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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안방을 열광시킨 16인의 드라마 작가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1-10-19 20:23 게재일 2011-10-19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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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댓 드라마티스트` 아시아 펴냄, 스토리텔링콘텐츠연구소 지음, 272쪽, 1만2천원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오늘도 수서에서 여의도까지 새벽 버스를 타고 달려야 했다. 울고 보채는 아이는 동생에게 맡기고 왔다. 다행히 대본 연습 시간에 맞춰 늦지 않게 도착했다. 원고를 읽어 보던 PD는 그녀에게 다시 수정을 요구했다. 이미 수도 없이 고친 원고였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최선이라면, 다시 고치리라. 지쳐 쓰러져 펜조차 들 수 없게 될 때까지 최선을 다 할 것이라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내 다리가 풀려 계단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때 어디선가 온기가 다가왔다. 청소부 아주머니가 건넨 따뜻한 보리차 한잔이었다. 그녀는 종이컵을 보며 `사람의 온기란 이런 것이구나` 생각했다.`엄마의 바다`, `그대 그리고 나`, `쑥부쟁이`를 쓴 김정수 작가의 이야기다. 그녀가 쓴 드라마에 담긴 온기는 몇 년 후 수많은 시청자들의 마음에 담겼다.

“한 편의 드라마가 탄생하기까지 드라마 작가에게는 시청자가 흘리는 눈물보다 더 많은 눈물이 필요하다.”

`서울의 달`을 집필하면서 김운경은 극중에서 제비로 등장할 인물을 찾기 위해 영등포로 갔다. 사교댄스계의 종결자로 꼽히는 일명 `대머리 박` 선생을 찾아가 입문을 간청했다. 삼고초려 끝에 그는 마침내 `대머리 박`의 제자가 되어 사교댄스를 배우고, 카바레 세계를 알아 갔다. 당대 최고의 유행어가 된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터닝”은 책상머리에서 얻어질 수 있는 대사가 아니었다. … 거지들의 세계를 다룬`형`을 집필할 때는 거지들의 소굴 한복판으로 기어들어 갔다. 작품에 등장하는 전후의 거지들은 음성의 꽃동네에서 은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김운경은 걸신(乞神)이라는 것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거지는 그냥 가난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거지 귀신이 들려야 한다. 잘 차려진 깔끔한 음식보다 얻어먹는 더러운 음식이 훨씬 더 맛있는 사람이 진짜 거지다. `거지왕` 김춘삼은 어느 날 손님들과 함께 식당 뒷문으로 들어가다가 음식 쓰레기통에 거꾸로 처박혀 있는 생선 등뼈를 보았다. 식당에서 시킨 비싼 음식이 나왔지만 손이 가지 않았다. 부글부글 끓는 음식 쓰레기 속에 거꾸로 처박힌 생선 등뼈가 눈앞에 어른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김춘삼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몰래 나와 잔반통에 박혀 있는 생선뼈를 집어 단숨에 핥아먹었다. 혓바닥은 짜릿했고, 목구멍은 전율했다. 걸신이 들린 사람은 상한 것을 먹고도 병에 걸리는 일이 없다. 걸신이 몸을 떠난 거지는 상한 음식을 견디지 못한다. 거지는 한 번 병에 걸리면 세상을 뜬다. 육체를 지탱하던 걸신이 이미 육체를 떠나 버렸기 때문이다.

김재영(소설가,`코끼리``폭식`), 김종광(소설가,`경찰서여 안녕``71년생 다인이`), 박영란(소설가, `나의 고독한 두리안 나무`), 서성란(소설가,`특별한 손님``파프리카`) 등 한국 문단을 이끄는 소설가들이 필진으로 참여한`올 댓 드라마티스트`(아시아펴냄)는 드라마 작가들의 삶을 생동감 있게 그려 내고 있다. 이들은 드라마 작가의 직업적 특성과 드라마가 지닌 의미에 대해서 성실히 조명했다. 그리고 모든 필진은 드라마 작가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한국 드라마가 세계에서 환영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느꼈다고 한다. 이들이 드라마 작가들에 관한 자료를 조사하고 취재하면서 느낀 삶에 대한 어떤 긴장감은 취재 기간 내내 필진들을 따라다녔다. 독자들도 글을 통해 그것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책은 김수현, 김정수, 김운경. 주찬옥, 최순식, 이선희, 박지현, 최완규, 권인찬, 홍진아, 노희경, 박계옥, 김도우, 정성희, 정형수, 이기원 등 드라마 작가 16명의 이야기가 구성지게 펼쳐진다.

“드라마 작가가 끝까지 붙들고 매달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 건강하고 아름다운 인간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풍조나 시류를 신경 쓰지 마세요. 좋은 대본이면 됩니다. 엉성하게 작업하지 마십시오. 드라마는 세공(細工)으로 여겨야 합니다.”

- 김수현 편

이 책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삶을 살고 있는 드라마 작가들에 관한 책이다. 그들은 늘 성공한 드라마의 뒤편에 묵묵히 서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인생을 통해 드라마를 썼다. 그들이 만난 사람이 드라마 속 인물이 되고, 경험한 바가 사건이 되고, 아껴 둔 소중한 것들이 소재가 되었다. 하지만 드라마 작가는 토씨 하나도, 대사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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