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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안팎의 관계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01-17 02:01 게재일 2014-01-1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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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에 이상적인 궁합은? 충고하기 보다는 들어주는 관계일 때가 가장 이상적이다. 거기다 맞장구까지 쳐주면 더 바랄 게 없다. 옳은 말은 아낄수록 좋다. 하지만 어쩌다 바른 말을 하더라도 서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 더할 나위없다. 이때도 원칙은 될 수 있으면 바른 말은 아껴야 한다는 것. 정답은 이미 너나 나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옳은 말을 하는 친구가 아니라 내 말을 들어주는 친구가 필요하다. 모든 이로부터 옳은 말을 들어야 한다면 이보다 더한 스트레스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빈틈없는 사람들이 쏟아내는 충고의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아가 제 말에 심드렁한 리액션으로 화답하는 친구와도 자연스레 멀어지게 된다. 어딘지 맹탕이고, 알고 보면 허당인 범부들에게 자중자애하거나 완벽한 사람은 부담스럽기만 하다.

흔히 이런 경험을 한다. 어떤 사람과 만나면 나는 슈퍼에 갇힌 피의자이고, 상대는 투명 창을 사이에 둔 슈퍼 주인 같다는 느낌. 이것은 상대적인 감정이라 내가 피의자 역할일 때도, 상대가 피의자 역할 일 때도 있다. 물론 감정이입이 더 잘 되는 쪽은 아무래도 갇힌 자 입장일 때다. 왜냐면 슈퍼 주인 입장일 때는 사방 천지가 열려 있으니 거리낄 게 없다. 하지만 갇힌 자 입장 일 때는 온통 벽에 가로막혀 있으니 답답하고 갑갑할 수밖에 없다.

슈퍼 주인은 경찰을 부를 기회만 엿본다. 슈퍼 안 물건에 손댈 의향이 전혀 없던 피의자는 무슨 잘못을 한지도 모른 채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출구가 없다는 걸 알게 된 갇힌 자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슈퍼 안 물건에 눈을 돌린다. 진열된 과자나 음료수를 먹기 시작해 슈퍼 안의 모든 물건을 해치우기에 이른다. 그때 슈퍼 주인이 경찰에 신고해봤자 때는 늦다. 쌀 다 퍼먹은 독안의 쥐가 주인에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슈퍼 안팎의 관계일 때는 맹렬히 맞설 자신이 없으면 서서히 정리하는 게 맞다. 얼굴 맞대고 힘들어 하느니 덜 보고 자유로운 게 정신 건강에 좋다. 맞는 사람 만나기에도 생은 너무 짧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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