장나는 40대 초부터 수석(水石) 수집에 비로소 눈을 떴다. 아무리 싼 값으로 팔아도, 남이 주은 돌은 사지 않고 억만금을 준대도 내가 탐석해 지닌 돌을 팔지 않는 걸, 생활신조로 삼았다. 조립식 건물 서재에 두서없이 흩어진 수석을 재발견하고 감동을 받을 때가 가끔 있다. 오늘도 나는 가끔 들리는 서재, 도서진열대에서 돌에 눈 하나가 박힌 돌을 발견하고, 잠시 생각에 잠긴다. 적어도 내가 주은 돌은 어느 강에서 건지고, 그날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을 거의 정확하게 떠올리고 감동에 젖을 때가 더러 있다. 돌에 안구 하나가 박힌 저 돌, 독안석(獨眼石)에 대한 기억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낚시를 자주 하는 친구가 강에서 주어 와서 이리보고 저리 봐도 별 볼일 없다고, 내동이친 걸 아내가 주어왔다. 처음에는 `독안석`이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몇 십 년을 탐석해온 수석수집가도 독안석을 갖고 있는 사람을 못 봤다. 내가 어릴 때 같은 동네인 섶밭마을(모전)에 나보다 여남살 위인 만근형이 살고 있었다. 키도 크고 체격이 당당했지만 눈 한 알을 어디에서 분실했는지 애꾸눈이다. 애꾸눈이 되어 6·25 북새통에도 군대도 못 갔기에 안죽도 동네를 혼자 지켰고 6·25 사변으로 서울이 잿더미가 되어 고층건물을 다시 지을 때 만근형은 건설현장의 필수요원이 되었다. 등 발 좋고 힘도 끝내주고, 눈도 애꾸눈이라도 사물을 알아볼 수 있고, 아무리 높은 곳에 올라가도 고소공포증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애꾸눈은 고저구별이 잘 안 되어 두눈박이는 오금이 저려, 고층공사현장에 얼씬도 못하는데 만근형은 고공에서 전혀 위험도 느끼지 않고 자유자재로 작업을 잘해내어 떼돈을 벌고 서울에 보금자리도 마련하고 그야말로 입지전적인 서울에서 성공한 촌놈이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섶밭마을의 노는 친구들을 불러올려 그들도 만근형 덕분에 서울에 제집을 마련하고 촌놈에서 일약 서울시민이 되었다. 사실 애꾸눈은 한눈밖에 없기 때문에 분명히 실명은 아니지만 두 눈 가진 사람만큼 눈의 역할이 확실하지 못하다. 앞에 잠깐 말한 바 있지만, 높낮이 감각이 없다고 한다. 만약의 경우, 하나 남은 눈을 다치면 완전 실명을 하게 되어 소경이 될 수도 있다. 그뿐 아니다. 두 눈이 멀쩡한 사람은 외눈박이를 애꾸눈이라 놀려댄다. `애꾸눈`인 사람은 그 자체로도 눈의 기능이 온전하지 못하여 살아가는 게 불편한데, 덤으로 눈치까지 보고 살아야 하니, 사람은 아무래도 건강하고 볼 일이다. 그런데 그게 마음대로 잘 안된다. 내가 지닌 `독안석`이 희귀하고 개성이 넘쳐난다. 나도 문단에서 `풍자시`와 `에세이`에 독안석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면 욕심이 너무 지나친 것일까. 명석(名石)도 산수경석 같은 것은 흔한 편이다. 가끔 독안석을 보면 눈이 번쩍 뜨인다. 내 시도, 내 수필도, 독안석처럼 사람들 눈에 성큼 다가서고 가슴에 설렘을 주는 명품(名品)이 되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나 자신도, 밤에도 독안석처럼 눈먼 이 땅의 불침번이 되고 싶다.

2009-09-22

양두사(兩頭蛇) 이야기

김시종前 문경중 교장나는 음력으론 `동짓달 스무여드렛날` 태어났으니, 뱀띠(신사생)인데, 북의 거물보다 한 달 이틀 앞서 태어났다. 겨울 뱀띠는 동면 중이라 팔자가 편하다는데, 나는 양력으로 말띠라서, 평생을 말(馬) 같이 어려운 인생을 살았다. 일흔이 내일모레지만, 가장(家長)의 중책을 지고 살고 있으니, 말띠와 `현실 속의 말`이 묘하게 들어맞는다. 신문이나 방송에 언어순화를 한다고, `똥`이란 말을, 숨기고 `X` 또는 `O`로 표기하는 데 나는 정서상 공감할 수 없다. 차라리 `똥`보다 `뱀`이란 말을 `X` 또는 `O`로 표기함이 더 적절할 것 같다. `뱀`은 실물을 보나, 글자로 표기하나, 똥보다 더한 혐오감을 느낀다. 서론이 길면, 자동적으로 본론이 짧아지기 마련이어서 이만 줄이고 본론으로 돌입하려 한다. `양두사`는 머리가 둘 달린 뱀으로, 중국 고대 손숙오 이야기에서 처음 `양두사`란 말과 만나게 되었을 뿐, 실물을 볼 수 없었다. 십여년 전 X중학교 과학자료실에서 액침표본으로 된 `양두사`를 처음 보고 놀라움을 누를 수 없었다. 그 뒤 TV화면에서 살아서 움직이는 큰 양두사를 보고 나서 양두사도 현존하는 뱀인 것을 확실히 알게 됐다. 머리가 하나 있는 뱀보다 머리가 둘인 뱀이 여러모로 더 나을 것 같지만 숫자가 극소수인 것으로 보아 두 마리의 뱀이 언젠가 지구 상에서 사라질 날도 올 것 같다. 머리가 둘 달린 뱀은 한 마리의 뱀일까? 두 마리의 뱀일까? 궁금하기도 하겠지만 이스라엘의 지혜서 `탈무드`가 명쾌한 대답을 해준다. 가장 간단하게 식별하는 방법은 뜨거운 물을 양두사의 한쪽 머리에 퍼붓고 나서 반응을 보면 된다. 뜨거운 물을 뒤집어쓴 뱀 대가리는 성질이 나서 펄펄 뛰는데 뜨거운 물을 덮어쓰지 않은 남은 머리가 태연한 자세 그대로면 분명 몸은 하나지만 확실히 두 마리의 뱀이다. 하나의 머리가 공격을 받으면 다른 하나의 머리도 공격을 받은 것처럼 동고동락할 때 비로소 양두사는 한 마리의 뱀인 것이다. 북한은 지난 6일 새벽 2~4시 사이에, 4천만 t의 물을 기습방류하여 임진강 둔치에서 단잠을 자던 대한민국 국민 6명이 비명횡사하고 시신 수색에만 연인원 1만7천명이 동원되어 사건 4일 만에 임진강을 샅샅이 뒤져 시신을 천신만고 끝에 겨우 찾았다. 한 사람의 죽음은 그 사람만의 불행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가정이 파괴되고 이웃과 사회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북한은 기습방류로 무고한 생명이 비참한 최후를 맞았음에도 입술에 발릴 말일망정, 미안하다든지 유감으로 생각한다는 최소의 예의도 갖추지를 못했다. 그러면서도 입만 열면 `민족끼리`를 스님 염불처럼 상투적으로 뇌까린다. 1950년 6월25일의 6·25 사변도 새벽 4시30분에 기습을 했고 2009년 9월6일의 황강댐 기습방류도 새벽에 이뤄졌다. 이 땅의 `붉은 악의 역사`는 새벽에 기습적으로 이루어졌다. 북한이야 늘 그렇다고 치자. 한국의 야당도 이번 사태에 대한 논평이 가관(可觀)이다. `이번 사태는 남북소통이 안 돼서 그렇다`고 남쪽에 살면서도 북쪽에 늘 이해심(?)이 두터운 그들은 이번에도 북쪽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번 사태는 `남북소통`이 안돼서 일어난 게 아니라 `남북 물 소통`이 너무 잘되어 참변이 난 것이다. 북한도 종북세력도, 탈무드가 말하는 `한 몸`이 아니다. 나라의 어려움을 두고도 얼토당토않은 동문서답만 하니 동포로 애국정당으로 믿어온 우리만 바보다. 남북통일에 앞서 오늘의 우리나라 사정은 남남 통일이 더 시급한 화두다. 야당은 북과의 민족공조(?)에는 뛰어난 수준이지만 정부와의 국내공조는 초보단계에도 미달이다.

