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안의 주요 정보를 개인의 욕심 때문에 독점하는 행위는 부도덕하다 못해 파렴치하다.
하지만 그 치기 역시 책에서 배웠으므로 내 죄 역시 반감돼야 마땅하다! 그 시절, 설익은 청춘들의 감성을 쥐락펴락했던 전혜린이란 에세이스트가 있었다. 그가 독일 유학시절 필요한 자료를 도서관에서 슬쩍해왔다는 고백을 읽으면서 나도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다. 그때 오린 사진이 프루스트였다. 자책감보다 더한 치기어린 만족감이 있었음을 나도 고백해야겠다.
하지만 빌린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작가 사진만 불법으로 쟁취한, 못다 읽은 책으로 남고 말았다. 한 마디로 지겨웠다. 만연체 문체 때문이었다. 끝날 줄 모르는 접속사로 이루어진 복문은 독자의 인내심을 시험했다. 한데 만화로 된 그 책이 있다는 걸 알았다. 당장 샀다. 그 유명한 장면인 마들렌느와 홍차 부분에서 마들렌느 과자 모양이 무척 궁금했다.
홍차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식탁. 왼쪽 손에 홍차 한 스푼을 뜬 마르셀은 콧수염 가까이 들이대고 그 향을 음미한다. 접시에 놓인 마들렌느 과자 한 조각을 떼어 스푼 속 홍차에 찍는다. 그 순간, 온갖 오감이 발동해 마르셀은 의식의 흐름 여행을 하게 된다.
만화로 된 이 책만으로도 프루스트를 이해하는 데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다.
단, 빌린 책이라면 마들렌느 과자 실체를 확인하고 그 모양이 탐나더라도, 절대 칼로 오리는 행위는 삼갈 것. 책 귀한 시대는 지났으니까.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