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사전 정보 없이 열두 살에 도시로 떼밀려왔을 때 내가 받은 충격은 우주 빅뱅 그 이상이었다. 이사 간 동네는 당시로서는 신도시였다. 넓은 골목은 아스팔트로 잘 포장되어 있었고, 아이들은 아스팔트 위에다 분필로 모형을 그리고 돌차기 놀이를 했다. 맨땅이 익숙한 나는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고무줄놀이도, 돌차기도 내 눈에는 부자연스럽고 생경하기만 했다.
문화충격은 위로부터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지난한 도시 골목은 더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시골에서는 아예 골목이란 개념이 없었다. 여러 집이 돌담을 사이에 두고 붙어 있어도 집과 집을 이어주는 길 역할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특별히 비루하거나 남루하다는 느낌 없이 시골은 그런 면에서 누구나 부르주아였다. 하지만 오래된 도시 골목에서는 삶의 신산한 냄새들과 소리들이 지글거렸다. 아스팔트 골목과는 다른 또 다른 충격이었다. 그때 어렴풋이 계급의식 같은 걸 자각한 것 같다.
유진은 3,4년 간격으로 세 번 더 골목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마지막 사진은 일산의 어느 아파트 앞일 수도 있겠다. 남루한 도시 뒷골목을 떠나 번듯한 아파트 청소년으로 자랐다. 유진의 골목 찰나를 끈덕지게 따라잡은 이는 김기찬이다. 그의 두꺼운 사진집 `골목안 풍경 전집`에는 수십 명의 유진들이 나온다. 비리고, 질퍽이는 삶에서 순간의 미소를 찾으려는 누군가에게 이 사진집은 서럽고 따가운 위안이 돼줄 것이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