2009-09-15

말(言)과 말(馬)

김시종前 문경중 교장고분은 지하박물관이다. 도굴꾼의 발호로 부장품은 남아난 것이 없지만 옛무덤의 벽화는 그런대로 건재(健在)하다. 만주 지안현 통구 무용총의 수렵도를 보면 얼굴이 갸름하고 소골(모자)을 쓴 날랜 젊은 무사가 사냥감인 호랑이를 말을 타고 쫓고 있다.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호랑이는 달아나는 것이 달리는 수준이 아니라 쏜살같이 나르고 있다. 한일(一)자 모양이 되어 위기를 탈출하는 모습이다. 비호(飛虎)를 전력질주로 추격하는 엽사의 모습도 날렵하기만 하다. 죽느냐? 사느냐? 잡느냐? 놓치느냐? 극단적인 긴장의 순간을 벽화는 극적으로 잘 나타내고 있다. 고구려 사람들은 무술을 숭상하여 경향의 공사립교육기관인 `경당`에서는 한문과 무술이 필수과목이었다. 나라에서도 고구려 최대의 명절인 삼월 삼짇날(음력 3월3일)에, 왕이 친림하여 사냥대회를 실시하여 `국가의 무사`를 선발했다. 이날 출전한 무명의 무사들은 말을 타고 달려 사냥감을 가장 많이 잡은 사람이 무사로 선발되어 미래의 고구려 명장이 되었다. 옛날 제왕에게 최대의 스포츠는 수렵(사냥)이었다. 사냥감인 달아나는 짐승을 추격하는 드릴로 그저 그만이고 사냥감은 별미가 되어 입맛을 돋우어 어떤 임금은 날만 새면 궁궐을 떠나 사냥으로 날을 지새워 민정(국정)에 지장까지 초래했다. 요사이는 동물보호 정신이 팽배(?)하여 옛날 사냥자리에 골프가 대신 군림하고 있다. 근무시간 중에 골프회동을 했다 하여 골프공이 하늘의 별(장군)까지 명중하여 추락시킨 일도 얼마 전에 있었다. 고구려는 우리 역사상 가장 진취적인 상무(尙武)의 나라였는데, 평지에서 펼쳐지는 평지 야전에는 능수가 못되고 주특기가 수성전(守城戰)이었다. 당태종이 친정하여 안시성을 60여일 동안 400회를 집요하게 공격했지만 성주 양만춘은 거뜬히 이를 격퇴하고 당태종의 안구(?) 하나를 노획했다는 야사가 전해오고 있다. 바보 온달이 명장 온달로 변신한 것이 바로 삼짇날의 국중사냥대회에서 최대의 사냥감을 포획하여 바보가 전국 최고의 신인 무사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바보 온달을 명장 온달로 키운 것은 평강공주. 어릴 때 울보인 평강공주를 달래기 위해 부왕은 너는 자꾸 울기만 하니 천상 바보 온달에게 시집 보내야겠다고 되풀이하여 평강공주의 머리엔 온달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채워졌다. 이팔청춘이 되어 귀족인 상부 고씨의 아들과 혼담이 있었지만 어릴 적부터 들은 부왕(父王)의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여 왕이 정한 혼처를 반납하고 궁중에서 축출당한 평강공주는 우여곡절 끝에 온달과 댕기풀이를 하고 세계사적으로도 기록될 `바보와 공주`의 커플이 탄생하게 된다. 평강공주는 밤낮없이 온달에게 한문을 가르치고 말 타기와 활쏘기의 스승이 된다. 개인과외를 하여 가장 성공한 여성이 평강공주였다. 궁중에서 말랐다고 싸게 파는 말을 온달에게 사오게 하여 다시 명마(名馬)로 키운 것이 평강공주다. 평강공주는 사람 보는 눈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말 고르는 혜안도 갖췄었다. 바보는 아무리 교육을 해도 천생 바보다. 구약성서 잠언엔 바보는 절구에 넣고 찧어도 바보의 껍질이 벗겨지지 않는다고 했다. 필자가 근무하던 학교에도 정박아 특수반이 있어 국립특수교육원에 해당 학교장 연수가 있어 두 차례 입소한 적이 있었다. 거기에서 들은 놀라운 사실은 아무리 묘방을 처방해도 정신박약아는 평생 `정박아`로 남는단다. 그렇다면 바보 온달은 진짜 바보가 아니라 보보인 척한 참을 줄 아는 지자(知者)였다. 요사이도 평강공주 같은 슬기로운 여자가 이 땅에 나타났으면 한다. 온달은 을지문덕 다음가는 고구려의 걸출한 명장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1949년 필자의 담임선생님은 수업시간 중에 일부 아동을 밥통이라고 구박하여 다른 아동들도 그 아이를 밥통이라고 왕따를 했는데 그 아이는 바보는커녕 뒷날 불후의 천재가 되었다. 그 아이는 어른이 된 뒤에도 악명높은 담임교사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애썼지만 끝내 그 방명(芳名)을 알 길이 없어 그는 인생 노트에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이름을 김밥통선생님이라 적어 놨다고 했다. 교사는 평강공주 이상으로 사람(제자)을 잘 알아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말(言)은 말 한 필이 재산목록 1호인 마부의 말(馬)보다 더 소중하다. 말은 잘 가려 하고 신중하게 해야 한다. 말은 우리 인생살이에 씨앗이 된다. 사람은 자기가 한 말대로 된다. 진정한 인격자는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다.

