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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화병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02-03 02:01 게재일 2014-02-0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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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끝 카페엔 여자들의 수다가 한창이다. 오늘의 주제는 단연코 울화병이다. 한의학 용어에 `화병`(火病)이라는 게 있다. 울화병이라고도 하는데 억울한 마음을 삭이지 못해 온몸이 아프고 가슴이 답답하며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병이다. 뚜렷한 실체가 없어 과학적으로 풀이할 수는 없지만 분명 앓는 이들이 있으니 생긴 병명이렷다. 지극히 한국적 정서의 소산물인 이 병은 명절과도 관련이 있는데 여성들이 잘 걸리는 특징이 있다.

명절의 좋은 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오늘의 주제는 그것이 아니니 넘어가자. 지친 영혼들은 명절만큼 지긋지긋한 연례행사도 없다며 커피 잔을 마주한 채 저마다 손사래를 친다. 명절을 치르면서 성인남녀 누구나 육체적·감정적 노동에 시달린다. 하지만 늙으나 젊으나 며느리 입장인 여성들이 느끼는 피로감이 더한 것은 우리 명절문화가 시댁 위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그 집안의 노동에만 적극적으로 동원될 뿐 정작 그 문화의 중심에는 가닿지 못한다. 기득권 시댁 문화에서 변방일수밖에 없는 여성들은 당당한 의견은커녕`아니오`라는 최소한의 방어의 말조차 제대로 허락되지 않는다. 부당한 처사를 목도해도 안으로 삭이는 것이 현명한 처신이라고 강요받았다. 만약 부당함에 대해 거절이나 항의라도 한다면 `본데없는` 출신이 되기 십상이다. 그렇게 감정을 삭이고 삭인 착한 여성들은 울화병이란 달갑지 않은 병을 선물로 얻었다.

화병은 단연코 약자들의 병이다. 그러니 약자의 화는 언제나 온당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홀대 받으면 수치를 느끼고, 억압당하면 분노하는 게 사람의 본성이다. 반면, 착한 행위에 대한 보답은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하고, 잘못한 언행에 대한 감시는 얼음보다 차가운 것 또한 사람의 마음이다. 약자의 서글픈 굴욕은 강자의 이기적 욕심 앞에서 언제나 피해자다. 아니오, 라고 말하지 못해 울화병 난 여자들, 뒤늦은 방언 터지듯 말꽃 피우러 물안개 피어나는 카페 창가에 모여든다. 말로써 말을 치유하는 명절 끝 카페 풍광, 더할 나위 없이 인간적이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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