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영원한 주제인 `사랑` 덕에 우리는 통영에서의 백석 행장을 상상으로나마 그려 볼 수 있다.
통영 `천희`가 있었다. 그곳에서는 `처녀`를 천희라고도 불렀나 보다. 동료 기자의 소개로 백석은 통영 출신 이화여고 학생 `란(蘭)`(박경련)을 만난다. 시인이 24살 때였다. 란의 부모에게 청혼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란과 결혼한 사람은 바로 백석과 란을 연결해준 그 친구였다. 시인은 큰 상처를 얻었지만 그 덕에 우리는 바람결 같은 그의 통영 관련 연시를 낭송할 수 있게 되었다.
시인은 `오래 그려 오던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 / 그렇게 살뜰하던 동무가 나를 버린 일을 생각한다`고 `내가 생각하는 것은`이란 시에서 란에 대한 애틋함과 자신을 배신한 친구에 대한 서운함을 언급한다. `흰 바람벽이 있어`에서는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나지막한 집에서 지아비와 어린 것 옆에 끼고 대굿국으로 저녁을 먹는다고 노래한다. 통영에 와서도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단 한사람을 생각하면서 시인은 외로이 대구탕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통영`이란 제목의 시 두 편을 연결하면 백석의 `란`에 대한 그리움의 모자이크가 완성된다. 김 냄새 나는 비가 내리는 날, 통제사가 있었다는 낡은 항구 도시에서 미역오리 같이 마르고 굴 껍데기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한 처녀를 객줏집 마루방에서 만난다. 처녀는 `명정골 정당샘` 근처에 산다고 들었다. 물 긷는 여인네들 가운데 혹시 `란`을 만날까 백석은 충렬사 돌계단에 앉아 바닷사공이 된 심정으로 길 건너 정당샘을 내려다본다. 그렇게 만나지 못한 사랑은 시가 되었다. 백석의 로맨스를 알고 통영에 가는 이라면 명정골 정당샘과 충렬사 계단을 무시로 지나치지 못한다. 먼 타향 사람 백석마저 붙잡아 놓는 힘 이것이 통영, 아니 사랑이 위대한 이유이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