2009-09-08

일등국민이 되려면

일등국가가 되려면 국민부터 자질이 `1등 국민`이 되어야 한다. 국민소득이 2만 달러가 넘고 3만 달러로 치솟는다고 저절로 `1등 국민`이 되려니 하는 것은 위대한(!) 착각일 뿐이다. 사람이 대학을 위하여 존재하는 나라, 종교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이 종교를 위하여 있는 이 땅…. 어떤 종교단체는 신의 권위를 도용하여 신도들이 장기를 팔아 헌금하도록 하는 악마의 집단이 종교의 탈을 쓰고 횡포를 부리고 있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실업자양성이 고작이면서 천문학적 등록금은 누구를 위한 안전장치이냐! 독학사고시제도를 마련하여 최소의 경비로 최대의 만족을 얻도록 좋은 장치를 마련해놔도 개점휴업(?) 상태요, 연간 1천만 원이 넘는 등록금을 받는 대학은 문정성시를 이루고 있다. 귀신이 사람을 만든 게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귀신을 만들어 놓고 제물에 사람들이 놀란다. 우리 국민들이 진정 행복한 국가를 만들려면 정신적 자세부터 바르게 고쳐야 한다. 광신자가 되기 전에 자기의 도덕 수준부터 정상적이 되어야 한다. 비뚠 인성을 갖고는 아무리 올바른 종교라도 바르게 뿌리를 내릴 수 없다. 원하는 일류대학생이 되었다 해도 올바른 인성과 면학정신이 없다면 말짱 헛것이다. 4년제 대학을 마치자면 기본적으로 이수해야 할 책은 많아도 40권 안팎일 뿐이다. 기본서적 말고 폭넓은 독서를 해야 인류를 지도할 수 있는 고매한 인격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뒤늦게 법학사 학위를 취득했고 부끄럽게도 최소한의 법학 서적을 읽었지만 나는 법학을 공부하므로 가장 큰 깨달음을 얻었다. `법학은 어려운 학문`임을 명백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자잘한 법률용어나 이론을 좀 안다고 우쭐대는 것은 등외품이다. 나는 `법학이 어려운 학문`임을 깨닫고 법률학에 겸손한 자세를 지니게 됐고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이 법학사 학위를 취득한 것보다 더 큰 희열을 가슴 뿌듯이 느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무식하고 무지할수록 용감하다. 진짜 용감한 것은 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어디 이 나라의 준법정신도 정확한 계수는 못 봤지만 피부로 느끼는 것은 지상국가 중 최하위권에 맴돈다는 확신이 든다. 일본에서 가장 악질이, `도끼로 이마까다`씨라는 우스갯말이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엔 해머로 전경버스를 깨뜨리는 폭도들이 있지만 법정에서 풀려나 백주의 대로를 늠름하게 활보하고 있다. 이 나라의 장래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사람은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의 삼부(三府)를 둘러보아도 시력이 나쁘지도 않은 처지임에도 선뜻 눈에 보이지 않는다. 무슨 위원회가 그렇게 많은가. 우리나라는 위원회 공화국이다. 국가세금을 축내면서도 반국가행위에 용감하게 앞서는 위원회가 한들이면 말도 않겠다. 시민단체를 참칭하면서 올곧은 시민은 한 사람도 안보이고 왼손잡이들의 국가를 향한 삿대질이 가관(可觀)이다. 대한민국은 큰 배와 같다. 선상 위의 무별한 난동과 반란, 배 바닥에 구멍을 뚫는 반동행위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일등국민이 되어, 보람있게 살고 싶은 사람은 현실에 침묵해서는 절대 안 된다. 반동 반역을 일삼는 자를 더이상 용납해서는 안 된다. 나라를 해치는 자도 한 번쯤 꼭 생각하기 바란다. `한번이라도 나라를 사랑해본 적이 있는가`를. 나는 내가 사랑한 적이 없는 사람은 절대 미워하지 않는다.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사람은, 그 사람을 미워할 자격도 없다고 본다.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저주인가? 축복인가?” 저마다 한 번쯤 짚어볼 화두다.

2009-09-01

`가고파`의 작곡가 樂聖 김동진 선생

지난 7월31일 한국의 가곡 작곡왕, 김동진 선생이 9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천박한 언론 플레이와는 담은 쌓은 정갈한 한뉘였기에, 필자는 김동진 선생의 생사조차도 확실히 알 수 없었다. 김동진 선생의 서거를 TV는 간단히 1회 뉴스로 끝냈다. 20대의 대중연예인이 자살하면, 국상처럼 호들갑을 떨던 방송이 진짜 최고의 예술가 죽음은 조명도 비켜갔다. 진정한 가치가 뭔지 모르는 방송의 본질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악성(樂聖) 김동진 선생은 1913년 평남 안주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음악적 분위기에서 자라났다. 우리나라 개신교가 한국의 근대화에 크게 공헌한 것은 만인이 익히 아는 바지만, 특히 서양음악의 보급은 교회의 절대적 공로였다. 교회의 풍금은 한국음악가의 산실이다. 김동진도 교회에서 풍금으로 찬송가를 연주하면서 자연스럽게 음악적 자질과 실력을 키워나갔다. 평양숭실중학교에 진학하여 바이올린 피아노 작곡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음악에 천재적 소질을 지닌 김동진은 김동환의 시 `봄이 오면`을 18세에 작곡한 것을 비롯하여 그의 대표작인 `가고파`(이은상 작사)는 20세에 작곡, 놀라운 천재성을 발휘했다. `가고파`는 김동진의 숭실전문학교 은사 무애 양주동 교수의 `가고파`소개를 감명깊게 듣고 작곡한 것인데 김동진의 대표곡이자 한국가곡의 대표곡이기도 하다. 김동진은 1950년 12월 평양의 교수직을 팽개치고 자유대한을 찾아 월남했다. 월남하고 `가고파`의 시인 이은상 선생과 생전 처음 만났다고 한다. 김동진은 `가고파`1부를 지은 지 몇 십 년의 세월이 흐른 뒤 `가고파`2부를 작곡했다. `가고파`1부는 `가고파`의 첫수(首)부터 6수(首)까지요, `가고파`2부는 7수(首)부터 마지막 10수(首)까지다. 예술가는 일관된 신념이 있어야 한다. 김동진은 이렇게 하여 그의 대표작을 마무리했다. 우연의 일치지만 내가 `봄이 오면`을 음악 시간에 배운 것은 18세 되던 고 2시절에 배웠으니 김동진 선생이 18세 때 지은 곡을 나는 비로소 18세에 불렀으니 김동진 선생은 확실히 천재 작곡가시다. `뱃노래``파초``목련화``못잊어`등 김동진 선생이 작곡한 작품은 명곡이 아닌 것이 없다. 타고난 음악성에다 일본 동경에 있는 `동경 일본 고등 음악학교`(음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김동진 선생은 가곡뿐 아니라 `심청전``춘향전`판소리를 가곡으로 만들었다. 선생의 노익장은 못 말릴 정도여서 84세의 고령으로 오페라 `춘향전`을 작곡하셨다. 사람은 자기가 아는 만큼 보인다. 내가 `악성 김동진 선생`을 졸필로 그린다니 주제파악을 제대로 한 것 같지 않아 못내 송구스럽다. 가곡 `목련화`는 경희대 음대 교수재직시절에 작곡한 것으로 `목련화`의 작사자는 경희대를 있게 한 조영식 박사가 작사자다. 나는 꽃 중에 목련꽃을 제일 좋아하는데 김동진의 곡 `목련화`를 들으면 더욱 목련화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깊어지는 것 같아 좋다. 김용호 시인 작사, 김동진 선생의 곡 `저 구름 흘러가는 곳`을 들으면 불우한 가정형편으로 꽃을 피우지 못한 지난날들이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음악을 좋아하는 필자의 아들이 김동진 선생의 자서전을 읽고 내게 들려준 말이다. 김동진 선생은 그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좋은 곡을 쓰기 위해 애쓰지 말고 올바른 인간이 되기 위해 먼저 애써라. 좋은 인간이 되면 좋은 곡도 절로 쓰여지게 된다. 좋은 곡이 좋은 곡(曲)이 되자면 저력 있는 연주자를 만나야 한다.” 김동진 선생은 한국의 슈베르트라 한다. 한국의 가곡 왕이란 뜻이겠다. 김동진 선생이 90평생에 남긴 곡이 500편이 넘는다. 곡마다 명곡 아닌 것이 없다. 김동진 선생을 `명곡제조기`라면 실례 천만이요, `명곡의 산실`이라면 표현이 적절한 것 같다. 비범한 재주를 지니고도 조용히 한 생을 사신 김동진 선생님은 인품도 명품이시다.

