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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정(非人情)의 풀베개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12-26 02:01 게재일 2013-12-2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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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상의 큰 축은 먹고 살기와 타자와의 관계 그 둘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달리 말하면 먹고 살기와 타자와의 관계 그 둘에서 벗어날수록 예술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일상인은 갈등 속에 그 둘을 업고 지고 가는 사람들이고, 예술가는 그 두 짐을 과감하게 놓아버리려고 시도하는 자들이다. 그렇다고 완전하게 일상성에서 벗어나기도 힘들다. 예술과 일상은 멀고도 가까운, 가깝고도 먼 친구가 되는 것이다.

일상과 불화하는 예술인의 내면을 시원하게 보여주는 작가군 중의 한 명이 나스메 소세키이다. 예술가 소설에 속하는 `풀베개`의 그 유명한 첫 구절을 보자. “산길을 오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지(理智)만을 따지면 타인과 충돌한다. 타인에게만 마음을 쓰면 자신의 발목이 잡힌다. (….) 여하튼 인간 세상은 살기 힘들다. 살기 힘든 것이 심해지면 살기 편한 곳으로 옮겨 가고 싶어진다. 어디로 옮겨 가도 살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시가 태어나고 그림이 생겨난다.”

세파에 영향 받는 인간 갈등을 이토록 자연스럽게 설득시켜주는 작가가 있을까. 먹고 살기 위해 사람 관계를 유지하는 소시민은 이지만을 따질 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주변과 삐거덕거리게 된다. 반대로 타인을 너무 신경 쓴 나머지 이타심을 발휘하면 제 기가 다 빠져버린다. 둘 다 힘겹다. 이제 그만 악다구니와 눈치만 있는 돌베개 벤 것 같은 인간사를 벗어나, 시와 그림이 있는 풀베개 베도 좋을 신선의 세계로 도망가고 싶은 것이다.

그것을 소세키는 인정(人情)에서 떠나 비인정(非人情)의 세계, 즉 자연으로 떠나는 것으로 설명한다. 감옥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 행을 감행한다. 화공이 되어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객관화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비인정의 세계에서 `나`의 세계관이 완전히 객관화될 수 있을까. 인간이기에 새로운 연민이 생기고, 새로운 갈등이 피어날 수밖에 없다. 다만 새로운 세상을 열망하는 그 과정이 예술혼이 된다는 걸 알겠다. 소시민은 일상과 사투하고 예술가는 비인정의 세계를 갈망한다. 그렇게 세상은 돌아간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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