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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자체로 살아가기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10-06 02:01 게재일 2014-10-0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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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 한 마리를 키웠을 뿐인데 닭이 되고, 닭이 거위가 되고, 거위가 자라 양이 되고 양은 자라 궁극의 소가 된다. 그 절정의 소는 양으로 변하고, 양은 거위로 작아지고 거위는 닭이 되었다가 닭은 병아리가 되었다가 종내는 병아리조차 없어진다. 온갖 은유와 직유를 가져와 설명한다 해도 `인생`에 대해 이보다 직접적이고 확실한 답문을 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중국 작가 위화가 말하는 삶이란 이처럼 병아리에서 소가 되었다가 소가 다시 병아리, 아니 무(無)로 이행되는 것을 말한다.

그의 소설 `인생`에는 선대의 물려받은 재산을 탕진한 주인공 푸구이가 나온다. 호방했던 아버지가 재산의 반 토막을, 나머지를 아들인 푸구이가 보기 좋게 말아 먹는다. 원하는 대로의 삶을 원 없이 탕진해본 푸구이는 자신이 지주였던 땅의 소작인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 몰락이 지주 처단이라는 역사적 소용돌이를 비껴가게 하는 행운으로 작용하긴 했지만, 나머지 푸구이 삶의 대부분은 비련과 불행의 연속일 뿐이다. 병 든 아내, 수혈해주던 아들의 죽음, 농아가 된 딸의 출산과 죽음, 사위와 외손자의 잇단 죽음 등 극한으로 치닫는 삶을 푸구이는 꿋꿋이 감내한다. 소를 잃어 본 자가 다시 병아리를 키워 소로 만드는 일의 어려움을 보여주듯 말할 수 없는 가혹한 가족사가 푸구이 앞에 이어진다.

개인사를 중국의 근현대사에 엮은 이 소설은 살아간다는 것의 비장함과 지난함과 절절함에 대한 보고서로 이루어져 있다. 격동의 근현대사를 보낸 중국의 단면을 푸구이의 운명에 빗대어 말하고자 하는 위화의 작가정신이 돋보인다. 공산주의 사회의 급진성과 문화 대혁명의 시기, 다시 자본주의 체제로의 변화 등을 겪으면서 중국 민중들은 삶과 죽음의 곡예를 넘나들어왔다. 죽음보다 더한 절망의 시간을 견딘 푸구이 같은 사람이 살아남아 이렇게 인생의 곤고함에 대해 말해주는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가 모든 삶의 비의를 설명해준다.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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