2009-08-25

봄날은 간다

미모와 미성(美聲)을 겸전한 만년소녀 같던 가수 백설희(본명 김미숙) 선생을 얼마전(몇해전?)부터 TV화면에서 볼 수 없어 아쉽기도 하고 조금 답답하기조차 했다. 그런데 운수 좋게도 어제(8월13일) TV채널 26에서 백설희 선생을 TV화면에서 볼 수 있었는데 옛날의 미모는 약에 쓸려 해도 찾아볼 수 없고 여성스럽던 미모가 남성진 무뚝뚝한 노파로 변모되어 있고 은쟁반에 옥을 굴리던 미성도 고음부 처리를 위해서는 애를 쓰는 딱한 모습도 언뜻 보였다. 백설희 선생의 히트곡 `봄날은 간다`처럼 백설희 선생에게도 `봄날`은 가고 낙엽 지는 늦가을 황혼에 예사 노파가 서 있다. 봄날의 화사하던 만년소녀 가수 백설희 선생의 모습은 전혀 볼 수 없다. 가요 `봄날은 간다`를 두고 작고한 중진시인 조병화 선생이 우리나라 대중가요 가사 중 가장 시(詩)적으로 잘된 곡으로 `봄날은 간다`를 꼽았다. 조병화 선생이 가사 1절을 그냥 외우시고 곡(曲)은 자신이 없다며 노래를 부르시지 않았다. 조병화 시인은 그림으론, 화백(畵伯)이요, 스포츠도 만능인 팔방미인인데, 흔한 대중가요 한 곡을 못 부르실 리 없지만 중진시인으로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노래를 부르시지 않은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필자도 나도 모르는 새에 `봄날은 간다`가 아니라 확실히 `봄날`은 갔다. 우산을 쓰고 가던 초등학교 4학년 쯤 돼 보이는 여학생의 우산이 내 어깨를 스쳤다. 여학생은 놀라며 `아저씨, 미안합니다`라고 미안해했다. 요사이 젊은이와 부딪치면 사과는 그만두고 `똑바로 보고 다니시오`하며 적반하장이 일수인데, 우산 조금 스쳤다고 사과까지 하다니 너무 여학생의 예절 바름이 귀여워서 `아니 괜찮아`하며 웃어 보였다. 여학생들이 내 앞을 지나가며 “저분은 아저씨가 아니고 할아버지야”하며 재잘거린다. 얼굴이 주름살이 없이 팽팽해도 나는 분명히 아저씨일 수는 없다. 저 아이들의 말처럼 어느새 나도 할아버지가 되었다. 노년에 가장 거북한 것은 건강문제가 되겠지만 내 경우엔 여가시간 처리가 가장 큰 문제다. 특강이라도 주문을 받으면 `사자후`를 토할 텐데 예수님의 지적대로 선지자가 고향에선 환영받지 못한다고 했는데 예수님의 가르침 중 가장 실감이 나는 가르침이라 생각한다. 요사이 문경시 인구가 준다고 아우성인데, 이참에 차라리 나도 서울로 주민등록을 옮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어디를 가도, 나의 전성시대는 끝났지만, 그동안 외면한 중앙문단에서 여생의 보람을 찾고 싶다. `헛되고 헛되도다`하고 구약성서 전도서의 집필자는 탄식을 했다. 봄날은 이미 갔지만 남은 계절을 지난 봄철이상으로 화사하게 밝게 보내야 하지 않을까? 마음만 먹으면 안 될 것도 없다. 인간은 동물이다. 동물은 공기와 물만 있으면 어느 곳에서도 살 수가 있다. 이 세상 어디에도 낙원은 없겠지만 살아있는 동안 꾸준히 낙원을 찾아 헤매는 것이 인생의 본질이라 확신한다. 필자는 가능성이 높은 인생을 살았다. 나의 특기는 튀는 것이다. 아무도 나의 시도를 말리지 말기를 부탁드린다.

