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평온하고 미더운 상태, 그건 에로스적 사랑의 본질이 아니다. 만약 그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거짓 감정이다. 에로스의 속성에는 사랑에 대한 끊임없는 확인 과정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상대를 구속함으로써 내 불안을 자초한다. 지루하면서도 다이내믹한 감정 소모가 이어진다. 한 마디로 진실로 사랑에서 자유롭지 않은 사랑 그것이 에로스적 사랑의 특질이다. 그 사랑의 불꽃은 종국엔 재만 남긴다. 그 재는 안타까이 오래 가는 성질의 것도 못된다. 아무리 위대한 사랑일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허용된 감정 안의 유한성의 사랑 그것이 에로스적 사랑이다.
하지만 진짜 사랑은 시공간에서 자유롭다. 오직 사랑이란 본질 자체에만 기댄다. 따라서 그 사랑은 무심하다. 모든 사랑을 초월하는 사랑 그 꼭대기에 무심함이 있다. 그것은 완전한 사랑이기에 불안도 집착도 없다. 범접 불가한 그 사랑의 대상 1호는 내게 `엄마`이다. 애증이란 검증을 거칠 필요조차 없는 사람, 집착과 연민에서 자유로운 완전무결한 대상. 그러기에 이토록 무심하고도 뻔뻔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덜 사랑할수록 영원히 사랑한다고 속삭인다. 진짜 사랑하면 그 말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그 사랑을 확인하고 집착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진짜 사랑하면 한없이 무심해질 수 있다. 그 사랑이 곧 내 마음인지 스스로도 잊을 만큼 항시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변명 같지도 않은, 늙은 엄마에 대한 이 직무 유기 사유서를 엄마는 이해할 것이다. 근데 무심한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면 이런 반성문조차 필요 없는 거 아닌가.
/김살로메(소설가)