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자 읽는 모습을 처음 봤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문예교실에서였다. 내가 넘긴 교재는 점자책으로 바뀌어 그들 앞에 놓여 있었다. 글자를 손끝으로 읽는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호기심이 일었다. 한 분에게 다가가 양해를 구하고 조심스레 점자에다 손을 대어 보았다. 오톨도톨한 것이 손끝에 잡히는가 싶더니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야릇한 감각이 전신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간 내게 글자는 눈으로 보는 것이다. 손끝으로 느낀다는 건 막연한 감각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처한 상황을 해결하고 내게 주어진 일상을 꾸리기에도 급급한 날들이었다. 나와 다른 방식의 삶이 다양하게 존재하고 때론 그 방식이 얼마나 특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었다. 이참에 그들을 만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글에 대한 열정과 내공이 놀라울 정도로 잘 보이지 않는다는 불편함은 그들에게 가서 적극적 긍정의 에너지가 되었다.
한결같이 봉사하는 이들의 모습에도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사람들부터 조금 보이는 사람들까지 점자를 읽을 수 있는 이부터 읽지 못하는 이들까지 장애의 정도가 다른 그들 곁에서 봉사자들은 청아한 목소리가 되어주고 다정다감한 손발이 되어 주고 있었다. 그 풍경을 보면서 순간의 깨침이 오기도 했다. 그들에게 뭔가를 줘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그들이 무엇이든 끄집어낼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마련해줘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갑갑하고 지난했던 그들에게 필요한 건 일방적인 누군가의 말씀이 아니라 그들 얘기를 펼칠 수 있는 넓은 마당이었다. 잘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잘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한 그들에게 마음밭 한 곁을 내어주고 싶다. 점자책을 해독하는 그들의 손끝에 내 마음도 만져질 수 있다면.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