2009-08-18

지극 정성

여름은 화끈해서 좋다. 땡볕을 쬐면, 얼음이 녹듯이 얼굴이 땀범벅이 된다. 여름이란 말은 열매를 뜻하는 `열음`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나도 전적으로 동감이다. 더운 여름에는 찬 음식이 대접받을 것 같지만 한여름에도 냉면집보다 보신탕집이 더 북적거린다. 열은 열로 때우는 치열한 도전정신 때문일 게다. 사람은 여름에 보신탕 장기복용으로 식욕이 상승하는 데 비해 한여름 견공(犬公)은 식욕이 통 없는지 말세인 복날이 염려되어선지 개식사가 비교할 데 없을 만큼 부진하다. 그냥 밥을 주어선 도통 먹지 않기 때문에 지극정성을 다한다. 굽이 높은 그릇보다 식사하기 좋은 그릇으로 밥그릇을 바꾼다. 물기가 많으면 잘 안 먹기 때문에 물기를 없애고 마른 건더기만 주기도 한다. 그래도 안 먹으면 하모니카를 불어주어 개 꼬리가 박자기가 되게 한다. 일류(?) 접대부 이상으로 없는 아양까지 다 떨면 개 밥그릇 밑바닥이 보인다. 정년 퇴직한 지 8월 말로 꼭 5년이 된다. 퇴직 후에 별로 하는 일도 없이 세월을 보내다 보니 지난 5년 세월이 50년이나 되는 듯 아득하다. 나는 퇴직하고 나서 할 일을 퇴직 전에도 한 것 처럼 가정경비원인 개를 내가 계속 책임지고 기르기로 했다. 개를 기르자면 아침, 저녁 하루 두 번 끼니를 돌봐주어야 하고 개를 가까이하면 개들도 사람에게 충성을 다하고 재롱을 부리기 때문에 노후에 할 일로 이만한 소일거리도 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개 식사 개시 전에 한 숟갈 시식해보면, 내 요리 솜씨도 궁중요리사 수준(?)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다. 정성과 솜씨가 이만한데도 여름의 잦은 개식사 부진 때는 공자 같은 나도 가끔 짜증스러울 때가 있다. 나는 사람이지만 내가 개에게 쏟는 정성의 십 분의 일도 다른 사람이 내게 해주는 이가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 SBS의 인기 프로 `세상에 이런 일이…`에 만 35세가 된 개가 소개됐다. 개가 만 35세의 나이라면 사람으로 치면 일백세가 훨씬 넘는다. 이가 다 빠지고 피부는 비루먹고 보기가 민망할 정도다. 학계에 인정된 통설로는 개의 수명은 만 15세가 최고라고 한다. 나의 경우, 개를 기른 것이 올해로 39년째인데 우리 집에 기른 개 중 가장 오래산 애견 `산적`이 만 12년 2개월로 종생기를 적었다. 그다음 오래 산 개가 `똘똘이`인데 만 9년 4월13일을 살고 눈을 감았다. 나 같은 지극정성의 애견가를 만나 10년을 넘겼지, 개를 무관심하게 키우면 1~2년 안에 끝장이 난다. 사람만 재주가 특출한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개도 개성이 강한 경우가 많다. 집 나이로 13세를 산 `산적`이는 음악견이다. TV에서 명곡이 나오면, 가수(성악가)가 노래하는 포즈(?)를 취하면서 따라 하고 저속한 대중가요는 착각으로라도 따라하는 법이 없다. 산적이는 불가에서 말하는 전생이 있다면 틀림없이 악성(樂聖)이었을 것 같다. `똘똘이`도 우리 집에서 태어난 강아지로 죽을 때까지 10년 동안 우리 집 식구가 되었는데 신통방통한 것은 약을 앞에 놔주면 스스로 먹어서 개를 키우기가 아주 쉬웠다. 사람들에게 경고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제발 `개 같은 놈`이란 욕설을 함부로 하지 말란 말이다. 40년 양견경력의 깨달음으론 웬만한 사람으로 인격이 견공의 충성심과는 비교도 안 된다. 얼마 전 작고한 K 추기경님 정도가 되면 견공(犬公)의 경지를 추월했다고 보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견공을 스승으로 수범하여 인생수업을 다시 해야 할 것 같다. 개를 함부로 욕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개를 키운 적이 없는 사람이다.

2009-08-11

어떤 양두구육(羊頭狗肉)

이근창 시인은 올해 6학년 9반으로 나보다 연세가 한 살 위인 전직 고급 공무원이다. 내가 그분을 시단(詩壇)에 안내했다고 극진한 예우를 잊지 않는다. 몇 차례 회식(會食)도 이 시인이 알아서 마련했고 내게 밥을 살 기회를 도무지 주지 않는다. 너무 일방통행이 되어서 안 됐다고 하면 제자가 스승을 대접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하여 그분의 마음씀에 내가 도리어 경외감을 느낀다. 쇠고기를 번제(燔祭)로 드리는 식탁에서 주고받는 이야기는 정치나 사회 현상에 대한 시국담(時局談) 보다는 정갈한 문담(文談)이 주어(主語)다. 워낙 나이 들어서 시를 처음 시작하여 현대적 감각이 무딜세라 `올해의 좋은 시``연간우수시선집` 등 그해를 대표(?)한다는 우수(?) 시선집을 모조리 구입하여 시시콜콜히, 노안(眼)에 돋보기까지 동원하여 일독(一讀), 재음미하지만 어째서 그런 시들이 그해를 대표하는 시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데, 뇌 세포가 노쇠하여 그렇다고 장탄식이시다. 이근창 시인은 오십대 후반에 늦게 시단(詩壇)에 들어온 늦깎이지만, 소년 시절부터 시심(詩心)을 닦아온 저력 있는 노익장의 시인으로, 지역 문예지에 발표하는 시 수준이 그 잘된 시집이라는 우수 시선집에 넣어도 단연히 돋보일 정도다. 부끄럽지만 이 시인의 궁금증에 대해 나의 소견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다. 잘된 시라고 내놓은 우수 시선집은 특정 출판사가 낸 한 권의 공동 시집으로 그해의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시집이 아니다. 시를 선정한 위원인 평론가나 시인도 일 년에 만편도 넘게 생산되는 시를 다 읽고 시의 등급을 정확하게 판정하는 초인적 문사도 아니다. 별로 그림도 못 그리면서 10명이 합동 전시회를 하고 나서 대한민국 10대 화가라고 명함을 찍어 돌리는 자칭(?) 대가(大家)가 많은 게 우리나라 현실이다. 출판사가 시집을 많이 팔려고 애를 쓰는 것을 탓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너무 극단적으로 그해의 명시집입네 과대 포장하여 순진한 독자에게 시의 부고장을 보내선 안 된다. 가장 잘된 시집이 이 정도니, 우리나라 시단은 끝장났다고 오판하도록 선량한 독자들을 더이상 울리지 말자. 시 한 편 제대로 못 뽑는 평론가(?)와 별로 감동을 주지도 못하는(?) 시인이 뽑은 시가 제대로 잘된 시일 리 없다. 어느 중진 시인이 신춘문예 심사를 맡아 했는데, 예선 통과 작품 중엔 단선작을 뽑을 수 없어 예선 탈락 작품을 심사하여 뜻밖의 대어(大魚)를 건져냈다고 한다. 차리리 올해의 잘된 시는 그 시집에 안 실린 시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제 시(詩)가 선집에 못 오르니까 공연히 푸념한다고 해도 좋다. 소위 잘된 시선집이라고 나팔 부는 그 시집이 딴 시집과 다름없는 평범한 시집에 불과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창간한 지 38년이 된 한국의 대표적 시 전문 월간지 시문학에 실린 우수 작품들이 한편도 그 대단한(?) 우수 시선집에 실리지 않은 것만 봐도 우수 시집이란 허구에 불과한 것임을 쉽사리 알 수 있다. 이근창 시인이시여! 우수 시집에 실린 시를 읽고도 감동을 못 받는 것은 이 시인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제대로 시안(詩眼)을 못 갖춘 채 시를 논()합네, 고(考)하네 하는 문학적 양심이 증발(?)이 됐거나 심안(心眼)이 어두운 상업의 전위가 된 소위 평객·시인들의 대과(大過) 탓입니다. 이 시인이시여! 앞으로는 시 공부는 `우수시집`이라고 나팔부는 시집을 제쳐놓고 평범을 기치로 한 시집을 읽으심이 어떠하시올지요? 우리나라 문학가가 노벨문학상을 못 받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끼리끼리 노나 먹는 문학상과 사이비 우수(?) 작품집이 판치고 있는 한 한국 문단의 전도는 암담할 뿐입니다.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는 옛말이 우리 문단 현실에 아주 걸맞은 말입니다. 한국 사람은 양고기보다 개고기를 좋아하니까 양두구육도 괜찮은 말이라 한다면 저는 더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2009-08-04

