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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봄날처럼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02-17 02:01 게재일 2014-02-1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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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씩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섣부른 희망에 대한 기대감으로 오늘 이 순간을 너무 얕잡아 봤구나, 하는 생각 때문에. 제 생애의 정점이나 절정이라 부를 수 있는 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십대의 순수한 기억을 가진 이라면 그때가 가장 되새김질 하고 싶을 것이고, 청춘의 격정을 호사스레 누린 사람이라면 이십대야말로 놓치고 싶지 않은 시절이라고 회상할 것이다. 경제적, 사회적 성취감을 이룬 장년이라면 그때야말로 인생의 가장 화려한 시절이었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런 생각들은 언제나 과거형으로 나타난다. 무슨 말인고 하니 희망했던 그 순간은 지나고 나서야 그것이 이뤄진 희망이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식구들과 소박한 밥 한 끼를 나눌 수 있고, 땀 흘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별 탈 없이 친구들과 정담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는, 누리는 그 순간에는 잘 모른다.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 순간이 최상의 날이었음은 내일이 된 뒤에야 실감하곤 한다. 왜냐하면 욕망하고 희망하는 인간인 우리는 언제나 내일만을 기약하기 때문이다. 어제 보다는 오늘이 낫고 오늘보다는 당연히 내일이 낫다고 믿어버린다. 하지만 오늘 이 순간만큼 더한 절정의 날도 오기 어렵다.

오늘 하루 몸살로 온몸이 나른해진다거나, 타의에 의해 의기소침해진다거나, 모든 게 부질없어 보이는 순간이 온다면 그제야 지금까지의 제 삶이 얼마나 절정의 순간이었나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희망하고 염원하는 건 인간의 장점이다. 그렇다고 어제와 오늘을 버리면서까지 그것을 위해 달려가는 건 어리석다. 어제와 오늘 없는 내일이 어디 있으랴. 내일을 꿈꾸는 것보다 오늘이 내 생의 봄날이라는 생각이 우선이다. 그토록 희망하는 내일 아침이 와도 오늘 소박했던 하룻저녁보다 낫다는 법은 없다. 오늘 하루가 내 삶의 봄날이라는 명랑한 생각을 스스로에게 환기시킨다. 그래야 혹시라도 원하지 않는 아침을 맞았을 때 당황스러워하지 않고 이 역시 아름다운 봄날이라고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나.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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