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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은 제때 걷어내야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02-04 02:01 게재일 2014-02-0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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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국을 끓인다. 간편해 보이지만 제 맛을 내는 게 그리 쉬운 게 아니다. 우선 양지 부위 고기를 찬물에 담가 핏물을 뺀다. 무는 반개 정도 어슷썰기 한다. 반듯한 깍둑썰기보다 자연스러워 보이는데다 맛도 잘 스며들기 때문이다. 찬물에서 건진 양지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끓는 물에 넣는다. 한소끔 끓으면 거기에다 무를 넣고 이십여분 중불로 끓인다. 중간에 소금 간을 한다. 기왕이면 천일염이 좋다. 마지막에 다진 파와 다진 마늘을 넣고 오분 정도 더 끓인다. 먹기 직전 식성에 따라 청양 고추를 넣기도 한다.

쓴 글대로만 하면 제법 시원한 뭇국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몇 번의 뭇국을 끓이면서 실패한 경험이 이 단상을 쓰게 했다. 일견 완벽해 보이는 저 레시피에 실은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뭇국의 맛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는 무엇일까? 바로 제때 거품을 걷어내는 일이다. 담백한 맛을 내기 위해 충분히 고기 핏물도 뺐고, 주재료도 일부러 기름에 볶지 않았다. 그래도 아차하면 텁텁한 맛이 난다. 바로 거품 때문이다. 불순물이 모여 몽글몽글 거품으로 끓어오르는데 귀찮다거나 깜박한 나머지 제때 걷어내지 않으면 실패한 뭇국이 되고 만다. 때깔도 지저분하고 맛 또한 텁텁하다. 제 맛을 내기 위해선 지키고 선 채, 넘치기 전에 불을 조절하고 거품을 걷어내야 한다. 타이밍을 놓쳐 국물이 넘치면 가스레인지와 냄비 뚜껑이 지저분해지고, 거품 또한 걷어내지 못하면 국물맛이 엉망이 되고 만다.

끓어오르는 화는 넘치기 전에 내 안에서 먼저 걸러야 하고, 해야 할 숙제와 미뤄둔 청소는 그때그때 하는 게 몸과 맘에 가볍다. 결심한 그때가 최적의 타이밍이다. 때를 놓치는 것만큼 찜찜한 것도 없다. 이미 식은 국 앞에서 그 맛을 원망해봤자 소용없다. 국물 맛을 잘못 낸 건 거품 제대로 걷지 않은 내 잘못이지 식재료 탓이 아니다. 새해가 시작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여전히 제때 거품을 걷어내지 못하고 빈둥거리다 허둥대는 자화상 하나 식은 뭇국 속에 얼비친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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