역사와 `If`

왕년의 중·고등학교 역사교사였던 필자는 중등교장으로 5년 전에 정년퇴임을 했지만 청년교사시절 못지않은 정열을 가지고 TV 교육방송의 국사강의와 세계사 강의 시청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해박한 지식을 갖춘 교사들이라 과연 다르구나 하는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한국사능력검정 대비 특강을 하는 강사가 대원군 아버지 남연군의 무덤이 독일상인 오페르트에게 도굴당해서 시신을 훔쳐간 걸로 가르쳤는데 실제로는 무덤조성이 견고하여 도굴이 미수로 끝났다. 사실의 자초지종을 다 꿰뚫기는 힘들겠지만 주요한 사실은 확실하게 알고 가르쳐야 한다. 신라의 삼국통일의 부정적 측면에 신라가 외세를 끌어들여 동쪽을 해코지를 한 것 같이 폄하를 했는데 통일이 되기 전 까지는 삼국은 같은 민족국가가 분명히 아님을 알고 교사는 바른 지식을 학생들에게 지도해야 할 의무가 있다. 특히 대학의 한국사 교수는 대한민국 건국을 북한과 같은 입장에서 강변하는 자들이 많아 대학생과 젊은이들이 대한민국을 비딱하게 오판하는 원인제공을 하고 있다. 국토가 분단되고 남북에 각각 다른 정부가 들어선 것은 여러 자료를 보나 국제법에 비춰볼 때 미국보다 소련의 책임이 더 크다. 만난을 극복하고 이승만이 대한민국을 세워 오늘날 과잉(?)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이 세계 12대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하여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의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게 되었다. 대학교수에게는 학문의 자유가 지나치게 부여되어 있어 사실을 왜곡해서 가르쳐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학생들에게 진실이 아닌 사실을 가르쳐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학생들에게 진실이 아닌 사실을 왜곡해서 가르쳐도 되는지 무책임한 무한자유 앞에 기가 막힌다. 북한보다 더 정통성을 갖춘 우리나라를 왜 그렇게 내심 저주하고 잡아먹지 못해 앙탈을 부리는가. TV 화면에 개량한복을 입고 출연해 우리나라를 부정적으로만 가르치는 창백한 얼굴이 가엽다. 교수가 그렇게 대단한 자린가? 불평만 늘어놓아야 어용교수가 아닌가? 역사에는 `만약(If)`이란 말이 있을 수 없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이 태산준령이요, 확실한 것이다. 철학은 이상이지만 역사는 이상이 아니요, 냉엄한 현실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된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지성과 애국심을 겸비한 이승만 박사가 있기에 가능했다. 당시 세계정세로 보아 전혀 불가능한 남북통일국가의 미련 때문에 대한민국을 저주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배반자일 뿐만 아니라 진정한 민주주의자도 아니다. 까놓고 말하면 애국자와는 거리가 먼, 구제불능의 왼손잡이 일 뿐이다.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자유천지 대한민국에서도 스스로 자기 속에 지옥을 만들면서 사는 가련한 중생에 불과하다. 나쁘든 좋든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올곧은 마음가짐이 학자에게 꼭 필요하다. 이 땅에 살면서 이 땅을 저주하는 자는 이 땅에 같이 살 자격이 없다. 역사연구의 가장 큰 원리는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다. 역사를 전공하여 고관대작이 되는 것도 아니다. 있는 사실을 제대로 가르쳐 이 땅에 투정꾼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무슨 학문을 하든 주제파악을 제대로 해야 정상적인 연구가 되고 학문이 됨을 밝히 알아야 한다.

2009-07-28

여름, 여름, 즐거운(?) 여름…

텔레비전을 보니 오랜만에 여야의석에 의원영감님(?)들의 존안이 보인다. 그동안 바깥에서 현장정치(?)를 하시느라 얼굴이 많이 햇볕에 그을렸다. 밤늦도록 의석을 지켜보시니 심야까지 책과 씨름하는 고 3학생들의 고달픈 일상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됐다면 , 1등의원이다. `미디어법` 기습처리를 염두에 두고 의석을 지키니 겉으론 조용해 보이지만 폭풍전야라는 표현보다 핵폭발 직전의 위기감이 감돈다. 미디어법은 방송·신문이 소통을 잘되게 하는 법인데, 여야 의원들끼리 소통이 부재(不在)하니 올바른 입법활동은 기대하기조차 힘들다. 정치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중국 상고시대의 맹자만큼 그 뜻을 딱 부러지게 내린 사람은 없다. 정(政)이란, 정(正)이다. 정치란 정의를 실현하는 국가작용이 정치다. 지금 방송은 정의로운가? 현행법만으로 편향된 방송을 바로 잡을 수 있는가를 충분히 헤아려 `미디어법`을 처리해야 한다. 국가를 폄하하고 부유층과 빈곤층간의 갈등을 고의적으로 부추기고 폭동수준의 과격시위를 옹호하고 오히려 부추기는 현재의 방송은 공영방송으로서 임무는 아무리 좋게 봐도 1%도 수행하지 못하고 빨치산의 메가폰 같은 느낌이 강하게 다가온다. 지금 수준의 공영방송은 진정한 민주주의와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오히려 없는 것이 낫다. 방송이 존재하려면 언론 본연의 자세와 순수성을 회복해야 한다. KBS1 TV가 기획한 `진보와 보수`에 대한 방송도, 진정한 통합보다는 오히려 국민의 갈등을 조장하고 진보(?)의 세 불림을 위한 기획작품 같은 느낌이 든다. 좌익을 진보라고 미화하고 우익을 보수라고 비하하는 호칭부터가 독단적이다. 우리나라 현실은 진보와 보수가 있는 게 아니라 국가보위세력과 적화통일세력으로 나눠져 있다. 공산사회를 지향하는, 세계추세에 동떨어진 좌익세력을 진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진보라는 좋은 말을 쓰레기로 만드는 언어폭력이다. 좌파의 특징을 들면 부자에 대한 신경질적, 무조건적 증오와 적대감이다. 나는 극빈자로 청소년 시절을 불우하게 지냈지만 나는 부자를 부러워한 적은 있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꿈에라도 부자를 미워한 적은 없다. 대부(大富)는 유천(由天)이지만, 소부(小富)는 유근(由勤)이란, 명심보감의 말을 늘 명심하고 산다. 부자를 미워하면 부자가 나쁘게 되는 게 아니라, 미워하는 자기만 불치병인 암에 걸린다. 부자를 미워할 시간에, 벽돌 한 장이라도 더 나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가난을 벗어나 부자가 된다. 부자란 재산만 많다고 부자가 아니다. 남에게 거짓말하지 않고, 이웃을 속이지 말고 부끄럼 없이 밝은 마음으로 살면 마음으로 부자인 것이다. 재물의 부자보다 마음의 부자가 더 행복하다고 우기지는 않지만 그렇게 생각한다. 5천만 가까운 인구가 10만k㎡ 정도의 좁은 땅에 살면서 부딪치는 일이 없을 수는 없다. 자기와 수가 안 맞다고, 극단적으로 죽이고 병신을 만들지는 말자. 사랑하는 것도 자유요, 미워하는 것도 자유지만, 자기 화난다고 남의 집에 방화를 해서야 되겠는가. 뱃속에서 나올 때, 돈주머니 갖고 태어난 아기가 없듯이 태어날 때부터 깡통 들고 나온 아이도 없다. 자기 노력에 따라 팔자소관으로 부자도 되고 가난뱅이(?)도 된다. 부자가 되든, 빈자가 되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면서, 밝은 마음을 품고 살면, 더이상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국가 발전의 덕목은, 대립보다는 화합 쪽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09-07-21

