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따뜻한 바닥잠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06-20 00:07 게재일 2013-06-20 19면
스크랩버튼
길 떠나면 뜻 하지 않은 사건 하나쯤은 생겨줘야 제격이다. 여행담은 평범하지 않을수록 오래 기억되고, 그 기억의 갈래들은 깨어지는 삶의 리듬에 윤활유가 되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토록 만나고 싶었고, 심하게 로망에 젖었던 파리에 대한 첫인상은 실망감이었다. 대책 없이 자유로운 도시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것일까. 도로에 흩어진 각종 비닐봉지, 휴지, 꽁초 등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깨끗하고 단정했던 런던 거리와 자꾸만 비교되는 것이었다. 겨우 한 번 스친 눈썰미로 이른 실망에 닿을 필요는 없지만, 어쨌든 내게 파리의 첫인상은 기대 이하였다.

그에 대한 파리의 보복이었을까. 도시 외곽 호텔에 짐을 풀었다. 잠시 밖에 나오면서 카드키를 방안에 둔 채 문을 닫아 버렸다. 자정 즈음이라 호텔직원들은 퇴근했고,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꼼짝없이 한뎃잠을 자야 할 신세였다. 우리 일행을 운전해주던 버스기사 아저씨 두 분도 나처럼 카드키를 방안에 두고 나왔단다. 속수무책으로 당황하고 있을 때, 누군가 자기들 방에서 같이 자자고 했다. 아무리 여유 공간이 있다 해도 쉽지 않은 선의였다.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잠시나마 타인의 호의를 기대하며 내 입장을 변명하던, 민폐를 자초한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했던 한 순간이 떠올라 복합적으로 울컥해지는 것이었다.

그날 밤, 가이드가 동분서주하며 구해준 여유이불을 바닥에 깔고 잠을 청했다. 내 방이 아니고, 침대 위도 아니었지만 어느 때보다 달콤하고 따뜻한 잠자리였다. 다음날 일어나 보니 가이드 역시 곁방 잠을 잤단다. 운전기사 두 분께 잠자리를 양보하고 다른 가이드 방에서 잤다는 것이었다. 내 문제로도 피곤했을 텐데 잠자리까지 편치 않았던 가이드에게 미안하기만 했다.

여행을 하다보면 순간의 실수로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기도 한다. 그 민폐를 보듬어 안는 것 또한 개인의 몫인데 쉬운 일은 아니다. 잠자리 내어준, 모녀처럼 다정하던 직장 동료사이라던 두 분께 지면이나마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

/김살로메(소설가)

팔면경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