좋은 노래란

어떤 노래가 좋은 노랜가.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봄 직한 주제일 것 같다. 좋은 노래란 곡(曲)도 좋아야겠지만 노랫말이 희망적이고(밝고) 좋아야 한다. 조두남 작곡, 윤해영 작사의 `선구자`는 한때 표절 시비에 휘말린 적이 있다. `오빠 생각`과 `사우(동무생각)`을 작곡한 박태준의 `임생각`과 너무 닮았다는 것이다. 조두남의 `선구자`는 `임생각`보다 훨씬 뒤에 나온 노래로 열여섯 마디 중 열세 마디가 `임생각`과 꼭 같다는 것이다. 통상 예술계에서 표절이란, 남의 작품을 20%만 모방하면 속절없이 표절로 평가절하되고 비양심의 표본(?)으로 낙인이 찍힌다. 박태준 선생의 제자들이 경찰에 호소해 치안본부 경감이 직접 나서기도 했는데, 무혐의(?)로 낙찰된 것 같다. 사실 `임생각`은 가사가 어두워 발랄하고 활기찬 `선구자` 가사와는 게임도 안된다. `임생각`의 `가을날 날 저물고…`로 시작하는 암울하고 퇴폐적(?)인 가사는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 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는 맑고 활기찬 가사와 표절의 시비도 성큼 넘어선 것이다. 지금도 선구자는 국민들이 가장 즐겨 부르는 국민 애창곡 랭킹 1위로 그 지위가 확고부동한 바 있다. 양주동 작사, 이흥렬 작곡인 `어머니`도 `어버이 날`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골메뉴 애창곡으로 딴 노래의 추종을 불허한다. 방송에서 나오는 위의 노래를 따라하다 보면 메마른 노년의 눈가에도 촉촉한 이슬이 맺히고, 감기가 안 걸렸어도 목이 메어 노래를 끝까지 따라 부를 수 없다. 양주동은 황해도 출생으로 동경 와세다 시절에 노산 이은산 선생의 각별한 우정으로, 하숙집에서 노산의 밥상머리에서 연명한 에피소드가 입증하듯, 집안이 몹시 청빈했음을 알 수 있다. “나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사랑은 가이 없어라.(이하 생략)” 가사도 쉬우면서 어머니의 고생하시고 자식 사랑하는 마음이 눈앞에 환히 전개된다. 좋은 가사야말로, 작곡가의 영감에 불을 댕겨, 명곡이 확실하게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작곡가 이흥렬은 어머니가 힘겹게 벌어 보내주는 향토장학금(?)으로 돈 많이 드는 동경유학을 했다. 작곡·기악·성악을 막론하고 피아노는 기본 악기로 피아노 없이 제대로 음악을 공부할 수 없다. 피아노란 군인으로 말하면 기본화기인 소총과 같다고나 할까. 이흥렬은 가난한 집사정도 잘 알고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과 헌신도 뼛속 깊이 느꼈지만 피아노 없이는 도저히 음악공부를 따라잡을 수 없어 눈물을 머금고 어머니께 일자상서(一字上書)를 했다. “어머니, 피아노가 없어서 음악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어려우시겠지만 피아노 한대만 꼭 사주세요.” 아들의 유학 뒷바라지를 위해 평소 애쓰시던 이흥렬의 어머니는 편지를 받은 즉시로 험한 산을 마다 않고 오랫동안 아들의 소원인 `피아노`를 당당히 사주었다. 이흥렬(1909~1981)은 모정의 화신인 `피아노`를 머리맡에 두고, 악상(樂想)을 가다듬어 양주동의 노랫말에 가락을 붙여 한국의 명가곡이 세상에 탄생하게 된 것이다. 피아노가 음악의 샘이 돼 이흥렬은 연속적으로 명가곡을 세상에 내놓게 된다. 어머니의 사랑은 기적의 원천이다. 오늘 이 세상이 이렇게 살맛 나는 세상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어머니의 지극한 모성애가 꽃을 피운 것이라고 봄이 정확할 것 같다. 이흥렬의 `바위고개`는 얼마나 지난날 애창했던 명곡인가. “바위 고개 언덕을 혼자 남자니/ 옛 임이 그리워 눈물납니다./ 고개 위에 숨어서 기다리던 임/ 그리워 그리워 눈물납니다….” `바위고개`란 나라 잃고 살던 일제강점기의 이 땅이다. 생략된 가사에 나오는 `머슴살이`란 고달픈 망국인의 삶을 말한다. 정서가 실종된 영원한 감동을 주는 것이 참된 예술의 기본요건이다. 필자는 작곡가 이흥렬 선생께 각별히 감사드릴 일이 있다. 필자의 모교인 문경중학교 교가를 이흥렬 선생이 작곡해 주셔서 감동 깊은 좋은 노래를 소년 시절부터 애창하게 해주셨기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

2009-07-14

어떤 토사구팽(兎死狗烹)

대한민국은 올해로 건국 61돌이 된다. 개인으로 치면, 진갑이 되는 연륜이다. 나라가 진갑이 되도록 대학입시제도가 정착이 안 되고, 가변적이다. 개인이 진갑이 되어도 인격형성이 안 되고 성격이 유동적이라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우리나라 교육이 표류하게 된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고등교육을 맡는 교수가 교육부장관직을 독식하고 초중고의 보통교육 출신의 교원은 한 명도 장관이 된 일이 없으니 교육제도와 정책의 불합리성이 우연이 아니다. 보통교육의 기반 위에 고등교육이 성공할 수 있다. 대학교수 아닌 초중고 교원도 교육부의 수장(首長)이 되어야 살아있는 교육행정이 될 것이다. 요사이 타 직종에 종사하던 사람도 교장이 될 수 있게 한다니 기발한 아이디어인지 기가 발산한 매너리즘인지 헷갈린다. 군의 부대장, 경찰서장, 법원장, 검사장은 타 직종의 사람이 넘볼 수 없는 성역인데 교장자리는 전문교육자가 아닌 누구라도 할 수 있고 누구나 해도 되는 자리란 말인가. 교사가 한평생 교직에 전념해도 교감승진도 못 하고 평교사로 마쳐야 하는 아쉬움이 많은 교육계인데 교육하고도 상관없이 살아온 사람에게 교육계의 꽃인 교장자리를 내주어야 한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젊은 여자가 결혼하는 것은 노후에 대한 인생보험의 성격이 있다. 젊은 미모의 여성에게 졸졸 따르는 남정네가 얼마나 많은가. 결혼하는 것보다 혼자 사는 젊은 여자가 이성편력도 다양하고 좋은 점고 많지만 늘그막을 위해 고분고분하게 꽃가마를 타는 것이다. 권력도 많은 보수도 없지만 나이 들어 교장 하는 재미로 평교사 시절의 고생을 감내하는 교사들의 충정을 안타깝게도 교육부 수장(首長)은 모르고 있다. CEO 출신이면 교장보다 학교경영을 잘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다고 교육이 능률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막말로 교사 중에 누구를 시켜도 교육부 고위직도 현재 고위직보다 더 잘할 사람이 많다. 교장 전부를 CEO로 채울 수 없으니 교육부 장관 자리에 CEO를 앉히면 전국 교장 모두가 CEO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본다. 교육자 출신 아닌 타 직종을 교장에 임명하려면 교원에게도 교직이 아닌 타 직종으로 진출시켜 교장자리를 타직종에게 넘길 것을 보상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물론 현재 초중고의 보통 교육계도 산적한 과제가 많다. 좌·우로 갈린 교직사회 등 교육부의 책임이 크다. 교원은 공직자다. 헌법에 규정된 자유민주체제에 충실해야 한다. 보통교원은 미성년자를 다룬다. 미성년자를 특정한 이념의 하수인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보편적 사고를 하는 건실한 국민으로 키워야 한다. 교장조차 외부인사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하는 교육계의 현실이 딱하다. 크게 보면 그게 우연이 아니라 자업자득일 수도 있다. 존경받는 선생님이 되어 감히 교장자리를 밖에서 넘보지 못하게 새뜻한 교직자의 모습을 보여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스승의 길은 탄탄대로가 아닌 험산준령이다.

2009-07-07

양비론(兩非論)

`정치현안`에 대한 정확한 소감을 화끈하게 드러낼 수 없는 게 우리네 실정이다. 여당은 6월 임시국회를 강행(?)하려 하고, 야당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개회를 필사적으로 막으려 하고 있다. 우리나라 공무원 중 최고의 봉급과 대우를 받는 것이 우리나라 국회의원이다. 국회가 연중 늘 개회가 되어 있어 법안처리가 잘되고 폭력을 배제하고 조리에 맞게 적법하게 의안처리가 잘 되어야 하는데 거대여당은 60% 가까운 의석을 차지하고도 30%도 안되는 야당에게 계속 밀리고 있어 국회의 지지부진한 입법활동(?)이 민생에 악영향을 끼치고 불이익을 예사로 안겨준다. 국회는 여야회담에 따라 열리는 게 아니라 국회법에 따라 개회되어야 한다. 입법기관인 국회에서조차 법대로 되는 게 없으니 이 땅에는 국민에게 준법정신의 모델이 없다. 조선시대에 한강은 상선이 많이 왕래하고 경강상인은 오늘날 자본주의의 싹을 조선시대에 심어준 이 땅 자본주의의 원조이다. 경강상인의 상선을 노려 한강에는 수적(해적)들의 배가, 상인의 배를 노렸다. 조선시대 한강수적의 근거지가 너섬(여의도)이 아님이 분명한데도 오늘날 여의도 `어떤 큰집`은 폭력의 전시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여·야를 막론하고 이번 국회 개회를 방해할 권리가 없다. 국회에 폭력이 난무하는 것은 이를 방치한 의장의 책임도 가벼울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은 X의장이 대권에 대한 꿈을 가지고 현안에 대해 모호한 처신을 한다고 한다. 가수 태진아의 인기곡 `사랑은 아무나 하나`가 있지만 `대통령도 아무나 하는 자리가 분명 아니다`. 의장직도 원활히 원리대로 잘 수행하지 못하는 사람이 대권을 잡을 수 있다면 이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할 것이다. 하위직도 잘 처리 못 하는 사람에게 상위직이 곱게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이다. 정치인이나 공무원의 생명은 준법정신과 국민에 대한 봉사정신이다. 나는 이번 임시국회에는 토를 달지 말고 야당이 무조건 등원해야 야당도 살고 국민이 사는 길이다. 살길이 명확한데 몽니를 부려 파멸의 길로 질주하지 말기 바란다. 조선 성종대왕은 문신 유호인을 총애했다. 노모를 모시기 위해 유호인은 고향인 의성으로 낙향을 하게 됐다. 성종은 유호인과 석별을 못내 아쉬워하면서 송별연까지 마련하고 성종은 `있으렴 부디 갈다?`하는 즉흥시조를 술자리에서 읊조렸다. 유호인에게 의성 `다인 현감`자리를 주어 노모를 잘 모시도록 특단의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유호인은 고을 원님(현감)으로 정치를 잘했으면 얼마나 좋을까만 유호인은 민정에 낙제생이었다. 소를 잃은 백성이 현감에게 소도둑을 잡아 송사를 했는데 판결을 질질 끌다가 `서로 다툴 것 없이 소를 팔아 소 판돈을 절반씩 나눠 갖도록 하라`는 기상천외라기 보다 얼토당토않은 판결을 내렸다. 유호인은 근무평가를 경상감사로부터 `하지 하`를 연속 받게 되어 파면 직전에 이르렀다. 성종은 경상감사에게 지금 같은 태평성대에 그런 무능한 현감은 있을 수 없다고 근평서류를 되돌려 보내 파직을 겨우 면할 수 있었다. 양비론(兩非論)은 유호인의 소도둑에 내린 판결과 같다. 세상에는 무엇이 분명 잘못되고 잘된 것이 명확히 있다. 우리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양비론`같은 어정쩡한 의견표출보다 확실한 시비의 판단이 절실히 요청된다.

2009-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